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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농부 최정심 씨 텃밭에서 식탁까지
그림 같은 텃밭을 품에 안고 사는 삶. 단순히 씨앗을 키우고 수확한 농작물로 그럴싸한 식탁을 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철학과 지향점도 함께 경작 중인 도시 농부가 있다. 성남 판교의 집 전체를 텃밭으로 가꾼 최정심 씨다.

1층 마당은 물론 집 안, 옥상에까지 텃밭을 들인 최정심 씨. 텃밭을 가꾸려 판교 주택으로 이사 왔고 16년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처음 텃밭을 가꾼 건 1998년이었요. 제가 재직 중인 대학교에 나대지가 있었는데 이곳을 푸르게 가꿔보자는 취지로 동료 교수들과 힘을 모았죠.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밤낮으로 정성을 쏟아부었어요. 하지만 장마를 예상치 못해 배수로가 없던 텃밭이 속절없이 쓸려갔고, 그렇게 초보 농사꾼의 첫 텃밭은 망가졌죠.” 그 후 20년이 흐른 지금, 학교 텃밭은 물론 집 안에까지 텃밭을 들인 베테랑 도시 농부. 바로 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이자 계원예술대학 전시디자인학과 교수 겸 기획처장인 최정심 씨다.


텃밭을 꾸리려 이사 온 주택
“1970년대에 지은 건물로 반려견과 텃밭을 키우려고 이사 온 2002년에 리모델링했죠. 살다 보니 더욱 노후된 건물의 안전성 문제로 2011년에 허물고 새로 지은게 지금의 모습이에요. 하지만 차고 위 텃밭만큼은 이사 온 2002년 이래로 변함없이 지켜온 공간이죠.” 흔히 물건을 적재하거나 야외 테라스로 쓰기 마련인 차고 위 옥상에 텃밭을 조성한 최정심 씨는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다. 텃밭 사이사이에 돌을 깔아 구획을 나눴는데, 이는 작물을 밟지 않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블루베리, 복분자, 공심채, 애호박, 양배추 등 20여 종의 작물을 키우고 있으며 텃밭 바로 옆에는 수확 후 바로 세척할 수 있는 싱크대도 마련했다. 그리고 최근 최정심씨의 텃밭은 더욱 늘어났다. “올해 초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견들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덩그러니 비어 적막이 흐르는 마당의 덱을 뜯어냈어요. 다행히 덱 아래 깔려 있던 흙의 상태가 좋았어요. 퇴비를 섞어 영양을 공급하고 각종 씨앗과 모종을 심었죠. 오크라, 토란, 그린빈, 콜라비 등이 유독 무더웠던 여름을 이겨내고 지금의 텃밭을 채우고 있지요. 담벼락에는 지지대를 세우고 덩굴을 키우는데 한창이고요. 내후년이면 완벽한 초록으로 덮이겠죠?” 레몬그라스, 타이바질, 애플민트 등의 허브와 관상용 꽃도 심었다. 최근에는 어렵게 구한 펜넬을 화분에 심었는데 번식력이 왕성해 하루가 달리 자라고 있다. “새의 깃털처럼 하늘하늘한 펜넬은 생선 요리에 주로 써요. 향긋한 향이 비린내를 잡아주고 풍미를 돋워줘요.” 아스파라거스는 우후죽순처럼 번식력이 강해 텃밭의 깊이, 면적을 충분히 고려해 심어야 한다. 토마토는 잘 자랄뿐더러 듬성듬성 썰어 생으로 먹거나 주스, 볶음, 무침 등에 두루 활용할 수 있어 요긴한 작물이다. “추천 작물은 차조기예요. 일식에서 종종 접하는 시소의 한 종류로, 보랏빛을 띠죠. 초록 시소보다 비타민 함량이 높고 특유의 상큼함이 있어 샐러드는 물론 음료로 즐기기 제격이에요.”

엠제로랩에서 개발한 스마트팜 에코박스 1호. 음식물 처리기이면서 햇빛과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텃밭 디바이스다.

최정심 씨의 텃밭 도구. 엠제로랩에서 활동하는 유연경 작가가 버려진 현수막으로 만든 의자, 계원예술대학 전시디자인학과 학생이 만든 텃밭용 엉덩이 쿠션이다.

덱을 뜯어내고 새로운 텃밭을 만든 1층 마당.

