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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아쉬 아티스틱 디렉터, 파스칼 뮈사르 패션 모험가의 예술적 상상
사용하고 남은 소재에 기발한 상상력과 장인의 수공예 기술을 더해 새로운 오브제를 완성하는 쁘띠 아쉬petit h 컬렉션이 11월 22일 서울을 찾아온다. 이를 만나러 가기 전, 이 창의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미래적 프로젝트의 선구자인 아티스틱 디렉터 파스칼 뮈사르Pascale Mussard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기를.

쁘띠 아쉬 한국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제품들. 이번 전시의 시노그래피 작업을 맡은 정연두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전시 공간에는 제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초록 식물이 마치 마법의 정원처럼 채워질 예정이다.

에르메스의 6대손이자 쁘띠 아쉬 아티스틱 디렉터인 파스칼 뮈사르. 이전엔 에르메스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였다.
최고급 소재만을 고집하며 제품을 완성하는 에르메스의 창고를 떠올려보라. 재단하고 남은 실크와 가죽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무슨 상상을 하겠는가? 에르메스의 6대손인 파스칼 뮈사르는 이 고귀한 재료를 가지고 그 어떤 영역도 제한 없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우려의 시선이 더 컸다. 오랜 역사 동안 품위와 명성을 지켜온 기업으로서 새로운 시도가 조심스러운 입장부터 운영 방법의 문제까지, 설득의 설득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파스칼 뮈사르는 남은 소재를 이용해 아티스트들이 한곳에 모여 새로운 오브제를 탄생시키는 크리에이티브한 워크숍, 쁘띠 아쉬를 론칭했다. 2010년의 일이며 7년이 지난 오늘날, 이는 패션계의 가치 있는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쁘띠 아쉬는 파리 외곽 팡탱Pantin에 위치한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에르메스의 파리 세브르 매장(17 ruede Se´vres, 75006, Paris)에서만 상설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는 1년에 1~2회 전 세계 도시를 순회하며 특별 전시 형태로 선보이는 것. 한마디로 파리 세브르 매장에 찾아가지 않는 이상, 쁘띠 아쉬 컬렉션을 만나거나 손에 넣을 기회는 좀처럼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한정된 소재로 만들다 보니 완성품은 세상에 단 하나인 경우가 다반사. 그렇기 때문에 쁘띠 아쉬는 제품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 전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 쁘띠 아쉬가 11월 22일 서울을 찾는다. 전시 준비로 한창 바쁜 파스칼 뮈사르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시대인데도, 쁘띠 아쉬는 한정된 매장 그리고 ‘순회 전시’ 개념으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이처럼 아날로그적 판매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물론이다. ‘한시적이고 유목민적 방식의 순회 전시’라는 개념은 쁘띠 아쉬의 정체성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 고객과 공방을 위해 이 프로젝트가 파리를 기반으로 잘 뿌리내리며,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분명한 목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매장을 오픈할 계획은 없다.

한국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소감은?
2006년에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오픈할 때 한국에 와서 함께 일했는데, 이렇게 한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여러분의 나라 한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으며, 쁘띠 아쉬를 응원해주는 에르메스 한국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남은 재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환경오염의 가해자로 비판받는 다수의 패션 기업이 필요성을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텐데, 쁘띠 아쉬 철학이 현실화되고 정착하기까지 어떤 장애물이 있었나?
시작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회사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 완전하지 않거나 컬렉션이 지난 소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꿈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구어온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건대 내가 회사를 잘 납득시켜 확신을 준 것 같다. 내 아이디어는 결코 품질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컬렉션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다. 용도가 없어진, 예를 들어 지갑을 만들고 남은 한 조각의 가죽 같은 소재가 다른 새로운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나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꼭 필요하고, 의무나 책임으로까지 느껴졌다. 버려지고 잊히는 우리 주변의 모든 재료를 돌아보고 그것을 사용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에르메스 또한 성장하면서 제품의 제작 과정이 더욱 가속화됐고, 전 세계적 추세가 그러하듯 컬렉션의 진행도 더 빨라졌다. 다방면에서 품질과 내구성을 지니면서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들 때는 소재를 핵심 가치로서 대하고 접근해야하며, 이는 우리의 태생적 코드이기도 하다. 또 다른 포인트는 쁘띠 아쉬에서 종종 논의되는 사안이자 개인적으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로, 바로 ‘우리가 꿈꾸는 회사의 미래는 무엇인가’ ‘향후에는 어떠한 재료를 사용할 것인가’ ‘어떠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까’ 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가진 소재와 노하우는 그냥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다.

한국 패션계에는 파츠파츠의 디자이너 임선옥처럼 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존재한다. 이번 시즌에 원형 패턴을 사용했다면, 다음 시즌엔 그걸 만들고 남은 구멍 뚫린 원단을 패턴으로 승화하는 식이다. 그렇게 쁘띠 아쉬가 그저 남은 소재에서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소재를 버리지 않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작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을까?
방향은 같다.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융합해 활용하고, 소재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아이디어가 있는 경험 많고 숙련된 인력을 잘 찾는다면 회사에 도움이 되는 혁신 연구소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같은 회사는 항상 매 순간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 생각한다.

