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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퀴젤'의 니콜라 퀴젤∙알렉시 퀴젤 형제 지상 최고의 컬렉션
베르사유와 루브르의 왕가 컬렉션을 가장 많이 소장한 갤러리, 이브 생로랑과 위베르 지방시 같은 대단한 컬렉터를 고객으로 둔 갤러리, 고객 명단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더 비밀에 싸인 갤러리 퀴젤 Kugel. 센 강변에 자리한 이 갤러리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공개된다. 프랑스 상류층도 쉽사리 볼 수 없던 금세기 최고의 컬렉션이라는, 호사스러운 구경거리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갤러리 퀴젤의 초록 격자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리스식으로 꾸민 1층 전시실이 나온다. 분위기에 맞게 이탈리아와 그리스, 로마의 고대 미술품과 성에서 나온 조각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1 미하엘 크라츠의 오토마트. 정시가 되면 황금 사자가 눈을 돌리면서 입을 벌리는 희귀한 작품이다.
2 2층으로 올라서면 나폴레옹 1세의 소유였던 거대한 시계가 방문자를 맞이한다. 이 시계는 유럽 왕실 가족들 사이에서 물려 내려오던 것으로 1933년 갤러리 퀴젤 컬렉션이 되었다.


지난 2월 전 세계 미술계의 화제가 되었던 이브 생로랑 컬렉션 경매. 경매를 주관했던 크리스티 옥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보기 드문 ‘오토마트 automate’가 경매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이었다. ‘세기의 경매’라고 신문이나 TV에서 너무 요란스럽게 떠들기에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프리뷰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오토마트’란 자동 인형이나 조각 등이 움직이면서 시간을 가르쳐주는 복잡한 조각상 형태의 시계다. 매시간 금과 은, 보석으로 만든 새들이 날아다니고 크리스털로 만든 물결이 흐르는 시계라니! 전문가들 사이에서 ‘환상의 시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오토마트는 정교한 태엽 장치를 만드는 기술력에다 화려한 금은 세공 실력이 결합되어야 하는 터라 애당초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적어도 대귀족 정도는 되어야 오토마트를 하나쯤 가질 수 있었을 정도로 귀한 오브제였던 데다 금은 세공품을 녹여 전쟁 비용을 충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터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오토마트는 극히 희귀하다.
이브 생로랑이 소유했던 오토마트는 17세기 초반 오스터부르크의 시계 장인 미하엘 크라츠 Michael Kraz의 작품인데 정시마다 사자 입이 열리면서 음악이 나오고 30분마다 사자 눈이 움직이는 기상천외한 작품이다.이브 생로랑은 이렇게 귀한 오토마트를 어디서 구했을까? 카탈로그에 명시된 출처는 ‘갤러리 퀴젤 Galerie J. Kugel’이었다. 하긴 퀴젤 외에 지구 상의 어떤 갤러리에서 이렇게 독특하고 귀한 오브제를 취급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3 센 강을 바로 마주 보고 있는 2층 살롱은 귀족의 집처럼 단장되어 있다. 베르사유 성에 소장되어 있던 루이 14세의 가구들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유였던 일본식 자개 테이블 등 역사가 담긴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4 알렉시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니콜라와 알렉시 퀴젤 형제. 서로 다른 개성에도 불구하고 둘은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사무실을 장식한 가구는 모두 나폴레옹 시대의 작품이다.

