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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콘셉트 디자이너, 정수조경 대표 정수진 매일매일 새로워
다국적 정보 통신 기업을 이끌던 전문 경영인이 율현동 공터에 소나무와 돌을 작품 삼아 갤러리를 꾸몄다. 정수조경 정수진 대표는 유학 시절부터 바라온 사업의 꿈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뤄냈다. 초록 정원과 함께하는 그의 매일이 새로워졌다.

각각 3백 년 이상 된 회화나무와 팽나무 사이에 선 정수조경 정수진 대표. 검은 나무와 검은 돌을 조합해 ‘더 블랙’이란 이름을 붙였다.

‘불국사의 소나무’. 경주 불국사 근방에서 가져온 소나무 두 그루가 역시 그 근처에서 발견한 돌을 마치 보살피듯 감싸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별세계가 펼쳐져 있다. 저마다 기기묘묘하게 구부러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큼직한 돌과 함께 짝지어 작품을 이루는 8백여 평 규모 의 조경 갤러리. 이곳은 스스로를 ‘가든 콘셉트 디자이너’라 정의하는 정수조경 정수진 대표가 직접 일궈낸 공간이다. “나무와 돌을 이렇게 배치하면 정원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각각에 제목도 붙였지요. 부채꼴로 가지를 펼친 소나무 여러 개를 나란히 배치한 ‘부채춤’, 목피가 유난히 짙은 소나무와 검은 산돌, 껍질 색이 밝은 소나무와 흰 강돌을 조합한 ‘흑과 백’ 식으로 말입니다.” 정수진 대표의 목소리는 직접 조성한 갤러리 정원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30년 가까이 정보 통신 분야에서 일하며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총괄 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는 이곳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기쁨과 감동을 주는 조경
정수진 대표는 196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면도기를 만드는 공장, 호텔 청소부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조지아 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까지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내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1977년 귀국해서 2~3년만 일을 배우자는 생각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는데, 처음 생각과 달리 계속 기업에서 일했죠. 삼성전자에선 기획 일을 했는데 내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않을 것 같아 레이켐Raychem이라는 하이테크 소재 회사로 옮겨 영업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신소재를 파는 일이 재미있어서 20년 동안 있다 보니 아시아 총괄 지사장까지 올랐지요. 2000년엔 캐나다 최대의 통신 장비 회사 노텔 네트웍스Nortel Networks의 한국 지사장으로 옮겼는데, LG와 합작회사를 만든 후 미련 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그 후엔 미국의 한 사모펀드 지사장직을 맡아 투자처를 찾는 일을 3년쯤 했습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더군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는 시절이 아니었나 합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다 가까운데로 눈을 돌리자고 생각했지요. 여러 곳에 사둔 땅을 모두 정리하고, 압구정동 집에서 가까운 율현동 땅을 매입해 농사짓는 분들에게 임대를 했는데, 그 땅에서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 거죠. 그게 2009년쯤의 일입니다.”

등산과 여행을 즐기던 그에게 문득 동해안에서 본 소나무의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껍질과 독특한 조형적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행동파인 그는 소나무를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고 빈 땅에 묘목 1천여 그루를 심어 기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소나무 양식장을 조성한 셈.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토양과 기후가 달라 동해안 소나무처럼 자라지도 않았다. 다시 모색의 기간.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다 보면 자기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두 번째 인생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투자입니다. 적성 검사 기관을 찾아 검사를 했더니 예술 분야가 가장 뛰어난 걸로 나오더군요.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되었죠.” 빈 땅에서 타고난 예술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조경이었다. 우선 이름난 소나무를 전국에서 사들이기 시작했고, 지인의 소개로 만난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대표의 조언으로 갤러리 정원이라는 콘셉트를 정한 그는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연암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했다. “이론 공부도 도움이 되었지만 다양한 조경 회사에서 조성한 정원을 견학하는 현장 수업을 통해 생각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멋진 소나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조명과 음악 등을 통해 총체적으로 기쁨과 감동을 주는 조경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해외 출장을 가면 바쁜 일정을 쪼개 늘 미술관을 찾던 그였다. 거기서 본 조각 작품들이 갤러리 정원에 즐비한 ‘작품’의 모티프를 제공했다. 포항, 울진 등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 뒤틀리고 껍질이 깊게 갈라진 소나무 옆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커다란 돌을 배치하고 이름을 붙였다.

