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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더 이롭게 만든 한국의 여성 과학자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여성 리더가 늘어나고 있다. 세상의 이치를 밝히고 인류를 이롭게 하는 과학계 역시 마찬가지. <행복>은 창간 29주년을 맞아 우리 과학계를 주도하는 5인의 여성 과학자를 만났다. 날카로운 이성으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감성을 묵직하게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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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여성의 ‘복잡한’ 관계
고인류학古人類學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주로 고인류 화석을 자료로 쓰며, 근래에는 유전자 자료가 점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 과제를 설정하고 고인류 화석을 발견ㆍ발굴ㆍ분석하는 과정, 유전자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자연과학적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인간을 연구하기 때문에 인문학, 사회과학적 성격도 강하다. 고인류학이라는 과학은 여성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수백만 년 전 인간 조상들을 연구하는 고인류학과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사냥꾼 가설’이 대표적인 예다.

사냥은 남성의 일이었을까?
사냥꾼 가설에 따르면, 인류의 기원과 진화는 사냥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낱 유인원과 비슷하던 인류의 조상이 사냥을 하면서 인간의 근본을 갖추게 되었다. 도구를 만들어 짐승을 잡아먹고 고단백ㆍ고지방을 섭취하며 사냥이라는 지능적 일을 하면서 두뇌가 커졌다.직립보행으로 두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만들고 쓴 결과 이빨이 작아졌다. 사냥으로 인류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으며, 사냥으로 말미암아 큰 머리, 두 발 걷기, 도구 사용 등 인류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사냥은 남자들의 전유물이기에 은연중에 인류의 진화를 이끌고 간 주역은 남자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하게 되었다. 그 반대편에 여자들은 자연계의 암컷이라면 누구나 하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인류의 진화에서 여자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사냥꾼 남자’라는 모형에 반대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의 원동력은 유리천장을 깨고 학계에 자리를 잡으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 고인류학자들이었다. 여성 고인류학자들은 남성 못지않게 현장에서 활약해왔다. 수많은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 메리 리키Mary Leakey가 대표적이다. 그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공헌이 이론 체계에서도 일어났다. 예를 들어 “사냥은 주로 남자의 역할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아빠가 부양한다” “남자의 부양을 받기 위해 여자는 항상 성관계를 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다” 등은 사냥꾼 남자 가설에서 중요한 전제였다. 이에 대해 실제 자료를 수집해 반박하고, 대안 가설을 제시한 사람들은 커스틴 호크스Kirsten Hawkes 같은 여성 고인류학자들이다. 호크스는 ‘할머니 가설’을 통해 할머니가 활발한 경제활동 혹은 아이 돌보기를 통해 육아 과정에서 아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자료를 통해 사냥은 남자들만의 행위가 아니라 나이 든 여자들도 적극 참여했으며, 도구를 만들고 쓰는 일과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일을 여성이 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구는 짐승을 잡는 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뿌리 식물을 캐고 열매를 따 먹는 등 식물성 먹거리를 구하는 행위에 썼다는 점도 밝혀졌다. 사냥꾼 남자 가설이 무너지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여자들이 있었다.

더욱 풍성해질 이야기
고인류학자들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시대에 인류는 남성으로 대표되었으며, 화석인류의 모습과 행위를 복원하는 고인류학은 남자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중심이었다. 여성들이 학계로 나오면서 비로소 인류의 진화에 여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사냥=도구=남자’의 도식이 풀어지면서, 인류 진화에서 여성이 보이기 시작한 지금 인류의 진화는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아직도 우리는 은연중에 인류의 진화를 남자의 진화로 간주한다. 수많은 인류 진화의 도식을 보면 남자들의 행진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작은 몸집으로 눈을 내리깔고 네발로 걷다가 점점 당당한 체격과 보행 자세를 갖추면서 흰 피부의 남자로 변한다. 그리고 이 도식은 입체 모형으로 만들어져서 수많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그렇게 진열된 모형을 보면서 아이들은 남자를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남성 중심적 현재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인간과 보이지 않는 여성, 이는 고인류학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고인류학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다른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여성 과학자의 목소리를 더 낼 수 있을까?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기를 꺾거나 말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최상의 격려다.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기를 꺾고, 말리는 일에 익숙하다. 학창 시절 내가 겪은 바로는 그런데, SNS를 통해 교류하는 젊은 여성들이 지금도 30년 전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당혹스럽다. <행복이가득한집> 29주년 기념호에 여성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실린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한국 사회가 여성 과학자를 많이 양성해 <행복> 40주년 특집호가 나올 때쯤에는 한국에서 여성 과학자라는 위치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길 바란다.

