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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이야기가 들어 있는 대하그림
여기 한 남자의 생애가 있다.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궁핍하지도 않았다. 적산가옥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음악을 좋아했던지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음반이 있다. 그러나 서랍의 수가 적은 것을 보면 꺼내 볼 추억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


이번 달 <행복> 표지 작품인 이호철 씨의 ‘이루어진 꿈The attained dream’(2003년)은 극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결합된 극초현실주의 경향을 띈다. 이호철 씨만의 독특한 그림이다. 사진을 촬영한 것처럼 선명한 이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가 있고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다. 파이프오르간의 쇠파이프 같은 관들이 양 옆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 양쪽 기둥을 서랍들이 잇는다. 기억을 상징하는 서랍은 열린 것도 있고 닫힌 것도 있다. 프레임 안에는 남자의 슈트 재킷이 있고, 그 속에는 청바지의 뒷면과 1970~80년대풍의 마을이 있다. 재킷 위로는 세 장의 LP판이 모자처럼 올려져 있다. 그는 이 그림을 매개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허들은 바르게 세워져 있을 때 장애물이겠지만 거꾸로 뒤집으면 문지방이 된다. 재킷의 입장에서 보면 재킷이 앞면이지만, 바지 입장에서 보면 재킷은 뒷면이다.

“장애물경주의 장애물인 허들을 뒤집어 프레임으로 하였습니다. 뒷면을 보여주는 바지는 정면을 향한 대상의 입장에 있습니다. 바라보는 시점이지만 대상이 되는 시점도 함께 프레임의 경계에서 공존하고 있지요. 재킷 안에 마을을 집어넣고,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음반 모자를 그렸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옷을 남기고 가잖아요.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착하는 것은 덧없으니 즐겁게 살자는 것이지요.”

새로운 느낌을 주는 그의 그림은 사실 많이 낯설다. 얼굴이 없어서인가. 애초부터 그가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홍익대 서양화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 그는 중앙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수상작 ‘차창車窓’(1978년)은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었다. 지하철 전동차의 유리창에 비친 무표정한 노인과 두 아이의 대조적 배합을 통해 현대의 이면을 표현한 이 작품으로 그는 그해 중앙미술대전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다.

그의 그림에서 얼굴이 사라진 것은 극사실주의 화풍이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변화한 것과 상관있다. 사실주의 작업을 할 때에는 사물과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했다. 터럭 하나도 진짜처럼 그리는 것이 사실주의 계열의 그림이다. 더구나 그는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

“작품을 하면서 ‘관계’에 천착하다 보니 점차 사람 한 명보다는 군집된 인간(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지는 파이프 프레임은 군집해 있는 인간을 의미한다)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군집되어 있는 인간의 익명성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현실주의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지요. 더군다나 제가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특정한 얼굴을 명확하게 그리면 보는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얼굴을 그리지 않게 되었어요. 얼굴이 없으면 누구라도 나 아니면 형제, 부모, 친구 등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침 어느 컬렉터에게 캄캄한 밤 거실에 걸려 있는 사람의 그림을 보고 진짜 사람 얼굴인 줄 알고 놀랐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얼굴 대신 다른 것들을 그렸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모자와 마을, 음반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게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이 10년 쯤 되었다.

이호철 씨는 하나의 시리즈를 시작하면 반복해서 같은 제목을 쓴다. 창작연도만 달라진다. 이 또한 그의 철학과 상관 있다. 장흥아트파크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 ‘이루어진 꿈The attained dream’(2005년) 앞에 앉아 있는 이호철 씨. 하나의 작품에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젊은 시절, 그의 작품에는 ‘유리창’이 자주 등장했다. 유리창을 통해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유리창은 안과 밖을 연결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지만 거울 대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유리창에 비친 영상을 보고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리에 비친 상像이지 존재가 아닙니다.”

최근 그의 작품에 유리 대신 거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슈퍼 미러Supper mirror 시리즈라는 작업입니다. 이 시리즈를 본 관객들은 자신이 작품(거울) 속에 있는 걸로 착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리즈를 관람객과 제가 만나는 지점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인간과 오브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는 <주역周易>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학 시절 저는 삶과 인생에 대한 혼란이 깊었습니다. 그때 처음 불교를 접했고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림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역周易>을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 방향과 세계관에 대한 의문이 풀렸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제 스승은 <주역>밖에 없습니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대학 시절 좋아했던 것은 천지비天地否(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으로, 막힌 것으로 풀이한다) 괘이지만 지금 좋아하는 괘는 지천태地天泰(땅이 위에 있고 하늘은 아래에 있는 형상으로,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여 교통交通하는 이상적인 괘로 풀이한다) 괘. 작은 것에서 모티프를 찾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축소지향’의 작업 스타일을 가진 그에게 <주역>은 여전히 좋은 스승이다.

“저는 고민을 할 때 밖으로 확장시키기보다는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편입니다. 요즘, 정보가 넘쳐나지만 정보를 통해 고민을 파고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주역>은 고민을 집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는 앞으로도 지천태괘를 파고들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실존주의적 인간관과 엄격한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던 조셉 콘라드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리고 콘라드 작품이 보여주는 안과 밖에 대한 인식이나 이중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를 콘라드의 모방자나 답습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서구 철학의 근본인 ‘존재’와 동양 철학의 근본인 ‘관계’를 합성하며 새로운 작업 세계를 개척해가고 있으므로.

프로필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호철 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지난 1990년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제1회 중앙미술대전 대상’(1978년, 중앙일보사), ‘몬테카를로 미술대상전’(1990년, 모나코), ‘제1회 공산미술제 대상’(1994년, 동아갤러리), ‘제17회 선미술상’(2002년, 선화랑)을 수상했다. 요즘 장흥아트파크에 있는 아틀리에와 자택이 있는 일산을 오가며 작업한다.

김선래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