가지, 콜라비, 무 등 텃밭에서 수확한 제철 채소.
온전한 땅의 힘을 믿는다
모든 텃밭에 약은 일절 쓰지 않는다는 최정심 씨. “약을 쓸수록 지력은 약해지기 마련이에요. 힘을 기른 땅에는 유기물질이 풍성해지는 동시에 식물 자체의 힘이 강해져 병충해를 이겨내죠.” 그가 지력을 기르기 위해 우선시한 것은 바로 살아 있는 흙이다. 흙이 딱딱하면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어 작물의 생명력이 낮아진다. 건물 밑에 있어 숨을 쉬지 못하거나 다년간 농사를 지어 양분이 다 소모된 땅의 흙도 마찬가지다. 건조하지않고 보습력이 있어 공기구멍을 만들어주는 지렁이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화학비료가 아닌 천연 양분을 섞어준다. 계분 등 분뇨나 음식물 찌꺼기가 그런 것이다. 특히 사과 껍질, 호박 껍질 등 일상생활에 발생하는 음식물 껍데기를 20cm 아래의 흙 속에 넣으면 15일 안으로 완전히 분해되는데, 악취가 전혀 나지 않으며 이보다 더 영양가 높은 비료가 없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할 우리 삶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고 자연과 괴리된 삶을 살아왔죠. 그런 현상은 도시화로 인해 더 극심해졌어요. 식물의 성장 배경은 토양에 있고 지력이 높아야만 그 에너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유기적인 생태계를 위한 도시 농부의 노력
최정심 씨의 텃밭은 2016년에 만든 비영리 연구소인 ‘엠제로랩’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업과 이러한 농업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을 연구하며 지도한다. “엠제로랩은 먹거리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인 푸드 마일리지를 낮춘 삶을 살자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에요. 도시의 삶에서 우리가 자초한 많은 문제가 질병과 환경 재앙을 야기하고 있어요. 이러한 담론을 목소리 높여 말할 수 있지만, 제가 그리고 계원대학교 전시디자인학과 학생들이 가장 잘하는 디자인으로 대안을 찾고자 해요.” 엠제로랩의 활동은 텃밭을 가꾸는 동시에 농업과 관련한 디자인이다. 2017년에는 경기농업기술원과 MOU를 체결해 이러한 디자인을 지도하고 있다. “농업 관련한 디자인이라 하면 다들 모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창고와 도구, 정리함 등에 관한 디자인이에요. 텃밭 바로 옆에 갓 수확한 작물을 세척하고 손질할 수 있는 싱크대도 해당하죠. 텃밭에 관련한 용품부터 아웃도어 퍼니처를 두루 디자인하고 있어요.” 조경사가 잘 꾸민 정원처럼 텃밭도 디자인해보자는 취지로 학생들과 함께 연구, 지도하고 추후에 창업까지 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디자인 생산에 그치지 않고 조류독감 등의 사회 문제와 공장식 축사로 인한 동물 윤리에 대한 고민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하나의 사물이지만 사회적·환경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었고 개·새·곤충을 위한 집도 만들었다. “곤충을 위한 집은 ‘익충 호텔’이라 이름 붙였어요. 텃밭을 해치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익충이지만 농약과 제초제, 산림 파괴 등으로 서식지를 잃은 익충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일환이죠. 텃밭을 가
꿈으로써 제 본업인 디자인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지향점이 바뀌었고 미래 농업 디자인을 이끌어나가고픈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신선한 쇠비름, 비트, 미니양배추 등에 포만감이 좋은 율무와 키노아, 모둠콩을 곁들인 샐러드. 비빔밥처럼 쓱쓱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먹으면 입안에 건강한 대지의 기운이 가득 찬다.

차고 위 옥상에 만든 텃밭은 작물을 밟지 않도록 사이사이에 돌을 깔아 구획을 나눴다.

수확 후 바로 세척할 수 있도록 텃밭 옆에 설치한 싱크대 .

수확물로 손수 멋지게 차린 식탁. 보랏빛 차조기를 끓인 물에 식초와 꿀을 섞고 차게 식힌 텃밭 음료도 빠질 수 없다.
진귀하고 맛있는 텃밭 요리
텃밭은 든든한 식량 공급처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사시사철 다르게 나는 작물의 손질과 보관이다. 콩은 부드럽게 삶아 착즙기에 넣는다. 즙으로 나오는 두유는 마시고 남은 건더기 는 소량씩 분류해 냉동고에 얼린다. 둥글납작하게 뭉쳐 콩전을 부쳐 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좋은 영양 간식이다. 비트는 생으로 썰어 샐러드에 사용하거나 말려 스낵으로 즐길 수 있다. 오래 보관하려면 푹 삶은 다음 자줏빛 삶은 물은 마시고 과육은 냉동고에 얼린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수프나 죽으로 즐긴다. 오크라는 특유의 점액질이 있어 묽은 소스에 넣으면 천연 전분 역할을 해 소스의 농도를 맞출 수 있다. 오늘 텃밭에서 식탁까지의 주인공은 쇠비름이다. “많은 사람이 쇠비름을 ‘풀’이 아닌 ‘잡초’로 알고 있어요. 저 또한 저희 텃밭에 초대한 적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난 이 풀을 몰라봤어요. 장수에 도움이 된다 하여 장명채라는 이름이 붙은 쇠비름은 동맥경화 예방과 뇌 활동 촉진에 효능이 있어요.” 생으로도 먹을 수 있는 쇠비름과 함께 미니양배추, 방울토마토, 비트를 준비한다. 여기에 삶은 율무와 키노아, 모둠콩, 매실장아찌를 곁들이고 장아찌의 간장으로 간한다. 텃밭 그대로의 온전한 영양이 가득한 최정심표 샐러드다. 데친 쇠비름을 올린 두부초밥에는 달큰한 비트와 짭조름한 명란젓, 데친 버섯을 고명으로 올렸다. 미리 만들어둔 토마토 수프에는 각종 채소와 오크라를 넣어 한소끔 끓였다. “차고 위 텃밭에 들깨 꽃송이가 맺혔어요. 내일은 이것을 따다 찹쌀풀을 묻혀 튀긴 깨보숭이를 만들 거예요.”

글 이경현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