글을 쓴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입니다. 미국 UC 리버사이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칼럼,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류의 진화’라는 주제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최근 <과학동아> 윤신영 편집장과 함께 인류 역사의 이정표가 된 여러 흥미로운 사건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고등과학원 연구교수 고계원 
수학의 아름다움

화이트 셔츠는 렉토, 검은색 배기팬츠는 휴고 보스, 크리스털 소재의 네크리스는 타니 by 미네타니, 스틸 밴딩 시계는 갤러리어클락 by 펜디. 헤어와 메이크업은 노은영.
“시계추의 움직임, 전기회로의 작동, 용수철 운동을 모두 하나의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수학을 통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운동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지요. 수학자들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이런 방정식을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고계원 교수는 수학을 통해 전혀 달라 보이는 현상의 공통점을, 겉으로는 규칙을 발견할 수 없는 움직임에서 일정한 패턴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고계원 교수는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에서 이름 그대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연구한다. 연구분야를 묻자 “엔트로피가 0인 계(system)의 복잡성을 연구한다”는 도무지 오리무중의 대답이 돌아온다. 주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연구를 지속하는 수학자의 하루가 궁금했다. “하루를 거의 낭비하죠. 대부분 아무런 진전도 없어요. 일과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올 땐 ‘이 낭비가 쌓여 무언가 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으면 즐겁지요. 1년에 그런 즐거움을 느끼는 날은 열흘도 채 안 됩니다.(웃음) 하루 종일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관련 논문을 읽고, 수학자끼리 모여서 세미나를 합니다. 진전이 있었다고 느꼈지만 다음 날 와서 보면 틀린 일도 많아요. 하지만 그것도 진전입니다.(웃음) 최소한 틀렸다는 사실은 깨달은 거니까요.”

그렇다면 고 교수가 수많은 날을 ‘낭비’하며 연구하는 고등수학은 우리 생활에 어떤 쓸모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수학은 상호작용하는 학문입니다. 처음엔 실용적 목적으로 출발했지요. 그걸 추상화해서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고등수학입니다. 고등수학의 모든 결과가 실용적으로 쓰이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굉장히 많은 분야에서 고등수학이 공헌하고 있습니다. 동료 수학자가 고등수학으로 만들어놓은 추상적 메트릭metric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예요. 최근의 예를 들면 빅 데이터가 있습니다. 현재는 통계 수준이지만 수학이 깊게 관여할수록 빅 데이터는 빠르게 발전할 겁니다. 복잡한 데이터를 쉽게 읽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빅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물리 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고계원 교수의 집안엔 이과 서적이 가득했다. 여자라서 수학을 못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다른 분야를 잘 몰랐습니다.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는 과목인지, 법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전혀 알지 못했지요. 외우는 건 싫었고, 물리엔 흥미 가 있었지만 여학교에서 가르치는 물리는 수준이 낮았어요. 수학이 재미있었습니다.” 수학 중에서 동역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고 교수는 미국 브린모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집안 사정으로 귀국해 아주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곳에서 20년넘게 학생을 가르친 그는 지난 2014년 고등과학원 연구교수로 옮겨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고계원 교수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통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수학적인 재능엔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남학생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미국에서 가르치던 브린모어 대학이 여대였어요. 근처에 남학 교가 있어서 수업을 같이 하곤 했는데, 평소엔 질문을 잘하던 여학생도 남학생이 수업에 들어와 질문을 시작하면 손을 들지 않았어요. 이런 사소한 일이 쌓여서 큰 차이를 만듭니다. 여학생들은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르쳐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스스로 위축된 것이 문제입니다.”

