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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사람들] 네 일도 내 일처럼 돕는 이웃이 있어 좋다! 이웃이 있어 좋은 성미산 마을 사람들
서울시 성산・망원・서교・합정동 일대에 ‘성미산 마을’이라는 별칭 아래 자꾸만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느리, 제비꽃, 현영, 가림토 등 다양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이 동네 사람들은 날로 깊어만 가는 ‘정’에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스스로 정겨운 이웃을 만들어가는 성미산 사람들이 그리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아파트가 도시를 빽빽이 채우는 동안 삶의 풍경이 참 많이 바뀌었다. 이웃과의 끈끈한 정이 사라지고 내 아이만, 내 식구만 챙기기 바쁘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한 강의에서 “자기 새끼만 아는 축생이의 시대가 왔다”라고 요즘 세태를 한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다. 다소 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말이지만 초등학생조차 아파트 평수를 따져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우러져 사는 삶을 잊은 건 사실인 듯하다. 이런 세상에서 어릴 때 누렸던 마을 공동체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마을’을 만드는 어른들이 있다. 그것도 서울에서 말이다. 어려운 일은 다 같이 힘을 모아 풀어내고 기쁜 일이 있으면 잔치를 벌이는, 그 옛날 마을을 꼭 빼닮은 그곳은 ‘성미산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도시에서 성미산 마을은 함께 어울려 사는 기쁨과 행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동네다.


이상선, ‘성미산 사람들’ 시리즈. 왼쪽부터 ‘하린이네’ ‘정우네’ ‘혜성이네’

마을 어른들이 같이 키우는 아이들 겉으로 드러난 성미산 마을 풍경은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눈과 귀를 열고 10분만 골목을 거닐다 보면 금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제비꼬~옻! 어디 가?” “느리구나! 지금 미니샵 가고 있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정겹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모습이 동네 곳곳에서 포착된다. 게다가 자세히 들으면 서로를 부르는 이름도 심상치 않다. ‘철수 엄마’ 또는 ‘영희 씨’처럼 일반적인 호칭이 아니라 제비꽃, 느리, 구름, 가림토 같은 고유의 닉네임으로 부른다. 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나이, 직업, 사는 곳’ 같은 기본 정보가 오히려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서로를 쉽게 부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성미산 마을은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 만든 곳이 아니다. 약 15년 전 이곳에 살던 몇몇이 모여 어린이집을 만든 게 마을의 시작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참여하려는 이가 늘었고, 내친김에 힘을 합쳐 성미산 대안학교까지 만들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육아 문제로 이사 오는 이들이 많은데 ‘까치’(이상선 씨)가 아이 때문에 이 마을에 온 첫 케이스다. 화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마을 주민들 모습을 그려 ‘성미산 사람들’ 시리즈를 전시하기도 했다. “2004년, 아이를 위해 대안학교를 찾던 중 우연히 성미산 대안학교에 대해 알게 됐어요. 아직 설립 전이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솔깃해 마을에 방문했죠.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바로 이사했어요.” 그 후 함께 학교를 짓고 미술 관련 수업을 맡아 직접 가르치기도 하며 학교 일에 적극 참여했다.

1 두레생협에서 판매하는 민중 무역으로 들여온 올리브 오일. 먹을 것 하나를 살 때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담겼다.


2, 3 어린이집에서 흙장난하며 뛰어노는 아이들은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난다.


4 ‘작은 나무’에서는 제철 과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아이들을 반긴다. 
5 설계할 때부터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든 성미산 대안학교.


