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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밝히다 2] 페이퍼테이너에서 부활한 역사 속 여자들
‘ 종이로 만든 뮤지엄’이라는 수식어로도 유명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를 밝히다>전展에 가면 내로라하는 우리 시대의 아티스트 30인이 (재)해석한 한국의 여자 30인을 만날 수 있다.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유쾌한 상상력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이 전시에서는 신사임당, 이매창, 허난설헌, 임윤지당, 심청 등 ‘과거의 여자’들이 ‘21세기를 이끌 창조적인 여자의 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황진이와 어우동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들이 ‘최고의 기생 예술가’(황진이) 또는 ‘대표적인 음녀淫女’(어우동)라는 기존 해석을 반복해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기에 더욱 더 흥미롭다.
절대보호자, 유관순 사진가 안성진 씨의 작품으로 만나는 ‘유관순 언니’의 모습에는 (남자들에게) 억압당한 성적 존재였으나 (남자와) 민족을 수호하는 절대 보호자의 이율배반적인 여성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신사임당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가 배영환 씨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웃게 된다. 어린 여고생들이 잔디 밭 위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고, 사직공원 광장에 세워진 진짜 신사임당의 동상이 조화롭지 않게 나란히 전시되기 때문이다.

무명의 여대생들 화가 조덕현 씨가 연필로 그린 20세기 초반의 여대생 이화선과 순도는 30인의 작가가 선택한 여자들 가운데 유일한 일반 여성이다. 후대에는 이름 없는 여자로 남았지만 당대에는 두 여자도 ‘잘나가는 신여성’이었을 것.

건어물 갑옷을 입은 기황후 데비 한의 사진작품에서 표현되는 기황후는 ‘건어물로 제작한 갑옷을 입은 여전사’로 정의할 수 있다. 건어물 갑옷은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의 삶을 상징한다. 여성의 다면적이며 복합적인 강인함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허상의 최승희에게 다가서기 사진가 강영호 씨에게 무용수 최승희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 같은 여인이다. 분명 존재했던 여자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여자’인 최승희의 열정적인 모습을 배우 성현아에게 대입시켜 사진작품으로 선보인다.

강수연은 정난정일까? 설치 작가 고낙범 씨에게 정난정은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강수연의 얼굴과 겹친다. 정난정은 적서 차별 철폐에 앞장서는 등 남성 중심의 유교사회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정작 그 덕을 입은 이들은 남자이지 않을까?

박제된 사회와 선덕.진덕 여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홍탁 씨의 사진작품은 엽기적이다. 현대사회를 짝퉁만 판치는 ‘박제된 사회’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작품 속 남자들은 단란주점에서 쾌락을 즐기고 여관방에서 고스톱을 친다. 이 장면을 두 여왕이 내려다보고 있다. 한편 사진가 어상선 씨는 작품을 통해 선덕여왕에게 잃어버린 여성성을 부여한다.

꽃처럼 떨어지는 삼천궁녀 패션디자이너 김재현 씨는 백마강 물에 떨어진 삼천궁녀의 굳은 의지를 텍스타일 프린트로 형상화했다. 연속적인 무늬 하나하나마다 삼천궁녀 한 명 한 명이 연상된다.

장씨 부인과 현대 여성 이문열 씨의 소설 <선택>에서 화자로 등장해 현대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질타했던 장씨 부인은 화가 김지혜 씨의 드로잉 작업에서 보수시대의 산물로 형상화된다. 작가 눈에는 장씨 부인의 삶이나 현대 여성들의 삶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랑을 쟁취한 원형질, 웅녀 “멋진 남자를 본 곰이 고통을 참고 변신을 해서라도 그 곁에 머물려 한 자가 최초의 여성이라니….” 김점선 씨는 그의 그림을 통해 모든 한국 여성들의 DNA에 각인되어 있을 도전 ?변화 ?성취의 원형질을 보여준다.

2006년의 심청 젊은 작가 이용백 씨의 사진작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낸 심청에 관한 정보를 저장한 파일을 보여준다.

