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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일곱마리 키우는 사진가 황진 씨 제대로 기른 생애 최고의 예술품 진돗개
한때는 조각가였고 지금은 사진가로 활동 중인 황진 씨. 그에게 최고의 예술은 조각도, 사진도 아닌 진돗개 한 마리 제대로 기르는 일이다. 평소 서너 마리는 기본이고 최고 열다섯 마리까지 키웠다는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의 아담한 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진돗개 일곱 마리를 기르며 살고 있다. 잘 키운 개 한 마리, 어떤 예술품 부럽지 않다는 황진 씨의 ‘진돗개 철학’을 들어본다.
photo01 인사동 쌈짓길에 흑백 인물 사진이 벽을 빼곡히 메운 ‘황진 사진관’이 있다. 전문 모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인데도 이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꾹꾹 눈도장을 찍게 된다. 우연히 들른 손님이건, 오래 정을 나눈 지인이건 사진가의 렌즈에 자신의 ‘날표정’을 들켜버린 것 같다. 한바탕 재채기 하듯 말이다.
무장해제된 얼굴들 틈에 진돗개 사진이 듬성듬성 걸려 있다. 역시 모델처럼 포즈를 정돈한 진돗개가 아니다. 뒷다리로 목덜미를 긁어대는 일이 그 순간 지상 과제인 듯 열중하는 모습,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힘주어 ‘큰일’을 보는 모습, 너무 더워서 혀를 빼물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 등 개의 ‘날생활’이 담겨 있다. 마치 진돗개를 너무 잘 알아서 다음 찰라 이어질 개의 행동을 미리 짐작하고 셔터를 누른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만든다. 추측은 옳았다. 사진가 황진 씨는 20여 년간 진돗개 약 1백50마리를 길러왔다. 그러니 제 자식 표정 읽듯 진돗개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진돗개와 인연 맺고 풀기 황진 씨는 대학 졸업 무렵 북한산 밑으로 이사 가면서 뒷집 사람이 키우던 훌륭한 진돗개와 처음 만났다. 우연히 이 개의 새끼 한 마리를 데려다 키우며 진돗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금세 각별한 사이가 되었지만, 인체상을 빚는 데 몰두해온 조각도였던 그가 얼마 뒤 미국 유학 길을 떠나며 진돗개와 헤어졌다. 타지에서 조각과 드로잉을 공부하는 동안 진돗개가 못 견디게 그리웠단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북한산 자락에 다시 집을 짓고는 그때부터 작품 만들 듯 열심히 진돗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사진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photo01 서너 마리의 진돗개를 기르며 이들이 새끼를 배고, 낳고, 키우는 모든 순간을 곁에서 지켜봤다. 1년쯤 지나자 수가 꽤 늘어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팔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미가 낳은 새끼 여럿 중 마음에 드는 두 마리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끝까지 남겨두었다. “둘 중 하나는 친한 사람에게 주지요.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훌륭한 개를 알아보는 눈이 정확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요.” 나머지 한 마리는 황진 씨가 직접 키웠다. 그 뒤 태어날 개들의 좋은 씨가 되어주었다.
어지간하면 새끼 진돗개를 거저 주곤 하는 황진 씨도 어떤 이들에게는 팔기조차 마다한 적이 있다. 손님이 선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에게 개를 줄 때 두 가지를 살핍니다. 주인 될 사람의 성품과 개가 클 만한 장소를 확보하였는지 여부입니다.” 그래서 성품 좋고 아늑한 터를 가진 사람이 진돗개 한 마리 달라고 청하며 찾아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까지 진돗개를 들려 보냈다. “물론 새 주인에게 개를 영원히 돌보지 못할 형편이 닥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개를 내다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만나본 그 순간 제가 기른 개에게 최소한 밥 한 끼는 정성껏 내어주리라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다음은 둘 사이의 인연에 달린 일이니, 제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지요.”
 
