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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초대된 설치미술가 최재은 황홀한 DMZ
비무장지대에 대나무로 지탱하는 공중 교각을 놓는 프로젝트 ‘꿈의 정원’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초청받아 다녀온 최재은 작가를 만났다. 말 그대로 ‘인생의 작업’이라고 할 만한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DMZ의 놀라운 생태계와 인간이 만든 덧없는 경계를 시적으로 대비시킨다.

선글라스 안으로 최재은 작가의 또렷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여러 겹으로 하늘거리는 옷과 스카프, 하늘색 옥스퍼드 슈즈,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나무 소재 백 등 모든 아이템에서 남다른 감각이 드러난다.
“그곳에 5천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멸종 위기종만 1백6종이 있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놓고 봐도 중요한 장소입니다. 수백만 발의 지뢰가 묻혀 있고, 60년 넘게 남북이 총을 맞대고 있는 그 땅에 엄청난 규모의 생태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인에게 그걸 알리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최재은 작가는 지난 5월 개막해 11월까지 이어지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초청받았다.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문화계의 올림픽’에 일본 출신 건축가 반 시게루와 함께 대나무로 한반도 DMZ(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길이 13km에 달하는 다리를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 ‘꿈의 정원’을 선보인 것. 전시장에 10분의 1 규모로 축소 재현한 ‘꿈의 정원’은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라는 주제로 현재 인류가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건축의 역할을 묻는 전시 주제에 꼭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행복>은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에서 돌아온 최재은 작가를 만났다. 지난 30년간 다양한 매체로 시간과 생명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해 온 그에게 오랜 시간 동안 자연 그대로 존재해온 DMZ의 생태계는 황홀한 대 상이었다. 최재은 작가는 자료 없이 정확한 숫자로 DMZ에 살아 숨 쉬는 생태계와 그 안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말했다.


시간이라는 시詩
설치 작업을 주로 해온 최재은 작가는 건축가들과 공간에 대한 고민을 긴밀히 공유해왔다. ‘꿈의 정원’ 작업을 함께 한 건축가 반 시게루와도 20년 이상 친분을 이어온 사이. 2014년 열린 <리얼 DMZ 프로젝트> 기획 전시에 초대받아 작품을 선보인 최재은 작가는 비무장지대와 맞닿은 월정리역에서 DMZ라는 역설적 공간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지뢰가 매설된 현실 속에서 착상한 것은 공중이라는 공간.DMZ의 자연 생태계를 해치지 않고 남과 북을 잇는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소재는 물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 처음 떠오른 인물이 반 시게루였다. 그와 상의한 결과 “너무 멋있는 프로젝트니 나도 같이 합시다”라는 흔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기투합. 견고하고 유연하며 빨리 자라는 천연 소재, 대나무를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뒤이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 왜 반 시게루였습니까?
그는 참 훌륭한 작가이자 건축가입니다. 우리는 동시대에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일본에서 제가 첫 개인전을 열 무렵 그가 처음으로 종이를 이용한 공간을 만들었지요. 저 역시 그때 세계 각지에 종이를 묻는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를 했고요. 종이와 나무라는 소재를 깊이 파고 들고 표현하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일어난 구마모토 지진 때도 일본 정부보다 이 친구가 더 빨리 움직였을 정도였지요. 길도 끊긴 상태에서 바로 그곳으로 가서 재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시설을 준비했다는군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 역시 공공 건축 ‘반쪽짜리 집(Quinta Monroy)’ 으로 유명하지요. 그는 혁신과 영감으로 건축이 어떻게 인간을 바꿀 수 있는 지를 세상에 보여주며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런 건축가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건축가와 동료 작가들은 ‘꿈의 정원’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던가요?
건축전 현장에서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와 한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스튜디오 뭄바이Studio Mumbai를 이끄는 비조이 자인Bijoy Jain과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 자주 토론했습니다. 그가 제 작품에 대해 “가장 정치적 문제를 가장 시적으로 다뤘다”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DMZ라는 정치적 공간이 시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건 거기에 놀라운 자연 생태계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간 공간에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DMZ는 긴 역사를 통해 수없이 많은 층(layer)이 켜켜이 쌓인 아이러니한 공간입니다.