포항 소나무 옆에 남한강 하류에서 가져온 돌을 배치한 작품 ‘Dancing’. 일반적으로 부드러운 강돌과 달리 단단하고 거친 돌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40년 만에 이룬 꿈
정수진 대표는 그렇게 지난 2011년 정수조경을 설립하고 소나무와 돌, 꽃과 풀을 조합한 갤러리 정원을 꾸몄다. 유학 시절부터 자신의 사업체를 꿈꿨으니 거의 40년 만에 두 번째 인생을 통해 꿈을 이룬 셈. 하루는 이곳을 찾은 한 기업체 회장이 갤러리 정원에 조성해둔 작품 하나를 고르더니 그걸 중심으로 자신의 집 정원을 통째로 리모델링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부터 가든 콘셉트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무는 조경 디자이너와 업체에 맡기고, 저는 전체적인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지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하던 기획 일과 연결이 되더군요.” 이듬해엔 LIG 손해보험의 사원 연수 시설인 사천 인재니움의 리모델링을 맡았다. 그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연못 주변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 수련 정원처럼 꾸미고, 동산엔 당시 LIG 회장 일가의 이야기를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통해 재구성했습니다. 발표하는 날 조명과 음악을 깔고 콘셉트를 설명하자 무척 흡족해하시더군요.”

하지만 불황과 함께 일감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토록 꿈꾸던 사업이었지만 기업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던 때 겪어보지 못한 큰 폭의 등락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2년 정도는 제법 큰 공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다음 2년은 있는 돈만 까먹었지요. 거기서 오는 압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하지만 그동안에도 쉬지 않고 연구하고, 업계 사람들 만나는 자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소나무라는 전통 동양 재료와 서구의 현대적 스타일 조경을 접목하기 위해 저 자신을 계속 변화시켰죠. 건축 공부도 시작했고요. 그렇게 계속 공부하고, 인맥을 넓혀갔더니 2015년부터 다시 일이 들어오더군요.” 정수진 대표가 최근 정보를 주로 얻는 경로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이다. 전 세계의 가장 최신 정보가 그곳에 다 있다고. 하나를 보면 연관된 내용의 영상이 이어지는 유튜브를 보느라 즐기던 독서를 못 할 지경이라고. 정수진 대표는 유튜브를 통해 텃밭을 정원의 일부로 가꾸고, 네덜란드식 화훼법을 조경에 도입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일을 제 2의 인생으로 삼은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전엔 제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도 몰랐어요. 계속 배우고, 연구하면 매일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느라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 일을 제2의 인생으로 삼은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계속 배우고, 연구하면 매일 새로운 세계가 열리거든요. 배우고 익히는 일이 정말 즐거워서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생활의 리모델링
정수진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정원이란 무엇일까? “우선 관리하기 편해야지요. 정원을 가꾸는 일은 잡초와 싸우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이곳을 리모델링했는데, 아이디어를 내서 제초 매트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잔디를 심었어요. 잔디가 빼곡하게 나면 잡초가 올라올 틈이 없어지거든요. 발상의 전환이죠. 잡초를 일일이 뽑는 게 아니라 잔디가 잡초를 없애도록 하는 거예요.” 공사 현장에서 현장 소장처럼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하루 종일 혼이 빠지도록 일한 후 인부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는 자리가 가장 즐겁다는 그. 이 일을 시작한 후로 양껏 먹고 마셔도 한결 건강해진 기분이라고. 얼마 전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더니 시력도 좋아졌다고 했다. 정수진 대표의 목표는 지난 7년간 조경 사업을 통해 배운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족과 관계가 훨씬 돈독해졌어요. 텃밭에서 딴 채소로 샐러드를 해 먹고, 고물상에서 산 무쇠솥으로 요리를 해서 파티를 여니 손자, 손녀도 이전보다 훨씬 자주 볼 수 있지요. 모두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고요. 예전에 어느 단독주택 정원을 리모델링한 적이 있는데, 나무만 가득하던 정원에 차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음악을 틀 수 있도록 하고 조명도 설치했더니 역시 가족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더군요. 작은 마당 하나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제2의 삶을 계획하는 사람을 위한 정수진 대표의 조언
1 1백 세 시대, 퇴사 후의 인생이 훨씬 더 길다.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새롭게 배우며 하루하루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라.
2 자기 자신의 적성을 알기 위해 투자하라. 검사 기관 등 객관적 시선으로 볼 때 자신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3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라. 찾지 않아 모를 뿐, 여러 분야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국내에도 많다.
4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건 구조 조정과 같다. 골프, 등산 등 가장 시간이 많이 들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포기하거나 대폭 줄여야 새로운 삶이 열린다.
5 시간을 충분히 두고 준비하라. 20~30년 해오던 일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선 2~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6 제2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적성과 맞고, 꼭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면 가족과 주변에서 반대하더라도 그들을 설득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온 힘을 다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글 정규영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촬영 협조 정수조경(02-2226-7515)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