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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나를 치유한다] 문학 치료를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었구나
BC 1000년경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베의 도서관 위에는 ‘영혼의 치유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문학이 지닌 치유의 힘은 이미 고대로부터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요법으로도 문학 치료가 쓰였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감정 표현 글쓰기’가 감정적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널 테라피를 통해 우울증이 호전됐다는 결과가 의학계에 보고되었고, 관절염과 천식 환자들의 증상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도 의학 전문지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선물합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일기 쓰기(치료를 목적으로 한)를 통해 마음의 환부를 찾아내는 일, 시 한 편에서 ‘나’라는 존재의 귀중함을 깨닫는 일, 이것이 문학 치료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문학은 나만을 지지해주는 최고의 비밀 상담사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저널 치료 사례
“나는 혼수 문제에서 시작된 시모와의 갈등으로 9년을 고통받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여러 저널 쓰기 기법을 사용해 계속 글을 썼다. 그 과정은 맘속 상처 드러내기, 내 맘 전하기, 관점 바꾸기, 저널 쓰기로 나누었다. 그리고 3개월 후 9년간의 갈등이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문제 해결 방법 1 맘속의 상처 그대로 드러내기(5분 집중 글쓰기)
내 맘속에 숨겨놓았던 일들, 하소연하고 싶어도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못하고 마음속에 끊임없이 써 내려갔던 무거운 책을 들어냈다.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의사 앞에 환부를 드러내 보이듯 말이다. “언어폭력은 시간이 지나도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글쓰기 치료 수업 중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기에 생각나는 대로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던 교수님의 말씀에 내 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글쓰기 치료 모임 중에 5분씩 멈추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내 맘을 표출해내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글을 썼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 중에 교수님이 권해주신 대로 저널 기법으로 어머니와 내 상황을 재현하며, 대화하던 내용을 아주 재빨리 써 내려갔다. 하지만 자꾸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글쓰기에서조차 어머니 앞에서 자꾸 주눅이 들어 말도 못 잇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인물 묘사’를 통해 내게 고통스러웠던 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원 없이 분노를 표출해보고 싶었지만 의지와는 달리 왠지 너무 버릇없이 지껄여대는 내 모습에 불안해져 화장실만 몇 번 다녀오게 되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의식되면서 결국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 난 타인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기에 비밀의 글조차도 원 없이 써 내려갈 수 없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또한 내 속은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착하고 인내심 많은 순진한 사람으로 인정받길 얼마나 원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남들에게 좋다고 인정받는 완전한 사람이길 절실히 원했던 것이다.

문제 해결 방법 2 ‘보내지 않는 편지’를 통해 내 맘 전하기
‘보내지 않는 편지’를 어머니께 써보았다. 이 방법은 그래도 맘속에서 수없이 써 내려왔던 방법이기에 잘 써졌다. 억울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줄줄이 써 내려갔던 그 말을 직접 글로 쓰고 나니 맘이 시원했다. 상처받은 말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언행들에 대해 써 내려갔다. 글 속에서 난 항상 피해자였고 어머니는 그야말로 생각 없이 내뱉는 모든 말 속에 독이 있는 이기적이고 야속한 분이셨다. 나의 얼굴에 미소 대신 어둠이 자리 잡게 만든 악녀였던 것이다. 날 주눅 들게 만들고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 분. 어머니 앞에만 서면 잘하던 것도 떨려서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분. 내 하소연을 다 쏟아붓고 나니 맘 한쪽에서 ‘그럼 넌 어머니께 어떤 며느린데?’란 생각과 더불어 ‘근데 정말 그런 나쁜 분이셨을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편협된 생각과 내 편에서 잘 해주기만을 바랐던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4주에 걸친 글쓰기에서 W 선생은 털어놓기, 대화하기, 카타르시스 등을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이제는 관점을 바꾸어보는 저널 기법이 효과적인 단계가 된 것이다.

