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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은 예술 나무가 작가에게
나무는 예술의 단골 소재이자 주제다. 동서고금의 작가들은 자신의 예술이 나무처럼 긴 생명력을 지니길 꿈꾼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작품이 된 나무는 어딘가 자신을 창조한 작가와 닮아 있다. 자연에 깃든 사람의 무늬를 찾아내는 반칠환 시인의 손을 빌려 작품 속 나무가 작품 밖 작가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타고 남은 재로 그린 나무
이재삼 ‘달빛’



‘달빛’, 캔버스에 목탄, 454×181cm, 2010

소나무 이 둥근 옹이와 구불구불 뒤틀린 몸통 그리고 비늘 같은 껍질은 낯이 익군. 누군가 나처럼 여의주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무기가 있었나 보군. 뇌성벽력에 여의주를 놓치고 굳은 나무가 된 듯하네.

이재삼 이건 바로 당신의 초상입니다.

소나무 실은 그런 줄 알았네. 내 가슴에 난 이 커다란 상처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자네 얼굴도 생생히 기억나고말고. 눈빛이 형형했지. 자네는 저만치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이 와서 두 팔로 안은 채 고개를 젖히고 가지를 올려다보기도 했지. 무언가 애써 탐색하는 눈빛이었어.

이재삼 30대에 직업의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반성 없이 하고 있던 내 작업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죠. 나는 한국 사람인데 왜 서양미술을 하고 있을까? 나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죠. 나는 이 땅에 오래 뿌리박고 살아온 거목들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간직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꼬박 5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많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소나무 그중 하나가 나였군. 어떤 나무들을 만났는지 적잖이 궁금하네.

이재삼 소나무도 풍모와 기상이 제각기 다르더군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를 풍기는 문관 같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솔잎에서 검기를 내뿜는 무관 같은 나무도 있더군요.

소나무 소나무 관상가가 다 되셨군그려. 노거수 기행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재삼 수백 년 세월을 욕심 없이 사는 나무들을 만나면서 1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느꼈습니다. 돈도 명예도 모두 헛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첨단을 좇으려 애쓰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달려들 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군요.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작업을 발견했지요.

소나무 만난 노거수들을 한국적 화풍으로 담아내는 것이었군.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병풍 속 십장생 소나무처럼 영생하고픈 속기와 여의주를 얻고픈 욕망이 꿈틀거린다네. 삶이 온기를 지니는 한 욕망이라는 잔불은 남아 있는 모양일세. 잠깐, 어디선가 나는 이 그을음 내는 무엇인가?

이재삼 그림을 목탄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소나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나무가 되었군! 신기한 것은 목탄으로 그린 소나무에 비치는 흰 달빛이야. 온몸에 월광으로 짠 비단을 걸친 듯하네. 목탄이 달빛을 그려내고, 달빛이 어둠을 드러내고 있어. 자네가 찾은 한국적 미학의 하나가 이 달빛이었군.

이재삼 맞습니다. 나는 목탄으로 달빛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달은 오랫동안 그리운 사람이 비치는 미디어였습니다. 농부도 어부도 월력으로 씨를 뿌리고, 물때를 보았지요.

소나무 옛말에 달이 밝으면 별이 흐리다고 했네. 지금은 문명의 빛에 가려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지. 달빛을 복원하는 일, 귀하게 생각하네.

이재삼 목탄 그림을 그리면서 이렇게 다짐했지요. ‘나는 시대가 원하는 작업보다 시대가 잃고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다독였습니다. ‘내 본분을 다하면 세상이 나머지를 만들어주는 거다. 내가 외로움을 자처하면 외로움이 아니다.’

