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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를 읽는 세 가지 코드, 사랑∙ 열정∙ 구원
마법의 이야기꾼 파울로 코엘료. 그의 열 번째 장편소설 <승자는 혼자다>가 세상에 나왔고 출간 즉시 44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명성’의 정상에 선 코엘료를 제대로 읽으려면 그의 전작들까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빌 클린턴은 코엘료의 책을 쌓아놓고 읽고 싶다고 했다. <연금술사>부터 최근에 나온 <승자는 혼자다>까지 쌓아놓고 보니 열 권이다. 코엘료는 톨스토이와 닮은 부분이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물음을 어디서든 던지니 말이다. “종교를 선택할 때는 신을 경배하고 그 신비를 나누는 방식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그 자신이어야 한다.”(<흐르는 강물처럼> 177쪽)
코엘료는 성과 속을 구분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인간의 어느 한구석에, 타락한 지상의 삶에도 성스러운 빛의 파편이 한 조각쯤은 숨어 있다. 그것을 찾는 사람이 연금술사다. 그것을 찾는 과정은 구도이자 모험이다. 모험에서 마주치는 위험은 천 일 동안의 안녕과 안락만큼 가치가 있다. 모험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이 가진 열정이다. 베로니카(<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살아 있는 순간에 감사한다. 생에 대한 사랑이 바로 열정이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는 21세기에 환생한 여자 예수다. 예수 또한 마녀처럼 2천 년 전에는 세상의 진리를 일깨우는 자였으나 인간에게 배척받았다. <11분>은 열정이 어떻게 깨어나며,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열정은 내 속의 낯선 타인을 변화시키는 사랑이기도 하다.

코엘료는 말한다. 사랑 혹은 열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사랑은 태초에 빛이 존재한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막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바람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너처럼 멀리서 만물을 보는 것도 아니지. 사랑은 만물의 정기를 변화시키고 고양시키는 힘이다. 처음으로 그 힘을 느꼈을 때, 난 그것이 완벽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모든 피조물들의 반영이며, 만물의 정기에도 투쟁과 열정이 있다는 걸 곧 깨달았어. 만물의 정기를 일깨우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야.”(<연금술사> 242쪽)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들어준다’는 것은 코엘료만의 생각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에 의해 신흥 종교처럼 전 세계를 강타한 <시크릿>의 비밀이며, 2천 년 전 예수가 한 말이다. 예수는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고 했다.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코엘료의 신간 <승자는 혼자다>는 사랑을 간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미 잃어버린 뒤에 다시 구하는.

천사가 악마가 되는 이유 주인공은 천사였으나 악마의 우두머리가 된 인물이다. 러시아 모바일 시장의 대부 이고르는 용병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해서 살기 위해 적을 죽이기도 했고, 사업을 하기 위해 매춘업자들과 결탁하기도 했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비열한가 탄식하며,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 사랑하는 에바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선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그가 신처럼 ‘절대 선’이 되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에바는 이고르가 ‘절대 악’으로 보인다. 그들이 가난하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시절에 사랑은 고통을 승화시켜 지옥 속에서도 천국을 바라보게 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과 돈을 얻는 순간 이고르가 건설한 천국은 지옥이 되었다. 에바가 그를 떠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누구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에게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와는 살고 싶지 않은 법이다. 에바는 자신을 좋아하는 디자이너 하미드를 따라 프랑스로 도망간다. 4년 뒤 이고르는 그녀를 찾아 영화제가 열리는 칸으로 간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하고자 한다. 에바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비열한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애초에 선한 것이 아니었던가? “선한 의도, 미덕, 올바름.이것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승자는 혼자다> 2권 46쪽) “선을 위한 죄악은 미덕이며, 악을 위한 미덕은 죄악에 불과하다.”(<승자는 혼자다> 2권 46쪽)
선이 악이 되는 것, 천사가 악마가 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이고르는 에바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자신과 살 때 지저른 에바의 부정까지도 용서하리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2권 47쪽)다. 망각은 고통을 잊게 하는 선물일지는 모르나 용서는 인간의 몫이 아니다. 에바와 하미드가 어떤 신분이든 그들은 간통을 함으로써 한 인간을 배신했다. 신은 루시퍼의 분노를 피하게 보호하지 않았다. 신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희생양, 타락한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 인간은 분수에 넘치게 사랑해서는 안 된다. 99.9%의 사랑은 99.9%의 분노로 돌아올 수 있다. 완전한 사랑과 용서는 신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완전을 지향하는 인간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든, 상대방에게든. 이고르는 분명 에바를 지나치게 사랑했다. 이틀 사이에 영화 제작자 등 네 명이 살해된다. 세계적인 영화 제작자는 애초에는 B급 영화제작자로 마약 조직의 자금 세탁책이 된 이후 그들의 돈으로 출세한 인물이다. 스타는 함량 미달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 하미드 또한 권력을 손에 쥔 순간부터 재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억압한다. 타락은 누구에게나 한순간이다.
“두꺼비 한 마리를, 살고 있던 호수의 물과 함께 용기에 넣어 불을 지피면 꼼짝 않고 있다는군. 녀석은 온도가 점차 올라가는 것, 즉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지 않는 거지. 그러다가 물이 끓으면 몸이 삶아져서 퉁퉁 부풀어올라 행복하게 죽는 거야.”(<승자는 혼자다> 1권 41쪽) 그들이 누리던 세계는 바벨탑처럼 파괴된다. 눈물이 빗물에 섞여 사라지듯이, 한 인간이 죽을 때마다 체험한 것, 우주의 한 부분도 종말을 맞는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떻게 올까? 이고르를 구원한 사람은 첫 번째 희생자다. 가난한 포르투갈 처녀를 죽이고 나서 이고르는 에바가 처녀의 목숨만큼 가치 있는 여자인지 자문하게 된다. 희생자는 순결했고, 희생을 부른 여자야말로 그의 천국을 부순 파괴자다. 이고르는 에바를 용서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수정한다. 연쇄살인은 에바가 최종 목표가 된다. 에바와 하미드까지 여섯 명을 살해한 그는 7일째 되는 날 신이 안식일을 가진 것처럼 파괴를 멈춘다. 이고르는 희생양이 된 그 검은 눈썹의 포르투갈 천사가 언제까지나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승자는 혼자다>의 마지막 문장은 “승자는 혼자가 아니다”이다. 코엘료는 죄인을 결코 홀로 두지 않는다. 인간은 살기 위해 구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배신을 당해본 사람은 이고르가 승리하기를 원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밀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사람은 분명 죄인의 편이다. 아마도 우리 마음의 루시퍼 또한 희생양으로 인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최혜경, 김수영(시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