아이에 대한 관심은 부모들 사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성미산 학교 선생님인 ‘현영’(정현영 씨)은 마을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요즘 애들의 인성 교육이 가정의 몫이냐, 학교의 몫이냐’라고 따지는 건 이 마을에서 의미 없어 보인다. “한 반에 15명 정도로 학생 수가 적고, 12년 과정이에요. 그래서 담임이 끝나더라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오고 가며 계속 학교에서 마주치는 거죠. 그러니 저절로 관심이 갈 수밖에요.” 이러니 선생님들은 아이들 중 누구 한 명도 뒤처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이유로 생겨난 것이 학교 안의 ‘미니샵’이다. 미니샵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수진이와 정찬이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수년에 걸쳐 지켜봤어요. 그 결과 수진이는 한 가지를 집중력 있게 잘하고 성찬이는 손으로 만드는 걸 잘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수진이가 밀랍초를 만들고 성찬이가 요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거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미니샵에서는 빵을 만들 줄 아는 학부모와 초를 만들 줄 아는 학부모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지도한다. 부모님, 선생님 역할이 따로 있지 않고, 누가 뉘 집 아이인지 가르지 않고 다 함께 보살피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정서는 육아 품앗이로 이어진다. 어린아이가 있는 주부에게 가장 난감한 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 맡길 곳이 마땅하지 않을 때다. 하지만 성미산 마을에서는 문제없다. 이웃에 “우리 애 좀 봐주세요!” 하고 SOS를 치면 된다. 내 아이를 봐줬으니 다음에 꼭 그 집 아이를 봐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형편이 되는 사람이 기꺼이 돌봐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미산 어린이집과 성미산 학교에 각각 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느리’(김우 씨)는 아이에게 “우리 마을 사람들 다 좋아요”라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한다. 영어 공식,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더불어 사는 행복을 알게 해주고픈 어른들의 바람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6 성미산 학교에서는 방학 동안에도 각종 수업을 진행한다. 부모들은 학교에 아이를 맡긴 후 안심하고 출근한다.


7 성미산 마을 극장. 다 함께 문화・예술을 생산하고 즐기기 위해 뜻을 모아 세웠다.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연극을 하기도 하며 어른신들 연극 동호회 활동이 이루어지는 등 다양한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생활도 공유하는 가족 같은 이웃이 되다 성미산 마을에는 온 동네 소식이 다 모이는 카페 ‘작은 나무’가 있다. 이곳을 그저 유기농 원두로 만든 커피와 수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카페 한 귀퉁이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과장 조금 보태서 온 동네 아이들을 다 만날 수 있다. 보통 카페는 어른들의 전유물이지만 여기는 조금 다르다. “화장실~!” 하고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아이, “악! 더워요! 물 좀 주세요!” 하며 의자에 걸터앉는 아이, “내가 아이스크림 쏜다! 저희 아이스크림 두 개 주세요” 하며 친구와 손잡고 가게로 들어서는 아이. 어른만큼 아이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카페이다. 때로는 마을 사진가를 위해 갤러리로 변신하고 마을 밴드를 위한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카페 작은 나무는 마을 어귀 나무 아래 같은 곳을 구상하고 만들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문턱이 없다. 이 카페는 항상 마을 사람들 몇몇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곳, 지나가다 별일 없이 들러 쉬어 가는 곳이다. 겉모습은 요즘 유행하는 도시의 카페가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예전 마을마다 하나씩 있던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계신 동네 슈퍼와 같다.


1 카페 작은 나무 뒤편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마을 소식을 알리는 게시판이 걸려 있다.
2 성미산을 오르는 길. 10분이면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3 마을 지역 화폐 ‘두루’. 아직 되살림가게와 학교 안 미니샵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마을 어디에서든 두루를 쓸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중이다. 
4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노력의 결과다.


이처럼 그동안 성미산 마을의 주요 관심사는 자라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른들이 아이들 ‘핑계’로 더 열심히 동호회를 만들고 ‘마실’을 다니는 등 끈끈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아이들을 보살피다 가족처럼 돈독한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가족을 위한 먹을거리 문제, 매일 상에 올릴 반찬 등의 고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같이 살림을 하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바쁜 맞벌이 부부를 위해 반찬을 해주는 ‘동네부엌’, 언제든 친환경 제품과 유기농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두레생협’이 이렇게 탄생했다. 게다가 쓰던 물건도 나눠 쓴다.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되살림가게’에 내놓는다. 되살림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딸기’(장원희 씨)는 주민들의 가게 이용률이 상당히 높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이 오세요. 애들은 금방금방 자라서 필요한 게 많잖아요. 남들이 쓰던 거라서 꺼리느냐고요? 전혀 없어요. 다 같은 가족인걸요. 혹시 찾는 물건이 가게에 없으면 저희가 구할 수 있도록 동네에 소문을 내주는 역할도 하지요.”
요즘 성미산 마을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온 마을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놀이의 장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공동 육아 1세대들이 성년이 된 해라서 마을 어른들이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성인식을 열어주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하는 경매도 재미있다.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그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음악 선생님이 들려주는 음악 청취권’, 정해진 시간 동안 마사지를 해주는 ‘샨티의 마사지권’이 경매로 나오면 서로 손을 든다. 이런 공동의 축제는 어울려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요, 사람들 간의 도타운 정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5 두레생협은 점장님의 따뜻한 관심과 시원한 물 한 잔까지 서비스받을 수 있는 곳.