소나무 무릇 조각가는 돌을 깎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만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지. 반가웠네! 밤이 늦었네. 달빛에 먼 길 살펴 가시게.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구멍가게
이미경 ‘만추상회’


‘만추상회’, 종이에 아크릴 잉크 펜, 91×116.8cm, 2015

오리나무 어서 오시우. 가을 깊어가는 만추상회요. 뒷산은 물론 구멍가게조차 단풍이 드는 것 같지 않우? 우체통은 붉고, 평상 비닐 장판은 노랗고, 슬레이트는 여름내 지친 초록빛이우. 이 낡아가는 구멍가게에 무얼 사러 오셨나?

이미경 오리나무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구멍가게 작가 이미경입니다. 새로 펴낸 그림 에세이집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가져왔어요.

오리나무 오! 나도 소식 들었우. 묵묵히 20년째 구멍가게를 그리더니 이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네그려. 여름휴가 때 이 집 손녀가 할머니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더군. 영국의 BBC며, 중국의 판다TV에 소개되고, 곧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책이 나온다고? 아무튼 축하하우!

이미경 고맙습니다. 주인 내외분은 어디 가셨나요?

오리나무 할아버지는 오늘도 경로당 가시고, 40년 구멍가게 지키느라 여행 한 번 간 적 없다고 구시렁거리던 할머니는 아랫집 김장하는 데 가셨우. 잠깐 평상에 앉아 기다리시우.

이미경 오면서 조마조마했어요. 제가 그린 구멍가게 열 곳 중 일고여덟 곳은 사라지고 없거든요.

오리나무 이곳은 아직 무사하지만 앞날은 알 수 없지. 빈집이 많아 이렇게 한산하다우. 옛날엔 아이들이 북적거리며 드나드느라 미닫이문이 제대로 닫힐 새가 없었지. 이 마당에서 비석치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도 했어. 술래가 된 아이들은 내 둥치에 얼굴을 묻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숨바꼭질과 다방구 놀이를 했지.

이미경 제 어린 시절도 꼭 그랬어요! 구멍가게를 그린 계기가 되었죠.

오리나무 처음 당신이 이곳을 찾아왔을 때가 생각나우. 당신은 주인 내외에게 이 집을 그리겠다고 말했지. 번듯한 고택도 있는데 하필 허름한 구멍가게를 그리려 드나 좀 미심쩍었지.

이미경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그리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남루해도 사람 내음 가득한 추억의 장소를 그리고 싶었어요.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기억마저 사라지면 그리움조차 사라질 것 같았어요.

오리나무 대개의 작가는 시골에서 도시로, 과거에서 미래로, 전통에서 첨단으로 나아가는데, 작가 양반은 과거로 소멸해가는 것들을 붙잡고 있구만.

이미경 단지 회고 취미만은 아니에요. 소박한 물건에도 기뻐하고, 작은 추억도 소중히 여기며 따뜻한 인정을 나누던 그 시절은 세상이 각박할수록 회복해야 할 원형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구멍가게 그림은 어쩌면 미래의 출구인지도 몰라요. 존재했지만 없는 세계(utopia)를 가리키는 이정표처럼요.

오리나무 전설의 낙원 베율이나 무릉도원처럼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구멍’ 가게로구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펜화를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우?

이미경 제 그림에서는 소리가 난대요. 가족들 밥을 차리다가도, 빨래를 돌리다가도 틈만 나면 사각사각 그렸거든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유화물감은 앞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지만 펜화는 선을 그을수록 앞엣 것이 뒤엣것에 영향을 주거든요.

오리나무 축적된 시간의 켜를 보여주기에 적당한 소재구먼.

이미경 나무 할아버지, 잠깐만요. 아랫집에 좀 가봐야겠어요. 할머니도 뵙고 싶고, 갓 버무린 김치 겉절이도 구미가 당기거든요. 호호.


