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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씨의 새 집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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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아파트 건설사는 광고 카피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집이 뭐지요?’ 어떠한 답도 주지 않고, 그저 이렇게 묻고 끝난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내려면 30초짜리 광고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100분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 대한 생각을 나열하다 보면 분명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다. 얼마 전, 4개월 동안 공들여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집을 무엇이라 여기기에 혼자 사는 집을 이리도 정성스레 꾸미고 사는지, 잘 살던 집을 버리고 3~4년마다 불쑥불쑥 이사를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제 삼청동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호사가들은 말하지만, 여전히 숨겨진 매력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곳이 그 동네다. 서울에 어떻게 이런 곳이 남아 있을까, 여기는 또 언제 어떻게 찾아냈을까 시샘 섞인 부러움을 자아낼 만한 삼청동 어느 구석진 곳에 김영석 씨 집이 숨겨져 있다. 지은 지 50년이 되었다는 집의 틀만을 유지한 채 새로 짓다시피 한 그 집은 이미 탁월한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자택답게 대문부터 마당을 지나 방방, 곳곳마다 비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살림집과 쇼룸, 작업실이 함께 있었던 이전 부암동 집과는 달리 이곳은 온전히 혼자만을 위한, 완벽한 사생활을 위한 집임에도 그 단장에 소홀함이 없다. 도대체 그는 왜 이리도, 무슨 이유로 이사하는 집마다 꾸밈에 전력투구를 하는 것일까.
 
photo01 김영석 씨는 집을 멋지게 꾸미려는 욕망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왕이면 풍경 좋은 길을 걷고 싶고, 멋스러운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잔이 더 맛있는 것처럼, 할 수 있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집이야말로 가장 많은 신경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귀한 곳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혼자 사는 집’이라고, 보여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집에 대해 무심할 수 없다 여긴다. 혼자라는 여건은 오히려 자신의 취향과 감각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되고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눈과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
아무리 스스로의 기쁨과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해도 김영석 씨 집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원래 있던 집의 틀을 그대로 살려 ㄱ자형 집에 별채까지 앉혀, ㄷ자로 지붕을 얹힌 이 집에는 앞뜰과 별채 뜰, 뒷마당 등이 얌전히 앉아 있다. 앞뜰에 심어놓은 사철나무는 초록색이 어찌나 예쁜지 집주인의 애정 넘치는 물세례를 매일같이 받는다. 뒷마당의 수동 물펌프와 물항아리는 그것 자체가 조형물이다. 원래는 없었던 것을 왠지 어울릴 것 같다며 김영석 씨는 이곳에 우물까지 만들었다. 최근 그의 마음을 은근히 쓰이게 하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별채 뜰의 자목련. 대문 앞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 한걱정이라고.
구경거리는 비단 마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안 곳곳은 숨어 있는 공간 찾기의 묘미를 보여준다. 우선, 이 집의 특징 중 하나가 거실이 없다는 것. 강아지 일곱 마리를 제외하고는 가족이 없기에 공동 공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거실 공간을 따로 두지 않고 대신 아일랜드 주방을 여유 있는 크기로 두었다. 만약 손님이라도 온다면 거실 소파 대신 아일랜드 주방 스툴에 앉히고 차를 대접한다. 혹여 오랜 시간 회포라도 풀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제야 열리는 문이 있는데 이곳에 마련된 방은 아예 작정하고 만든 쇼룸 같다. 기다란 방 안쪽에 접이문을 달아, 은밀한(?) 곳에 서안을 모셔두었다. 그 바깥쪽 넓은 공간에 평소 관상용으로 즐비했던 꽃방석은 손님이 찾아오자 그제야 그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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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석 씨의 일곱 마리 애견에게 새로 이사 온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마음껏 뛰놀아도 어느 누구도 야단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는 거실이 없는 것이 특징. 제법 큰 아일랜드 주방으로 식탁을 대신했다. 주방 쪽에 유리문을 달아 뒷마당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 중국 상하이 여행 중 공수한 화병에 앵두나무 꽃가지를 꽂았다. 마당에 핀 꽃이라면 언제든지 이곳에 꽂힐 수 있다. 3 대지 84평, 건평 45평인 이 집에는 무려 마당이 3개나 된다. 그중 가장 메인인 앞뜰은 아스팔트 싱글로 얹힌 지붕에서 내려다보면 정겹기 그지없다. 삼청동 일대 최고 멋쟁이로 손꼽히는 김영석 씨도 그의 집 마당에서는 러닝셔츠 바람에 사철나무에 물을 주는,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가 된다.
 