1. 황진 씨와 부인 최인화 씨가 진돗개를 데리고 근처 인왕산으로 나들이했다.
2. 새끼를 돌보는 어미 진돗개. 어미의 따뜻한 눈빛과 새끼의 애교스러운 표정이 황진 씨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photo01 또 하나의 예술과 조우하다
“지금까지 조각과 드로잉, 그리고 사진에 빠져보았지만, 요즘은 진돗개 한 마리 제대로 키우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첫째로 ‘야생성’을 꼽는다. “진돗개가 문득 야생성을 강하게 보일 때가 있어요. 가령 눈빛을 번득이거나, 긴장해서 털이 바짝 곤두섰을 때, 혹은 암놈이 발정하고 수놈끼리 경쟁하며 사랑을 갈구할 때가 그러하죠. 이럴 때면 우리에게 잊혀진 야생성이 떠올라요.” 진돗개를 키우며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으니 그게 바로 예술이 아니냐고 한다. 어쩌면 황진 씨가 야생성에 대한 갈증이나 그리움을 유난히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진돗개를 더 아름답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또 진돗개는 자태가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예술 조형물이다. “사실 바라보는 제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서 예술품으로 보는 것이지요. 실상 개는 스스로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제가 발견하고 교감의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황진 씨에게는 진돗개 그 자체가 예술이었기 때문에, 본업인 조각이나 사진으로 진돗개 형상을 재창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 진돗개를 보면서 무언가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는 크로키를 그렸다. 이런 황진 씨가 진돗개를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보게 된 것은 개를 키우게 된 지 한참 뒤의 일이다. 워낙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잡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일제 강점기 때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변영주 감독의 작업 과정 방식이 떠오른다. 변영주 감독이 할머니들과 오랜 기간 숙식하던 중 ‘이제 카메라를 돌려도 되겠다’고 마음 먹은 때가 있었다. 바로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다음 제스처나 표정을 감히 예측하게 되었을 때였다. 진심으로 섬기며 곁에 머물다 보니 어떤 할머니는 손으로 턱을 감싸 쥘 때가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그때가 렌즈를 줌인 할 때임을 알게 된 것이다. 픽션이 아닌,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담는 다큐멘터리 촬영 작업에서 이처럼 대상의 호흡을 한발 먼저 예측하는 능력은 필수다. 황진 씨가 처음 카메라를 들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황진 씨의 사진 속에서는 묶여 있는 진돗개를 찾을 수가 없다. 개를 한곳에 묶어놓고 촬영하면 전혀 ‘진돗개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때 진돗개는 단지 끈뿐만이 아닌, 갇힌 공간에 묶였기 때문이지요.” 그는 주로 진돗개를 들판이나 산에 풀어놓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꿈틀대는 근육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뛰노는 모습이 아닌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를 담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에 가두어놓았을 때와 트인 공간에 두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좋은 개를 구한다
진돗개를 바라보는 황진 씨의 눈빛은 한없이 따뜻한데 비해 진돗개를 다루는 손은 꽤나 거칠다. 개를 옮길 때 목덜미를 쥐어 잡아 번쩍 들어올리거나 기구로 털을 고른 뒤 몸뚱이를 세게 쳐서 남은 털을 털어주는 모습을 처음 보면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개는 개예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아픔을 느끼지만 개는 다르죠. 우리가 아이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듯, 원래 네 발로 거친 땅을 내달리고 돌밭에서 뒹구는 동물인 개는 이렇게 다루는 것이 맞습니다.” 원래 어미 진돗개가 새끼랑 노는 모습도 사람이 보기에는 심하다 싶을 만큼 거칠다. 으르렁거리면서 새끼 개의 몸통 여기저기를 깨물고 발로 짓누른다. 그래서 동물의 애무 방법이나 강도는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개를 개답게 키울 수 있다.
 
1. 마당에 황진 씨 가족과 진돗개 가족이 한데 모였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진돗개 가족을 위한 마당은 필수다. 큰아들 승재가 황구 ‘네로’를 안고 있고, 아빠 무릎 위에 앉은 막내 승호가 흑구를 안았다.
 
황진 씨에게 포착된 진돗개의 다양한 표정
 


7년 전쯤 기르던 백구.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던 중 한참을 앞장서서 가던 개가 길 위에 멈추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황진 씨가 모으는 골동품 위에 올라선 호구. 마치 단상 위의 조각 작품 같다. 검은색, 짙은 갈색, 연갈색 털이 섞여 호랑이 무늬를 띠는 진돗개를 호구라고 부른다.
 


어미 젖을 빨고 있는 새끼 호구 세 마리. 5년 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맘때쯤 새끼들은 잠자다 깨면 젖 빨고, 다시 잠들었다가 생각나면 또 어미 품으로 기어들어 젖을 먹는다. 황진 씨는 이 순간을 두고 진정 ‘개 자식이 상팔자’라 일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섯 살 난 백구 ‘백두’. 현재 황진 씨의 진돗개 중 가장 몸집이 커서 아이들이 백두라는 이름을 붙였다.
 


7년 전쯤 기르던 한 살짜리 황구. 그즈음 황진 씨는 햇살이 잦아드는 늦은 오후에 황구와 함께 근처 북한산에 오르곤 했다. 황혼을 등진 황구의 털빛은 더욱 누렇고 윤기가 돈다.