‘꿈의 정원’ 전시를 함께 한 반 시게루,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총감독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와 함께.
높이 자라는 대나무로 다리를 지탱하는 작업 자체도 무척 시적으로 느껴집니다. 다리를 공중에 띄운 것은 아이러니의 층위를 한 겹 더하기 위한 것인가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1차적으로는 DMZ에 매설된 지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손이 자연에 닿는 걸 최소화하려 했지요. 인간을 지뢰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공중이라는 제3의 공간을 통해 인간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이곳의 자연과 공존하는 점도 매력적이지요.

축소 재현한 ‘꿈의 정원’뿐 아니라 ‘Fire and Time’이라는 영상 작업을 함께 선보이셨어요.
청일전쟁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DMZ의 생성 과정과 자연 생태계를 대비시킨 작업입니다. 직접 촬영하지 않고 아카이브 자료로만 구성했습니다.자료는 주로 국립중앙 박물관과 국가기록원, DMZ 생태연구소, 정승익, 이상엽 작가 등에게 제공받았습니다. 외국인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이들부터 DMZ가 무엇인지, 그 안에 어떤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그곳의 생태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필요가 있어요.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꿈의 정원’과 관련한 인 터뷰를 진행하실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작가로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꿈의 정원’ 자체가 전 세계 누구나 DMZ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도록 의도한 프로젝트지요. 이곳은 남과 북을 연결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교감의 장소입니다. 그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겠지요. 이 밖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공중 정원 위에 지름 15~20m에 이르는 원형 휴게 공간이 열 곳 정도 있는데, 그곳에 정자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대지 안에 매설된 지뢰 제거에 대한 이미지도 구체화되어야겠지요. 근처에 있는 궁예도성을 복원할 계획안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실제로 가능하도록 현실화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입니다. 혼자 힘으로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남과 북뿐 아니라 여러 나라 작가들이 협업했으면 합니다. 독일에서는 통일 전에 많은 작가가 분단에 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동서 길이가 총 250km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인 DMZ에 다양한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선보이는 걸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멋있을까요? DMZ라는 공간이 그렇게 바뀌길 바랍니다. 변화를 이끄는 데는 때로는 정치보다 문화적 접근이 훨씬 유연하고 빠를 수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10분의 1 규모로 축소 재현한 ‘꿈의 정원.’ 20m 높이의 전망대 역시 대나무로 만들 계획이다. DMZ가 생성된 역사적 배경과 DMZ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영상을 나란히 배열해 함께 상영했다.
거리를 두고 보기
최재은 작가는 1976년 패션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작가로 성장했다. 당시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던 소게쓰 회관에서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를 접한 그는 1985년 첫 개인전 를 개최했다. 일본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단게 겐조가 설계한 소게쓰 회관에 설치된 작가 노구치 이사무의 조각을 검은 흙으로 덮고 씨를 뿌려 싹이 자라는 시간성에 의한 공간 변화를 시도한 작업이었다. 그는 생명을 자르는 꽃꽂이의 기본 개념을 탈피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최재은 작가는 당시부터 시간과 생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오랜 시간 도쿄에서 작가로 생활해온 그는 몇 년 전 독일에도 스튜디오를 열었다.

