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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가버의 <과수원 창문> 지금 이 순간의 행복
한 사람의 인생을 우주라고 가정한다면, 그 우주를 이루는 성분을 둘로 나눈다면, 불행과 행복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숱한 불행과 드문 행복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어느 땐 불행할 조건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서 인생의 기본 값이 불행인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불행 때문인가? 불행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은 행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다. 행불행은 함께 존재하지만 따로 작용하는 우주의 질서다. 이 둘은 독립된 개념이자 별개의 문제이며 서로 혼합되지도 상쇄되지도 않는다. 횟수와 밀도만 다를 뿐 삶에는 불행한 시기와 행복한 시기가 각각 존재하는 것이다.

대니얼 가버, ‘과수원 창문’, 캔버스에 유채, 143.4×132.7cm, 1918, 필라델피아 미술관
여기, 행복한 순간을 재현하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지금 커다란 창문 앞에 앉아 독서 중이다. 무슨 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시선을 고정한 채 한장씩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는 것같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 표정이 더없이 충만해 보인다. 그녀 뒤로 보이는 창밖 풍경은 펜실베이니아 럼버빌에 있는 과수원으로, 풍성하게 자란 초록 잎 사이로 하얗고 노란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방안 가득 쏟아지는 눈부신 빛과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 그리고 감미로운 붓 터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 그림은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대니얼 가버Daniel Garber, (1880~1958)의 ‘과수원 창문’으로, 자신의 딸 타니스의 열두 살때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지만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준다. 이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딸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딸이 어릴 때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싫어서 그는 화가로서의 활동을 미국 내로 한정했고, 딸의 학창 시절에는 교육을 위해 펜실베이니아 시골의 버려진 작은 공장을 화실로 개조해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 또 일이 끝난 오후나 주말에는 집에서 체스를 두거나 정원 생활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타니스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로, 그 그림들을 연도별로 나열하면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보는 듯할 정도다. 그는 1915년 작 ‘타니스’에서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창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묘사했고, 그로부터 2년 후 그린 ‘동화’에서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또 1923년 작 ‘아침 햇살’을 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 숙녀가 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버는 보통의 날들을 찬연하고 유려하게 묘사함으로써 행복한 삶에 대한 단상을 표현했다. 행복을 선언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행복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그가 그림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아끼고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즐기리라는 자세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지금 최대한 맛있게 먹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 보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달려가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목하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이 모두 생각만 하다가 끝나지 않는 삶, 다 하지는 못해도 하나씩 실천해보는 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삶을 견디게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야말로 삶이 펼쳐지는 유일한 무대고 행복을 체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행복의 비결, 행복의 조건, 행복의 정석, 행복의 지름길은 따로 없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고 선택하는 것이며 체험하는 것이다. 또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고 차지하는 것이며 향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끝내 행복할 수 없음을.


글을 쓴 우지현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다.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잡지, 웹진,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있다.

글 우지현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