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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재단사 여용기∙65세 극적인 삶, 한결같은 마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세대식 패션 스타일로 부산의 ‘꽃할배’란 애칭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탄 여용기.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는 법이라고 하는데, 이토록 말끔한 노신사의 평안한 얼굴은 예외인 듯하다. 쉽사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굴곡진 인생이었다. 17세부터 양복 기술을 배워 3년 만에 재단사가 되고, 운 좋게 29세에 맞춤 정장점을 시작하기까지 탄탄대로였지만, 37세에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나간 건축 공사 현장은 고단하지만 고통스러운 마음을 잊게 하는 피난처였다. 그렇게 20여 년을 보내고, 결혼하는 둘째 아들에게 양복을 선물하러 갔다가 운명처럼 다시 시작하게 된 재단사의 일. 거기서 만난 젊은 감성의 양복은 기존에 그가 알던 양복의 원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길이는 짧고 통은 좁고, 어깨 패드는 없고….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는 그에게, 변화는 순응하고 좇아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이젠 달라진 세상의 주인공이 됐다. 2년 전, 마음 맞는 젊은 친구와 함께 창업한 맞춤 정장 ‘에르디토’는 전국에서 고객이 끊이질 않고, 각종 언론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다. “30대 젊은 친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남은 인생 60여 페이지 중 어느 순간에는 꼭 기회가 온다.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육체가 건강해야 하고, 정신도 너무 타락해서는 안 된다.’ 배우고 못 배우고는 상관 없어요.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려는 정신, 그 기본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해요.” 극적인 삶 속에도 지킬 건 지켜온 그, 세월의 고된 풍파를 겪고도 지금의 얼굴이 이토록 편안하고 멋진 이유다.

글 강옥진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