 



 
1,2 숨겨진 계단을 타고 오르면 다락방이 숨겨져 있다. 아래층 벽면에 걸린 액자는 壽를 금사로 수놓은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 앤티크라고. 다락방에는 한국 민화 호렵도 병풍, 일제 강점기 때의 경대 등 귀한 앤티크가 정갈하게 모셔져 있다.
 


3 좀처럼 사용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곳은 여느 곳보다 정성스레 꾸며져 있다. 일본식 자개상을 서안으로 하고 한국 나전칠기 경대를 놓아두었다.


4방에 놓인 꽃방석은 앤티크 방석을 정갈하게 수선한 것. 가운데 자수 부분은 그대로 살리고 가장자리를 깨끗한 천으로 덧대어 제작.
 
 



 
photo01 맘 잡고 올라가지 않으면 아예 없는 셈 치고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다락도 어김없이 단장되어 있다. 웬만하면 다락을 창고나 다용도실로 활용해도 좋으련만 이곳 역시 한국 민화 호렵도 병풍과 일제 강점기 때의 경대를 멋스럽게 전시, 그의 눈과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이와 같은 자기 만족의 결정판은 다름 아닌 화장실. 그간 웬만한 집을 봤다면 본 사람으로서 화장실에 전시된 컬렉션만을 치자면 김영석 씨의 화장실이 본 중 최고다. 화장실에 컬렉션을 옮겨온 이유를 묻자, 혼자서 그것도 집중해서 즐기는 재미가 제법 남다르기 때문이라나. 흥미로운 사실 하나. 그의 집 화장실에는 제대로 된 거울이 없다. 화장실 둘 중 하나는 거울을 작은 경대로 대신했고 나머지 하나는 아예 달지 않았다. 그에게는 화장실에서 중요한 것이 얼굴을 봐야 하는 거울보다 재미를 느끼게 하는 다른 그 무언가였던 셈.
이토록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각별한 마음을 쏟는 김영석 씨에게 ‘집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몇 초간의 호흡 뒤에 그가 건넨 답은 ‘부모 같다’ . 곧바로 뒤따른 말이 있다. “굉장히 복잡해요. 정말 부모한테 느끼는 심정처럼. 한없이 나를 품어주는 것 같지만, 나 아니면 보살필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마냥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단정하고 근사했으면 좋겠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기도 하고.” 듣다보니, 정말 김영석 씨에게 집이 부모와 같은 존재라면, 그는 집 입장에서 대단한 효자다. 매일같이 그리 공을 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photo01 그런데, 그가 집을 부모에 비유했을 때 사실과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그가 이사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소문난 효자인 그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와는 분명 사뭇 다르다. 이전에 살던 그 예쁜 부암동 집도 고작 3년을 살았고 이 집 역시 아직은 잘 모르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2년 정도 살게 되지 않을까 내심 염두에 두고 있다 한다. 혹시 그의 몸에 노마드nomad(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은 이사하기 싫어서라도 내 집 갖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김영석 씨는 어이하여 그 총체적인 고생과 그 밀도 높은 귀찮음의 결정판인 이사를 오히려 즐기는 것일까.