‘터부요기니’ 명성황후 낸시 랭은 명성황후를 천사와 악마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터부요기니 평면작업으로 표현한다.

파란만장한 혜경궁 홍씨 이중근 씨의 사진작품에는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희생된 혜경궁 홍씨의 애닯은 삶이 담겨 있다.

성리학 공부한 학자 임윤지당 남편과 사별한 뒤 남성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차지했던 경학經學을 공부함으로써 남녀평등을 깨달은 여성 철학자. 화가 이순종 씨는 그를 성녀聖女라고 명명, 빛나는 달빛 후광을 가진 여자로 그린다.

강한 여자의 눈물, 소서노 설치 작가 리경 씨는 주몽의 연인 소서노가 흘렸을 ‘여성으로서의 눈물’을 그림으로 그렸다.

잊혀진 여인, 소현세자빈 강씨 소현세자빈 강씨의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강씨 주변 남자들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정작 강씨에 대한 것은 없다. 사진가 문형민 씨의 작품 화면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것은 이 같은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종점을 스스로 선택한 논개 용의주도하게,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손으로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논개의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 화가 노석미 씨의 작품에는 논개의 반지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역사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알과 보리로 세상 만든 유화부인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 길 떠나는 아들에게 준 보리씨는 고구려 건국의 소중한 기반이 되었다. 유화부인에게는 생명을 키우는 모성의 위대한 힘이 집약되어 있다. 노순택 씨의 ‘알’ 사진에 담긴 뜻이 풍부하다.

평강공주 다시 보기 사진가 노정하 씨에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달과 함께했던 평강공주의 사랑은 처절하다.

사랑으로 더욱 강해진 선화공주 신분과 경계, 국경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을 감행하고, 불행도 행복으로 바꾼 선화공주. 패션디자이너 서상영 씨는 선화공주가 보여준 용기의 원천은 ‘사랑’임을 강조한다.


1 순수의 춘향 “우리나라 고전을 읽거나 보면 기본적으로 생각나는 장면이 자연(풍경)과 인간(여인)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춘향을 생각했다. 춘향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사랑을 알기 전 광한루에서 신나게 그네를 타던 그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낼 때 가장 슬펐으리라.” _ 써니킴 화가
2 가부장제의 슬픈 결과물 허난설헌
“1991년경 허난설헌의 생가에 다녀온 뒤 그의 초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만든 최초의 나무 작업이다. 허난설헌의 비극은 수천 년의 세월 속에 공고해진 이 땅의 가부장제가 낳은 슬픈 결과물이다. 단순히 슬프다고만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한다.” _ 윤석남 화가


3 나혜석의 우울한 얼굴
“한국의 20세기 신여성은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 하의 봉건적인 사회에서 고급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모던하고 진보적인 선각자임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인물이 나혜석이다. 당시 자료를 보면 한껏 멋을 내고 자부심을 가진 엘리트지만 불안과 슬픔이 내포된 묘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_ 김용호 사진가
4 평강공주가 지금 서울에 산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의 스토리가 아니라 공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키워낸 그의 가치를 어머니라는 측면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이 시대 여성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머니로부터 생활 방식뿐 아니라 가치관도 영향받기 때문이다.” _ 김우영 사진가


5 심청은 사람이었을까?
“심청전에 대한 내용은 동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단순한 동화이긴 하지만 연꽃과 그 여성을 통해 연꽃이 가진 구원의 느낌, 심청이 연꽃 속에서 승화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연꽃이 그려져 있는 대형 무대막을 빌려 심청이 연꽃 사이로 날아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죽음과 환생을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_ 구본창 사진가
6 온몸으로 사랑한 윤심덕
“연인이었던 유부남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 윤심덕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여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고립되거나 정서적으로도 조금 외로웠을 거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했을 것 같다. 자살하기 얼마 전 그의 심정을 헤아려 작업해보았다.” _ 오형근 사진가

김선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