고계원 교수는 지난 2005년 설립된 한국여성수리과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여성 수학자의 연구 활동과 교류를 지원하는 단체. 그는 ‘내가 설립한 것이 아니라 한국 여성 수학자 모두가 설립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부터 필요를 느껴왔고, 마침 제가 거기 있어서 초대 회장을 맡은 것일 뿐입니다. 여성수리과학회가 생긴 이후 대한수학회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남성 수학자에게 여성도 한국 수학계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한 것이지요. 단체를 조직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엔 대한수학회의 첫 여성 회장으로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가 선출되었지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역시 여성 수학자의 힘이 없었다면 개최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조직의 힘을 키우는 건 다양성입니다. 남성과 여성, 지방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수학자가 모두 각각 쓸모가 있습니다. 수학만 잘한다고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 고계원 교수가 제안하는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법
□ 억지로 시키지 마라. 수학을 좋아하게 만들기 전에 우선 싫어하지 않게 하라.
□ 답보다는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항상 아이에게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져라.
□ 음식으로 덧셈 뺄셈을 한다든지, 생활 속에서 즐거운 수학 놀이를 하라.
□ 일상 속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도록 하라. 서로 주고받으며 숫자를 세는 것으로도 수열 개념을 익힐 수 있다.
□ 답을 즉시 찾을 수 없는 도전적 문제를 제시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문제를 되새겨라.



동물 질병 진단 키트 벤처기업 베트올 대표 김정미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라

러플 장식의 검은색 톱과 나트 소재의 원피스는 폴카, 검은색 카디건은 질 스튜어트, 크리스털 장식의 펜던트 목걸이는 타니 by 미네타니, 골드 소재의 팔찌와 링과 이어링은 모두 골든듀, 에나멜 소재 스트랩 슈즈는 락포트. 헤어와 메이크업은 노은영.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는 검은색 래브라도레트리버의 이름은 이보크.
“일할 땐 남녀를 구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남성 과학자에 비해 여성은 연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더군요. 제가 젊은 여성 과학자에 대한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입니다. 10년 전 대학 초년생이던 멘티가 어느새 과학자로 성장해 멘토로서 활약이 대단해요. 존경할 만한 후배가 된 거죠.” 김정미 대표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에서 지난 10년간 멘토로 활동해왔다. 그의 조언은 퍽 구체적이다. “’커리어 우먼으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꾸리는 일입니다. 결혼 전부터 남자 친구에게 과학자로서 인생 계획에 대해 꾸준히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해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이런 식으로 결혼 전에 미리 서로의 계획을 맞춰두면 일터와 가정에서 행복할 수 있겠죠. 학창 시절 능력이 뛰어났던 친구가 여자라는 이유로 경력을 포기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참 안타까웠지요.”

김정미 대표 역시 한때 경력이 단절될 뻔했다.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처음엔 박사과정을 밟는 남편을 내조할 계획이었다. “성격상 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낫겠더군요. 계산해보니 장학금을 받으면 경제적으로도 더 이득이 되겠고요. 공부해서 학위 따겠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반대했어요. 자신이 꿈꾸던 가정이 아니라는 거였지요. 그때부터 3박 4일을 투쟁했습니다.” 부부는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지치면 다음 날 또 이야기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김 대표는 남편을 설득했다. “유학 중 남편에게 힘들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했어요. 씩 웃으며 ‘힘들지? 그럼 관둬’ 그럴 게 뻔하니까요.(웃음)” 그는 박사 학위를 ‘쟁취’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박사과정으로 약학을 선택했다. 국내에 들어와 국립보건원과 벤처기업, 대형 제약사 등을 거치며 인체 진단키트를 개발했다. “실험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 실제로 쓰임새 많은 제품을 만드는 쪽이 적성에 맞더군요. 지금 병원에서 쓰이는 자궁 경부암 진단 키트를 만들었어요. 노력해서 만든 제품을 병원에서 많은 여성이 쓰고, 내 딸 역시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보람이었지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실험실에서 오도카니 실험에 몰두하는 김 대표 모습을 상 상하기가 쉽지 않다. 경쾌한 어조로 시원스레 말하는 그는 무척이나 달변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에요. 연구소장을 맡아 제품을 개발하는데, 그걸 설명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제가 그 일을 맡았죠. 학회 때 의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명확한 데이터를 보여주면 처음엔 국산이라고 무시하던 의사들이 깜짝 놀라요. 하다 보니 이 일도 재미가 있더군요. 그 후 제약사 진단사업팀을 맡았고, 경영전문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며 창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지요.”