1 코코, 스텔라, 구찌, 비비, 켄드라, 미유, 루시 등 모두 일곱 마리 강아지의 침실은 다름 아닌 제주도 찬장 아래다. 앤티크 컬렉터로도 유명한 김영석 씨의 애장품인 그릇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2 주로 사용하는 그릇들이 수납되어 있는 붙박이 찬장이다. 중국문에서 창살을 떼어내고 유리 대신 모본 갑사를 덧대어 문을 달았다. 안쪽의 조명등이 켜졌을 때 살짝 비추는 실루엣이 만드는 재미도 남다르다. 아일랜드 주방에서 식사 중인 강아지의 이름은 스텔라. 그의 센스는 화장실마저도 놓칠 수 없는 공략 대상으로 만들었다. 3 거울 대신 세면볼 양쪽에 중국 자개 경대를 놓은 것 역시 김영석 씨다운 발상. 4 화장실에 선반을 달아 작고 귀여운 소품들을 진열해두었다. 5 손님용 화장실에 달아놓은 선반에는 중국 5채(다섯 가지 색깔) 그릇들을 전시했다. 화장실 전시 컬렉션 역시 가끔씩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6 그에게 자기 만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공간. 화장실 안쪽에 별도 공간을 마련, 햇살이 쏟아지는 천창 아래 벤치를 놓고 작은 휴식처를 마련했다. 7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침실은 바닥의 일부를 올리고 그 위에 보료를 깔아 붙박이 침대를 만든 것이다. 이 집의 모든 벽과 바닥이 반듯한 사각형이 아닌 조금씩 기울어진 각도로 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이 집의 매력 중 하나.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보너스 공간을 얻을 수 있었고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마저 든다고.
 
 



 
photo01 흥미롭게도 김영석 씨는 이사할 때의 기분을 새로 서랍 정리했을 때의 그 속시원한 상쾌함에 비유했다. 뭔가 복잡하고 헝클어져 있는 일상을,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돈되어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답답하게 갇혀 있는 듯한 인생을 속시원히 새롭게 재정비하는 방법으로 이사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 김영석 씨의 이사 예찬론 키포인트다.
아직 새 서랍 정리도 채 되지 않은 그에게 최근 또 다른 서랍이 생겼다. 삼청동 그의 한복집 ‘전통한복 김영석’을 ‘전통한복’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라호텔에 ‘전통한복 김영석’을 새롭게 오픈하는 것. 6월 초 오픈을 앞두고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새로 정리할 서랍 덕에 눈코 뜰 새 없는 요즘이다. 게다가 올해는 쌍춘년, 결혼식이 어찌나 많은지 그의 본업인 한복 디자인 작업 역시 그가 하루를 초단위로 쪼개어 쓰게 만든다. 얼마 전 리움에서 열린 패션쇼도 그 바쁜 와중에 부대상황으로 기획,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게 바쁘고 분주한데 집에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아무리 예쁘게 꾸며 놓아도 즐길 시간도 없겠다’ 하자 1초의 호흡도 없이 답한다. ‘그러니까 집이 더 좋아야 한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있어야 일을 좀 줄일 수 있다’라고. 아무래도 김영석 씨에게 혼자 사는 집을 왜 그리 잘 가꾸고 사느냐는 질투 어린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방이 여러 개라서 꾸미는 재미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여관을 운영하는 것이 현재 그가 꾸고 있는 몇 개의 꿈 중 하나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1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겨운 뒷마당 풍경. 2 별채 뜰에는 기와를 쌓아 담장을 두르고 제주 동자석을 놓았다. 3 사진으로는 도저히 서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이곳은 삼청동이다. 4 현판 애련정愛連亭을 별채에 걸었다. 애련정은 중국의 실제 지명이라고. 5 흰 셔츠에 환하게 웃는 이가 이곳을 디자인한 김광유 씨.(유래건축 02-558-9071) 까다롭기로 소문난 김영석 씨도 인정한 실력있는 디자이너라고.
 
 
심의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