현재 황진 씨의 집에 사는 4개월 난 황구 ‘네로’. 진돗개 가족 중 애교가 가장 많아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언제나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한다고.
 
 



 
진돗개를 예술 하듯 길러온 사람 치고는 철학이 소박한 듯하지만, 훌륭한 진돗개와 그렇지 않은 개를 판별하는 기준은 확실하다. 첫째는 진돗개의 똥과 자세. 소화 상태는 건강을 판결하는 기본이기 때문에 항상 똥을 자세하게 관찰한다. “똥을 누는 모습도 유심히 지켜봐요. 여기에 개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가령 자기의 분비물을 한곳에 잘 모아서 흙으로 살짝 덮을 줄 아는 개의 성품을 단정하다고 봅니다.” 진돗개의 좋은 자세는 오래 길러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언뜻 날렵하고 사나운 진돗개의 자세를 멋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순해 보이는 개의 성품이 오히려 강직할 때가 있습니다. 조선 백자의 온화한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 강하게 끌 듯, 소박해 보이는 진돗개가 충성심도 강하고 더 무섭게 짖을 줄도 알거든요.”
또 다른 기준은 자연과 인간 사이 경계에 잘 머무르는지의 여부다. 오래 전 민가로 내려온 야생 들개의 길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그 지역에 적응하거나 도태되거나. 그중 진도라는 지역에 잘 적응한 개가 바로 진돗개다. “적응력은 개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코드입니다. 적응하게 된 지역명을 따서 이름을 지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제가 기르는 개는 진돗개 중에서도 ‘종로구 부암동 황진 진돗개’입니다. 주인의 사육 방법이나 품성을 닮아가게 마련이니까요.” 3대를 거쳐야 훌륭한 선비가 나듯, 개도 마찬가지. 주인이 3대를 거쳐 덕을 쌓아야 비로소 좋은 개 한 마리가 길러진다.
 
photo01 온 가족 진돗개 기르기
아무리 진돗개가 좋다 해도 늘 한 마리도 아닌 대여섯 마리를 관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황진 씨는 “그렇지 않아요. 진돗개는 한 마리 기르나 열 마리 기르나 드는 품이 같아요”라며 빙긋 웃는다. “진돗개가 다른 개보다 우수한 특징 중 하나로 깔끔한 성품을 들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 마리를 동시에 길러도 전혀 번잡스럽지 않아요.” 그렇더라도 안주인의 생각은 좀 다르지 않을까. “결혼했을 때부터 왁자지껄 함께 살았는걸요. 하긴 처음에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진돗개들이 싸우다가 서로 물어서 상처 내면 겁나서 남편한테 전화했지요. 지금은 털갈이 철이라 마당 정리하기가 좀 곤란한 것만 빼면 어려운 점을 모르겠어요. 우리 집 풍경 중 일부로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딱히 짚어 말할 것이 없네요.” 부인 최인화 씨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렇게 덧붙인다. “아이들이 진돗개를 너무 좋아하고 또 알아서 잘 돌보니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어’ 하면서 그릇에 일일이 개밥을 놓아주고, 학교에 다녀오면 가장 먼저 개밥을 챙겨줘요.”
물론 두 아들, 초등학교 4학년 승재와 3학년 승호는 집에 돌아와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고 잠시 노닥노닥하고 나면 또래 애들처럼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을 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막무가내로 투정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또 두 형제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심성이 곱다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개와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죠. 개와 대화하려면 정직하게 다가가야 하거든요. 또 몸집이 큰 동물을 포옹하고 함께 뛰어놀면서 애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겼을 거예요.”

1 황진 씨가 ‘백두’에게 균형 감각을 익히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곁에서 낯선 이가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백두는 귀를 내린 채 의기소침해졌다. 2 진돗개는 늦봄까지 털갈이를 한다. 승재와 승호가 아빠에게 배운 대로 빗질하며 이미 빠진 털을 골라내고 있다. 3 인왕산 약수터에서 호구와 함께 쉬고 있는 부인 최인화 씨.
 
