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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밝히다 1] 조선시대 스캔들의 헤로인 황진이 vs. 어우동
‘ 종이로 만든 뮤지엄’이라는 수식어로도 유명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를 밝히다>전展에 가면 내로라하는 우리 시대의 아티스트 30인이 (재)해석한 한국의 여자 30인을 만날 수 있다.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유쾌한 상상력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이 전시에서는 신사임당, 이매창, 허난설헌, 임윤지당, 심청 등 ‘과거의 여자’들이 ‘21세기를 이끌 창조적인 여자의 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전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황진이와 어우동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들이 ‘최고의 기생 예술가’(황진이) 또는 ‘대표적인 음녀淫女’(어우동)라는 기존 해석을 반복해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기에 더욱 더 흥미롭다.
김중만의 ‘어우동’, 2006


오상택의 ‘A woman ’ , 2006


“천출인 황진이는 자신에게 처해진 사회 관습에서 과감하게 이탈해 몸을 던짐으로써 자신만의 자아를 찾고 뛰어난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그 어떤 가치도 절대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처해진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풀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의 삶을 고찰함으로써 삶의 결과보다는 삶의 태도와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_ 오상택 사진가

정구호의 ‘ Portrait of 황진이 ’ , 2006

“나는 내 작품 속 황진이가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지적이기를 원했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도 다르다. 타고난 그대로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가꾸고 노력해서 우러나는 분위기와 매력이 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인들도 황진이가 명기가 될 수 있던 자질(노력)을 모두 다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_ 정구호 패션디자이너


“황진이는 지성인이지만 뭔가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그의 인류관이나 지적인 추구 방향은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해 있다. 내면으로 향하는 정신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 또한 하나의 구속이라고 본다. 구속이란,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절제라는 말과 비슷할 수 있다. 어우동의 영혼은 자유를 향해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 순수했기 때문에 욕망의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포함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타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_ 김중만 사진가

“어우동은 부도덕하고 방탕한 여자로서 결국 사형을 당해 나쁜 여자로 인식되지만, 혹 그것이 사실이었을지라도 나는 다른 관점에서 그를 본다. 이는 도덕적 판단보다는 그의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우동은 여자로서 남자를, 그것도 양반계급의 사대부를 마음대로 골라 희롱했다. 나는 이제 그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비록 부끄러운 죽음을 당했지만 그는 확실한 자기만의 삶을 살았기에 영혼은 자유로웠을 것이라 추측된다.” _ 이순종 화가



“어우동은 굉장히 똑똑하고 예뻤을 것 같다. 남성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어우동을 (재색을 겸비한 여자가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 바라보고 생각했다. (중략) 어우동은 자신과 관계한 관리들의 몸에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였다고 한다. ‘어우 동 ─ 남산’에서는 어우동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남자들을, ‘어우 동─ 그들의 수다’에서는 어우동과의 스캔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우동의 음해를 모의하는 남자들을 그렸다.” _ 김준 문신 예술가

황진이와 어우동 한 사람은 지금까지 최고의 기생 예술가로 꼽히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를 문란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두 여자 모두 객관적으로 불우한 생을 살았다고 평가받고, 남자들과의 스캔들이 지금까지 전설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윤리나 제도의 굴레에 갇히지 않으려 했던 데다 홀로 살았고, 정사正史가 아니라 야사野史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두 여자가 유독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성에 대한 자세가 남달랐던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제도적으로 금기시했던 성에 대해 자유로웠다. 사회의 (성적) 통제를 뛰어넘어 남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여자의 삶이건 현대 여자의 삶이건,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삶을 규정하고 대개는 그것을 충실히 따른다. 현대로 올수록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가 늘어나고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조선시대에 비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학력 여성이 늘어나고 일하는 여성이 많아졌다고 해서 여성에게 주어진 굴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역할과 성에 따른 전통적 기능을 병행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문명 발달 덕분에 청소기가 청소를 대신해주고, 세탁기가 옷 말려주는 세상에 살게 되었지만,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인권이 향상되었다지만, 실제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일부종사를 하지 않음을 뜻하는 이혼이나 나라의 근간인 가족을 만들지 않는 독신여성에 대한 편견이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현상적인 것일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성으로서 삶의 고민은 신라시대 선덕여왕이나, 조선시대 황진이나, 21세기의 아무개나 다르지 않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몸은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해졌다. 부드러운 여성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21세기, 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속적 삶의 기준으로는 빈곤했으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정반대의 두 여자를 불러내 곰곰이 되씹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여자들은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성 정체성을 추구하는 여자들이 아닌 여성성을 긍정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던 여자들이 그립다.

