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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ion issue 소리가 나를 치유한다
시냇물 소리, 휘파람새 울음소리, 낙숫물 소리, 멀리서 울리는 산사의 종소리…. 생각만 해도 편안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고 한다. 좋은 소리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주며, 따라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건강에 이로운 소리를 체험하는 산책길인 ‘사운드 테마파크’가 생긴 것도 이런 흐름 중 하나다. 소리 공학자 사이에서 집중력을 높이거나 명상에 좋은 소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고 선진국에서는 소리를 이용한 ‘사운드 샤워’를 연구 중인 요즘, 건강한 소리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설경철, ‘Episode’, 2007

‘소리 박사’ 배명진 교수가 만든 사운드 테마파크
‘사운드 테마파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갖가지 희귀한 소리를 모아둔 전시장 같은 곳인가 했다. 그런데 ‘소리로 심신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의 설명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말 소리가 건강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건강한 소리란 무엇일까? 사운드 테마파크는 어떤 곳일까? 의문을 안고 배명진 교수를 만났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와 TV 프로그램 <스폰지> <동물농장> 등에 출연해 소리에 대한 각종 궁금증을 흥미진진한 방법으로 풀어주어 우리에게 낯이 익은 인물이다. 음향 공학 학자는 많지만, 이를 일상생활에 접목시켜 연구한 인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소리 박사다. 오죽하면 ‘개도 웃을까?’ ‘나이 들수록 트로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같은 난감한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방송과 언론사에서 1순위로 그를 찾겠는가.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다 사운드 테마파크를 둘러보기에 앞서, 그가 대뜸 이렇게 묻는다.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를 본 천만 관객 중에는 영화관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본 사람이 많았다는데, 과연 왜 그랬을까요?” 재미있으니까 여러 번 본 게 아니었겠느냐는 대답에, 소리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서 본 것은 소리의 위력 때문입니다.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듣거든요. 청각과 촉각이 모두 동원됩니다. 그래서 음향 시설이 훌륭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마치 영화 속 장면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꽝꽝 터지는 폭음을 온몸으로 들으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또는 먼 데서 울리는 산사의 종소리나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신적인 안정은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준다. 그래서 배명진 교수는 건강에 이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책길을 만들기로 했다.


1 소리 박사’로 유명한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
2 스피커가 숨겨진 모형 통나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소리를 모아놓은 길 사운드 테마파크는 겉보기에 평범한 산책길 같다. 그런데 길을 걸어가니 어디선가 시냇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청량하고 시원한 소리. 조금 더 걸어가자 파도 소리가 난다. 큰 파도 소리, 작게 철썩거리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번갈아 들린다. 나무가 좀 더 우거진 곳에 이르자 새소리가 들린다. 뻐꾸기, 소쩍새, 휘파람새 등 익숙한 새 울음부터 물총새, 부엉이 울음소리까지. 새소리가 잦아들고 좀 고요하다 싶더니 먼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들린다.
“같은 길을 여러 번 걷더라도 계속 다른 소리가 들립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반복되면 그 소리를 은연중에 의식하게 되는데 불규칙한 소리는 자연스럽게 여겨지거든요.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들리는 소리의 종류도 달라집니다. 계곡에, 산사에, 바다에 실제로 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리를 심었습니다.” 그는 ‘소리를 심는다’고 표현했다. 숲 속에 나무 한 그루가 자연스럽게 심어져 있듯, 소리도 자연 속에 동화되고 묻히듯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리 공학을 이용해 범종 소리도 일부러 멀리서 은은하게 들리는 것처럼 처리했다.
그렇다면 배명진 교수는 왜 자연의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자연의 소리가 모든 생명체에 가장 건강한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건강한 소리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시냇물 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등 자연에서 채집한 소리를 떠올려보세요. 너무 시끄럽지 않은 잔잔한 소리이면서 신경이 집중되지 않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소리입니다. 익숙하고 안정되고 다양하고 불규칙합니다. 또한 20Hz에서 2만Hz까지 모든 음폭에 걸쳐 있어 청각 세포를 다양하게 자극합니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서 듣거나 자연의 소리와 닮은 소리를 들으면 청각 세포가 골고루 깨어나며, 심신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경남 거제에 있는 몽돌 해변(주먹만 한 돌이 넓게 분포된 해변)의 파도 치는 소리가 아름다워 일부러 그 소리를 들으러 가는 이가 많기로 유명한데, 배명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파도가 들이칠 때 ‘철썩’, 나갈 때 ‘쉬이이이’ 소리 나는 것이 인체의 심호흡 주기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들이 이 파도 소리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에밀레종 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종을 울린 뒤 처음 4~5초 동안 ‘콰광’ 하는 소리가 나고, 그 이후에는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소리가 나는데 바로 이 소리가 숨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파도 소리나 종소리에서 안정된 숨소리와 같은 소리를 들으면 인체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이를 동조 현상이라고 하지요. 그 때문에 몽돌 해변의 파도 소리나 에밀레종 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자연을 닮은 소리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자연의 소리를 닭에게 들려주면 알을 잘 낳고, 화초에게 들려주면 성장률이 높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 소리를 CD에 담아 판매하기도 한다. 이 CD를 들으면 숙면에 효과적이라고. “이처럼 건강에 유익한 자연의 소리가 도심에는 차단되어 있습니다. 주파수가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청각과 촉각 등 모든 감각이 골고루 깨어 있고 균형을 이루는데, 우리는 자동차 소리, 핸드폰 같은 기계음 등 일정 주파수만 접하며 살아갑니다. 현대인이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연의 소리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교 캠퍼스에 사운드 테마파크를 만들었지요.” 내년 9월에는 서울시 주도 아래 난지도 노을공원에 사운드 테마파크가 들어선다. 여기서도 그의 노하우가 빛을 발할 터다.
사운드 테마파크는 이제 막 얼개를 갖추었으며 앞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시도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소리 멀리뛰기’라는 시설이 있다. 출발선에 서서 소리를 내지르면, 5m 간격으로 세워진 깃발 중 어느 하나의 전등이 켜진다. 그 지점까지 목소리가 닿았다는 뜻이다. 갈대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지른 두건장이처럼, 하고픈 말을 속 시원하게, 멀리 뱉어서 스트레스를 없애보자는 재미난 체험 시설이다.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내지 못하면 기가 딱 막혀서 화병이 걸려요. 그러니 소리란 참 신기하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속이 후련하지 않은 걸 보면, 소리를 뱉어내는 과정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말이겠죠.”