갤러리 퀴젤은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 갤러리이면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예외적인 곳이다. 우선 건물부터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센 강을 사이에 두고 튈르리 정원을 마주 보고 있는 명당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곳이 갤러리라는 사실을 알아채기조차 힘들다. 두 개의 조각상이 우아하게 휜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갤러리 건물은 루이 비스콩티 Louis Visconti(앵발리드와 나폴레옹의 묘지를 설계한)가 철광왕 장 피에르 콜로 Jean Pierre Collot의 저택으로 설계한 작품으로, 현재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85년 갤러리 퀴젤을 운영하던 자크 퀴젤 Jacques Kugel의 타계 소식은 파리 미술계에 큰 화제를 낳았다. 그의 두 아들인 니콜라 퀴젤 Nicolas Kugel과 알렉시 퀴젤 Alexis Kugel 형제가 약관 23세와 19세로 갤러리를 운영하기에는 벅찬 나이였기 때문이다. 과연 두 형제는 퀴젤 가문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퀴젤 가문은 18세기 러시아 민스크에서 러시아 황제를 위한 시계를 취급하던 엘리 퀴젤 Elie Kugel을 시작으로 5대에 걸쳐 내려오는 유서 깊은 갤러리 집안이다. 하지만 유럽의 전통 있는 갤러리 가문들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가족 간의 일을 외부로 알리는 일을 극히 꺼리기 때문에 갤러리의 향방을 둘러싼 사람들의 호기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니콜라와 알렉시 두 형제는 사람들의 이러한 호기심과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며 성공적으로 갤러리를 이끌어나갔다. 특히 ‘철강왕’ 콜로의 저택을 통째로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두 형제의 발상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재 갤러리 퀴젤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유대인 갤러리 가문인 크라메 갤러리와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유서 깊고 훌륭한 갤러리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갤러리 퀴젤은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독보적이고 희귀한 작품만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7~18세기의 오토마트, 16세기 독일의 금은 세공품, 유럽 왕가의 컬렉션의 일부였던 가구 등등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며 미술사와 역사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아주 귀한 것만을 다룬다. 베르사유와 루브르에 소장된 왕가 컬렉션 중에서도 갤러리 퀴젤에서 나온 작품이 많을 정도로 갤러리 퀴젤은 여타의 갤러리와는 그 급이 다른 작품을 취급한다. 사실 갤러리라기보다는 유럽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인 ‘카비네 퀴리오시테 cabinet curiosité’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카비네 퀴리오시테란 기묘한 오브제와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선호했던 유럽 왕족과 대귀족들이 집 안에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크리스털 해골, 중세시대의 모래시계, 수천 겹의 꽃으로 둘러싸인 상아 조각품 등으로 가득 찬 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2층 살롱의 맞은편 풍경. 가깝게 보이는 야누스 조각상은 프리마티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브 생로랑 경매에서 갤러리 퀴젤이 낙찰받은 작품이다. 쉽게 만나기 힘든 루이 14세 시대의 거대한 오토마트, 나폴레옹 시대에 만든 그리스식 화병, 루이 15세 시대에 중국에서 가져온 도자기를 비롯해 작은 것 하나하나도 쉽게 만나기 힘든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갤러리 퀴젤의 높은 문턱을 넘는 고객은 아주 소수의 고급 컬렉터들이다. 이브 생로랑이나 위베르 지방시 같이 워낙 이름이 알려진 일부 고객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는 탓에, 니콜라와 알렉시가 누군가를 동반하고 경매장에라도 나타나면 다음 날 바로 소문이 날 정도로 퀴젤의 고객 명단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워낙에 호기심의 대상이어서일까, 사실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회화를 제외하고 이브 생로랑 경매 내내 미술계 사람들에게 가장 화제를 뿌린 것은 갤러리 퀴젤의 행보였다. 니콜라와 알렉시는 자신들이 이브 생로랑에게 판 작품들을 대부분 과감하게 다시 사들였다. 세기의 경매인 만큼 낙찰가도 엄청나게 높았건만 그 가격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을 되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소리다. 특히 개당 가격이 50만 유로(8억 8천만 원 이상)가 넘게 치솟았던 총 20점에 달하는 메딩겐 미네르베 Medingen Minerve의 성배들을 대부분 낙찰받았을 때는 장내에서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하엘 크라츠의 오토마트는 13만 3천 유로(2억 3천5백만 원 이상)라는,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으로 퀴젤 형제의 손에 낙찰되었다.
운이 좋다면 평생 박물관에서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었던 크라츠의 오토마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갤러리 퀴젤의 2층 전시실 중 가장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 방에서였다. 갤러리 퀴젤은 총 3개 층에 10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전시실 내부는 학식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은 옛 귀족의 저택처럼 장식되어 있다. 흰 벽과 유리 전시관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게 갤러리야?’하고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1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1684년에 만든 발타자르 켈러 Balthazar Keller의 메디치 비너스 청동상과 장 기욤 무아트 Jean Guillaume Moitte의 아테네 상이 서 있다. 아테네 상은 대리석 같으나 실제로는 자기로, 이처럼 보관 상태가 완벽한 것은 드물다. 메디치 비너스 상은 브르타뉴 백작 가문에서 내려오던 것.
2 크리스털을 통째로 깎아 만든 촛대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국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이 정도 크기의 원석 크리스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데다 통째로 세공한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3 갤러리 퀴젤에서 가장 오래된 귀물들을 모아놓은 방. 좌우 테이블 위에는 중세시대의 보석 공예품과 오토마트, 거울들이 전시되어 있다.
4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든 청동상과 마졸리카 도자기가 전시된 방. 이처럼 많은 마졸리카 도자기가 모인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우리는 전문 분야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술에는 시간도 국경도 없으니까요. 이 살롱에는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 탄생한 예술품이 섞여 있죠. 그렇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희귀하고 독보적이며 완벽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작품들입니다.” 갤러리 퀴젤의 가장 놀랍고도 뛰어난 면모가 여기에 있다. 언뜻 보면 세브르산 자기로 만든 듯한 샹들리에(여타의 갤러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가 실은 전체를 에나멜 기법으로 만든 보석 샹들리에이며 빈의 쇤브룬 궁에 걸려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 소유의 컬렉션 중 일부라는 것, 전시실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샹들리에 하나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박물관에나 가야 볼까 말까 한 희귀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특정 분야에 치중하지 않고 고루 예술품을 수집하는 자세는 세계적인 컬렉터 가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빅 컬렉터’로 꼽히는 로스차일드나 노아유 가문의 살롱은 시간과 함께 쌓인 예술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낸 특유한 아우라로 유명하다.
퀴젤은 이런 ‘빅 컬렉터’ 가문들이 단골로 들르는 갤러리로 정평이 난 만큼 여타의 평범한 갤러리와는 예술을 바라보는 눈이 사뭇 다르다. “우리는 오로지 아름답고 희귀한 것, 역사 속에서 사라져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 아직 우리 갤러리의 작품 목록에 등재되지 않은 작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작품 가격은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작품 가격이 변한다고 해서 그 특정한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보적인 작품만 취급하는 갤러리답게 사실 갤러리 퀴젤이 선보이는 작품들은 가격에서도 역시 독보적이다. 갤러리 내에서 가장 싼 작품이 몇십만 유로를 호가하며, 일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라 가격을 매기기가 난감할 정도인 것들도 있다.


