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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서보 불멸의 기지
한국 미술의 거장 박서보. 88세, 미수米壽에 새 기지基地를 짓고 그곳에서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하겠노라 선언한 작가. 남들은 정리할 때 또다시 변화를 준비하고, 기억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매일을 기록하며 여전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 품격 있게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눈빛을, 미소를, 손짓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만년 청년, 영원한 현역 박서보 작가. 오는 11월 3일부터 12월 22일까지 뉴욕 페로탱 갤러리Perrotin Gallery, 11월 23일부터 2019년 1월 5일까지 홍콩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 전시회를 연다. 벽에 걸린 작가의 포트레이트는 김용호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

‘Ecriture (描法) No. 140416’,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on canvas, 130×200cm, 2014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해외에서 방문하는 갤러리스트, 작가 등을 위해 마련한 1층 갤러리&라운지. 돌과 자갈, 이끼만으로 여백 있게 완성한 테라스 정원이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건축설계를 맡은 조병수 건축가는 갤러리에서 정원을 바라볼 때 시각적 제약 없이 수평적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조벽 대신 얇은 원형 기둥(CFT 원형 철기둥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강도를 높이는 방식)을 제시했고, 덕분에 탁 트인 파노라마 뷰를 완성했다.
만남과 영속의 기지
그림이 먼저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연필을 잡기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박서보 작가는 1950년대 온통 불모지이던 우리 미술계에 낯선 추상미술을 선보인 이래 일평생묘법描法을 명제로 정제된 추상미술을 선보여왔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하자마자 전쟁을 겪고 1962년부터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명예교수로 퇴임하기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지금도 여전히 화업을 잇는 그를 단순히 ‘단색화의 거장’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쩐지 부족하다. 박서보 작가는 1957년 한국 앵포르멜Informel(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서정적 추상화의 경향)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현대미술가협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뒤,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 대회에 참가하며 한국전쟁의 참혹성을 표현한 원형질 시리즈를 전개했다. 단색화로 더 잘 알려진 묘법 회화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캔버스에 희끄무레한 오일 페인트를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을 반복적 으로 긋는 작업(연필 묘법)을 시작으로,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후기묘법(지그재그)에서는 물에 불린 한지 또는 닥종이를 캔버스 위에 겹겹이 올리고 유색 물감을 칠한 뒤 굵은 연필심으로 긁거나 밀어내는 행위로 요철을 만든다. 불어로 에크리튀르ecriture(쓰기)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이 그림은 가장 간결한 형태의 긋는 행위를 통해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작가에게 그리기는 마음을 비우는 명상이요, 자신을 갈고닦는 일이라 말하는 이유다.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에요. 그림이란 나의 생각을 토해내는 마당이 아니라 비워내는 마당이죠. 엇비슷해 보이는 ‘묘법’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고 단언합니다.” 생각을 비워내는 묘법작업은 디지털 세계에서도 통通했으니, 절필 대신 또다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겠노라 선포한 작가를 만나기 위해 그의 ‘기지’를 찾았다.

회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절제미의 정점, 함축적이고 지적인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공간 역시 미니멀할 것 같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집의 외관을 보면서 단색화가 떠오르는 걸 보면 집과 작업이 연결되는 느낌도 있고요.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전 집에 관해서라면 좀 더 편하게 여쭐 수 있을 것 같네요. 집을 짓게 된 계기를 먼저 여쭙니다.
내가 올해 미수거든. 결혼 60주년이야. 60년을 부부가 해로하면서 큰 탈 없이 아이들 키우고 이렇게 다 같이 살 집도 짓고… 굉장히 큰 기쁨이죠. 이 집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기념하기위해 지었어요. 우리 가족에겐 일종의 감사패 같은 거지. 건물을 ‘박서보 아트 기지’라고 불러요. 기지는 여러 의미로 읽히는데, 군사기지의 베이스base를 뜻할 수도 있고, 기발한 재치, 곧 즉각적으로 아는 지혜를 뜻하기도 합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집을 개조한 미술관이 많아요. 작가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이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운영하는데, 만약 내가 죽으면 이곳 역시 그렇게 보존해주길 바라지요.

