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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힘이 세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어느 날, 오빠가 이불을 꼭꼭 덮고 웅크려 누워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쪼그리고 있어?” “배가 너무 아파….” “에이, 꾀병 부리지 말고 일어나!”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빠는 점점 배를 부여잡고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꾀병이 아님을 직감하자마자, 당시 6학년이던 나는 중학교 1학년이던 오빠를 업고 뛰었다. 초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오빠를 둘러업은 채 15분가량을 있는 힘껏 뛰었다. 발가락이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다. 쉬기는커녕 멈출 수 없었다.

‘오빠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멈추면 오빠가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끊임없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폐 속까지 스며들었다. 두려운 마음에 눈물과 콧물이 마구 흘렀지만 두 손으로 오빠의 엉덩이를 지탱해야 했기에 닦아낼 수도 없었다. 나는 큰 소리로 계속 말을 걸며 뛰었다. “오빠! 기운 내. 오빠, 내 말 들려?” “….” “오빠 대답해!” 아무런 말 없이 축 처진 채 내 등에 기댄 오빠는 간혹가다 아주 작게 “응…”이라고 할 뿐이었다. 나는 더 빨리 달려야 했다.

그때 알았다. 나랑 그토록 싸우고 때론 귀찮기도 했던 오빠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절박한 마음으로 뛰었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는 급히 어디론가 이송되었다. 부모님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쉴 새 없이 마구 떨리는 두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다행히 오빠는 맹장이 터지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고 수술도 잘 마쳤다. 오빠가 깨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우리 남매는 어떤 남매보다도 끈끈했다. 초등학교 때 를 마치면 항상 나는 오빠랑 둘이서 밥을 챙겨 먹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 힘든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속으로 깊이 의지했다. 그런 오빠가 갑자기 내 삶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무척이나 두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1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빠를 업고 단숨에 겨울바람을 가르고 병원까지 뛰어갈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때 나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없던 힘도 마구 솟구쳐 나오게 하고, 불가능하다 여기던 일도 해낼 수 있는 힘은 사랑이 아니고서야 가능할 수 있을까? 나는 때때로 생각했다. 나는 늘 보잘것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부족하기만 한 존재라고.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나 자신의 한계가 보기 좋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도 너무나 자주 목격해왔다. 사람은 결국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위대해지며, 사랑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오빠를 둘러업고 뛰어가서 수술을 받게 하고 오빠가 건강하게 회복되었을 때, 오빠를 살렸다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다. 나는 오빠가 살아나서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나를 통해 오빠가 다시 건강해졌음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와 능력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예단하고 그 한계 앞에 자신을 가로막는 것은 교만이라는 것. 결국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존재로 이 땅에 왔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길 원하며,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태어나 선물 받은 ‘삶’의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것도 말이다.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 <말이 통해야 일이 통한다>가 있습니다.



글 박재연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