5 알렉시는 지난 10년 동안 상아와 청동, 보석으로 만든 정교한 모래시계를 컬렉션해왔다.
6 그리스 신화의 군신인 마르스를 형상화한 18세기 조각상 중에서 마스크를 뒤로 돌려 쓰고 있는 형태의 조각상은 극히 드물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조각상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빅 컬렉터들이 갤러리 퀴젤을 찾는 것은 사실 이런 작품들 때문이 아니라 갤러리 퀴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두 형제와 퀴젤 가문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갤러리 퀴젤의 주인인 두 형제는 미술계에서의 독보적인 위치 덕택에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한번 만나면 잊기 어려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형제 사이에는 이심전심에 가까운 독특한 분위기가 흐른다. 알렉시는 오히려 그 성격 차이 때문에 갤러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갤러리 퀴젤의 명성은 이 두 형제의 ‘하모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활발하고 재기 발랄한 성격의 니콜라는 주로 고객들과 미술계 사람들의 응대를 맡고 갤러리의 외부 업무를 총괄한다. 반면에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격인 알렉시는 작품 선정과 전시 기획 등 작품에 관련된 갤러리 내부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알렉시는 ‘독보적이고’ ‘희귀한’ 오브제에 대해서는 어떤 전문가보다 깊은 식견의 소유자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총 2만 권에 이르는 희귀 도서를 모조리 독파한 덕택인지 유럽의 장인이나 복원가, 역사가와 어울려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미술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학자 타입의 갤러리스트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이렇게 성격이 다른데도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갤러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같은 공간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라요. 이 건물도 밤마다 둘이서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거랍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장소에 퀴젤의 이름을 달고 싶다는 건 오래전부터 우리 형제가 함께 공유하던 꿈이었죠.”


퀴젤이 아니고서는 어떤 갤러리가 방 하나를 완벽한 루이 14세풍으로 연출할 생각을 했을까? 루이 14세 때 장인인 앙드레 샤를 불 Andre Charles Boulle의 작품이 장식된 방에 들어서면 금세 17세기 말엽으로 돌아간 듯하다. 벽에 장식한 패널 역시 오리지널 17세기 것으로 가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 방의 가구들은 유명 영국 컬렉션인 왈라스 컬렉션 Collection Wallace의 일부였다.