소리는 건강 연구의 블루 오션이다 사운드 테마파크가 정신적인 건강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연구라면, 신체적인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소리 연구도 있다. 배명진 교수 연구실에 있는 온갖 희귀한 발명품들이 그 결과물이다. 그는 등받이 부분과 엉덩이가 놓이는 부분 아래에 스피커가 달린 의자를 보여준다. “지난 2월에 개발한 ‘소리 안마 의자’예요. 소리로 신체를 직접 자극해서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의자이지요. 전립선이나 자궁 부위 혹은 등에 소리로 안마를 해주면, 해당 부위의 건강이 개선됩니다.”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는 것은 손아귀 힘(에너지)을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소리란 곧 떨림(진동)이며, 이 역시 에너지의 일종이다. 따라서 소리 에너지가 신체로 옮겨오면 손으로 안마를 할 때처럼 신체가 활성화된다. 실제로 소리 안마 의자에 앉아보았다. 의자 등 부분에 달린 스피커에서 미세한 소리(선풍기 바람 소리보다 작다)가 나오면서 바람이 느껴진다. 이것은 ‘소리 바람’인데,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키면서 바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손으로 주무르는 안마와 다른 방식으로 시원한 느낌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손발이 부은 사람, 등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에게도 좋단다. 단, 아무 소리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맞는 공명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배명진 교수는 이 기술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다. 병을 치료하는 의료 기구는 아니고, 의료 보조 기구다.
소리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말이 언뜻 ‘비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 미국, 일본의 소리 공학계에서는 이미 소리를 이용한 건강법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사운드 샤워 sound shower’ 연구도 그것인데, 샤워하듯 신체를 소리로 자극해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요법이다. 소리로 건강을 지킬 수 있지만, 반면에 악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얼마 전 ‘사이버 마약’인 ‘아이도저’의 위험성이 소개되었다. 아이도저는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파일을 다운받아 청취하는 소리로, 뇌파를 자극해 몽롱하게 만든다. 이어폰을 빼도 환청이 들리며 때론 정신을 잃기도 한다. 마약을 투여했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사이버 마약이라 불린다. 영화 <007 시리즈> 2편에 나오는 ‘소리 무기’와 같은 원리다. 특정 소리를 30분 동안 들으면 신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신경계의 균형도 깨져, 한마디로 ‘미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리로 사회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연구에 몰두한 이들이 더 많다. “연령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다르다는 원리를 이용해, 외국에서는 청소년 선도에 소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일본 도심의 한 국립공원에서 밤에 청소년들의 패싸움이 잦자,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스피커로 십대만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소리를 틀어서 청소년들이 공원에 모이지 못하게 했답니다. 사람에겐 안 들리나 곤충에겐 들리는 초음파로 바퀴벌레 같은 해충을 퇴치하는 기구도 마찬가지 원리이죠.” 배명진 교수의 말처럼 건강 연구에서 소리는 블루 오션과도 같다. 앞으로 심신의 건강을 위한 아름다운 소리가 방방곡곡에서 들렸으면 좋겠다.