창업 과정에서 김 대표는 방향을 바꿔 동물 질병을 진단하는 키트를 만드는 벤처기업 ‘베트올’을 설립했다. “인체 진단은 이미 다국적 기업이 여럿 진입해 있었어요.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경쟁자가 많지 않았고,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컸습니다. 인체 진단과 원리가 거의 동일해서 자신도 있었죠. 그렇게 올해 12월로 창립 10주년이 되었네요.” 김정미 대표는 베트올을 세계 동물 의료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으로 키웠다. 세계 1백여 개국에 수십 종의 동물 질병 진단 키트 제품을 수출하는 베트올의 매출 대부분은 해외에서 나온다. “임신 시약처럼 샘플만 떨어뜨리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신속 진단 키트는 정말 편한데, 동물을 위한 제품은 아직 그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각국 거래처와 연락할 때 필요한 제품의 순위를 적어서 보내라고 하고, 우리는 그 순서대로 만들기만 하면 돼요. 뭘 만들어야 팔릴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정말 편합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창업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김정미 대표에게 과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역시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이공계는 사람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인문학에 비해 기회도 많지요. 저처럼 적성에 잘 맞는다면 보람도 크고요.” 구체적으로는 생물과 물리, 화학 등을 아우를 수 있는 융합적인 분야를 권한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분야를 미리 준비한다면 같은 노력을 했을 때 성과가 클 겁니다. 40~50대에 승부를 볼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 영역이 확실해야 합니다. 대기업에 입사하고도 40대 초반에 그만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소기업에서 전문 분야를 갖고 60대까지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은 길어요.”

✓ 김정미 대표가 창업을 꿈꾸는 여성 과학도에게 주는 조언
□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술 분야를 선택하라.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없이는 경쟁력도 없다.
□ 판매할 시장이 분명하지 않은 최첨단 기술보다는 보통 수준이라도 매출이 확실한 기술이 낫다.
□ 창업은 천천히 할 것. 충분한 실무 경험은 성공 확률을 높인다.
□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라. 언제나 보험이 될 제2의 계획이 필요하다.
□ 주변에 내가 하는 일을 상세히 알려라. 가족의 지원은 보약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 라파엘클리닉 대표 안규리 
봉사로 연 새로운 세계