독일 생활은 어떠신지요?
도쿄에 일이 많아서 독일 작업실을 한참 비웠습니다. 사실 최근엔 이동하기 편하고 어디서나 정보를 접할 수 있어서 거처가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베를린의 장점이라면 좋은 전시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무척 개념적이고 진지한 분위기의 전시가 많이 열립니다. 최근 인상적인 전시가 있었습니까?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라는 작가의 ‘Nympheas Transplant’ 작품이 참 멋있었습니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프랑스 지베르니 자택 정원에 있는 연못의 물과 그 안에 존재하는 생물을 이식했습니다. 1백 년 전에 모네가 그린 그림 속 생태계를 화랑 공간에 그대로 옮겨온 것이지요. 서양 작가가 이렇게 깊은 성찰과 윤회적 의미를 담은 작업을 할 수 있다니 굉장히 놀랐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에 향수는 없으신지요?
사물과 인간관계 같은 것이 적당한 거리감이 있으면 더 잘 보입니다. 그 안에 푹 빠져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이지요. 그런 걸 좋아하다 보니 나라 바깥으로 돌고 있습니다. 이번 ‘꿈의 정원’ 프로젝트도 그런 거리감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한국도 일 때문에 자주 옵니다. 할 일 따라 유럽으로, 아시아로 움직이지요. 그런데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라 체력적으로 한계가 곧 올 테니까(웃음) 그때가 되면 어딘가에 정착할지도 모르지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본 요즘 한국은 어떻습니까? (최재은 작가는 이 질문에 유독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이런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술가를 보호해주어야 해요. 얼마 전 독일에서 지휘자 정명훈 씨가 공연을 했습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아주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고 하더군요. 백남준 선생도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로 정명훈 씨를 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배출할 수 없습니다. 외국이라면 자국의 예술가를 보호해주지 않았을까요? 외롭게 투쟁하고 긴 길을 걸어온 끝에 외국에서 인정받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예술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참 아쉬웠습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이 풍요로운 시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잃은 게 너무 많아요. 환경도, 인간애도, 인간 본연의 모습도 잃었습니다. 그 많은 걸 잃고 얻은 게 결국 물질이지요. 이런 건 풍요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혼란이 찾아온 것이겠지요. 그래도 예술가는 다 자기 길을 찾습니다. 그것이 예술가의 기질입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위해, 미래를 위해 끝까지 작업하는 게 예술가의 본위가 아닐까 합니다. 무척 아끼다 오래전 잃어버린, 도올 김용옥 선생이 백남준 선생을 인터뷰한 도록을 얼마 전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찾았습니다. 1992년 회고전을 할 때 발간한 거니까 20년이 넘었지요. 지금 읽어봐도 동양을 대표하는 두 지성이 미래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에너지가 모든 마찰의 원인이라는 통찰이 인상 깊었지요. 새로 나오는 젊은 세대 예술가들 역시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미래의 비전으로 연결되겠지요.


1985년 도쿄 소게쓰 회관에 설치된 노구치 이사무의 대규모 조각에 흙을 덮고 씨를 뿌린 최재은 작가의 전시 . 최 작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데뷔작이다. 시간이 흐르며 푸르게 변화하는 공간을 통해 전통 일본식 꽃꽂이 이케바나의 개념을 탈피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전히, 도전
사진기자의 요청으로 의자에 우아하게 기대어 앉은 포즈로 촬영을 하던 최재은 작가가 문득 몸을 앞으로 바짝 당기며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도전적으로!” 꼿꼿한 그의 자세와 함께 잠시 이완되었던 공간 분위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작업 외에 즐거운 일은 없으십니까?
작업이 제일 흥미로워요. 나이 들수록 외로워지는데 작가로서 작업하는 순간엔 그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 몸은 힘들어도 작업을 구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럼 뭘 할까요? 작업 외에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웃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니까 더 그럴지 모르지요.

시간과 생명에 천착해온 최재은 작가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자기 안에 흐르는 시간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잖아요? 별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촬영 중에 혼잣말로 하신 “도전적으로”라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의자에 기대 있으면 축 늘어지잖아요?(웃음) 도전적인 자세가 좋아요. 물론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몸 여기저기가 굽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제나 도전적으로 꼿꼿하게 자세를 잡으려고 해요. 도전! 그래야죠. 그게 없으면 안 된다니까! 체력은 예전만 못해도 기분은 똑같아요. 언제나 도전해야지요!


취재 협조 국제갤러리(02-735-8449)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