3 숭실대학교에 만든 사운드 테마파크.

배명진 교수가 안내하는 ‘공부 잘되는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보다 배경음이 약간 있는 상태에서 집중이 더 잘된다. 단, 소리는 나되 의미는 없어야 한다. 친구가 옆에서 말을 시키면, 의미가 담겨 그쪽으로 신경이 분산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소리는 적막감만 해소하는 정도가 좋다. 그러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소리라면 더욱 좋다. 따라서 자연의 소리를 가장 추천한다. 자연의 소리가 없다면 음악 중에서 다양한 주파수를 내는 클래식 음악이 좋다. 하지만 꼭 클래식 음악이 아니더라도, 뉴에이지 음악 등 평소 자기가 편하게 느끼는 장르면 된다. 음악 소리를 싫어한다면 선풍기 바람 소리, TV 빈 채널 소리, 에어컨 소리를 듣는 것도 의외로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자연의 소리는 건강에 이롭기에 가수 김태곤 씨는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앵무새를 키운다.

“우리 소리가 약이다” 가수 김태곤 씨
1980년대 히트곡 ‘망부석’을 부른 가수 김태곤 씨. KBS TV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주인공 김혜자 씨가 ‘열’ 받았을 때 들었던 노래 ‘송학사’도 그의 곡이다. 가요에 국악을 접목해 우리 정서가 진하게 밴 노래로 그는 인기 가수로 이름이 높았다. 한데 언제부턴가 가요계에서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소리’(특히 음악)의 치유 효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2002년 대구한의대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원광대학교 대학원 기학 전공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오랜 세월 직접 체험하고 연구한 끝에 “우리 소리가 약”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우리 몸에 우리 소리가 필요한 이유
한동안 TV에서 보지 못했던 그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망부석’을 부를 때의 모습 그대로, 하나도 늙지 않은 얼굴이다. 61세. 그런데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같은 외모다. “우리 소리가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제 얼굴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도 기운이 펄펄 넘친다.
궁금한 마음에 본론부터 꺼냈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왜 우리 소리가 최고인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국악은 3/4박자, 6/8박자, 8/12박자 등 3박자가 기본입니다. 3박자 음악은 심신을 적당히 출렁이게 합니다. 심신이 출렁이다 보면 스스로 ‘세모꼴’의 균형을 찾게 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국악은 마치 한식과도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체험되고 검증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부작용이 없으면서 정수만 남은 셈이지요. 가령 옛 노동요의 경우 작곡가가 ‘히트’시키기 위해 부른 게 아닙니다. 노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고, 다시 균형을 찾는 과정인 생체 리듬이 담긴, ‘저절로 불러진’ 노래입니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이자 장단이 들어 있지요.”
이와 관련해서 소리가 태아에게 끼치는 음악의 전문가인 한양대학교 박문일 교수의 연구가 떠오른다. 그중 국악에 관한 연구 결과가 눈에 띈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는 반응하지 않거나 심지어 움츠러들기도 하는데, 국악을 들려주면 태아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아 바동바동거린다. “우리 소리는 태중에서 듣는 엄마의 심장 소리와 닮았거든요. 특히 속이 빈 악기로 연주하는 ‘울림 소리’가 심장 소리와 가장 가까워 태아의 성장에 효과적입니다.” 예로부터 ‘비워야 울린다’고 했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꽉 차서 욕심이 많은 사람은 남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말이고, 악기에 적용하면 장구나 해금처럼 속이 비어야 좋은 소리가 울린다는 말이다. 김태곤 씨가 명상・치유 장구 연주가인 신유진 씨(신유진 국악예술원 원장)와 함께 건강 증진을 위한 연주회에 나서는 것도, 그가 울림이 좋은 장구 소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음악 소리는 평균 수명과도 관계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휘자나 우리나라 소리꾼들은 장수합니다. 그 사실을 아시나요?”라고 묻는다. 원리는 이렇다. 음악의 공명으로 신진대사가 강화되고 스트레스 수치가 떨어진다. 음악과 교감하는 동안 신체도 음악의 리듬에 맞춰 균형을 찾게 된다. 이런 사실은 이미 우리 선조들도 간파했다. 조선 세조 때 창작된 ‘수연장지곡’은 수명을 연장시켜준다는 음악이고, ‘만파정식지곡’은 <삼국유사>에 나온 ‘만파식적’(장안의 불안을 잠재우고 평안함을 준다는 피리) 대금 이야기에서 창안된 곡이다.

