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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행동 학자 최재천∙64세 신나게,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서


“국제 학회 가서 술 한잔 하는 자리가 있으면 동료 학자들이 저를 이렇게 골리곤 했어요. ‘너는 동물원이라도 운영하냐? 도대체 뭘 연구하는 놈이냐?’” 미국 유학 시절 개미의 사회 행동을 연구하던 최재천 교수는 나이 마흔에 서울대 교수로 돌아온 얼마 뒤 자신이 하던 연구를 포기했다. 동물 행동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한국에 뿌리내리려면 학생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 때문. “제 논문 목록을 보면 개구리 몇 편, 귀뚜라미 몇 편, 매미 몇 편… 온갖 동물을 다 했죠. 연구자로서 제 경력을 학생들에게 양보했기에 한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으로 충남 서천의 갯벌을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탈바꿈시킨 후 지난 2016년 말 다시 학교로 돌아온 최재천 교수는 동물 행동학 백과사전의 총괄 편집장으로서 학계의 최신 성과를 망라하는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세계 유수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책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학자로서 가장 영예로운 작업 중 하나. “동료 학자들이 저를 이렇게 추천하더군요. ‘이 친구만큼 여러 동물에 대해 다양한 주제로 연구한 사람은 우리 분야에 없다. 이 백과사전에 더 훌륭한 총괄 편집장은 생각할 수도 없다.’ 눈물이 다 났지요.” 세월이 흐르고 보니 자격지심은 저도 모르게 자격 요건이 되어 있었다. “살아보니 인생이 퍽 길더라고요. 앞일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매일매일 신나게,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 살면 좋겠어요. 지금 처한 상황에서는 안 보이던 것이 몇 발자국만 앞으로 가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생각한 그대로 되지는 않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풀리는 게 인생이더군요.”

글 정규영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