직업상 독신(이사종과 6년간 동거를 한 적이 있지만)으로 살았던 황진이와 소박맞아 독신이 되었던 어우동은 사회적인 조건으로 보면 힘없는 약자였다. 그러나 서출로 태어나 제도에 기반한 기생으로 살았으나 당대의 1급 지식인 남성들과 ‘맞짱’을 떴던 황진이는 지성인으로, 아버지가 종3품인 양반 가문에 태어나 종실 가문으로 시집갔다가 일부종사하지 않아 소박맞은 어우동은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했던 자유인(이 부분은 ‘성욕 때문에 파멸했다’는 의견들도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으로 오늘날 재평가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황진이를 미화하는 부분이 있는데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황진이는 터프하고 중성적인 여자였다. 비범한 삶의 태도를 가졌던 배짱 좋은 여자였고, 철학적 믿음과 통찰력,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예속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단순히 성적 매력만 있는 여자였다면 지족선사, 화담 서경덕, 백호 임제와 같은 층위의 남자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시조를 보면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고, 삶과 자연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다. 세속적 기준에 끌리지 않는 주체성이 매력적이다.”(고미숙, 고전 평론가)

 “어우동은 주모, 비구니, 기생 외에는 독신의 삶을 용인하지 않던 사회에서 자유로운 싱글로 살았다. 당대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음녀淫女로 기록되었으나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유교적 성윤리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산 인물로 평가된다. 어우동이 상대한 남자는 수십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이 조선 주류사회의 고급 관료들이자 양반들과 상대했다. 앞으로는 어우동에 관한 이야기나 재해석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조용헌, 동양학자)

 “어우동은 풍기문란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웃음) 굉장히 웃긴다. 어우동처럼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나는 그 여자의 외모보다는 영혼 상태에 관심이 있다. 영혼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런데 과연 어우동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랬을까? 어우동은 ‘사회제도에 맞추려’ 노력하지 않고 몸이 끌리는 대로 갔다. 우리는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결ㅋ 칭찬할 수 없는 이 여자의 도덕적인 행실이 나빴다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계속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 영혼은 순수했다고 본다. 영혼은 도덕적으로 설명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이순종, 화가)

황진이와 어우동은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살았다. 두 여자의 역전적인 삶은 상당히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다. 황진이는 사회적 소수인 서출이었다가 당대의 최고 예술가이자 학자, 사회 활동가가 되었으며, 양반집 딸이었던 어우동은 종실宗室 태강수의 아내였다가 소박맞은 뒤 끝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두 여자의 사후, 그네들과 사연 있던 남자들의 거취가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황진이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했던 백호 임제는 황진이가 죽은 뒤 그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었다고 해서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반면 어우동의 남자들은 그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어우동이 사형된 다음, 남자들이 치른 ‘죄값’은 최고 2년 정도의 유배생활이 전부였다.

두 여자의 드라마틱한 삶은 지금까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의 소재로 적극 활용되었다. 그러나 황진이에 관한 소설 . 영화 . 드라마 . 마당극 등은 많았어도 어우동에 관한 작품은 소수였다. 애정행각을 벌인 남자조차 등 돌린 사람의 삶은 후손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어우동의 순수한 영혼과 황진이의 섬세한 통찰력과 정신이 결합한다면 21세기를 이끌어갈 여성성이 창조되지 않을까. 순수, 용기, 지혜, 자애... 이것이 결합된 것을 아마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것 같다.

황진이, ‘아웃사이더 지식인 vs. 휴머니스트’
요즘 일고 있는 황진이 붐은 3~4년 전으로 올라간다. 그즈음 황진이를 재해석한 소설들이 남과 북에서 출간되었고, 영화사와 드라마 제작사는 이 소설들의 판권을 발빠르게 구입했다. 지금 TV에서 방영 중인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는 김탁환 씨의 <황진이>(푸른역사)가 원작이고, 송혜교가 주연하는 영화 <황진이>는 북한 소설가 홍석중 씨의 소설 <황진이>(대훈)가 원작이다. 지금 황진이에 대한 재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설들이 길을 터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2002년 <황진이>를 발표한 김탁환 씨는 황진이를 여성과 서출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해간 적극적인 인물로 그린다. 절대 금물인 것들을 모두 해본 자유로운 여인으로 그린다.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 작가 홍석중 씨의 작품에서 황진이는 하인 출신인 가공인물 ‘놈’이와 거침없는 사랑을 나눈다. 더불어 신분과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황진이를 만날 수 있다. 2004년 북한소설로는 처음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주관하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선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