나무의 독사진
이명호 ‘Tree #3’


‘Tree #3’, 2006, ⓒ2006 이명호, 갤러리 현대 제공

버드나무 나는 자네가 그저 젊은 몽상가인 줄 알았지. 어느 해 사계절 내내 나를 찾아와 바라보기만 하다 돌아갔으니까. 첫눈이 내린 다음 날, 그대가 건축용 철물을 싣고 인부들과 함께 왔을 때 나는 몸서리를 쳤다네. 드디어 나를 베어버리는구나. 오랫동안 외우던 바람경전을 더듬으며 외웠다네. 산발한 머리야 늘 미풍에도 흔들렸으나 그때는 떨고 있는 거였다네.

이명호 옳게 보셨어요. 저는 몽상가이기도 해요. 혼자서 생각하고 꿈꾸기를 좋아해요. 입시를 앞둔 고교 시절에도 뚱딴지처럼 외딴섬의 등대지기나 오지 마을을 방문하는 우체부가 되는 꿈을 꾸었죠.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긴 했지만요. 수학과를 갔지만 저는 근의 공식을 외우기보다 혼자서 문제 속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했죠. 저는 몽상가일 뿐 아니라 실천가이기도 해요. 답을 발견하면 누가 말려도 실행에 옮기거든요.

버드나무 몽상가이자 실천가라. 하긴 자네가 많은 사람을 동원해 내 키를 훌쩍 넘는 스크린을 설치한 것만 봐도 뚝심을 짐작할 수 있다네. 다행히 자네들은 나를 베어내지 않고 스크린을 펼친 다음 찰칵찰칵 사진을 찍더군. 스튜디오에서처럼 거대한 나무에게서 배경을 삭제하고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 누구나 몽상할 수는 있겠지만 실행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라네.

이명호 전공을 사진으로 바꾼 다음 제가 몰두한 주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였어요. 교수님들이 말리셨죠. 작은 주제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하지만 저는 근본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어요. 문득 학교 잔디밭에 서 있는 상수리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너무도 낯익은 나무가 그날따라 새롭게 보이더군요. 학생들을 동원해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독사진을 찍었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버드나무 그게 무엇인가?

이명호 상수리나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숨어 있다”고. 예술의 본질은 모든 존재에 대한 긍정과 연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버드나무 일테면 ‘주인공과 들러리’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군. 우리는 이 세계의 유일한 주역이자, 또 다른 유일자들의 배후인 셈이지.

이명호 캔버스를 세운 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셨군요.

버드나무 여럿 중의 하나이던 내가 홀로 캔버스를 배경으로 섰을 때에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지.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라고 노래한 어떤 시구처럼 말이지. 캔버스를 해체하자 나는 다시 숲이 되었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지.

이명호 나무 사진을 본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더군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생경하다고.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를 연상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버드나무 자네는 몽상을 현실로, 현실을 몽상으로 인화하는 솜씨로 세계가 주목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들었네.

이명호 뉴욕 전시 때 머리 하얀 백인 할머니가 작품 속 나무에 큰절을 올리는 걸 보았습니다. 한 여대생은 당신 사진을 보고 울더군요. 자기처럼 평범한 버드나무가 주인공이 된 걸 보았다고 말이죠.

버드나무 자네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것을 예술의 본령으로 생각하는군. 그러고 보니 자네는 꿈을 에돌아 온 듯하지만 여전히 한길을 가고 있군. 자네는 지금 사진작가이지만, 등대지기이자, 우체부가 틀림없네. 내가 바람에 머리를 나부끼고, 물에 뿌리를 씻고 있어도 틀림없는 버드나무인 것처럼 말일세.


풍요로운 상상의 생태계
안말환 ‘꿈꾸는 나무들’


‘Dreaming Trees 1’, 캔버스에 혼합 재료, 97×193.9cm, 2017

푸른 숲 선생님은 오랫동안 나무를 그려오셨습니다. 처음 나무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안말환 내가 처음 그린 것은 미루나무였습니다. 나는 그 나무들을 유년 시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경기도 광주시 중대동 텃골 안씨 집성촌에서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나는 부모님을 따라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습니다. 신작로를 따라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간 버스가 내려준 곳에는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길가에 마중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녀딸을 맞이해주셨지요. 시골 마을에서 해종일 놀다가 밤이 되어 미루나무 밑에서 본 하늘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쏟아놓은 보석 같은 별들을 미루나무는 빗자루처럼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미루나무들이 모두 베인 걸 보았습니다. 그때 깊은 충격을 받았지요.

