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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치유자 정혜신, 심리 기획자 이명수 부부 부부가 그리는 마음의 지리학
세월호 유족, 해고 노동자, 고문 생존자 등 대규모 심리적 재난의 피해자 곁에는 이명수ㆍ정혜신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하면서 도출해낸 해결책을 몸소 실천한다. 서로 나누는 대화가 세상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즐겁다는 부부를 만나러 그들이 16년째 함께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 집으로 향했다.

집 앞 정원에 선 정혜신ㆍ이명수 부부. 각자 포즈를 취할 때는 어색하던 표정이 팔짱을 끼고 함께 서자 이내 환해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엔 부부가 온종일 함께한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1년 3백65일 중 3백63일을 함께”.
고산자 김정호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적을 쳐부수고, 평시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용하라”고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땅의 형태와 몸의 이동 경로를 측량하는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이제는 위성과 무선통신을 이용하여 매섭게 달리는 차 안에서도 시시각각 우리 몸의 3차원적 좌표를 파악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땅의 지도만 가지면 인생이라는 여행은 무사한 걸까? 제가끔 아리랑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마음의 수렁을 무사히 건너게 할 지도를 완성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오늘 마음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부부를 만나러 간다. 경기도 양평, 이 부부가 사는 산마을은 때마침 비와 운무가 걷히며 고통의 골과 기쁨의 마루로 오르는 등고선이 푸르게 드러나고 있었다. 마음 지리학자들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이명수. 심리 기획자를 자처하는 그는 세상과 사람 사이에 드리운 균형 잡힌 시선으로 마음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왔다. 정혜신. 정신의학 전문의인 그는 병원 밖으로 나와 고문 생존자, 해고 노동자, 세월호 유족을 돕는 상담을 하며 거리의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람의 한평생 사연도 많고 굽이굽이 감돌아드는 얘기도 많다. 우리네 인생이 짧다고 해도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_민요 ‘구 아리랑’ 중에서


날마다 물을 주고 꽃을 피우는 사랑
아내는 남편을 ‘심리적 구루’라 부르고, 남편은 아내를 ‘심리적 공중 급유기’라고 부른다. 이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부부가 서로를 스승이자, 연인이자, 동지라고 부른다. 수년 전 인터뷰에서도 그랬고, 최근 글에서도 보았다. 방부제 사랑? 혹시 쇼윈도 부부는 아닐까?

바깥어른을 ‘구루이자 생명의 은인’이라고도 표현하셨던데요?
정혜신(이하 정) 네,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주는 존재니까요.

아내를 여전히 심리적 공중 급유기라 생각하시나요?
이명수(이하 이) 괴담 같지만 사실입니다.

두 분 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답변하십니다.
이 친구(정혜신 박사)는 한 번도 잔소리를 하거나,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어떤 일이든 지지해줍니다. 나는 대개 새벽 일찍 일어나 서재에 있는데, 늦게 일어난 이 친구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달려와 꽃다발처럼 웃으면서 “잘 잤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물어요. 누가 그렇게 아침마다 물을 주면 꽃을 안 피울 방도가 없잖아요?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건가요? 샘솟는 건가요?
노력으로 가능할까요? 우리는 1년 3백65일 중 3백63일을 함께해요. 늘 함께 일하러 나가고 함께 들어와요. 그때가 데이트를 하고, 토론을 하고, 수다를 떨고, 뒷담화를 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저는 명수 씨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이보다 더한 스승이 없고, 이보다 더한 친구가 없어요.

불화를 겪는 부부들에겐 도움이 안 되는 부부네요.
욕먹을 것 같아요.(웃음)
염장을 지르는 거죠. 그러니까 잘 써주세요. 첨언하자면 저는 훈련이나 의지로 그 꽃다발을 더 풍성하게 하려고 해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보셨나요? 98세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화장실 간다고 하면 겨울에도 벌떡 일어나잖아요. 저는 거기에 사랑의 핵심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만일 이 친구가 나를 깨우면 짜증 날 수도 있죠.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해요. “나도 오줌 마려웠는데 잘 깨웠어.” 미안해하지 않게 농담도 준비해두죠.

훈련, 의지 나왔어요. 이제 좀 인간적인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웃다가) 그런데 저는 안 그래요.
이 친구는 타고난 공감자예요. 누가 고통을 겪으면 바로 달려갈 준비를 해요. 저는 공감하는 것도 노력을 해요. 내가 지닌 지식이나 지혜나 판단력을 총동원해서 저 사람이 고통을 겪겠구나, 그러니 이렇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죠. 세월호 참사에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눈물이 안 나와요. 인정머리가 없나 봐요” 하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공감을 더 못 해요. 노력으로 해요.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른이니까.