독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비롯한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유럽의 정치・경제・문화를 꿰고 있는 데다 뛰어난 감식안을 가졌던 아버지 자크 퀴젤은 형제의 교육을 직접 담당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아버지였다. 알렉시는 태어날 때부터 미술품에 둘러싸여 있던 환경이 감식안의 바탕이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 때부터 30~40년을 갤러리에서 일해온 직원들이 이들 형제의 친구였고,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급에 달하는 작품들이 가득 찬 수장고가 형제의 놀이터였다. 미술사와 관련된 학위가 전혀 없는 니콜라와, 루브르 박물사 전문 학교를 고작 1년 다닌 것이 전부인 알렉시가 이렇듯 성공적으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계에서 남다른 존경을 받는 데에는 아버지 자크 퀴젤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감식안에 대한 훈련과 자연스럽게 체득한 미술에 대한 애정이 큰 역할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알렉시와 니콜라가 갤러리를 운영하면서도 각기 개인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컬렉터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실 갤러리 퀴젤에서 취급하는 모든 품목이 퀴젤 가문의 컬렉션이자 형제의 개인 컬렉션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알렉시는 스스로 ‘곤란한 컬렉터’라고 불렀는데, 컬렉션을 하고 있지만 다른 컬렉터를 위해 그 컬렉션을 팔아야 하는 게 이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스스로가 컬렉터인 데다 미술 컬렉션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냈으니 이들이 다른 컬렉터들을 이해하는 폭은 평범한 갤러리스트들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다른 갤러리에 비해 아주 소수의 컬렉터만을 상대합니다. 컬렉터들은 컬렉션을 통해 아주 은밀하고 개인적인 정서와 지성을 표출합니다. 컬렉터마다 자기만의 세상을 보는 가치관과 비전이 있고, 어떤 것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해답이 있습니다.”
알렉시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한 눈으로 18세기 유리장에 담긴 30 여 개의 모래시계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모래시계들은 상아와 보석, 금과 은으로 만든 아주 독특하고 희귀한 작품들인데 이 모래 시계를 이만큼 모으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이 모래시계 컬렉션은 갤러리의 고객인 어떤 컬렉터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컬렉터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컬렉션을 하고 이것을 컬렉터들에게 선보입니다. 컬렉터들이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컬렉션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임무입니다.”

(위) 1층 복도 끝에서 바라본 복도 풍경. 복도에도 빽빽하게 작품이 들어차 있는데 작품의 교체 시기가 여타의 갤러리보다 빠른 이유는 그만큼 많은 컬렉터들이 갤러리 퀴젤을 찾는다는 증거다.


갤러리 퀴젤 외관. 위풍당당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이 건물은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갤러리 퀴젤이 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 층을 갤러리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갤러리 퀴젤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중에는 알렉시의 할아버지 때부터 수집해오고 있는 작품들도 있을 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을 확보하고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어려움이 바로 퀴젤 가문이 자랑하는 명성의 비결이기도 하다. 컬렉터 외에 퀴젤을 찾는 고객은 루브르나 베르사유, 메트로폴리탄 같은 박물관 관계자들이다. 집안 대대로 유명 컬렉터들과 너나없는 관계를 이어오다 보니 컬렉터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박물관급 문화재를 가장 먼저 확보할 수 있는 게 퀴젤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갤러리 퀴젤은 아주 많은 수의 희귀 작품(그래서 고가인)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전 세계의 여느 갤러리보다 활기차게 작품이 거래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테이블에 놓인 작은 장식품 하나도 예사로운 것이 아님에도 취재를 진행하는 며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 작품이 나타나는 풍경을 목격했으니 말이다. 알렉시는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갤러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새로운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을 뿐 아니라 고급 미술 컬렉터들 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치 비엔날레 TEFAF Masstricht에도 매년 참가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갤러리 퀴젤은 쉽게 그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도도하고 우아한 세계다. “우리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세계에 대한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고객들을 기다립니다.” 파리의 아나톨 강변 도로에서 슬쩍 올려다본 갤러리 퀴젤의 창가에서는 실내에 전시된 작품들이 반사하는 몇 줄기의 빛만이 희미하게 창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작품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가득한 정원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알렉시가 남긴 마지막 말처럼 그 가치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