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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아지로소이다


나로 말하면 강아지다. 2016년 성탄 전야에 태어났으니 세상에 나온 지 2개월도 채 안 됐다. 아직 이름은 없지만 사람들은 나를 ‘시바’라고 부른다. 나는 남쪽 지방의 어느 농장에서 태어나 일주일 전 서울의 한 펫 숍으로 왔다. 엄마는 헤어지기 전 신신당부했다. “서울은 위험한 곳이니 항상 조심하고 수상한 사람은 따라가지 마.”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펫 숍에선 나를 일본 야마구치 현의 어느 유명 농장에서 태어난 순수 혈통의 시바로 광고했다. 처음엔 그게 아니라고 왕왕 짖어도 봤지만, 내 말을 이해할 리 없는 사람들은 “역시 순종 시바라 그런지 목소리에 절도가 있다”며 감탄했다. 내가 사는 곳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가끔 목욕할 때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그안에 갇혀 지낸다.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눈으로만 봐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무색하게 창밖 사람들은 연신 유리를 두드려댔다. 사람들이 유리를 두드릴 때 울리는 묘한 진동, 유리를 손톱으로 그으며 지나가는 꼬마들, 카메라를 들이밀며 “쭈쭈” 하고 나를 어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이 모든 게 내겐 유쾌하고 신기한 자극이다. 이마저 없었다면 옆 칸의 갈색 푸들처럼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아, 미쳤다는 표현은 취소. 정확히 말하면 그는 미친 게 아니라 미친 듯 보일 뿐이니까.

갈색 푸들은 무려 반년이나 이곳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그의 일과는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유리장 왕복운동이 전부다. 이곳에 온 지 세 달째부터 시작됐다는 그의 왕복운동은 유리장의 두 시 방향 모서리를 앞발로 찍었다가 일곱 시 방향으로 머리를 들이받곤 하는 식이다. 개의 눈으로 볼 때 그의 행동은 폐쇄의 스트레스가 초래한 정형행동定型行動stereotyped behavior)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이 억지로 자연을 본떠 만든 동물원이라는 곳에 가보라. 우리 안에서 이리저리 어슬렁대는 호랑이 선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엄이란 온데간데없는 얼빠진 선생의 행동 역시 전형적 정형행동이다. 푸들이 이른 시기에 좋은 보호자를 만났더라면, 그래서 이 좁은 장을 벗어나 매일 잔디밭을 뒹굴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결코 지금 같은 왕복운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너무 가엾게 여기진 말자.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이상행동도 사라져버릴 테니. 방년 2개월의 호기심덩어리 시바가 유리장 속에 갇혀 지내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나이에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내 삶의 8할은 심심함과의 사투로 점철돼 있다. 이건 비밀인데, 얼마나 무료했으면 가끔은 내가 싼 똥을 몰래 가지고 놀기도 한다. 언젠가 엄마에게 자기 똥을 먹는 이상한 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개도 오랫동안 어딘가에 갇혀 지낸 게 분명하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자기가 싼 똥과 물아일체가 돼버렸거나, 아무 곳에나 똥을 쌌다가 심하게 혼난 경험이 있는 경우 이미 싼 똥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사료를 더 주거나, 똥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소리를 지름으로써 똥 먹는 개 양산에 불철주야 힘쓰고 있다.

잠깐, 어디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거참, 새끼 강아지는 푹 쉬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제일 중요한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 개를 예뻐할 줄만 알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펫 숍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막내 직원이다. 내 생에 이보다 어이없는 말은 듣지 못했다.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는 격렬한 나의 꼬리 흔들기가 그의 눈엔 고작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단 말인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 클 때까지 건드리지말고 푹 쉬게 놔두세요. 산책은 다 크기 전까진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후,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도 이리 무지한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글 조광민 일러스트레이션 정우열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