길게 자리한 정원이 인상적인데요, 어떻게 사용하는 공간인가요?
해외에서 손님이 많이 와요. 작업실에서는 그림 하나 보여주려면 작품을 꺼내 포장을 벗기고 해야 하거든. 어떤 때는 귀찮아요. 그럼 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언제든 편하게 손님을 맞고, 작품도 볼 수 있도록 2층은 갤러리 겸 라운지로 쓸 계획입니다.

<행복>에서 취재한 ‘행복이 가득한 집’의 건축주 중 가장 연세가 많으세요. 노년의 집 짓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 또 삼대가 함께 사는 집이라고 하니 더 흥미로웠어요.
며느리가 딸 같아요. 나도 며느리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며느리도 아버지, 아버지 하지. 그래도 각자의 생활과 살아온 방식이 있는데 한 공간에 온종일 붙어 있으면 힘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중정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마주 보는 형태로 구성했어요. 3층과 4층이 주거공간인데, 테라스 하우스처럼 층이 올라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구조예요. 아들네는 손주까지 식구가 셋이라 2층부터 4층까지 써요. 확실히 예전과는 가구를 고르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 달라졌어요. 전에 쓰던 소파는 디자인은 좋은데 등받이가 깊어서 앉았다 일어나는 게 영 불편해. 가구는 디자인은 상관없으니 그냥 우리가 쓰기 편한 걸로 고르자 했어요. 주방도 콤팩트하게 줄이고, 청소하는 것도 힘드니까 밖으로 물건이 나와 있지 않게 곳곳에 수납장도 짜 넣고요. 밥 먹기 싫으면 그냥 집사람하고 근처에 나가서 사 먹어요.

자연의 색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해오셨습니다. 이 집에서도 자연과 합일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원이겠지요?
그렇습니다. 화이트 큐브 디렉터 캐서린 코스티얄도 이곳 정원을 보고 감탄했어요. 그림이 붙은 벽과 벽 사이를 건너갈 때마다 보이는 정원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거야. 갤러리에 자연이 함께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의 방해 요소가 되면 안 돼요. 이끼와 돌만으로 담담하게 꾸미되, 키가 큰 화초도 심지 않았어요. 대신 3층에는 나무를 볼 수 있도록 소나무를 심었어요. 덱 사이로 빗물이 빠지면 지하에 물이 모이게 설계해 정원수로 재사용합니다. 소방수도 된다니 아주 잘한 것 같아요.

조병수 건축가를 통해 집의 파사드에 적용한 패널 색깔이 선생님 작품에도 쓰는 ‘공기색’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결국 묘법의 질감을 패널로 표현한 건축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는데요, 이 부분에 동의하시나요?
처음에는 햇빛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알루미늄 수직 패널로 외부를 마감할까 했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염려가 됐어요. 결과적으로 건축 사무소에서 패널에 타공을 적용해 사선으로 배치하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우리 집을 위해 새로운 마감재를 개발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패널이 사선으로 배치되면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또 일부 가려지고, 바람도 잘 통하고… 동네 풍경과도, 하늘과도 조화를 이뤄 만족해요.

이번에 건축설계를 의뢰하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점이 있다면요?
제 동생이 건축가입니다. 안성 작업실을 맡겼는데, 아주 잘못한 거지. 여기는 이렇게 해라, 저기는 저렇게 해라…. 그때 동생이 뜻 한번 못 펴본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좋은 건축물은 건축가가 만들고 좋은 건축가는 건축주가 만든다고 합니다. 이번에 집을 지으면서는 건축가에게 모든 것을 맡겼어요. 중간에 갤러리 전동 새시가 비싸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건축가의 제안대로 하니까 갤러리와 정원이 탁 트이면서 아주 멋진 공간이 탄생했죠.

예술가의 집에는 어떤 예술 작품이 놓여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의 집에서는 민화, 서예, 사발 등 고미술품이 눈에 띄는데요.
예술의전당 앞에 고미술상이 많이 있었어요. 지나다닐 때마다 하나둘씩 모은 거지요. 평범한 듯 보여도 작품에 담긴 에너지가 대단해. 옛날부터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요. 작품뿐 아니라 만년필, 모자, 넥타이… 아직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요. 스쳐 지나가면서 본 것도 머릿속에 명징한 청사진으로 남아 결국 돌아가서 사 가지고 올 때도 있어요.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한편으로는 치유의 도구로서 예술의 역할을 정의하시면서 이 시대 예술은 “비워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번민하는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면, 집 역시 개개인의 물리적 치유를 위해서 어떤 면을 강조해야 할까요?
집을 지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인간이 덜 개입하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뎌진다고 할 수도 있는데, 구체적인 게 조금씩 없어져요. 공간에 장식 요소도 덜어내려고 노력했어요. 마감도 되도록 자연에서 온 소재를 사용했고요. 소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고 다뤄진 것에는 ‘중독’되지 않습니다. 겉도는 우아함도, 잘난 체하는 미니멀리즘도 아닌 진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본질에서 시작해야 해요.

