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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신양 붓을 들고, 거대한 바위산 앞에 홀로 서다
박신양은 조심스러웠다.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골똘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가도 다시 멈추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지금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그에게 연기가 아닌 그림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었을까? <행복>과의 이번 인터뷰는 배우 박신양이 그림에 몰두해온 지난 3년의 시간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자리다.

박신양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이다. 이만한 즐거움은 전에 없었다고. 그는 러시아 유학 도중 미술관에서 화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풍경화를 보며 이 세상에 그림과 자신만 존재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의문이 풀린 순간이었다.
상가가 밀집한 자양동 대로변 오피스텔에 자리한 박신양의 작업실엔 유화가 그려진 크고 작은 캔버스가 빼곡했다. 이곳은 배우가 아닌, 그림 그리는 박신양을 위한 공간이다. 그는 요즘 오후 일과를 마치면 저녁부터 새벽까지 매일 그림을 그린다. 처음엔 집에서 그렸고, 공간이 부족해 작업실을 구했지만 그마저 얼마 뒤엔 그림으로 가득 차 상당수를 창고에 보관해야 했다. 그렇게 밤잠을 줄여가며 그린 작품이 1백 점이 넘었고, 지난 9월 말엔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 작가 교류전 <평화의 섬 제주, 아트의 섬이 되다>에 초대 작가로 유화 작품을 출품했다.

지난 2008년 방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단원 김홍도로 열연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도 이렇게 그림을 그렸나요?
본격적으로 그린 건 3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해서 그런지 정말 어색하군요. 그냥 그리고 싶어 그렸어요. 그 이유밖에 없지요.

배우로 평생을 살았고, 가구 만들기, 와인, 미식, 악기 연주 등 취미도 다양한 걸로 압니다. 왜 그림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산책 정도만 할까, 그림을 그리고부터 다른 취미 생활은 안 합니다. 이전의 취미와는 달라요. 그림은 잘 몰랐지만 러시아에서 연기 공부를 하던 시절에 미술관을 많이 다녔습니다. 조그만 미술관에서 니콜라이 레리흐Nikolai Roerich라는 러시아 화가의 그림을 봤는데, 그 순간 얼어붙었어요. 세상에 그림과 나만 존재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지요.

니콜라이 레리흐의 풍경화는 무척 평온한 느낌인데요?
제겐 충격이었어요. 그전까지 나를 짓누르고 있던 ‘예술이 무엇인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의문이 풀린 순간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뒤였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도 없었고 누구에게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어요. 다만 그동안 예술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림에 대한 설렘을 간직하고 있었죠. 배우로서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문득 못 견디게 그리고 싶어졌어요. 3년 전부터 거의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립니다.

빈 캔버스 앞에 앉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거대한 바위산 앞에 건방지게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 산을 오르려면 지금부터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는 그런 기분입니다.

비유에서 중압감이 느껴집니다. 바위산 앞에 서 있다는 건 그 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인가요?
그 높이와 크기, 무게 다 모르겠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데, 그림을 그릴 때엔 그 산이 훨씬 더 높고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숨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설 생각은 없어요.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단계이지요. 그렇게 부담이 큰 일을 지난 3년 동안 매일 해온 건가요? 그림을 그리면 정말 좋아요. 이만한 즐거움이 다른 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하고 표현하고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내는 짜릿한 기쁨이 있는 반면, 정확히 그만큼 힘듭니다.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죠. 그 고통과 희열을 고스란히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Untitled’, 캔버스에 유화물감, 90.9cm×72.7cm

내 속의 여러 이야기
박신양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배우의 경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외로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해온 연기보다 그 어려움과 고독이 덜하지 않을 그림 앞의 자신을 박신양은 “커다란 바위산 앞에 건방지게 홀로 서 있다”고 말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두렵고 막막한 만큼이나 즐겁다는 그.

연기와 그림의 즐거움은 많이 다르겠죠?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많은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반영됩니다.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림은 온전히 혼자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르죠. 그런 점에서 순수하고,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누구도 내게 뭘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완전한 혼돈의 상태, 그리고 완전히 깨끗한 상태. 다른 사람들과 시간 맞출 필요 없이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지요. 캔버스의 크기 외에는 제한도 없어요.