황진 씨에게 듣는 훌륭한 진돗개 기르기 노하우
1 먹이는 하루에 한 번만 먹인다 먹이를 자주 주면 진돗개가 하루에 먹는 분량을 측정하기 어려워 식사량이 불규칙해진다. 게다가 주로 마당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먹이는 하루 한 번 주면 족하다.
2 새끼 개와 성견에게 같은 양의 먹이를 준다 몸집이 큰 개에게 먹이를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성견은 몸집이 더 이상 자라지 않으므로 많이 먹으면 살이 찌기 쉽고, 새끼 개는 한창 발육하는 중이므로 넉넉히 먹어도 된다.
3 개를 방에 들이지 않는다 반드시 마당에서 키운다. 새끼일 때 귀엽다고 방 안에 데려오는 버릇을 들이면 조금 자랐을 때도 자꾸 집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마당에서 자란 개는 밖에서도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지만 집안에 있기를 좋아하는 개는 밖에서 찬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4 자연 상태에 가까운 물을 준다 수돗물을 하루 정도 뚜껑을 연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먹인다. 소독약인 염소가 침전되어 자연 상태와 가까운 물이 된다.
5 함께 산책하고 가끔 별을 본다 진돗개는 산을 아주 좋아한다. 시간을 내어 산이나 들판을 함께 산책하자. 가끔 달리게 하면 진돗개에게 적당한 근육이 발달한다. 또 개가 좋아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길 것이다. 가끔은 마당에 앉아 함께 별을 바라보자. 진돗개가 정말로 별을 헤아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즈넉한 밤에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photo01

진돗개가 가르쳐 준 것지난 20여 년 동안 기억에 남는 진돗개가 많지만, 특히 최근에 난 흑구 세 마리는 황진 씨에게 ‘보석 같은 작품’이다. 이 흑구는 지인으로부터 받은 임신한 호구가 석 달 전 낳은 것이다. 털 전체가 고르게 새까만 진돗개는 아주 드문데, 한 배에서 난 새끼가 모두 흑구인 경우는 더욱 귀한 일이라고 한다. 배도 팥죽색으로 잡티 없이 깨끗하다. 흔히 진돗개, 하면 백구나 황구를 떠올리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때 두 가지 색을 띤 종자만 진돗개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까만 흑구도 진돗개가 맞다. 다만 늑대의 성질을 비교적 많이 품고 있어 다른 종보다 더욱 사납다. “8년 전에 흑구 한 마리를 실수로 잃은 적이 있어요. 야생의 기질을 이해하지 못해 가둬놨더니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매일 이 개가 죽은 시간만 되면 새끼들이 짖어댔다.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황진 씨는 흑구가 죽은 자리에서 경솔한 판단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했다. 최근 오랜만에 흑구 세 마리를 품에 안았을 때 감회가 새로웠던 것도 그 기억 때문이었다.
이번에 난 흑구는 돈으로 환산하면 한 마리에 2천만 원쯤 된다. 제 가격을 치르는 사람에게 주거나, 아주 힘들어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싶단다. “인간이 인간이고자 하여 주위 사람들을 돌보고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가끔은 끝도 없이 힘이 들고 외롭지요. 그때 개가 그이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고리에서 무심히 벗어나 있는 존재를 보면 ‘허허’ 웃음이 나거든요. 그렇다고 무덤덤한 동물은 아니지요. 주인만 온전히 따르는 충성심이 얼마나 애틋한가요.”
흑구를 다른 곳에 보낼 때쯤이면 이번에도 두 아들은 잠도 자지 않고 울어댈 것이다. 하지만 황진 씨는 아이들이 키우던 개와 이별하면서 오히려 인연이 소중함을 배우리라 믿는다. 그것 말고도 배운 것이 또 얼마나 많은가. 아빠 개가 젖 잘 빨지 못하는 새끼 개를 물어다가 제 어미 곁에 놓아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동물의 모성 본능은 당연시 여겼지만 부성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서 인간의 부성을 떠올렸지요. 한국 아버지들은 아이에 대한 뜨거운 가슴을 말로 표현할 줄은 모르지만, 언제나 아이를 주시하고 있고 곤경에 빠질 때는 개처럼 목덜미를 물어 끄집어내줄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표현법이 거칠고 서툴긴 하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어릴 적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을 미처 보지 못했던 황진 씨는 아이들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태껏 탐구하는 자세로 정성을 다해 한 마리 한 마리 길러왔는데, 이제는 진돗개를 바라보기만 해도 제가 간과했던 소소한 것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아이들이 자연의 일부에 몸 담그고 있어서 고맙고요. 생동하는 진돗개처럼 사람들 모두 서로 막힘 없이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1. 3개월 된 흑구 세 마리와 이들의 어미 호구, 그리고 4개월 된 황구를 데리고 가족 모두 인왕산에 올랐다. 조금만 한눈 팔면 풀숲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새끼 진돗개를 돌보느라 승재와 승호는 바삐 뛰어다녀야 했다. 황진 씨네 진돗개가 가장 고대하는 날은 이렇게 온 가족과 함께 약수터를 향하는 주말일 것이다. 물론 일곱 마리 중 두어 마리만 ‘간택’되기 때문에 이런 행운은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나도연 기자 doriver@design.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