3층 주거 공간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편이 아들 내외, 오른편이 박서보 선생 부부의 주거 공간이다. 중정은 덱 사이사이로 빗물이 흘러 지하 물탱크에 모이는 시스템으로 빗물을 정원수로 재활용한다.

아들 박승호, 며느리 김영림 씨 부부의 주거 공간. 거실 창 너머로 소나무가 그림처럼 자리한다.

글을 쓰는 아내 윤명숙 씨의 서재에서 3층 드레스룸으로 연결되는 계단. 벽면에 핸드레일을 설치하고 고미술상에서 하나둘 모은 도자를 장식했다.

반려묘 포. 계단이 많아 고양이가 지루할 틈이 없다.

3층 주거 공간은 리빙 다이닝룸과 침실·드레스룸으로 구성했고, 4층은 아내의 서재가 자리한다. 박서보 작가가 휴식을 취하는 리빙 다이닝룸은 담백하게 원목 가구와 나무 패널로 벽면을 마감했다.

콤팩트한 생활을 위해 주방 크기를 줄이고, 잔살림을 수납할 수 있도록 수납공간을 촘촘히 확보했다.

침실, 드레스룸, 현관… 어디에서나 가족사진을 볼 수 있다.

석부작 옆에 야생화를 심어 소소한 가드닝의 재미가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침대와 조명등만으로 편안하게 꾸민 침실.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아들 박승호 씨는 책이 많아 2층 일부 공간을 라이브러리로 사용한다.

박서보 작가의 모자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드레스룸.
그 시간이 말을 한다
작가에겐 전쟁의 상처가 깊다. 1960년대 원 형질 시리즈는 ‘어머니’를 외치며 절명한 수많은 영혼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시대는 또 변하더라. 땅끝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자유롭게 해외를 오가며 당신이 그렇게 처절하게 경험한 전쟁이 마치 소설책에서 읽은 이야기처럼 무뎌지는 순간이 왔다. 현대미술운동을 하다 돌연 교수가 되고 다시 거물급 상업 작가로 변모한 그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은 원형질에서 유전질로,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묘법을 시작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허상 시리즈를 만드는 등 갈팡질팡하는 그의 작업을 비판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에서 어찌 헛발질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에스키스esquisse 드로잉은 같은 시기에 제작한 박서보 회화(컬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의 다층적 구조를 더욱 잘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다. 일종의 건축적 밑그림이라 할 수 있는 이 드로잉은 여러 단계의 의식적 과정으로 구성했다. 작가는 먼저 작은 단위의 메모를 제작한 뒤 그것을 좀 더 큰 방안지 위에 정교하게 옮겨 그린다. 다시 석판으로 만든 방안지 위에 연필과 수정액 펜으로 첨삭을 하면서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조정한다. 한 화면에 연필, 석판용 해먹, 수정액 등을 동시에 사용해 복합적구성을 꾀한 에스키스 드로잉은 작가 자신이 기획한 박서보 아트기지 개관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컬러풀한 단색화 대신 드로잉만 있어서 의외입니다. 아직 준비 중인 2층 작업실에서는 어떤 작업을 펼칠 계획이신가요?
드로잉 개관전은 ‘지금부터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겠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공표하는 자리이기도 해요. 몇 년 전 아팠던 이후로 왼쪽 팔다리가 좀 시원찮아요. 더 이상 대작은 힘들다, 테이블 위에서 그릴 수 있는 작업은 1백20호가 최상일 거다 생각했지. 하루에 여덟 시간씩 그리면 1년에 스무 점 정도 그릴 테니, 그걸로 또 전시를 할 수 있겠구나. 누구에게 쫓기지 않고, 피곤하면 집에 올라가서 쉬기도 하고… 그렇게 여유 있게 그리고 싶어요.