6, 8 되살림가게 안의 또 다른 가게인 한땀두레. 면생리대, 베개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7 되살림가게에 도착한 물건은 다시 다른 이의 소중한 물건이 된다.


마을 사람이 되는 법은 따로 없어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거창한 기대를 품고 이 마을로 이사 왔다가 적응하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하지만 ‘마을 사람’이 되는 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말한다. “연극 동아리나 사진 동아리 등 취미에 맞는 동아리에 가입하는 법도 있고, 동네 배움터 ‘꿈터’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방법도 있지요. 아니면 동네부엌이나 생협에 들러봐도 돼요. 그렇게 오고 가며 인사하면서 이웃이 되는 거죠. 여기선 누가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며 챙겨주지 않아요.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마을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 성미산 마을은 조합원이 2천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조직이 커지면 소통이 어려워지고 참여가 줄기 쉽다. 그래서 자칫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될 우려가 있어 더 자주 토론하고 얼굴을 맞대려고 노력하는 중이란다. 도심 속 성공한 마을로 꼽히는 성미산 마을. 어우러져 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도시에서도 충분히 깊은 정을 나눌 이웃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후 아이가 자라서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계속 남길 바란다

성미산 마을은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야트막한 성미산을 둘러싼 성산·망원·서교·합정동 일대를 말한다. 따라서 지도에서 성미산 마을을 찾을 수는 없다. 성미산 마을을 좀 더 알고 싶다면 주요 장소가 몰려 있는 성산동에 가보는 것이 좋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서 망원우체국 사거리까지 올라와 우회전하면 ‘작은 나무’가 나온다. 그 주변으로 극장, 학교, 어린이집 등이 모여 있다. 근처에 위치한 성미산을 10분만 올라가면 서울시에서 지정한 우수 조망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이 마을을 찾는다면 놓치지 말 것.
작은 나무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으로, 수진이가 만든 밀랍초와 성찬이가 만든 쿠키를 구입할 수 있다. 마을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와 책도 이곳에 가면 모두 볼 수 있다. 문의 02-3142-0414
성미산 어린이집 십시일반 거둔 돈으로 주택을 사서 어린이집으로 꾸민 공동 육아 어린이집. 성미산 어린이집 외에 우리 어린이집, 참나무 어린이집, 또바기 어린이집이 있다. 문의 02-6082-6060
성미산 학교
방학 동안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저학년 아이를 돌보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한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문화 수업도 수시로 연다. 문의 02-3141-0507
성미산 마을 극장 마을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고자 스스로 세운 극장. 한 달에 한 번 좋은 영화를 선정해 ‘밤마실 영화관’을 여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문의 02-322-0345
동네부엌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집에서 만든 반찬처럼 조리한다. 한 달에 8만 원을 내면 일주일에 세 번, 두 가지 반찬을 만들어준다. 먼 거리는 배달도 해준다고. 문의 02-325-3700
마포 두레생협 조합제로 운영하지만 조합원이 아니어도 물건을 살 수 있다. 유기농 우리 먹을거리 외에 민중 무역으로 들여오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오일, 필리핀 설탕 등도 만날 수 있다. 문의 02-3141-0518
되살림가게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을 파는 동네 장터. 가게의 판매 수익은 되살림가게 운영비로 쓰며 마포 희망 나눔에 기부한다. 문의 02-332-9550

김현정 객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