그림 그리는 국내외 배우가 정말 많더군요. 비슷한 이유일까요? 여럿이 아닌 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글쎄요, 배우들이 왜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야기 나눈 적도 없고요. 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림 그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뭘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그렇게 그린 그림은 무엇인지, 나 자신은 무엇인지, 그래서 왜 그리는지…. 몇 년 동안 밤을 새우면서 그리는데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거 왜 하는 거지? 왜 이렇게 계속 몸을 움직여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지?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표현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연기는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연기를 하면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정확히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 그리니까요. 여러 이야기가 제 속에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캔버스엔 어떤 걸 그리나요?
처음 그리기 시작한 후 얼마간은 당나귀를 그렸어요. 살아가며 누구나 짐을 집니다. 그럴 때 저는 아직도 싫어서 꾀부리는데 당나귀는 등에 짐을 얹었을 때 더 안정되어 보이는 것이 귀엽고 연민을 느꼈어요. 마찬가지 이유로 무용가 피나 바우슈Pina Bausch 등 예술가의 얼굴도 그려요. 그들이 짊어진 짐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는 현대무용의 혁명을 이끌었죠. 누구도 그렇게 몸을 움직인 사람이 없었어요.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사람이 짊어진 짐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에게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 말고 과연 뭐가 있었을까? 그걸 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짊어져야 했을까? 그림 그리며 하는 이런 생각들이 저 자신을 위로하죠. 너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실 별거 아니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림이 제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풍경화도 있군요. 한 가지 주제를 정해두고 거기 집중하는 편은 아닌가 봅니다.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걸 그립니다. (한강 야경을 그린 풍경화를 가리키며) 한강에 산책 나갔다가 낚시하는 사람을 봤어요. 사진으로 찍어두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궁금한 게 생기더란 말이죠. 저 사람은 집에 가서 찌개를 끓여 먹을 생각으로 저기서 낚시를 하는 건 아닐 텐데, 저 사람은 고기를 잡는 걸까? 아니면 물에 비친 도시의 환영을 꿈꾸는 건가? 저도 낚시를 10년 정도 했습니다. 혼자 밤도 많이 새웠는데, 낚시를 하다 보면 꼭 고기를 많이 잡아야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림은 낚시와 비슷하기도 해요. 뭐가 걸릴 지 모르지만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림 자체에도 즐거움이 있는 거죠. 기다림이 지루하고 싫으면 이 시간을 못 견딜것 같아요. 어떤 때는 짜릿한 기쁨도 있지만 대부분 무척 고독합니다. 고독의 끝, 외로움의 끝을 보는 것 같아요.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우니 전시에 출품하기로 했겠죠?
아직 혼돈스러움 자체예요. 만족 못 하고 자신 없어요. 다만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그림도 사람들이 봐줘야 존재 의미가 있고, 가치를 지니고, 완성되는 거겠죠. 온전히 내 말을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만, 정말 즐거울 때는 누군가 와서 그림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더군요.

그런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러시아 작가가 작업실에 왔는데, 그림을 보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사람은 두려운 게 없나보군.” “맞아요, 저는 별로 두려울 게 없어요” 그랬죠.내가 뭘 두려워해야 하나?(웃음) 제가 그림에 대해 모르니까 그렇게 그릴 수 있었겠죠. 자유분방하고 과감하겠죠. 표현하고 싶은 것보다 배운 게 많은 사람들처럼 눈치 볼 일이 없었겠죠.

그림 그리는 박신양에게 지금은 혼돈과 시행착오의 시기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림, 온전히 자기 자신을 꺼내놓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 말한다. 때로 짜릿한 기쁨도 느끼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를 직시하고, 그걸 꺼내놓는 과정은 외로움의 끝과 맞닿아 있다.

박신양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배우의 경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외로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해온 연기보다 그 어려움과 고독이 덜하지 않을 그림 앞의 자신을 “커다란 바위산 앞에 건방지게 홀로 서 있다”고 말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두렵고 막막한 만큼이나 즐겁다는 그.