 검은색 니트 톱은 자라, 크리스털로 장식한 벨트는 에스카다, 로즈 골드 소재의 목걸이와 반지는 러브캣비쥬, 가죽 소재의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저는 인공지능 의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의 의사가 되어 지금까지 원인을 알지 못하던 아픔에 가장 인간적으로 접근해 새로운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머지는 컴퓨터가 다 해결해줄 테니까요.(웃음)” 안규리 교수의 연구실 벽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음반이 걸려 있다. “천재성이 번뜩이던 스무 살의 피카소가 의사를 그린 그림이 있어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누워 있는데, 한편에서 수녀님이 따뜻한 물을 권하고 의사는 그 반대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맥을 짚고 있지요. 의사는 감성보다는 이성적 판단에 의존하도록 훈련받습니다. 환자에게 친구이자 동반자인 의사를 꿈꿨지만, 저 역시 지금은 사고 체계만 발달한 반쪽 모양이 되고 말았어요.” 인공지능 의사가 기계적 판단을 대신할 미래, 안규리 교수는 의사로서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 대한이식학회 이사장, 라파엘클리닉 대표이사. 안규리 교수가 건넨 세 장의 명함엔 각각 이런 직함이 적혀 있다. 이종이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신장내과 전문의 안규리 교수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빈곤 해결에 골몰하셨던 아버지는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가 좋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미대에 가면 학비를 못 대준다고도 하셨고요.(웃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당시의 제겐 자연과학 분야가 건조하게 느껴져 의사를 택했어요.” 신경내과라는 전공을 택한 계기 역시 화가를 꿈꾸던 의학도다웠다. “형광물질을 주입한 신장 사구체 단면 사진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몸에 있는 조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조직이 신장인데, 그게 망가져 아파하는 환자들이 정말 딱해 보였지요. 개발도상국이던 우리나라가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의학 분야이기도 했고요.” 안 교수는 지난 1997년부터 동남아 이주 노동자를 진료하는 라파엘클리닉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라파엘클리닉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1996년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 두 명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사건이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은 감옥에서 한글을 배워 각계각층의 지도자에게 편지로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그 편지 중 하나가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도착했고, 추기경은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이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돕겠다고 끼어들었지요. 사실 처음엔 카레를 만들어서 이들에게 먹이려고 감옥에 싸 들고 갔는데, 사형수에겐 음식 반입이 안 된다지 뭐예요. 교도관과 대판 싸우고 나오다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죠.” 이주 노동자를 위한 진료소, 라파엘클리닉을 만든 계기였다. 의대 학생들과 함께 궤짝 네 개를 들고 시작한 지 19년, 라파엘클리닉은 열일곱 개 과와 다섯 개의 진료 지원과를 갖추고 3백20여 명의 환자를 돌보는 규모로 커졌다. “매주 일요일 성북동 라파엘센터에 가면 1백30여 명의 봉사자가 환자를 돌봅니다. 이 열정적인 봉사자들이 환자와 어우러져 진료소를 가득 채우는 모습이 제게는 마치 작은 별들이 모여들어 큰 은하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져 저는 이 일요일의 기적을 ‘라파엘 갤럭시’라고 부릅니다.” 올해 말부터는 의료 봉사자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 ‘라파엘 아카데미’도 운영할 계획이다.

안규리 교수와 라파엘클리닉의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2005년,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이민을 결심했을 정도였지요. 그러다 인도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슬픈 현실을 만났습니다. 불가촉천민들이 병원이라 볼 수 없는 곳에서 썩은 붕대를 감고 있었어요. 의료인으로서 라파엘클리닉을 기반으로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라파엘인터내셔널을 발족해서 몽골 의료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그 지역 의료진을 키우는 것이지요.” 안규리 교수는 산을 타고 몽골 변방에 찾아가 지역 의료진과 함께 우물을 파고 화장실을 지으며 교류하고, 그들을 교육했다. “지난 9년 동안 50여 명의 몽골 의료진을 한국에 초청해 의료 기술을 가르쳤고, 몽골 의료진은 라파엘 몽골을 만들어 자신의 손으로 의료 소외 지역의 환우를 돌보고 있어요. 정말 고맙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이민 안 가길 잘했어요.(웃음)”

✓ 안규리 교수가 알려주는 인터넷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정보 찾는 방법
□ 의료 정보 웹사이트의 운영 목적이 비상업적이어야 한다. 웹사이트 주소 뒷자리를 확인하라. 정부 기관(.gov 또는 .go.kr), 의과대학(.edu 또는 .ac.kr), 의료 단체(.org)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상업적인 곳은 (.com)으로 된 곳이 많다.
□ 의료 정보의 출처와 정보 제공 근거가 밝혀져 있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선 의료 정보의 출처와 근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의료 정보를 정기적으로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하는 곳이어야 한다.
□ 방문자들이 의료 정보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할 수 있고, 웹사이트 운영진과 방문자들이 건전한 토론을 하는지 확인하라.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연구원 전미사 
북극에서 남극까지

컬러 블록 니트 톱은 에스카다, 스웨이드 소재의 스키니 팬츠와 앵클부츠는 롱샴, 심플한 링은 캘빈 클라인 주얼리.
“어느 날 연구소 내 배양실(극지에서 가져온 시료를 비슷한 환경 조건을 만들어서 키우는 곳)에서 동료가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처음 봤는데, 저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어요.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렸죠.” ‘남극 세종기지 최초 여성 월동대원’이라는 타이틀의 주인공인 극지연구소 전미사 연구원과 극지 해양에 서식하는 미세조류와의 첫 만남이었다. 원래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의 기초연구소에서 단백질 분야를 연구하던 그는 2007년 1월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생물을 좋아하는 문과 학생이었어요. 엉뚱하게 사체 해부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죠. 생물 응용 분야로 시작해 생태학 쪽으로 연구 분야를 넓힌 케이스예요.” 호기심 하나로 시작한 미세조류 연구. 극지 환경을 겪지 않고 미세조류의 생태와 패턴을 제대로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 그는 2007년 북극에 다녀온 뒤 2년간 노력한 끝에 2009년 남극 세종기지로 떠났다.

