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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현종, 김광진 씨의 생선 공수기 나의 바다에서 당신의 식탁까지
경북 울진 죽변리의 아침 일곱 시 풍경. 새벽부터 잡은 생선을 한 배 가득 실은 어선들이 어판장에 닻을 내린 모습. 싱싱한 생선을 사러 온 이와 파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부두를 가득 채운다. 경북 울진 죽변리에 사는 어부 김광진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생선을 판매한다. ‘현종’이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그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좋은 생선을 순식간에 공급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태산 같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오늘 아침 울진 바다에서 퍼덕이던 생선을 잡아채 저녁 식탁 위에 당당히 올리는 퀵 서비스가 어부 현종의 일상이다.

경북 울진 죽변리의 아침 일곱 시 풍경. 새벽부터 잡은 생선을 한 배 가득 실은 어선들이 어판장에 닻을 내린 모습. 싱싱한 생선을 사러 온 이와 파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활기가 부두를 가득 채운다.

바다의 변덕을 따라올 만한 것이 있을까. 언제 비가 내릴지, 해일이 올지 앞날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어부 현종을 취재하러 경북 울진을 가야 하는데 불안정한 기후 때문에 몇 번이나 촬영을 연기했다. “폭풍주의보 때문에 고기를 잡을 수가 없어요. 오셔도 촬영할 게 없어요. 수면 아래 1백 미터까지 폭풍이 불어서 어망이 다 엉키고 물고기들이 백 리 밖으로 쓸려 내려가 말이 아니에요.” 촬영 스케줄 확인 전화에 대한 어부 현종의 대답이다. 노심초사 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경북 울진에서 걸려왔다. “내일 오셔도 되겠어요. 뒷바다는 여전히 폭풍주의보 때문에 못 나가지만 앞바다는 오늘 아침에 경계가 풀렸어요.” 만세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을 지나 찾아간 경북 울진 죽변리.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 풍경이 정겹다. 집집마다 가지런히 손질해놓은 어망과 빨랫줄에 매달아놓은 오징어, 텅수(퉁가리의 경북 방언)의 모습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느껴진다. 한 사람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어부 현종의 집이 나온다.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어부 어부 현종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다. 그날그날 잡은 해산물을 바로 자신의 홈페이지(www.badaro.in)를 통해 판매하는 어부가 있다고 들었다. 보내주는 생선마다 워낙 맛있고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어서 네티즌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인기의 비결은 그저 생선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홈페이지에는 그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 사진과 함께 잔잔하게 담겨 있다. 그날 잡은 생선은 물론 울진의 아름다운 일출 모습, 사람들의 활기로 넘치는 어판장 풍경 등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을 늘 볼 수 있다. 인간적인 고뇌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어부 현종의 홈페이지에서 진득하게 묻어난다.

어부 현종의 본명은 김광진. 고향인 울진 바닷가에서 25년째 뱃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어부였던 것은 아니다. 스무 살 때, 고향을 떠나 선박 만드는 일을 10여 년 동안 했다. 그러다가 친한 사람의 빚보증을 선 일이 잘못되었다. 엄마 품처럼 푸근한 바다가 그리웠고 그 품에 안기고 싶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배와 어망을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어부 일을 배웠다. 뒤늦게 시작한 어부 일이었지만 평안한 일상이 이어졌고 평생의 반려자 이향남 씨를 만나 아들, 딸 하나씩 낳았다.