“마당 있는 집에서 월드컵을 보여주겠다”는 이명수 씨의 호언장담을 실현한 집. 건축가 조병수의 설계로 2002년에 지었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시가 지닌 마음 치유 효과를 확인한 이명수 씨가 애독하는 시 82편을 골라 소개한 책이다. 책 표지에 “영감자 정혜신”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어른의 역할
세월호 참사 직후, 부부는 양평 집에서 나와 안산 와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유가족의 집과 학교 등지에서 심리 상담을 하다 그해 9월 치유 공간 ‘이웃’을 설립, 자원봉사하는 ‘이웃 치유자’들과 함께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상처받은 많은 사람과 매일매일 함께했다. 이명수 씨는 “왜 멀쩡한 집 놔두고 안산에 가서 사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2014년 4월 16일 기준, 우리 나이로 45세 이상 된 어른들은 직간접적으로 참사에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저지르고 용인해온 사소한 잘못들이 사회의 적폐가 된 거지요. 안산에는 죗값을 치르러 간 겁니다.”

치유 공간 ‘이웃’의 대표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지금은 안산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대표를 맡고 있어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요.

세월호 참사 피해 학생 엄마들의 뜨개 전시회 기사를 봤어요. 어떻게 마무리되었나요?
엄청났죠. 사람이 많이 왔어요.
(2월에 열린 전시회가) 일주일 전에야 끝났어요. 공중에 매단 컵 받침 3천 개를 전시회에 온 사람들에게 부쳐주느라 5개월이나 걸린 겁니다. 잠수사 아내들에게 스웨터도 부치고, 줄곧 지지를 해준 김제동 씨, 공정 보도를 해준 손석희 씨 등에게도 선물로 부쳐주었어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둘 중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어요. 유족들이 아이들 생각날 때마다 고문과도 같은 고통을 겪는데, 그 시간을 견디게 하기 위해 뜨개질을 제안한 거죠. 낱낱의 실들이 짜이면서 흩어졌던 자신이 통합되고 삶이 모이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실값을 2백만 원 정도 예상했는데 무려 1억 5천만 원이나 들어갔어요! 약값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다고 약을 끊을 수는 없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식사할 때 사람마다 독상을 받는 ‘치유 밥상’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하면 상처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존중감을 갖게 할 것인가 대화하던 중에 나온 생각이었어요. 처음에는 1백 명 넘는 유족과 이웃 치유자들에게 각각 밥상을 차려주는 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자식을 잃고도 물대포를 맞으며 공권력에 짓밟히고,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그 밥상을 받고 우는 엄마가 많았어요.
‘이웃’에는 이중 방음벽을 설치한 상담실을 마련했어요. 처음 그곳에 갔더니 유족들이 집에서 이웃들 때문에 울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런 일을 심리 기획자가 하는 거지요.

“하루 종일 상담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치유라는 게 힘든 이를 돕고 그 고통을 내 안에 품는 게 아니거든요. 고통의 바닥에 있던 분들이 치유적 행위를 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여요. 힘든 이를 돕고 녹다운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요즘 세월호 참사 유족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나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가족들마다 사연이 다르니까요. 어릴 때 집 나가서 소식 없던 부모가 찾아와서 보상금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고, 아직도 미수습자 부모가 있잖아요.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언제 끝나느냐면 부모가 죽어야 끝나는 고통이 맞아요.

그 말 너무 아프군요.
치유할 수 없는 고통, 치유의 대상이 아닌 고통이 있어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나 그 아이가 떠오를 때 느끼는 통증은 줄일 수가 없어요.

그럼 이웃 치유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시부모나 직장 상사와 갈등이 있다면, 여행을 가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할 수 있죠. 그런데 자식을 잃은 슬픔은 도망갈 수 없는 고통이죠. 꿈속까지 쫓아옵니다. 이명수 선생이 늘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어느 날 오지에 떨어진 거예요.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나갈 수 있는지 모르는 혼돈 속에 있죠.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도를 쥐여주는 거죠. 혼돈 속에서 가시밭길을 맞닥뜨리는 것과 출구를 알고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혼돈이 제거되면 죄책감에서 빠져나와요.

혼돈이 걷히면 고통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거군요. 최근 정권 교체와 함께 진상 규명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나요?
큰 틀에서는 도움이 되지요. 진상 규명이 치유의 전제거든요.
대부분 정신과 증상은 어릴 때부터 상처, 콤플렉스 등 심리 내적인 거예요. 그런데 유일하게 외적 원인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죠. 예를 들어 아빠가 살해되었어요. 그럼 누가 왜 죽였는지 그걸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알지 못하면 슬픔을 해결할 수 없어요. 트라우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에요. 살인범이 잡히면 그 슬픔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심리 치유가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죠.