열댓 명의 월동대원 중 유일한 여성이던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극지를 연구하세요?”였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남편, 22개월 된 아기와 헤어져 남극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온 전미사 연구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살아 있음 자체를 느끼고, 내 삶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서요.” 극지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1년간 머무르며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한 동료애를 느꼈다. “남극 세종기지에서 1년 동안 연구했다고 하면 놀라시는 분이 많아요. 체력적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해요. 심리적 압박을 견뎌내고 연구에만 집중해야 하는 거죠. 남자 대원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현장에서는 그렇지않아요. 순간이 생존이기 때문이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서로 질책하기보다 도와주고 협력하며 지냈어요.” 극지는 이 땅의 기후변화와 환경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청정 지역. 전미사 연구원은 극지에서 햇빛을 받아 자가 증식하는 해양의 1차 생산자인 미세조류의 생태와 개체 수 변화 등을 기록하며 기후변화를 감시ㆍ감지하는 기초 데이터를 만든다. “미세조류는 극지 해양 생태의 밑거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펭귄 서식지가 있는데, 미세조류의 개체 수가 증가할수록 펭귄의 번식도 활발해지죠.”

1년에 5개월 정도를 남극ㆍ북극의 바다와 기지를 오가며 연구 중인 전미사 연구원은 한국에서의 일상을 뒤로하고 극지로 향할 때마다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곳에 발 디디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홉 살의 딸아이를 둔 전미사 연구원은 엄마로서 삶과 과학자로서 삶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을까?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죠. 얼마 전 딸아이가 ‘엄마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라고 묻더라고요. ‘나중에 나도 엄마처럼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내가 커서 일을 할 때까지 엄마도 계속 일해서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전미사 연구원은 최근 극지 연구에 대한 여성 과학도의 관심이 증가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극지연구소에서는 1년에 한 번 대원을 모집하는데, 최근엔 생물, 화학, 지질, 빙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과학계 전체적으로 젊은 여성과학자의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고요.”

극지 미세조류와의 첫 만남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극지’라는 낯설고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환경을 알아갈수록,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열정과 꿈은 커져만 간다. “앞으로 더 많은 미세조류종을 알아가고 싶어요. 제가 가보지 못한 극지도 있고, 극지마다 환경도 모두 다르기에 지금까지 접한 것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미세조류가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우리 삶의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유익하게 쓰일지 모를 극지의 미세조류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이 저를 더욱더 설레게 해요.” 전미사 연구원은 1~2년에 한 번씩 학회에 참석해 극지의 미세조류에 관련한 정보를 얻는데, 언젠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극지의 미세조류에 관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려주고 소통하는 것이 꿈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건 혼자 보기보다 여럿이 공유하고 행복감을 느끼면 좋잖아요. 10년 전 제가 동료의 모니터를 통해 미세조류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요. 아이와 어른이 쉽고 재미있게 함께 볼 수 있는 ‘극지의 미세조류 도감’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우리 딸도 좋아하겠죠?”

✓ 전미사 연구원이 추천하는, 극지 관련 유용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 극지 과학 문고 시리즈 도서 <남극을 열다>(김예동), <글로벌 북극>(김효선)
□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홈페이지(www.kosap.or.kr) 극지 소개 및 정보지를 받아볼 수 있다.
□극지연구소 페이스북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정보와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다.
□ 네이버 카페 ‘눈사람클럽(cafe.naver.com/poletopole2)’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 김명자 
한국 과학의 미래를 열다

