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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와 고양이 가구
가구 디자이너와 컴퓨터 프로그래머, 겉으로 보기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이 상반된 두 남자가 함께 고양이를 위한 가구를 만든다. 동업을 시작한 동기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은 20년 이상 친밀하게 지낸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이어진 봉천동 주택가, 7층짜리 빌라 1층에 반려동물을 위한 원목 가구 브랜드 ‘가또블랑코’ 공방이 자리한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가로이 정담을 나누는 계단을 올라가니 배송을 기다리는 가구를 포장해둔 박스가 가득 쌓인 입구가 보인다. 나무 가루가 눈에 보일 정도로 자욱이 떠다니는 작업실에선 원목을 자르는 기계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홈페이지(gatoblanco.co.kr) 소개글에 자랑스럽게 “반려동물 원목 가구 1위 브랜드”라고 적어둔 가또블랑코는 가구 디자이너 박기훈 대표와 프로그래머 출신 한상헌 대표, 두 동갑내기 친구가 만든 공방이자 회사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한상헌 대표 (왼쪽)와 가구 디자이너 박기훈 대표. 
가구 디자이너와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미 20년 이상을 친밀하게 지내온 두 청년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라는 사진가의 주문에 새삼 멋쩍다는 듯 쑥스럽게 웃는다. 인상이 부드러운 박기훈 대표와 머리를 질끈 묶고, 수염을 기른 채 툭툭 던지듯 말하는 한상헌 대표 사이에서 나이와 성별 외에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짤막한 단답형 대답 정도?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서로 바뀐 듯한 느낌도 든다. “초등학교 시절, 옆 건물에 살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친하게 지냈죠.” 어떻게 동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엔 둘 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럴듯한 인터뷰용 답변을 준 비해두었을 만도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었다고. 한참을 생각해 말하는 대답이 이렇다. “둘이 술 마시다 나중에 뭔가 꼭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하긴 했어요.” 가구 회사에서 가구를 디자인하던 박 대표가 2013년 여름 소규모 공방을 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엔 회사에서 만들 수 없는 가구를 공방에서 만들었다. 얼마 뒤 회사를 그만두었고, 몇 개월 뒤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한 대표가 합류했다. “10년쯤 직장을 다녔습니다. 열심히 해봐야 남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것’ 을 하고 싶었습니다. 박 대표가 가구를 만드니까, 저는 홈페이지 제작과 운영 등 컴퓨터 쪽 일을 맡아 했죠.”

어떤 가구를 만들지도 정하지 않은 채 동업을 시작한 그들이지만,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cat tower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린 것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고양이가 모서리에 긁히지 않도록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땅콩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디자인이 주효했던 것. 그렇게 만든 ‘땅콩 타워’는 지금도 가또블랑코의 주력 제품 중 하나다. “반려동물 가구 시장의 성장 폭이 컸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양이용품 쪽이 강아지보다 시장 규모는 작았지만 성장 속도가 2~3배 정도 빨랐지요.” 현대적이고 간결한 형태를 좋아하는 박 대표는 자신의 디자인이 반려동물용으로는 투박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2014년 6월 이전한 작업실에 곡선 형태를 쉽게 만들 수 있는 CNC 머신을 들이며 고민을 덜었다. “새로 들인 기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건 한 대표가 디자이너인 저보다 오히려 더 빨랐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둘이 함께 일하니 전체적인 제작 공정에서 시너지 효과가 있더군요.” 1년 정도 둘이 모든 일을 다 맡아 하던 가또블랑코는 하나 둘 직원을 늘려 현재는 아르바이트하는 두 명까지 합해 모두 열 명이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가 커나가는 게 가장 즐겁지요.” 짧게 답하고, 또 쑥스럽게 웃는다. 5월 중엔 규모를 더 넓혀 작업실을 문래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고양이 가구
가또블랑코 이후 많은 반려동물 원목 가구 업체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가격을 낮추다 보니 회사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품질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가또블랑코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지만, 그만큼 재료의 품질과 마감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디자인부터 제작, 발송까지 모두 작업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쉽고, 수요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도 단축할 수 있다. “맨손으로 쓰다듬어서 거친 면이 없을 때까지 다듬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이가 나가거나 거친 부분이 있으면 제품으로 출시하지 않지요. 사람은 가구를 쓰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할 수 있지만, 반려동물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전성을 가장 신경 쓰는 편입니다.” 박기훈 대표와 한상헌 대표는 모두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 한 대표가 고양이 세 마리, 박 대표는 고양이 네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 한 대표와 박 대표가 기르는 반려동물 여덟 마리는 그들이 제작한 가구의 첫 시험 대상이다. “반려동물마다 취향이 다 다릅니다. 특히 고양이는 한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두 집 고양이가 모두 좋아하지 않는 가구는 되도록 출시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뿐 아니라 반려견을 위한 제품도 출시한다. 가장 큰 차이는 높이. 1m 정도는 쉽게 뛰어오르고,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와 달리 반려견의 경우 조금만 가구 높이를 높여도 겁내고 불안해한다.


가또블랑코를 대표할 만한 제품을 묻자, 첫 제품인 땅콩 타워와 A 모양 기둥 두 개로 만든 ‘에펠 타워’, 해먹 등을 꼽는다. 동물용 해먹은 해외에 이미 출시 되어 있던 제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으로 나무 기둥 사이에 천을 연결한 구조다. 반려견용은 바닥에, 고양이용은 창문가에 설치한다. “해먹을 만들어 고양이들에게 먼저 시험해봤더니 성공적이었습니다. 고객도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사용자 후기가 홈페이지에 하나 둘 올라오면서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지요.” 반려견용 해먹의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고양이와 달리 강아지는 먹이를 올려두는 등 훈련을 하면 대개 익숙해져 좋아한다고.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한 대표는 여전히 가구 제작에 참여한다. 신제품 기획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 샘플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집에 가져가서 동물들 반응도 체크한다.

1 고양이와 강아지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해먹. 2 ‘풀문 하우스 테이블’ 윗부분은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원통 안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에 맞춘 ‘로맨틱 하우스’. 4 홈에 끼워 조립하는 방식을 국내 반려동물 원목 가구 최초로 선보였다. 

사람을 위한 가또블랑코

고양이와 개가 좋아할 만한, 안전한 가구를 만드는 걸 가장 중시하지만 인테리어 측면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반려동물 가구가 단순히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닌, 품질과 디자인이 집에 있는 가구와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또블랑코의 반려동물 전용 가구를 구입한 고객의 만족감은 꽤 높은 편. 재구매 비율 역시 높다. 냉장고, 옷장 위 등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그곳의 먼지를 온통 훑고 다니는 것보다 캣 타워 등 전용 공간에서 노는 편이 주인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박 대표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유통 채널을 늘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반려동물용품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단계가 아니라서 아직은 조심스럽다고. 공간이 넉넉한 문래동 작업실로 이전하면 테이블, 의자 등 사람이 사용하는 가구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 진지하게 답하는 박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대표도 한마디 툭 던진다. “앞으로도 계속 반려동물 원목 가구 분야 1위를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가또블랑코 #고양이가구 #반려동물원목가구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