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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 다실 갖기]소설가 한승원의 다실 예찬 아들딸이 귀여우면 그들에게 茶를 가르쳐라
백성이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는 망하고,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는 흥한다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말했다. 술은 마약과 같아서 사람을 취해 흔들리게 하고 본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많이 마시면 사람을 발광하게 한다. 그것이 사람 자체를 마셔버린다. 더욱 많이 마시면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버린다. 이 나라에 술 판매량이 해마다 늘어간다는 것은 국민 전체의 이성이 혼몽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광기 어린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차는 혼몽한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 침착하게 하는 음료다. 그것은 술과 정반대 쪽에 서 있는, 인류 최고의 선약仙藥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술과 차의 역사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약 옆에는 반드시 깨어나게 하는 선약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차는 도를 닦는 스님이 깨달음의 각성제로 마셔왔다. 그것은 피를 맑게 하고, 속에 들어 있는 미네랄이 항암 작용을 하고, 이뇨 작용을 한다. 노화를 방지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은 내장을 씻어주고, 소화를 촉진한다.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에게는 아주 좋은 선약인 것이다.
‘다반사 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주변에 흔히 많이 있는 일’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밥과 차를 늘 곁들여 먹고 마셔왔고, 차를 밥 먹듯이 자주 마셔왔으므로 그 말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식후에 차가 없으면 숭늉을 대신 마셨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은 차 대신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동動적이라면 차는 정靜적이다. 커피가 가볍게 간단히 빨리 마시는 음료라면, 차는 뜨거운 물에 넣어놓고 잠시 동안 우러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사유하면서 마시는 음료다. 커피가 빨리빨리의 경박한 문화를 이끌어간다면, 차는 느림과 사유의 그윽하고 향기로운 문화를 이끌어간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속도감 있는 삶만 가르친다. 텔레비전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러하고,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이라는 것이 그러하고, 디지털화된 모든 삶이 그러하다. 우리 아이들은 기다림을 모른다. 솥에 밥을 안쳐 불을 지펴 익힌 다음 뜸들일 줄 모른다. 무엇이든지 즉석에서 해결하려고 든다. 이메일을 보내놓고는 저쪽에서 받았다는 연락이 오기 전에, 미리 저쪽에서 받았는지 어쨌는지 수신을 확인할 정도로 성급하다. 모든 아이가 덜렁이처럼 들썽거리면서 자라므로 우리 문화는 덜렁이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소인 근성(냄비 근성)이 있는 민족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한다. 이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성급한 행동을 하도록 길들여져왔기 때문이다.

21세기로 들어선 우리 삶은 1960~ 80년대에 비해 많이 넉넉해졌다. 경제적인 어려운 고비를 무수히 넘기면서 한 단계씩 상승하고 있다. 우리 삶이 더 나은 단계로 진입하려면 냄비 근성, 조급한 성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느긋한 품성을 길러야 한다. 깊고 높고 넓게 사고하고, 경박하지 않게 천천히 행동함으로써 더욱 질 좋은 자아를 형성하고, 더욱 질 좋은 삶을 디자인하려면 우리의 몸짓과 말하기를 천천히 사려 깊게 하는 법을 길들여야 한다. 그렇게 길들이기 위해‘함께 어우러져 차 마시기’를 활용해야 한다.
차는 향기와 맛을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음료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재미있고 유현하고 의미심장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것을 ‘다담茶談’이라 한다. 다담은, 선승들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함께 도를 닦는 동료 사이에, 혹은 스님과 신도 사이에 주고받는 가르침과 깨달음의 말이다.
우리 가정에 가족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방을 만들어야 한다. 방을 따로 만들지 않으려면, 식탁 한쪽에 소박한 차 쟁반과 차와 다구들을 놓아두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텔레비전을 끄고 마주 앉아 차를 마셔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딸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향기로운 다담을 주고받아야 한다.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 응접실에 책이 없으면 그 집은 영혼이 없는 집안이다. 다탁과 차와 다구들이 없으면 대화와 소통과 사유思惟가 없는 집안이다. 다탁 앞에 둘러앉아 다담을 나눈다는 것은 둘러앉은 구성원 사이에 통섭 通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통섭은 서로의 사이에 깊은 만남과 드높은 사귐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깊고 높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고, 그 영향은 서로의 존재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상승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당신에게 권한다. 당신의 아들딸이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라면, 차분하고 느긋하고 사리 분별을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통섭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진정으로 도와주려면 조용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한다. 다탁을 앞에 놓고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조용조용히 다담을 나누어야 한다.
흔히 ‘차와 선禪은 한 가지 맛’이라는 말이 있다. 선이란 삶의 순리와 순수한 심성을 깨치는 차원 높은 학습이고, 가식과 탐욕의 껍질을 벗고, 참된 나의 본성(본래면목)을 발견하려는 공부인 것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 잠깐 다탁 앞에 앉아 자신을 돌아보고, 혼몽해진 내면을 맑은 정신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 아들딸들에게 자기 내면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연습을 자꾸 시켜야 하는데, 차 마시기를 통해 그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한승원(소설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