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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부부 역할을 바꾼 이상권, 백선정 씨 [행복의 기준 4] 아내만 앞치마를 두르란 법은 없다
남편이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직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업주부 남편이 늘고 있다. 이상권·백선정 씨 부부도 이런 케이스. 자연의 품에서 소신 있게 아이를 키우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 가족을 소개한다.
고교 교사에서 전업주부로 변신한 남편 대학 선후배로 만나 9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이상권·백선정 부부. 두 사람은 남편은 경상북도 포항의 고등학교에서, 아내는 경상남도 양산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주말부부로 신혼을 지냈다.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자 두 사람은 누가 아이를 키울지 고민했다. 부부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살림과 육아를 맡기로 했다. 아내가 교직을 더 좋아하고, 남자에 비해 여자는 한 번 직장을 그만두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젊을 때 맞벌이로 돈을 모으고, 그동안 아이는 다른 곳에 맡겼다가 경제적 기반이 잡히면 그때 아이를 데려와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둘 중 하나가 꼭 그만둬야 한다면 당연히 아내가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내린 결정인 만큼 꿋꿋하게 버텼다. 남편은 바깥에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더 많이 힘들었을 아내에게, 아내는 자신을 대신해 가정을 지켜준 남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

가족의 뒷바라지가 나의 행복 이상권 씨의 하루는 아내의 출근과 수빈의 등교를 돕는 것부터 시작된다. 요구르트와 꿀에 인삼을 재운 간식을 아내에게 챙겨주고,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인다. 아내와 수빈이가 나간 후에는 집안을 청소하고 승빈이와 놀아준다. 수빈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품앗이 수업에 참여한다. 국어교사였던 이상권 씨의 역할은 아이들의 독서지도다. 품앗이 수업 중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 먹이고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시간. 아이를 씻기고 숙제를 챙겨주는 것도 그가 맡는다. 잠깐 둘러본 집안은 남자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반짝반짝 윤이 났다. 거실은 두 아이를 위한 도서관으로 꾸몄는데, 살림과 육아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눈 뜨면 아빠부터 찾는 아이들 살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가 얼마나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무리 엄마 대신 아이들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은 아빠와 잘 놀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졸릴 때, 아플 때는 엄마를 찾게 마련이다. 하지만 수빈이와 승빈이는 정반대다. 눈을 뜨자마자 아빠부터 찾을 만큼 아이들에게 아빠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자연 속에서 느림의 철학으로 아이를 키우다 이 가족의 보금자리는 경남 양산시에서도 좀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다.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였다. 최근 이곳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발이 진행되어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최근 미리 사놓은 땅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우고 있다. 이 텃밭은 두 아이의 살아 있는 생태체험장이자 가족의 유기농 식단을 책임지는 곳이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회색 도시의 메마른 풍경보다 초록 세상에서 자연의 시간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삶을 넉넉하게 설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 문화보다는 자연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길 바란다. 두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연과 더불어 지낸 시간이 삶에서 커다란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엄격하지만 지혜로운 아빠 육아의 힘 엄마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아이를 키운다면 아빠의 육아는 엄격하다.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고 시험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에 조바심을 치는 것이 엄마라면, 아빠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이상권 씨 역시 사회적인 규칙, 인성 교육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덕분에 수빈은 또래 중에서도 사회성이 뛰어나다. 어떤 상황이든지 쉽게 이해하고 적응하며, 차분하게 판단한 뒤 행동할 줄 안다.

7년 동안 쓴 아빠의 육아일기 이상권 씨는 7년째 육아일기를 써오고 있다. 아이가 그날 아빠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매일 기록해서 아내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아내를 위한 배려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아내와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서로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생태체험학교를 만들고 싶은 꿈 이상권 씨는 나중에 생태체험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위해 몇 해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생태학교 도우미 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 직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전업주부의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이 있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먼저 아이들의 교육에서부터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다 보면 적당한 때가 분명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빠에게 옛 선조들은 아버지도 자녀 교육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육아를 아내의 몫이라고만 생각한다. “엄마와 아이의 힘 겨루기에는 한계가 빨리 찾아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는 엄마의 힘으로 통제되지 않지요. 때문에 아빠가 더욱 필요해요.”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몫은 다르다. 그 몫을 스스로 포기하지 말자.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남편을 육아에 참여하게 하려면?

1 남편에게 육아의 반을 요구하지 말자

대부분의 아내는 아이를 양육하는 일의 절반을 남편이 나눠 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는 육아에 서툰 남편에게 마음의 짐을 떠안길 뿐, 남편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2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자
남편을 육아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집안에서 아빠의 자리와 권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남편을 무시하는 언행을 보인다면, 남편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만다.
3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일기로 써서 남편에게 전하자.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남편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육아일기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4 남편에게 적당한 임무를 하나씩 맡기자
남편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두 가지 찾아서 임무를 맡기자. 이때 아내가 일방적으로 목욕이나 재우기 등을 강요하기보다는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처음에는 한 가지로 시작해서 차츰 역할을 늘려간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