백번 잘한 일
박신양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그의 말하는 표정과 어투, 눈빛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다운 표현력과 집중력! 그에게 그림에 대해 조언하고, 전시 참여를 주선한 피아룩스 갤러리 윤정아 대표는 그의 그림을 두고 “과감하고 새로운 문법의 힘이 넘친다”고 평한다. 박신양이 그림에 몰두한 후 변화한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바 역시 이와 비슷하다. 보다 ‘무데뽀’스러워졌단다. 마음껏 보고, 마음껏 생각한다고. 이전에는 여러 이유로 적당히 보고, 적당히 생각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이유가 바로 그림이었다. 지난 20년간 줄곧 배우로서 정상에 자리해온 그는 원치 않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그림이 용기를 선사했다. “좋아졌어요. 정말 좋아요.” 사방이 환해지도록 그가 밝게 웃었다.

몇 년 전에 한 인터뷰가 다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사람들이 정말 그런 걸 좋아하나요? 왜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는 걸까요? 저는 그런 영화를 보면 괴롭거든요. 제가 보기에 괴로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지요.

그렇다면 작품을, 연기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내가 느낀 감동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영화나 드라마 말고도 너무나 여러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동. 그런 걸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랑과 감동을 다루는 행복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코미디도 좋고요.

2006년 작 드라마 <쩐의 전쟁> 출연료 미지급 사건으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죠. 지금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참 잘했다.(웃음) 그런데 제가 당한 일을 논란이라고 할 수 있나요? 배우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흥미로워할 뿐 분개하지 않지요.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세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뻔뻔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건가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백번 잘했죠. 지금 그런 일이 있었다면 더 강하게 대응할 겁니다.

젊은 배우를 지원하는 펀Fun 장학회 활동을 10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 만한 배우도 거쳐갔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지난한 길이니까요.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도 있지만, 이 길에서 멀어진 친구도 많죠. 여전히 1년에 서너 명 장학생을 뽑아서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시간 되면 만나서 조언도 하고, 연극도 함께 보러 다닙니다. 재능이든 태도든 내가 그 나이 때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배우가 많습니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오래 지속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지요.

앞으로 우리는 배우 박신양에게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진 않았어요. 그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분명한 작품을 하고 싶어서 심사숙고하며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신양의 옆에 놓인 작품이 그룹전 <평화의 섬 제주, 아트의 섬이 되다>에 출품한 ‘Bluestone’이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본 풍경을 그린 그림. 위태롭게 무너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래산 가운데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사실은 구조가 견고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더 좋은 작품을 위하여
자신이 이제껏 그린 그림에 대해 묻자 “잘 모르겠다”며 말하기를 꺼리는 그였지만, 앞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묻자 말이 빨라졌다. “외딴곳에 천장이 높은 작업실이 있으면 어떨까요? 제가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것이 2백 호(가로 259cm, 세로 193.9cm)인데, 그런 캔버스 열 개를 늘어놓고 그림을 그린다면 어떨까요? 작업실 바닥에 물감을 맘껏 뿌려보고도 싶고, 이젤을 들고 나가 강이든 산이든 직접 보고 그리고 싶기도 하고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앞으로 그릴 그림에 대한 생각이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는 동안 배우로서 박신양은 깊이, 더 깊이 심사숙고 중이다. “지치지 않으려고요. 긴 호흡을 유지하려 합니다. 좋은 기획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또는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던 이야기. 그런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그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거듭 검토할 겁니다.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싶거든요.” 행복에 대한 생각을 묻자 뜬금없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뭔지 몹시 궁금해요. 그 의미를 좀 더 알고 싶어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합니다”라고 답하는 그. 심사숙고해서 연기할 작품을 고르고, 뒤늦게 시작한 그림을 그리려 밤을 새우며 몰두하는 것 역시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일 것이다. 툭툭 내뱉는 것처럼 말하지만, 곱씹을수록 그 안에 깃든 생각이 웅숭깊다. 연기와 그림, 양쪽에서 박신양이 앞으로 내놓을 ‘더 좋은 작품’을 그의 말처럼 긴 호흡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글 정규영 기자 사진 박기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