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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홍성태 부부 작고 행복한 가족장

디자이너 이광희와 홍성태 교수 부부는 가족장으로 치른 어머니의 장례식에 화환을 일절 받지 않고, 일반적으로 쓰는 국화 대신 하얀 백합을 듬뿍 사서 가족들이 하나하나 정성껏 꽂아 식장을 장식했다.

가족, 친지들과 여유 있게 어머니와 관련한 추억들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았어요.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친척을 만나 지나간 얘기를 하니 더 반가웠죠. 어머님이 하늘나라 가시면서 그동안 바삐 사느라 못 만난 친척들을 연결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는 일 자체만으로도 비할 데 없이 힘든 일인데, 며칠간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하고, 장지에 다녀올 때쯤이면 병이 날 지경이된다. 손님과 고인에게 예를 다하고, 추억을 도란도란 나누며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 고인과 문상객, 상주에게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한양대 경영학부 홍성태 교수와 디자이너 이광희 부부는 지난 2014년 모친상을 널리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렀다. 성당에서 치른 장례식에는 화환도, 조의금도 없었다. 부부는 흰 명주 천으로 수의를 지었고 꽃 시장에서 흰 백합을 구해 식장을 직접 꾸몄다. 작지만 마음을 다해 치른 가족장의 소중한 경험을 <행복> 독자와 나누기 위해 홍성태 교수가 묻고, 디자이너 이광희가 답했다.

가족장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부모가 사회 활동을 하셨다면, 지인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오실 때 자식 된 도리로 그분들을 대접해야겠지요. 하지만 저희 어머님은 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 손님이 유가족을 위로하러 오는 것이잖아요. 어머니를 알지도 못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일부러 오는 거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널리 알리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에는 화환이 나열되어 있어야 쓸쓸해 보이지 않겠죠?
장례식의 근조 화환은 성의껏 만든 것도 아니고 보기에 멋진 것도 아니면서 그저 늘어놓는 것이잖아요. 돌아가신 분을 위한 꽃이라기보다 마치 과시하는 느낌이어서 저희는 화환을 일절 안 받았어요. 대신 꽃 시장에서 하얀 백합을 듬뿍 사다가 장례식장을 예쁘게 꾸며드렸어요. 가족들이 하나하나 정성껏 꽂았습니다.

수의를 손수 만들었는데, 어떻게 한 겁니까?
수의壽衣라는 것이 우리와 익숙한 것이 아니지요. 속바지, 속저고리, 겹바지, 겹저고리, 겹치마, 두루마기, 겹이불, 면모, 악수, 주머니, 허리끈, 턱받이, 베개 등등 굉장히 복잡해요. 게다가 베로 만들었든 무엇으로 만들었든 그런 옷 입은 모습이 눈에 낯설잖아요. 그런데 외국 영화를 보면 양복이나 평상복 입혀서 관에 뉘어드리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하얀 실크로 옷을 지어 레이스를 예쁘게 달아 정성껏 입혀드렸습니다. 손싸개나 발싸개도 함께 만들어 시신을 모두 가릴 수 있도록 했지요. 옷이 시신과 함께 삭아야 한다고 해서 인조섬유가 아닌 실크로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생전 어머님 화사한 모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저희가 예쁘게 옷을 지어 입히니까 모두들 그분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편안한 마음으로 했지요. 요즘 윤달에 수의를 미리 준비해놓으면 오래 산다는 소문 때문에 수의가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꽤 비싸게 팔리던데 실제로 보면 생경하고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친척만 오니 썰렁하지 않은가요?
장례식엔 사람들이 법석여야 제맛인데요. 남편이 경영학부 교수라 부고를 알렸다면 동료 교수와 제자도 많이 올 것이고, 관련되는 기업도 꽤 있고, 정기적으로 가는 모임도 몇 개있어 손님이 무척 많이 왔겠지요. 그럼 줄지어 인사하기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도 못해요. 또 가끔 틈이 나면 식사 대접하는 곳에 가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얘기 나눌 겨를도 없이 간단히 인사하는 정도겠지요. 그런데 친척이 주로 오니 여유 있게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들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았어요.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친척을 만나 지나간 얘기를 편안히 하니 더 반가웠죠. 어머님이 하늘나라 가시면서 그동안 바삐 사느라 못 만난 친척들을 연결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장례 비용이 많이 드는데, 조의금을 안 받으면 부담되지 않나요?
큰 장례식장을 빌릴 필요가 없어서 우선 절약되었죠. 손님이 적으니 음식 비용도 아낄 수 있었고, 수의도 직접 만들었고요. 아버님이 천주교 묘원에 이미 계셨기에 합장을 하니, 묘지 조성비 외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어요.

평생 낸 부의금도 많았을 텐데요?
자녀가 없어도 다른 댁 혼사를 꼭 챙기는 분이 많이 있잖아요? 주고받고 계산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장례식은 어떻게 거행했나요?
어머님이 천주교 신자라서 장례 버스로 시신을 모시고 성당으로 갔지요. 성당에는 관을 모시고 옮길 수 있도록 바퀴 달린 대臺가 준비되어 있어요. 그 위에 관을 올리고, 깨끗이 정성스레 만든 하얀 관보(관에 씌우는 덮개)를 씌워 성당 한가운데로 옮겼지요. 그러곤 오전 미사에 오신 교우들이 함께 장례미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 관 주위를 돌며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경건하고 뜻깊게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장례식 치르고 병나는 사람도 많다던데요.
사실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만으로 심적으로 매우 피곤한데, 손님을 밤늦게까지 맞이하고 장지에 갔다 올 때쯤이면 병이 날 지경이 되지요. 그런데 손님 수가 많지 않으니 장례를 더욱 진지하고 경건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가족장을 하면서 곱게 지은 수의를 입혀드리고, 아름다운 꽃들 가운데 어머니를 고요히 기리며 보내드려 마음이 한결 덜 무거웠습니다.


글 홍성태 사진 이우경 기자 담당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