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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전문가 최철주 죽음을 인정한 후 다시 찾은 행복
언제 떠날지 모르니 살아 있는 동안 충실하게, 보람 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하지요.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삶 안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삶을 밝게 이끌어가는 것 아닐까요?

아내를 떠나보낸 후 최철주 씨는 유화를 배웠다. 세검정 가로수길 빨간 소화전 앞에 아내와 웨딩드레스 입은 딸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직접 그린 이 그림은 지금도 그의 방에 걸려 있다.

서른두 살 딸이 말기 암에 걸렸다. 중앙일보 논설고문을 지낸 언론인 최철주 씨는 지난 2004년 병상에 있던 딸의 권유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아카데미 1기에 지원, 웰다잉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는 국내외 호스피스 기관을 취재하고,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글을 쓰고 강연하며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눈다. 2018년 2월 시행 예정인 ‘웰다잉법’에 대해 알리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책을 낸 그를 만났다.


내년 2월 웰다잉법이 시행되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나요?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자기 결정으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됩니다. 의미 없는 연명 치료로 고통받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만큼 사람답게 마지막을 정리하고 떠나는 존엄한 죽음 역시 중요합니다.

인생 황혼기에 웰다잉 전문가라는 제2의 직업을 가지셨습니다.
딸이 말기에 수술을 거부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해서 가족 간에 갈등이 많았는데 아내가 호스피스 시설에서 치료받는 사람들을 보고는 떠나기 전 딸의 마음을 이해하더군요. 하지만 엄마로서 겪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병을 얻었습니다. 아내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호스피스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요. 딸을 먼저 보내고 함께 의논한 대로 아내는 중환자실에 가지 않고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편안히 떠났습니다. 앞서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아내는 무척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떠났을지도 모르지요. 내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웰다잉이 곧 웰빙이니까요.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한 웰다잉 전문가에게도 아내를 떠나보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지요.
아내를 돌보며 나도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멀쩡하던 데도 아프고, 밤에 잠 못 이루기도 했지요. 미국에선 말기 환자를 돌보는 주치의가 그 가족도 함께 진료해요. 몸도 고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워낙 심하기 때문이죠. 가족도 제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해요.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일이 몇 개월 지속되면 누구라도 힘들어집니다. 환자와 충분히 대화하며 위로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서툴죠. 지나가듯 한 말이 환자에겐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책을 많이 읽어줬어요. 환자에게는 말을 골라 해야 하는데, 함께 오래있다 보면 할 이야기가 바닥이 나거든요. 에세이나 시를 주로 읽어줬지요. 아내는 시를 들으며 공감하고, 좋은 건 한 번 더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웰다잉 전문가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의 개인적 체험을 계속 되새기는 일이 고통스럽지는 않나요?
힘듭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기운이 빠져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존엄한 죽음에 대해 쉽게 전달하려면 내가 딸과 아내를 보내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내가 꼭 필요한 일이라면 요청을 거절하진 않지만 강연 횟수를 늘리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죽음에 대해 공부하니 어떤 것이 바뀌던가요?
젊은 시절 죽음에 대해 공부했다면 삶이 달라졌겠죠. 언제 떠날지 모르니 살아 있는 동안 충실하게, 보람 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하지요. 아내가 먼저 떠난 후, 후줄근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요리를 하고,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고 지인과 만나는 소소한 모임에 빠지지 않지요. 이 역시 죽음을 공부한 덕이라 생각합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삶 안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삶을 밝게 이끌어가는 것 아닐까요?

전문가로서 일하며 목격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궁금합니다.
한 시골 호스피스 병동에 들렀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나기에 궁금해했더니 그곳 수녀원장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여기 있다고 하더군요. 가서 보니까 뼈만 남은 수척한 몸으로 바이올린을 켜는데 연주도, 그 모습도 무척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습니다. 그분 외동딸에게 취재차 전화를 했는데, 그 목소리가 무척 밝아 놀랄 정도였습니다. “아버님께서 마지막까지 바이올린 연주하다가 편안하게 떠나셨다”고 하더군요. 죽음에도 밝은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까운 이의 아름다운 죽음에서 삶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자신의 마지막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딸과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남은 가족에게 내가 원하는 나의 마지막에 대해 말해두었습니다. 그걸 서류로 만들어놓았고, 그 위치도 알려두었지요. 그게 사전의료연명의향서입니다. 유언이나 마찬가지지요. 내 마지막을 어떻게 할지를 모두 써놓은 글이니까요. 미리 작성해둔 사전 의료연명의향서를 가족이 의료진에게 제시한다면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아름답게 떠나는 모습을 본다면 남은 가족의 마음도 편하겠지요.

글 정규영 기자 사진 서송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