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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젓가락에 담은 삶,멋,흥
작년에 젓가락페스티벌을 시작해 국내외에 젓가락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청주시는 젓가락 문화의 메카로 지난 11월 10일부터 27일까지 청주 첨단문화산업단지에서 두 번째 젓가락페스티벌을 열었다. ‘젓가락, 담다’라는 주제로 펼쳐진 그 현장에 다녀왔다.

‘젓가락, 담다’를 주제로 젓가락 유물부터 디자인 젓가락까지 다양한 젓가락을 전시했다. 
“2천 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인 우리 조상님들이 서울에 나타났다고 가정해봐라. 과연 그분들이 무엇을 알아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일까? 그건 밥상에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또 서양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알아보지도 못하고 낯설어할 물건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의 젓가락이다. 콩자반 반찬이라도 있다면 하루가 걸려도 콩 한 알 집어 먹기 힘들다.” _이어령,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분디나무로 만든 이종국 작가의 젓가락. 
한국, 아니 동아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평생 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물건 중 하나가 젓가락이고, 사람으로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밥 먹기 시작하면서 함께 배우는 것이 젓가락질이다.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3천 년 전부터 중국, 한국, 일본은 젓가락을 사용해 식사를 해왔다. 젓가락을 사용해 밥과 반찬을 먹으며 식습관과 음식 문화를 배워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 생활 속에서 너무 익숙해 소홀히 생각했던 젓가락이 화제가 된 것은 청주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젓가락페스티벌 덕분이다.

손바느질로 조각보의 패턴을 장식해 만든 이소라 작가의 수젓집. 
청주는 2015년에 일본의 니가타, 중국의 칭다오와 함께 ‘동아시아 생명문화도시’ 수도로 선정되었다. 젓가락페스티벌 조직위원회의 이어령 명예위원장을 중심으로 ‘청주발 생명젓가락’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는 젓가락 문화를 복원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청주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곳이고, 고려시대 토광묘에서 13세기의 금속 수저가 대량 출토되어 청주권 주요 박물관에 3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는 데다, 젓가락의 좋은 재료인 분디나무의 고장이기 때문이었다.

이종국 작가가 현대적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분디나무 젓가락.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 고려가요인 ‘동동’에 보면 “12월에 분디나무로 깎은 아아,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가 뭅니다. 아아 동동다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분디(산초)나무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는 나무로 곧고 가늘게 자라는데, 젓가락을 만들면 가볍고 오래가며 부드럽다. 청주의 분디나무 젓가락을 상품화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젓가락 모양대로 2015년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했다.

일본의 젓가락 문화를 보여주는 ㈜효자에몽 우라타니 효우고 회장의 젓가락 컬렉션. 
“젓가락에 담긴 상생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젓가락페스티벌’을 지구촌 축제로 만들어가겠다”는 이승훈 청주시장의 포부대로 올해의 페스티벌은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ㆍ중ㆍ일 젓가락 문화와 관련한 학술 심포지엄, 전통과 창작, 문화 상품으로서 젓가락 3천여 점 특별 전시, 젓가락 신동과 도사를 뽑는 경연 대회, 1m 젓가락 릴레이 경연 대회, 젓가락 장단 공연, 넌버벌 퍼포먼스 팀 ‘점프’의 특별 공연 등 다양한 공연과 체험 행사가 열렸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젓가락방을 재현한 공간. 
전시 공간은 한ㆍ중ㆍ일 3국의 젓가락 문화와 유물을 소개하는 ‘삶을 담다’ ‘멋을 담다’ ‘흥을 담다’ 세 섹션으로 나눠 젓가락 문화를 다방면에서 심층적으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첫 번째 ‘삶을 담다’에서는 사람의 생로병사를 한ㆍ중ㆍ일 3국의 젓가락을 통해 조명했고, 고려ㆍ조선의 수저 유물과 중국 건륭 황제 시대의 젓가락 유물 등을 전시했다. 두 번째 ‘멋을 담다’에는 말 그대로 멋진 공간을 만들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 음식 보유자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모은 3백여 점의 젓가락이 있는 서울 원서동 자택 젓가락방을 그대로 옮겨와 우리 일상용품도 잘 전시하면 미술 작품처럼 공간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5대째 젓가락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효자에몽(兵左衛門) 우라타니 효우고(浦谷兵剛) 회장의 작품 2백여점, 중국 젓가락 장인 류홍신(陸宏興)의 작품 1백여 점도 소개했다.

개회식에서 선보인 한・중・일 3국의 전통 음식. 한국의 월과채, 중국의 만두, 일본의 스시를 준비했다. 
또 옻칠 명장이자 충북도 무형문화재인 김성호 작가, 붓 장인인 유필무 작가, 분디나무 젓가락을 만들고 한지로 포장하는 이종국 작가, 유기 수저와 반상기 세트를 만드는 박갑술 작가, 방짜 유기의 김우찬 작가, 손바느질로 수젓집을 만드는 이소라 작가 등이 전시장에 마련된 각자의 방에서 직접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람객들 만나 젓가락 문화를 알렸다. 그 외 최기, 박성철, 엄기순 작가의 창작 젓가락과 청주대 공예디자인학과, 중국 칭화대, 일본 도쿄 예대 학생과 교수들의 젓가락 작품들도 전시했다.

옻칠 바탕에 나전으로 장식한 찬합과 젓가락들. 
세 번째 ‘흥을 담다’는 한ㆍ중ㆍ일 3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술과 음식, 다도, 복식 등을 학습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분야별 전문가의 강의와 체험, ‘내 젓가락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젓가락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우리네 식탁에 늘상 오르는 한 쌍의 젓가락. 젓가락페스티벌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문화라 생각하지 못한 젓가락이 이렇게 풍부한 콘텐츠의 보고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1천 년 전 고려시대의 젓가락을 보면서, 나무를 깎고 쇠를 두드려 젓가락을 만드는 장인들을 통해서, 젓가락 신동이 되기 위해 연습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1천 년을 이어온 젓가락의 장점에 새삼 눈을 떴다. 기다란 젓가락 한 쌍에 아시아인의 문화 유전자가 깊숙이 녹아 있었다.

무형문화재 방짜 유기 전수 조교 김우찬 작가의 수저.


글 신혜연(푸드 칼럼니스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