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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략 아내에게 한 해 동안 묵은 이야기 털어내기
12월엔 한 해 동안 아내에게, 남편에게 묵은 화・원망・바람을 꺼내어 감정의 먼지를 털어내세요. 오래 묵혀두면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해묵은 감정이 되살아나고, 그럴 때마다 과거는 불행이라는 어휘로 점철될 뿐입니다.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는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읽은 후 바로 아내에게, 남편에게 편지를 쓰세요.
모처럼 우리 부부가 함께한 호젓한 버스 여행이었다. 강연차 진주 가는 길에 아내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아내의 친정이 진주인 데다 장인어른 문병도 해야 하고, 하루쯤 집 비워도 문제없음을 확인시켜준 딸아이가 있으니 아내도 선뜻 따라나섰다. 버스에 오르자 아내는 기분이 한껏 부푸는지 “우리 단둘이 버스 타본 적이 얼마나 되었지?”라며 소녀 같은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이긴 하다. 셋이나 되는 아이들 챙기느라 15년 부부 생활에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막상 둘만의 호젓한 시간이 되니 묵혀둔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지난여름부터 둘의 관계가 시베리아 벌판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추워 못 견디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 아내가 호젓한 여행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먼저 말 꺼내주길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엔 금세 봄꽃이 만발했다. 이 짧은 에피소드 안에는 남편과 아내가 한 해 동안 해묵은 감정과 앙금을 털어버리는 몇 가지 기술이 들어 있다.

(왼쪽) 김주호, '그러면 그렇지', 질구이 삼벌, 2009

무드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는 말처럼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 아내가 신혼 첫날밤을 잊지 못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과 다른 호텔 분위기 때문이다. 사무 공간용으로 만든 형광등을 가정집에서 불야성처럼 켜두는 나라에서 은은한 간접조명과 하얀 시트로 덮인 호텔에서의 첫날밤은 로맨스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묵은 이야기를 꺼낼 때는 무드 있는 공간을 확보하라(우리 부부가 호젓한 버스 여행을 선택한 것처럼). 비싸더라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혹 비싼 장소 때문에 마음 불편해할 아내가 걱정된다면 이 말 한마디면 금세 마음 풀어진다. “실은 내가 이 장소 마련하려고 용돈 아껴서 미리 준비해뒀어. 그러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 자리에서 “I love you”를 남발하지 마라. 사랑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잔잔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더 잘 어울리며 또 화해의 자리랍시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낫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화가 난다면 말해도 좋다. 그것이 ‘한정(excuse)’이다. 이를테면 “지난번 당신이 한 말,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섭섭해! 그래서 선뜻 당신에게 사랑을 더 많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라고 하면 된다.

어색할 땐 이벤트를 하라 한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아이디어를 냈다. 레스토랑을 예약해놓고 20분쯤 늦게 도착한다고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남편은 먼저 도착해서 편지를 웨이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어떤 신사분께서 이러이러한 여자분이 오시면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라는 멘트, 그리고 장미 꽃다발과 함께. 아내가 편지를 다 읽어갈 즈음 뒤통수를 살짝 긁으며 나타나도 좋으리라. 단, 편지를 쓸 때는 반드시 육필로 써야 한다. 글씨가 엉망일지라도 직접 손으로 써야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여자는 남편의 모든 행동을 ‘마음’이란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용서의 선택권을 아내에게 주라 진정한 용서는 내가 잘못을 시인하고 상대방에게 그에 대한 처분을 맡기는 것이다. 기껏 무드 있는 환경 조성과 이벤트까지는 잘했는데 그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잘못했다고 했으니 이제 된 거지? 당신이 날 용서해” “내가 잘못한 거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잘할게”라는 말은 절대 삼가라. 그건 일방적인 명령일 뿐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잘못한 거 알아. 정말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가 될까?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이 풀어질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선택권을 주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박절하게 거절하거나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여자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고장 난 아내가 분명하니 빨리 A/S를 받으라. 특히 내 잘못이나 마음에 쌓인 앙금을 풀어가는 과정에선 아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 작업이 되지 않아 기껏 어렵게 마련한 자리에서 역효과를 내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닥터 지바고가 되어라 닥터 지바고는 ‘지금 바로 Go! 하는 데 박사’라는 뜻으로, 행복이란 깨달았을 때 바로 실천하는 것임을 말하는 나만의 신조어다. 이 글을 읽고 ‘그래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순간에 바로 쓰라. 미루면 또 기회를 놓치게 되고, 설령 쓴다 할지라도 그땐 이성을 사용한 계산된 내용이라 감동이 없다. 지금 바로 적어보자. 편지가 아니라 쪽지 정도라도 충분하다. 나이키 광고처럼 지금 바로 Go하라. Just do it!(일단 해봐!) 

최혜경, 이병준(<남편사용설명서> <아내사용설명서> 저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