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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가족과 행복하기 나의 첫 반려인 이야기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고백건대 내가 본 가장 못생긴 인간의 손이었다. 뭉툭하고 거친 손, 거친 손마디를 뒤덮은 덥수룩한 털, 심지어 손끝 군데군데 거뭇거뭇 묻어난 잉크 자국까지. 나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서울에 보내진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날을 상상해왔다. 인간의 손에 이끌려 누군가의 반려견이 되는 날을. 내가 그려온 반려인의 손은 부드럽고 섬세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상상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동시에 그 손은 내가 경험한 가장 친절한 손이기도 했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손을 기억한다. 함부로 만지고, 꼬집고, 어떨 땐 자는데 깨우기까지 하던 예쁜 손들. 제아무리 예뻐도 이런 손이라면 사양이다. 아마 그의 못생긴 손은 내가 먼저 다가갈 때까지 나를 기다려줬을 것이다. 뭉툭한 손에 코를 갖다대자 그제야 가볍게 목을 간질여주던 검지의 움직임은 그가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지 말해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날 지켜봐왔다고 한다. 진작 함께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망설였던 건 그가 처한 상황 탓이었다. 반려인은 바쁘고 가난한 예술가였다. 흔히 동물을 반려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시간, 돈, 열정‐ 중 그가 가진 거라곤 열정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든 나만큼은 함께하고 싶던 모양이다. 그가 개의 몸짓언어와 ‘개티켓’에 대해 이토록 잘 숙지하고 있는 것도 숨은 노력의 결과였다. 나를 데려오기 전 섭렵한 책만 수십 권에 이른다고 하니 이만하면 못생긴 손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몸통에 하네스가 채워지고 드디어 문밖으로 나갈 차례다. 무려 넉 달 만이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가족과 이별했고, 넉 달을 좁은 장에 갇혀 지냈다. 그동안 바깥세상은 가게 문틈으로 밀려 들어오는 낯선 공기가 전부였다. 반려인의 손에 이끌려 바깥 바닥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시골 농장과는 다른 까칠한 보도블록 촉감,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 옆으로 지나가며 짖어대는 다른 개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특히 배수구라 불리는 구멍 숭숭 뚫린 쇳덩어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차가운 촉감도 그렇거니와 구멍에 발이라도 빠진다면 그대로 황천길일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 몇 번이나 배수구를 만났을까.
배수구만 나오면 갑자기 휙휙 자리를 바꿔대는 나를 위해 그는 일부러 배수구 없는 쪽으로만 이끌었다. 이 남자, 알아갈수록 매력적이다. 가끔 아직도 동물을 ‘쌍팔년도’ 군대식으로 훈련하는 사람들을 본다. “배수구? 이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자, 이리 와서 밟아봐!” 그들에겐 배수구 따위에 벌벌 떠는 반려견이 못마땅하겠지만, 어떤 개에게 배수구는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다. 굳이 우리가 배수구를 밟고 건너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는 게 최선이다.

3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에 도착했다. 딱 봐도 허름한 반지하 방이다. 볕은 고사하고 환기라도 제대로 될까 궁금한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혹여 그의 마음이 다칠까 봐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문지방을 넘어보려 했지만, 반사적으로 나오는 멈칫거림은 어쩔 수 없다. “미안. 여기가 좀 어둡고 그래….” 그는 차마 문지방을 못 넘고 망설이는 날 안아서 바닥에 내려놨다. 나와 함께하기 위해 가난한 예술가가 아껴 먹은 라면과 사지 못한 물감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좋은 사람이다. 너무도 좋은 사람이다. 한 마리 반려견으로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다. 다른 개들처럼 말썽 안 피우고, 실수 없이 똥오줌 잘 가리고, 그렇게 낡고 차가운 방의 작은 온기가 돼주는 일이리라. 그때 반려인의 낮은 목소리가 공기 속에 울려 퍼졌다. “아키라! 오늘부터 넌 아키라야.”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개가 되었다. 아키라, 생후 6개월 수컷 시바견. 한 반려견의 견생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글 조광민 일러스트레이션 정우열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