그러다가 5년 전, 운명을 바꿔놓을 사건이 일어났다. 너울이 심한 파도에서 배를 타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친 것. 당시 10미터도 걷지 못할 정도로 다쳤고 후유증도 오래 남아 한동안 일을 쉬었다. 하루에 열서너 시간씩 배를 타고 통발을 5백 개씩 끌어올려도 끄떡없었는데 더 이상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작업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줄였고 통발도 1백 개로 줄여야만 했다. 수입도 덩달아 적어졌다. 아이들은 커가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중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질 좋은 생선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 대 일로 공급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카메라부터 구입했다. 그날그날 잡은 생선을 촬영하여 홈페이지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자신의 닉네임을 ‘현종’이라고 지었다. 현종이라는 애칭은 어릴 적 뒷동네에 있는 현종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종’ 하면 산보다는 중국 당나라 황제였던 현종을 먼저 떠올리나보다. 졸지에 그의 부인 이향남 씨 별명도 양귀비(줄여서 양비라고 불린다)로 통하니 말이다. 돈벌이를 위해 잡은 카메라지만 지금은 목에서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 신체의 일부분처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가끔은 고기 잡는 일보다 사진 찍는 일에 더 열중할 때도 있을 정도다.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찍기 위해 2박3일씩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사진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생선만 촬영하다가 점차 풍경이나 인물 등도 욕심 내어 찍게 되었다. 배에 앉아서 그물을 걷다가 일출을 접하게 되면 한쪽에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얼른 들고 사진을 찍는다. 어판장을 돌아다니다가 밍크 고래나 상어처럼 희귀한 생선을 보아도 그냥 놓치지 않는다.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다. 유난히 파도 소리가 노랫가락처럼 들리는 날에는 동영상으로 찍어두었다가 홈페이지에 올린다. 그의 노력 덕분에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가만히 앉아서도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다 한가운데서 해가 쑥 하고 올라오는 귀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드넓은 바다를 닮은 그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분인지 그의 홈페이지는 하루에도 6백에서 7백 명의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한다.

가장 좋은 생선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 배에 오르기 전 현종은 도시락을 챙겨본 일이 없다. 하루에 3분의 1을 파도 위에서 보내는 그이지만 멀미가 나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너무 배가 고프면 빵이나 과자, 곶감 등을 조금씩 먹을 뿐이다. 먹을 것을 챙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배 위에서 맛있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생선을 골라 즉석에서 회 쳐서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잃었던 입맛이 조금은 돌아온다. 출출한 배 달래랴, 바다 곳곳에 내려놓은 통발 끌어올리랴, 무전기로 어부들과 생선 많이 잡히는 곳에 대해 정보 교환하랴 그러다 보면 여덟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손님들이 주문한 대로 생선이 잡혀 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집으로 가지고 가서 깨끗하게 손질해 택배로 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작은 배 한 척으로, 그것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바다에서 원하는 만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럴 때는 어부들이 잡아온 생선을 경매하는 어판장으로 간다.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들은 이 자리 저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생선 가격을 받고 판매한다. 어부 현종이 통발을 건질 때만큼이나 긴장하는 순간이다. 10원, 아니 5원 차이로 좋은 물건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매 끝에 구한 좋은 생선은 주문한 손님들에게 안전하게 전달된다. 다음은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어부 현종의 글이다.