제품 영역에 한계가 없기에, 어디에 내놓아도 ‘에르메스’로서 품 위를 잃지 않을 완성도가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쁘띠 아쉬 컬렉션의 디자인적 키워드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나는 아티스트를 우리 공방으로 초대해 캐비닛 가득 정리해놓은 재료를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소재가 바로 우리의 모든 창조적 작업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소재를 살펴본 후, 우리가 가진 소재 중에서 선택해 작업하거나, 우리가 가진 소재에 새로운 소재를 더해 작업하기도 한다. 에르메스의 가치ㆍ스타일ㆍ절차에 따라 좀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며, 미학적 솔루션을 찾기 위한 장인들과 디자이너들 사이의 논의 및 제작 프로세스의 시발점이 바로 이 소재인 것이다. 쁘띠 아쉬의 창조력은 결국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소재의 잠재성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격에는 소재의 비용이 포함되는데, 쁘띠 아쉬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될 것 같다.
쁘띠 아쉬는 특별한 창조물이다. 하나의 오브제가 탄생하기까지 연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장인들이 각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바탕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오브제는 무엇인가?
동물 조형물 전문가인 마졸린 만더슬롯Marjolijn Mandersloot은 쁘띠 아쉬와 협업해 동물 우화 컬렉션을 내놓았다.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서는 가죽 소재만으로 제작한 실물 사이즈의 호랑이를 선보인다. 모든 동물 작품에는 이름을 붙여주기 마련인데, 이 작품의 호랑이에게는 한국말 ‘호랑이’를 영어로 음차해 표기한 ‘Horange’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호랑이는 진정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황소 가죽과 송아지 가죽 소재로 약 2백60시간에 걸쳐 제작했으며 총 1백89개의 가죽 조각을 사용했다.

이번 한국을 방문하는 컬렉션 중 추천 아이템을 세 가지만 꼽는다면?
방금 이야기한 호랑이 조형물 이외에 디자이너 찰스 케이신Charles Kaisin이 작업한 수탉 형태의 책꽂이 겸 시계도 소개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오리가미 기법을 활용해 수십 개 면으로 구성한 이번 작품을 탄생시켰는데,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백25시간이 소요됐다. 또 스위스의 유명 아트&디자인 스쿨 ECAL에서 공부 중인 한국 출신 최지원의 캐시미어 마스크와 실크 마스크도 정말 멋지다. 더불어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가죽과 실크 소재로 특별 제작한 참charm도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무궁화, 한복, 한국의 절, 솔방울, 은행나뭇잎, 대나무, 오리, 봉황, 용 등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모티프를 다양하게 차용했다.

디스플레이도 늘 예술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인가?
쁘띠 아쉬 전시를 위해 방문하는 모든 국가에서 나는 항상 현지 아티스트에게 시노그래피 작업을 맡긴다. 이번 서울 전시는 뛰어난 감각을 지닌 정연두 작가와 함께하기로했다. 자연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정연두 작가는 자신만의 신비스럽고 시적인 방식으로 쁘띠 아쉬를 새롭게 재현해낼 것이다.

쁘띠 아쉬 전시를 놓치지 마세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서 11월 22일부터 12월 17일까지 쁘띠 아쉬 컬렉션을 소개한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가 계절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마술적 신비로움으로 표현한 시노그래피를 선보이며,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놀라움과 착시가 돋보이는 키네틱 아트의 마법 정원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프렌치 아티스트 위고 가토니Ugo Gattoni 또한 도산 파크 파사드에 새로운 드로잉을 추가로 선보이며 쁘띠 아쉬의 서울 첫 전시를 축하할 예정. 그는 지난 2월부터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여섯 개 윈도에 일하는 말(미노Mino)의 다양한 모습을 공개하는 등 올 한 해 다양하게 변화하는 메종의 모습을 위트 있게 표현해온 작가. 더불어 쁘띠 아쉬 전시와 함께 11월 22일부터 12월 2일까지 아티스트 이자벨 룰루와 함께 체험하는 워크숍도 준비했다. 선착순 마감이니 예약을 서두르자. 문의 02-542-6622

파리 외곽 팡탱에위치한 쁘띠 아쉬의 아틀리에. 캐비닛에 가득 쌓인 소재야말로 이 창조적 작업의 원천이다.

가죽을 이용해 마치 종이접기를 하듯 오리가미 기법으로 완성한 수탉 형태의 책꽂이 겸 시계

밤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오두막은 드레스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소가죽과 악어가죽, 그리고 팔라듐 메탈을 활용해 만든 이브닝 백.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참으로,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선보이는 제품이다.

악어가죽으로 만든 시계. 목마를 형상화한 제품으로 공간에 위트를 더해준다.

글 강옥진 기자 취재 협조 에르메스 코리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