실크 소재의 블라우스와 미니멀한 디자인의 재킷은 에스카다, 와이드 팬츠는 더 스튜디오 케이, 별자리 모티프의 반지는 러브캣비쥬, 진주 귀고리는 본인 소장품, 멀티 컬러의 신발은 나무하나.
“여성과 과학? 마담 퀴리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 1911년에는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Sciences) 회원 선출에서 낙방했습니다. 노벨상 역사상 두 개 분야에서 수상한 기록은 유일했음에도…. 이유는? ‘여성은 회원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숙명여대 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카이스트 초빙 특훈교수 등 학계는 물론 환경부 장관(1999~2003), 국회의원(2004~2008)을 거쳐 ‘그린코리아 21 포럼’ 이사장, ‘한국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회장 등 40여개 직책으로 봉사하고 있는 김명자 회장. 그는 지난 2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5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선출돼 또 한 번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뚫었다. 과총 2016 연차대회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젠더 혁신’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서 그는 과학기술계의 여성이 소수인 것은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관행적, 사회문화적,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과학기술 커리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기관, 학회 등의 고위직에 진출한 여성 비율이 ‘가뭄에 콩나기’라는 사실은 ‘유리 천장’과 ‘새는 파이프라인(leaky pipeline)’의 장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말해줍니다. 한창 왕성하게 연구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에 공백이 생기면 돌아온 후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키워놓은 우수한 과학 인력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장死藏시키는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모성 보호와 고용 촉진 등 국가 차원의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커리어를 꿈꾸는 여성 과학도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평생 동안 학계, 정부, 국회, 과학기술계, NGO 등 모든 영역에서 독보적 경륜을 쌓은 그는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리더십의 조건은 ‘팔로어십followership’에서 시작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한 것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여성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로서 전문성은 물론이고, 추진력, 협상력, 조직 관리 능력 등 전인적 덕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평생을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십의 표상으로 과학자이자 교육자, 행정가, 정치인으로서 살아온 그만의 비결이 궁금했다. “‘열심히’ 살았지요. ‘성실하다’는 얘기는 젊은 시절부터 많이 들었어요. 이해관계 따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신뢰를 쌓으면서 살려고 애썼지요. 성실, 정직, 신뢰 이 세 가지가 세상을 잘 사는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지요.”

그는 2012년부터 여성 과총 회장직을 수행했다. 그때 ‘과학으로 여는 행복한 세상’을 슬로건으로 남성 과학자들과 함께 다수의 정책 연구를 했다. 2013년에는 ‘안전, 건강, 고령화, 에너지, 환경’ 분야 중심으로 복지 향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과총 차기 회장으로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17세기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서구에서는 과학기술이 단순한 경제성장 도구나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과학적 연구(science of science)’가 하나의 학문 분야로 구축되었을정도니까요. 과학기술은 인간 사회의 물질적, 가치관적 변화를 일으키며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입니다. 직접적인 발명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과학자들이 과학적 지식과 방법론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참 많습니다. 이런 일이 곧 과학자로서 소명과 행복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그가 앞으로 과학기술 ‘교육’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 기술 등이 융합돼 그 경계가 사라지면서 경제, 산업, 노동시장, 정부 등 모든 분야에서 유례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의 대변혁인데, 그 속에서 교육의 비전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과 학교의 교육 환경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사회의 큰 변화가 도래할 때마다 교육 환경의 변화가 늘 중요한 사회 키워드로 떠오르지만, 사실상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래의 노동시장은 이해력등의 기초 기술(foundational skills)뿐 아니라 협력, 창의성, 문제 해결, 주도성 등의 인성(character qualities)이 더욱더 중요한 덕목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기존 입시 위주의 교육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릴 때부터 비판적 사고, 창의력, 타인과의 조정, 감성 지능, 협상 능력, 인지적 유연성 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과연 가정과 학교에서의 우리 교육이 그렇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 딸을 리더로 키우고 싶은 부모에게 주는 교육 계명
□ 딸의 눈높이에서 보고 이해하기.
□ 스스로 깨우치도록 자율성 키우기. (창의성은 따라온다.)
□ 믿고 또 믿는다는 신뢰 심어주기.
□ 칭찬과 격려로 긍정의 힘 심어주기.
□ 남을 배려하는 삶이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본보기(부모) 되기.



기획 문화교양팀 사진 한상무 스타일링 임지윤 일러스트레이션 허정은

글 유주희 기자,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