‘오늘 내가 조업을 못 나가서 다른 사람이 잡아온 것을 구입했습니다. 문어는 퍼뜩 삶아서, 대게랑 백골뱅이는 생으로 모두 보내줘야 합니다. 어부란 직업이 좋은 게 하나 있어요. 이웃 어부들 배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좋은 것만 사올 수 있는 게 장점이지요. 배가 아무리 커도 그 한 척에서 잡힌 생선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랍니다. 그중 20~30%가 최상품이에요. 좋은 물건은 가격이 한 푼이라도 더 높은데 값이 비쌀수록 남는 게 적답니다. 가끔은 적당히 사서 많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돈은 벌었겠지만 홈페이지에 이만큼 방문자가 많지 않았을테고 모두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검색 사이트에 돈을 주고 선전한 것도 아니고, 이곳을 찾는 분들께서 입소문을 내주셔서 제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심부름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맞는 게 혼자서 작업을 하는 그로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생선들을 일일이 다 갖다 댈 수가 없다. 또한 바다에서는 어떤 생선이 잡힐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어제 꽁치가 떼로 잡혀도 오늘은 한 마리도 안 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손님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판장에 나와 주문 받은 대로 구입하는 거다. 그런데 이게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판장에서 생선을 구입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 경쟁이 붙는다. 가끔은 그를 시기하여 가격 가지고 장난치며 방해를 놓는 이들도 있다. 경매사에게 제시한 가격을 서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과 눈치가 필수다. 상대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 그날은 허탕 치는 날이다. 그가 구입한 생선은 재고로 쌓아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슈퍼마켓처럼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폭풍주의보가 계속 있을 때는 생선 값이 비싸진다. 반면에 생선이 너무 많이 잡혀도 가격은 올라간다. 떼로 잡히면 큰 횟집이나 중간 도매 상인들이 배 한 척에서 나오는 생선을 통째로 사버리기 때문이다. 어부 현종처럼 작은 배들은 이래저래 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 물건이나 손을 대지는 않는다. 좋은 상품을 구하지 못할 때는 그저 손님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다는 생각에 가슴이 탈 뿐이다. “고등어 한 마리 주문해서 그 다음날 도착하는 쇼핑몰과는 달라요. 그런 것들은 대개 냉동이 많죠. 얼려서 보내는 것은 바로 잡은 것이 아닐 수 있지요. 저희는 당일 생선만 보냅니다. 신선할 수밖에요. 생각대로 잡혀주지 않는 게 야속할 뿐이지요”라며 현종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1 바다에서 잡은 가장 싱싱한 생선만을 손님에게 보낸다.
2,6 아침 6시30분. 동해에서 새빨간 기운 하나가 두둥실 떠오른다.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현종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3 5년 전 생계를 위해 구입한 카메라. 이제는 그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4 자신의 배인 광복호에서 작업을 하는 현종. 공간이 작아 한 사람밖에 작업할 수 없는 광복호는 하루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시간을 보내는 그의 또 다른 집이다.
5 새벽부터 조업을 하다 보면 어느 새 동녘이 서서히 붉어져 온다. 
7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가장 맛이 좋은 대게. 이곳에서 잡히는 대게는 살이 실하고 달다. 
8곰처럼 둔하게 생긴 물곰으로 끓인 국이나 탕은 국물 맛이 유난히 시원하다. 
9동지에 잡히는 문어는 약으로 먹을 정도로 영양가가 좋아 약문어라고 한다. 
10 생긴 것은 못생겼지만 쫄깃한 맛이 아귀만 한 생선이 있을까. 


1 새벽부터 잡은 생선을 배에서 내려 옮기는 어부 현종. 빨리 집에 가서 깨끗이 손질하여 안전하게 보내는 일이 남았다. 포장은 부인 이향남 씨가 주로 맡는다.
2 상인의 입장에서는 해산물을 갓 잡았을 때 무게를 재는 것이 이익이다. 수분을 함유해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 특히 갓 잡은 문어는 머릿속에 물이 많이 들어 있는데 육지에 나오면서 물을 뿜어낸다. 
3 문어와 백골뱅이, 대게 등 제철 생선으로 차린 어부의 소박한 밥상. 한겨울이 제철인 대게로 끓인 된장국은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난다. 살짝 데친 백골뱅이와 문어는 도시인들에게는 별미겠지만 늘 뱃일을 하는 현종에게 든든한 양식이다.
4 경매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흥정은 비밀리에 진행된다. 5원 차이로 다른 이에게 물건을 뺏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야말로 눈치 빠르고 담력 있는 사람이 임자다. 
5 문어는 산 채로 삶아야 더욱 야들야들하고 맛있다고. 특유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찬다. 
6 바다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오늘은 떼로 잡히는 생선이 내일은 한 마리도 안 잡히는 곳이 바다다. 당연히 값도 달라진다. 그래서 현종은 손님들에게 가격을 말할 때가 가장 곤란하다고 한다.