매일 일기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누가 뭘 물어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도까지 정확하게 대답했는데 요즘은 종종 실수를 해요. 후학을 위해 일기에 소소한 것까지 기록하고 스크랩도 철저히 해. 제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관리해주지 않아요. 스스로 매니저가 되어 신문이든 잡지든 작업에 대해 한 자라도 나오면 모두 스크랩하라, 영문명까지 완벽하게 병기하라고 이야기하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일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고민이 많았죠. 은퇴 선언하고 그만둬버릴까, 내가 변해야 하는데 내가 변할 자신이 없는 거야. 그러다 앞으로의 예술이 어떻게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은 캔버스에 작가가 자기 생각을 토해내는 거야. 개념적 폭력이라 할 수 있지. 만년필로 사인을 했는데 잉크가 마르지 않으면 흡인지로 누르거든. 21세기 미술은 바로 그 흡인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흡인지처럼 보는 사람의 해석을, 고민을 작품이 흡수해 모두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흡인력을 지녀야 한다고요.

1층 안쪽에 자리한 갤러리. 움직일 수 있는 가벽을 설치해 작품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벽과 벽 사이에 서면 작품과 함께 칸칸이 달라지는 이끼 정원의 풍경을 마주한다.

박서보 아트 기지의 ‘기지Gizi’를 알파벳과 한글 자음, 모음을 분리해 조합한 그래픽 장식이 인상적이다. 종종 유리 벽을 보지 못하고 부딪히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로비로 들어서면 신상호 작가의 달항아리와 작가의 인물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연희동 박서보 작가의 주거 공간과 갤러리, 작업실이 공존하는 ‘박서보 아트 기지’. 사선으로 배치한 알루미늄 타공 패널 파사드가 작품처럼 느껴진다. 근린생활시설로 지하 2층과 지상 4층으로 구성했으며, 대지 면적 773㎡, 연면적 1997㎡. CNO 건설에서 시공, 설계는 조병수건축연구소(02-537-8261)에서 맡았다.

단색화라는 한국 특유의 미술 사조이자 화풍 자체가 주목받은 것은 작가 개인의, 미술계의 쾌거를 넘어 국가로서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역할과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서양은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에요. 검은색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에게 검은색은 수없이 군불을 때 시커멓게 그을린 추녀 아래 숯검정 자국이에요. 거기에는 손으로 꾹 누르면 무한대로 들어갈 것 같은 정신의 깊이가 있어요. 서양처럼 쓱쓱 칠하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의 색이죠. 서양 종은 맞는 순간 “땡”소리가 나요. 반면 한국의 종은 뒤로 물러섰을 때 비로소 “웅” 소리가 시작돼요. 피아노, 바이올린과 달리 가야금은 손이 현에서 떨어졌을 때, 한국무용 역시 손동작 뒤 천 자락이 공간을 휘저을 때 비로소 완성되죠. 깊이, 여운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동양 사상이라면 예술가의 자세 또한 그러해야 해요. 곁눈질하지 말고 충분히 자신을 심화하고 숙성시켜라,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삶의 방식과 예술가의 작업 세계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취재를 하면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건축은 새로운 시작입니까, 아니면 정리입니까?
얼마 전 진관사에서 6시 타종을 경험했어요. 스님이 종을 칠 때 그저 끝만 붙들고 있었는데, 그 울림이 어찌나 명징한지 몸속으로 들어와 확 퍼지는 게 느껴졌어요. 이제야 철이 났구나! 늘 시작도 못한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은데, 겨우 뭔가 보이는 것 같은, 지금부터 정말 그리고 싶은 작품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살아 있는 동안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지난한 여름도 지났으니 이제 붓을 들어야겠지요.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파워롱 미술관(Powerlong Museum)은 11월 8일부터 2019년 3월 2일까지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중국에서 한국 추상미술을 대규모로 소개하는 최초의 전시로 한국 단색화의 연대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 중 박서보 작가는 <묘법> 연작 <Ecriture(描法) No. 18-81>(1981) 이외에도 1980년대 작업 등 다양한 시기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 취재 협조 국제갤러리(02-735-8449, kukjegallery.com), 조병수건축연구소(02-537-8261, bchoarchite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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