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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개인 교습하는 이경화 선생님 많이 보고 많이 표현하라
학창 시절 미술 학원을 싫어했던 이경화 선생님은 학원을 열지 않고 개인 교습 방식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미술은 결국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최근 학생들과 함께 뉴욕 갤러리 투어를 다녀온 이경화 선생님을 만났다.


여행이 늘 즐겁고 설레는 일만은 아니다. 출발 전 준비할 것도 많고, 패키지 투어가 아니라면 동선을 짜야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백업 플랜도 세워야한다. 여행의 고단함과 피곤함을 설렘보다 많이 느끼는 내게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야말로 고행에 가까웠다. 학생들과 함께 뉴욕 갤러리 투어를 다녀온 미술 선생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분일지 궁금했다. 틀에 박힌 입시 미술보다 창의성이 중요한 잣대인 요즘, 학생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살리는 수업을 하는 이경화 선생님을 만나러 동탄 자택을 찾았다.


Q 학생들과 뉴욕으로 갤러리 투어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림은 첫 단계로 다양한 작품을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고, 따라 그리는 모사도 많이 해야 합니다. 평소에도 아이들 데리고 국내 미술관을 많이 다니기 위해 수업 시간에 꼭 미술관 관람을 내용으로 넣습니다. 개인적으로 뉴욕에 그림을 보러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는데, 올해도 간다고 하니까 학생들이 가고 싶어했고, 학부모 호응도 좋아 함께 가는 여행으로 구성해 다녀왔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oMA 등 필수 코스 격인 유명한 미술관에 가면 아이들은 일단 규모에 압도되죠. 화집에서나 보던 명화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경우는 건물이 커다란 달팽이처럼 생겼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건물 외관을 스케치하고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돌아가며 그림을 감상했을 때 매우 행복했습니다. 모건 도서관에 들러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초판본도 보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친필 악보도 봤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작품을 볼 수 있는 노이에Neue 갤러리도 정말 좋지요. 작년 개봉한 영화 <우먼 인 골드>에 나오는 바로 그 미술관입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아이들이 드로잉할 때는 관람객이 많이 모여들었거든요. 부담스러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웬걸요? 아주 시선을 즐기면서 그리더군요. 현지인도 잘 모르는 브루클린 미술관에도 들렀지요. 맨해튼 지역의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예술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는 곳이랍니다. 작가들이 서로의 드로잉 북을 공유하기도 하지요.

작년 5월 허드슨 강변으로 위치를 옮겨 재개관한 휘트니 미술 관에서 작품을 모사하고 있는 아이들.
Q 아이들 데리고 여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고생 많으셨죠?
예상치 못했던 일도 벌어지고 아이들 통솔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림을 보고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역시 데리고 오길 잘했구나 생각했지요. 또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미술관 자체를 작품으로 의식하면서 질문할 때는 정말 기특하더라고요. 미술관 바닥에 앉아서 모사도 했는데, 짧은 시간에 몰입해서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 가능성을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스케치북을 다 쓰면 스스로 알아서 화방에 들어가 사 오더군요.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다음에는 유럽에 데리고 가고 싶어지네요. 유럽도 저 혼자 먼저 다녀와서 동선을 짠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Q 선생님 그림을 SNS를 통해 보았습니다. 화려한 색감에 반했는데, 동양화를 전공하셨다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는 그림도 고등학교 때 시작해서 미대에 진학했고,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입시 미술은 고등학교 때 시작했지만 그림은 좋아해서 계속 그리고는 있었습니다. 미술반 활동도 지속적으로 했고요. 색감에 대해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입시 준비하면서도 색감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림을 놓지 않고 꾸준히 보고 그린 것이 결과적으로 색감이나 구성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업할 때 미술관 관람을 빼놓지 않고 넣습니다. 뉴욕에 그림만 보러 가는 여행을 생각한 것도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Q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들 그림이 굉장히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느껴집 니다. 색감은 말할 것도 없고요.
미술을 가르치는 건 꼭 그림을 그리는 방법만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기 전에 학생들과 얘기를 많이 나눕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표현하고 싶은지, 또 일상생활은 어떤지… 세세하게 이야기 나누지요. 그 과정이 모두 그리기에 포함되거든요. 그림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인데, 제가 그 학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도와줄 수가 없어요. 제게 수업받으면서 “한 달에 그림 몇 개 이상, 작품 몇 개 이상을 완성해달라” 식으로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는데, 그런 분과는 함께 수업할 수 없어요. 그건 제 방식이 아니거든요. 또 하나 중점을 두는 것은 재료를 섞는 방법입니다. 한 재료만 쓰는 게 아니라 물감도 물을 사용하지 않고 써보고 파스텔과 유화물감을 섞어서 그려보고, 붓으로 그리다가 손을 사용해 색칠해 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낯설어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이들은 더 창의적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하고 재미를 붙여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하자고 조르기도 합니다. 저는 미리 짜둔 커리큘럼을 수업 진행 중에 학생 성향에 맞춰서 수시로 바꿉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의 생각이 변해가면서 교육 역시 거기에 따라가야지요. 저는 스스로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이를 키울수록 독서와 그림 그리기의 중요성을 크게 느낍니다.
요즘 수행 평가가 비중이 높아지면서 강남 지역의 학부모에게서 수업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과목이든 글쓰기와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니까요. 결과물을 내다 보면 꼭 필요한 게 바로 글과 그림이더군요. 후회하시는 분도 많이 만났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그림을 좋아했는데, 취미로라도 계속 그리게 뒀더라면 좋았을 걸 하시더군요. 입시에 치우친 교육을 하다 보니 미술 과목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술을 아주 어릴때만 하고 일찌감치 접어버리는 풍토는 아쉽지요. 수행평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이제 좀 바뀌려나요? 걱정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어릴 때 작품을 많이 보도록 하고 나름대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게 꼭 그림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표현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은 도구가 바뀌어도 잘할 수 있답니다.

Q 성인에게도 그림을 가르친다고 하셨죠? 제 주변에도 그림 배우는 분들이 있어요. 어떤 때는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자다가도 일어난다고 하세요. 그림 그리기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 아닐까요? 성인의 경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에 의외로 발전이 빠른 분이 많아요. 자기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뭔가 표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나 봐요. 집중한 시간 동안 다른 생각 안 나서 좋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작품은 계속 미완성의 상태라 지속적으로 바꾸고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이경화 선생님의 말처럼 미완으로 남아 있는 내 인생의 시간을 위해 감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서툴더라도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지저분함을 견디는 것, 조급해하지 않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의도를 되짚어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조건이라니 하나씩 찬찬히 실천해봐야겠다.


글을 쓴 김지영은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는 대한민국 교육 체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북극성 같은 지표에 목말라 있다. <웬만해선 그녀의 컴플레인을 막을 수 없다> 저자이자 ‘잡지는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이라 믿는 그가 객원 기자로서, 뚜렷한 신념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육 전문가를 매달 한 명씩 인터뷰한다. 현재 역동적인 홍보 대행사 함샤우트에서 근무한다.



글 김지영 사진 이창화 기자 담당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