12월부터는 백골뱅이와 대게, 복어, 대구 등이 많이 잡힌다. 문어나 백골뱅이 등은 삶아서 보내고 나머지 생선은 생물로 얼음을 넣어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보낸다. 하루, 아니 반나절이 채 안 되어 주문자에게 도착하는 생선은 대한민국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한다. 가장 인기 있는 해산물은 문어. 아이 팔뚝만큼 두툼한 다리 두께를 자랑하는 문어는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펄펄 끓인 물에 문어를 산 채로 익히는데 야들야들한 육질을 씹으면 단물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를 냉동시켜 보내주는데 그대로 해동하여 먹으면 갓 삶은 것과 맛이 같다. 미리 잘라달라고 주문하면 먹기 좋게 얇게 썰어 보내주기도 한다. 두 번째 인기 품목이 대게다. 경북에서 잡히는 대게는 살이 달고 쫄깃하기로 유명하다. 다섯 마리씩 판매하는데 가격은 시세에 따라 달라진다. 대게는 12월 10일부터 다음해 5월 말까지 잡히며 2월 말에서 3월 초순까지 잡히는 것이 가장 살이 여물고 좋다. 세 번째는 껍데기가 하얀 백골뱅이다. 백골뱅이는 삶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산 채로 알맹이만 빼내어 얇게 채쳐 물회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또는 전복죽처럼 죽으로도 끓일 수 있는데 이때 내장을 넣으면 더욱 구수한 맛이 난다. 연탄불에 백골뱅이를 구워 먹으면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 외에 대구나 복어, 아귀 등도 많이 잡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대기와 말린 대구가 한창이었다. 산 오징어의 배를 갈라 하루 동안 말린 것을 피대기라 하는데 오동통한 육질과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 피대기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없어져도 모를 정도로 별미다. 한겨울에도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날에는 피대기를 만들어 판매하니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어부 현종의 소박한 밥상 어부는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폭풍주의보가 내리는 그때가 휴일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일요일이고 국경일이고 상관없이 바다로 나간다. 일하러 나가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2시에도 기상하고 새벽 6시에도 일어난다.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불규칙한 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그런 불규칙한 생활 자체가 순리일 것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잠을 자고 여덟 시간씩 뱃일을 하는 그이지만 한약 한 첩, 영양제 한 알 먹지 않는다. 군살 없이 마른 체구지만 뱃사람 특유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는 허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잔병치레라는 것이 없다.

바닷가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 현종의 집. 강한 바닷바람 때문에 지붕이 나지막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작은 부엌 하나와 방 하나, 마당이 전부인 이곳이 어부 현종의 집이다. 마당에는 양귀비, 그러니까 아내 이향남 씨가 문어를 삶기 위해 물을 끓이는 풍경이 정겹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다. 바다와 어판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현종을 반기는 것은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지은 밥 한 그릇, 백골뱅이를 총총 썰어 여러 가지 채소 넣고 버무린 초고추장 무침, 대게를 넣고 팔팔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그리고 김치 한 보시기. 제철재료를 이용한 어부의 소박한 밥상이다. 아귀나 대구가 잡히는 운 좋은 날에는 지리나 매운탕을 끓이기도 한다. 워낙 재료가 신선하다 보니 특별한 양념은 필요 없다. 배부르게 한 끼 먹고 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명예와 부와 권력 모두 지녔었을 당나라 현종도 이 순간만큼은 부럽지 않다. 게다가 진짜 양귀비보다 더 사랑스러운 부인도 옆에 있으니 말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잡아온 생선을 깨끗하게 다듬어 주문해놓은 사람들에게 보낸다. 이 일은 주로 아내가 한다. 그 사이 현종은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질문에 대한 답도 하고, 조업 중에 촬영한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흐트러진 어망을 가지런하게 챙기기도 한다. 그렇게 어부 현종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잠들기 전, 꿈 속에서도 그가 바라는 소망 하나가 있으니 다름 아닌 바다의 평화. 내일 아침도 드넓은 평온의 바다가 그를 맞이해주기를 고대한다.

1 어부 현종과 양귀비 부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당나라 시대에 살았던 오리지널 현종과 양귀비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2 어촌에 위치한 집들은 강한 바닷바람 때문에 지붕이 나지막하고 서로 붙어있다.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가 마주치는 파란 대문이 현종의 집이다.
3 생긴 것이 아귀를 꼭 빼닮았지만 크기가 훨씬 작은 텅수는 맛이 없는 생선. 꾸덕꾸덕 말려서 김치 소로 주로 넣는다. 

박은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