김태곤 씨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귀띔해준다. “밤에 불을 끈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며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지휘를 해보세요. ‘막춤’ 아시죠? 관절에 각이 잡힌 ‘무용’ 말고, 마음 가고 몸 가는 대로 휘젓는 막춤을 추듯이 지휘를 하는 겁니다. 클래식음악이든 국악이든 상관없습니다. 가급적 노랫말이 없어서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악이 좋습니다. 자기 전에 5~10분 정도만 해보세요. 몸에 좋지 않은 기운이 나가고, 활력은 충만해집니다.” 강강술래의 원리와 비슷하다. 전신에 힘을 뺀 채 달빛 아래서 소리를 내며 추던 춤, 우리나라 여성들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 있을 그 몸짓과 리듬 말이다. 소리를 듣고 몸으로 뱉어내는 몸짓이야말로 음악을 가장 건강하게 듣는 방법이다.
김태곤 씨에게 30~40대 주부들의 건강에 이로운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취향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울감,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이럴 때는 저주파의 음악이 좋습니다. 우리 음악 중에는 ‘수제천’을, 가요 중에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송학사’, 가곡 중에는 ‘보리밭’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수제천’은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사람들이 ‘천상의 음악’이라고 극찬한 자랑스러운 우리 음악입니다. ”
저주파 음악은 주부뿐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 두루 익숙하다. 이는 종소리의 차이로도 알 수 있다. 서양의 종은 높은 곳에 달린 작은 종으로, 높고 가벼운 소리를 낸다. 고주파에 해당한다. 반면 우리 종은 땅에 가까이 달려 있다. 낮고 묵직한 저주파 소리를 낸다. 에밀레 종소리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저주파 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돌아본다. 주부의 일과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의 시간이 단 5분이라도 있는지. 김태곤 씨는 강조한다. “하루 5~10분만 시간을 내어 차 한잔 놓고 앉아보세요. 갑자기 혼자 덩그라니 있으면 오히려 잡생각이 들기 쉬우니, 음악 한두 곡 정도 들으세요. 우리 가락이면 더욱 좋겠지만, 맑고 밝고 즐거운 음악이면 뭐든 좋습니다. 장단에 마음을 턱 얹는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전부를 맡겨보세요. 심신이 편안해집니다.”

건강에 이로운 소리를 듣고 싶다면?
1 강릉 낙산사의 정자 ‘홍연암’, 경남 거제의 몽돌 해변
이 두 곳에 가면 명상을 돕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강릉 낙산사에 있는 홍연암은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로, 바닥 중앙에 약 20cm 크기의 사각형 뚜껑이 있다. 이 뚜껑을 열면 파도가 절벽을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경남 거제의 몽돌 해변에서는 파도가 몽돌을 치는 소리가 청량하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깊게 심호흡을 해보는 것도 좋다.
2 태아의 두뇌에 좋은 돌고래 소리 얼마 전 페루의 임산부들이 바다를 향해 배를 내밀고 있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TV 프로그램 <신동엽의 있다, 없다>에도 방영되었으며 배명진 교수가 이 내용을 분석했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의 기본음은 1만~1만 5천Hz로 아주 높은 초음파입니다. 태아는 초음파에 민감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특히 돌고래 소리는 저음에서 고음으로, 고음에서 저음으로 음높이를 시원하게 활강하기 때문에 이 소리가 신기해서 태아가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임신 5개월 이상 된 산모들이 돌고래 소리를 들으면 태아의 두뇌 발달이 촉진된다고. 돌고래 소리로 만든 ‘태교 음악’은 배명진 교수의 소리공학연구소 홈페이지(www.sorilab.com)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3 공부 잘되는 소리 배명진 교수가 5년 전에 개발한 기술을 적용해 만든 제품 ‘아이뉴’는 공부가 잘되게 하는 소리를 낸다. 이 제품은 이어폰을 통해 뇌파를 조정하는 소리를 내는 게 아니다. 작은 스피커를 눈에 띄지 않는 천장에 부착하는 형태로, 멀리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난다. 바로 ‘백색 소리’에 해당한다. 백색 소리는 주파수 대역폭이 넓어서 다른 소리를 낮추고, 청각의 적막감을 해소해 안정감을 주므로 공부할 때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문의 031-382-3545


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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