푸른 숲 선생님의 미루나무들은 마치 사람들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수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당신을 맞이해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이웃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말환 미루나무 말고도 여러 종류의 나무를 그렸습니다. 대개 인적이 느껴지는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있거나, 동화 속 정원의 나무처럼 밝은 빛깔과 형태를 띠고 있었지요. 빵처럼 부푼 나무들은 부러진 가지 하나 없이 둥글었고, 깔때기 모양의 나무들은 아무런 근심도 없이 빗물과 별빛을 모으며 보석 같은 잎을 빛내고 있지요.

푸른 숲 그 나무들 밑에는 눈이 웃고 있는 독특한 새들 가족이 거닐고 있었지요. 날지 않는 새처럼도 보였습니다.

안말환 내가 그린 새들은 창공을 날기보다 땅 위를 거닐고 있지요. “새들에게 가장 충격인 것은// 날아오를 하늘이 없는 것보다/ 내려앉을 대지를 발견 못 했을 때”라고 말한 어느 시구처럼 나는 날개를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결핍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어요. 천적과 먹이 걱정이 없는 곳에 도착한 새들은 날갯짓을 잊고 마침내 날개가 퇴화되지요.

푸른 숲 선생님은 미루나무가 베이고, 약자가 강자에게 쫓기는 현실의 불안과 결핍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가장 평화로운 동화의 숲을 화폭에 구현하신 거군요. 그런데 최근에 그리신 숲은 좀 다릅니다. 푸른 이내가 자욱한 이곳은 신비롭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나무와 나무, 덤불과 덤불 사이의 경계를 지워 실제보다 풍요로운 상상의 생태계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꿈꾸는 나무들(Dreaming Trees)’이라고 붙이셨군요.

안말환 혼자 꾸는 꿈이 아니라 함께 꾸는 꿈을 생각했습니다. 저마다 꾸는 꿈의 서사는 다를 것입니다만, 나무들의 꿈이 모여 숲의 꿈이 됩니다.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본 적 있어요. 경쟁목이 없으니 마음껏 가지를 뻗어 풍성하고 아름답더군요. 멀리서 보는 숲 또한 동색의 초록으로 아무런 아픔도 없이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면 아프지 않은 나무는 없습니다. 빛과 공간을 이웃과 다투기 때문에 홀로 선 나무처럼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숲이 건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나무도 온전히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눈, 비, 바람을 혼자 겪어내야 하니까요. 나무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과 좌절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로 온전한 숲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도 이와 똑같을 겁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함께 꿈꾸고 꽃피우는 것이 사람 숲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푸른 숲 나무 화가인 선생님은 미루나무가 수런대는 유년의 고향 길을 떠나, 잘 다듬어진 문명의 정원을 지나, 마침내 야생의 푸른 숲에 이르셨어요. 앞으로 펼쳐 보일 숲과 나무의 세계가 기대됩니다.


글을 쓴 시인 반칠환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2002년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사단법인 숲연구소에서 2007년 전문가 과정을 마친 후 숲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숲해설이란 통역이자 자연의 인문학입니다. 숲과 나무를 충분히 공부한 후 그들의 이야기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어 전하고, 자연에 깃든 사람의 무늬를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지요. 저서로 시집 <웃음의 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 해설서 <꽃술 지렛대> 등이 있으며, 서울경제신문에 매주 ‘시로 여는 수요일’을 연재합니다.

글 반칠환(시인) 인물 사진 이창화 기자 담당 정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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