진상 규명 이후에도 ‘이웃’은 존재해야겠군요.
그렇죠. 존재할 이유가 있는 거지요.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분이 아예 생활 공간을 안산으로 옮기셨잖아요. 어떻게 결심하셨나요?
이 친구가 팽목항 신원 확인소에서 시신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런데 거기 다녀와서 새벽에 일어나 울고, 팔다리를 떠는 거예요. 아, 이거는 증상이구나 생각했죠. 그게 일주일이나 지속돼서 안산으로 가자고 했죠. 회사고 뭐고 다 정리했어요. 그때 ‘우리는 정말 잘 살았구나’ 하고 느꼈어요. 2주일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남들이 보면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줄 알지만, 사실 우리는 점검을 많이 하죠. 그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뭔지 아세요?

그게 무엇입니까?
두 사람이 연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따져요.

연인 관계요?
안산에 가면 적어도 1년 이상 있어야 할 텐데 둘이 연인으로서 살 수 있느냐. 그게 안 된다면 우주를 구하는 일이라도 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왜? 그건 지속이 안 되니까. 우리는 12년 동안 현장에 있었는데,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처음에 전력을 퍼붓다가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치유 공간 ‘이웃’의 슬로건은 ‘천천히 오래’예요. 우리는 어떤 재난 현장에 뛰어들든지 우리의 연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가? 그것이 잣대예요.

50대 부부의 연인 관계라, 동지애로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다르죠. 동지애는 대의와 목적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연인 관계는 철저히 정혜신 개인, 이명수 개인인 거죠.
그래요.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자기다움을 유지할 수 있느냐, 치유자와 치유 공간의 대표자로서가 아니라 너와 나의 개인성이 살아 있을 수 있느냐. 그것이 없으면 건강한 에너지가 나올 수 없죠.

안산에 거주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늘 힘들었지만 특히 자기 분열적 상황을 견뎌내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한번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당구도 치고, 자장면도 먹었는데, 재미있고 맛있는 거예요.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닌 것 같은 겁니다.


돕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삶은 흔히 고해라고 하는데, 인생이라는 얼룩말은 고통이라는 바탕에 기쁨의 줄무늬일까요, 기쁨이라는 바탕에 고통의 줄무늬일까요?
아직도 명확한 답은 내릴 수 없겠는데 어떤 시인이 말했어요. 살아간다는 것은 내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만나는 일이라고.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고통의 층위가 다 달라요. 그런데 헤아리기 힘든 고통을 당한 사람의 삶일수록 더 비참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어제는 고문 생존자들을 만났는데 한 선생님이 그래요. 안기부에서 60일 동안 고문을 당한 후에 만신창이가 돼서 교도소로 간 첫날, 벽에 등 기대고 앉아 있는데 ‘이만하면 살 만하겠다. 천국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상담하면서 마음의 지옥을 바라보는 일 역시 고통스러울 텐데요.
하루 종일 상담을 하고 나면 피곤할 것 같죠? 그런데 오히려 굉장히 머리가 맑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치유라는 게 힘든 이를 돕고 그 고통을 내 안에 품는 게 아니거든요. 고통의 바닥에 있던 분들이 제가 어떤 치유적 행위를 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여요. 힘든 이를 돕고 녹다운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부부는 자택 2층 서재에서 함께 일한다. 처음에는 따로 작업실을 만들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 부부의 대화는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준다.
두 분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실은 우리가 안산에 가기 전에 어떤 계획을 세웠냐면, 앞으로 하던 일 정리하게 되면 양평 오일장에 가서 사람들 상담해주면서 한가롭게 지내자고 했어요. 사례비로 옥수수 몇 개, 감자 몇 알 받으면서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터진 거예요.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 이외에 다른 계획이 무의미한 것 같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 중 하나는 ‘돕돕재단’을 하는 겁니다. 돕돕재단이 뭐냐면 누군가를 돕는 사람을 돕는 거예요.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 사회 문제가 피해자 중심으로만 관심을 둬요.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는 피해자를 돕는 사람을 돕는 거예요. 우리는 이웃 치유자 대회를 열어 사람들을 데려다가 가마솥에 밥해 먹이고, 같이 음악회도 하고, 이야기도 해요. 저희는 그런 ‘뒷배’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자 해요. 이웃 치유자가 이웃에 가서 지원하는 동안 그 집 아이들을 옆집에서 보살펴주고 자기 아이들과 놀게 하는 게 돕돕이죠. 그게 촘촘히 연결되면 치유적 인프라고요.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고통이나 상처를 입어도 지금처럼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내가 나서면 누가 나를 뒷받침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거죠.

남다른 공감력으로 세상의 눈물을 훔쳐주는 사람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려는, ‘나잇값’을 하는 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구원의 밧줄이 아니라 도움의 그물을 짜고 있었다. 고통과 무관한 초월자나 헬기 조종사가 내려주는 밧줄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주는 사람 그물. 그들이 사람을 위무하는 방식 또한 마주 보며 충고하고 윽박지르는 수직 대화법이 아니라, 함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상대의 이야기에 고개 끄덕이며 맞장구쳐주는 시골 농부의 논두렁식 수평 대화법을 닮아 있었다.

글 반칠환 사진 이우경 기자 담당 정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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