문제 해결 방법 3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상대방 입장에서 재해석해보기(내 생각 바꾸기)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본 며느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머니는 아들141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든 초점이 아들에게 있었기에 내가 보이질 않았던 것이었다. (중략) 어쩜 어머니로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조차도 내 마음 밭이 좋지 못했기에 다 역겹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머니의 그런 즉흥적인 표현과 거침없이 쏟아부으셨던 폭언들이 도저히 나의 내성적인 성격, 싫어도 감히 싫다고 말 못하고 살아왔던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도 다른 상대방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부터 하나 둘 해나갔다. (중략) 내 생각을 바꿔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하나 둘 무겁게 엉켜 있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게 되었다. 그 후로 글쓰기는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오해와 상처들이 회복되고 있었다. 눈이 조금씩 뜨이면서 가식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어머니를 이해하며 대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용서한 것이다. ‘관점 바꾸기’ 글쓰기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 9년 동안 가슴 한쪽이 무겁게 짓눌려 아파했던 상처 덩어리가 없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미움도 아픔도 없이 가벼워진 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론 어떠한 일에도 어머니로 인해 싸워본 일이 없었다. 서로 진정한 마음이 오가며 시어머니는 내게 딸처럼 생각하고 대하겠다는 다짐까지 내보이셨다. (중략) 일 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조언과 믿음을 더해주신다. 서로가 자신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 되길 요구했을 때는 상처투성이였지만 한 발자국 뒤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니 사랑이 느껴졌다.
신기한 건 저널 치료를 배울 때 교수님께 들은 대로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성격, 언어 습관은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생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달라지니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_30대 주부 W의 글

시 읽고 모방 시 써보기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그랑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큰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 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 년/ 깊은 땅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깨진다 한들 변함없이 바위요/ 바스러진다 해도 여전히 모래인 것을/ 그 모래 오랜 세월 썩고 또 썩으면/ 지층 한 무늬를 그리며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시 바위가 되는 것을/ 누가 침을 뱉건 말건 심심하다고 차건 말건/ 아무렇게나 뒹굴러다닐 돌이라도 되었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투명하지만 반들반들 빛이 나지만/ 그건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일 뿐/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_‘김기택의 시 ‘유리에게’
모방 시“네가 강해 보인 척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아무리 울고 매달려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날 내버려 둬”라고 말한 후/ 집을 떠난 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아 두려움에 빠진다/ 바위처럼 보이기까지/ 많은 상처를 극복하고 단단해진 굳은살이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달라진다 해도 또 다른 성장의 모습인 것을/ 그 상처 하나하나 모여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될 것을/ 내가 설명을 부탁할 때/ 너의 답답한 마음을 차분히 표현만 해준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스펀지처럼 온갖 감정을 흡수하지만/ 결국 단단한 바위로 너를 무장할 뿐/ 깨질 것처럼 보이지만 바위로 맞서는 너를 보면/ 강해 보인다는 것보다 강해 보이는 척하는 네가 더 두렵다.”
성찰 평소 F 와 내 관계를 바라봤을 때 유리와 바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끔 F의 내면 깊은 목소리를 들을 땐 그도 약한 존재고,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 같다. 그렇다면 툭 터놓고 말을 하지 F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때론 너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요즘엔 부부 관계에서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담이니 뭐니 하면서 나는 나름대로 결혼상을 그렸고 F는 아직 구체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내 이상에 F의 모습을 끼워 넣으려니 그는 불편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을 표현치 못하는가? 그가 유리고 내가 바위인가. 우린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향은 비슷한데도. 유리와 바위가 지층이 될 때까지 더 많은 환경적 자극이 필요하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보는 건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한데, 그가 그 환경적 변수를 견뎌내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내 유리처럼 깨져버릴 것 같은 거다. 우리의 결혼이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재성찰 이 글을 쓴 후에 교수님이 내게 준 “완벽한 일치를 꿈꾸지 마라. 내가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해결토록 곁에 있어주고 기다려주면 어떻겠느냐”는 도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꿈꾸는 것이 완벽한 일치여서 그도 힘들고 나도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도 나도 조금씩 한발 뒤에 가서 살펴보는 자유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_30대 직장인 신혼 주부 D의 글 자료 제공 이봉희 교수

*이곳에 실린 글은 모두 본인의 동의를 얻고 그분들이 보내준 내용을 실은 것이며 그 중에서도 사적인 내용은 생략했음을 밝힙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다 감동적인 치유 사례가 많지만 사적인 내용이라 공개가 불가능합니다.

최혜경・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