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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 꼭 S라인만 바라는 건 아니다 한없이 물컹해서 뭉클한 아내 몸
사람들은 대개 남들이 보는 모습보다 자신이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혹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도 그렇다. 아내는 남들이 보는 것보다 자신의 몸매를 더 비관적으로 평가한다. 샤워를 한 후 거울에 몸을 비춰 볼 때나 몸에 꼭 끼는 옷을 입을 때 아내는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살이 너무 쪘다느니, 옷이 하나도 맵시가 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아내가 그런 소리를 시작하면 남편은 얼른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는 원성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게 분명하니까.
그날도 그랬다. 무더웠다. 숨구멍으로 나온 땀이 흐르지는 않고 마치 얇은 막을 이룬 것처럼 끈적끈적한 불쾌감으로 온몸을 감싸던 날. 아내는 샤워를 말끔히 하고 외출 준비를 한다. 남편은 TV를 보며 빙글빙글 아내를 쳐다본다.
“몸매 좋은데.” “웃기시네. 군살이 많아서 보정속옷 입으려 하네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다. 남편은 그런 옷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실제로 본 것도 처음이다. “정말 이 옷을 입으려고?” “그럼, 입지도 않을 옷을 사는 사람도 있나?”
맙소사.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갈비뼈가 욱신거리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TV에선 갑옷 입은 군사들이 서로 싸운다. “무슨 조선시대 갑옷도 아니고….” “날씬해지기만 하면 되지 뭘 더 바라나?”
아내는 웃으며 갑옷을 착용한다. 보정속옷을 입고 난 후 아내의 군살은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인다. 풍선효과라고 해야 할까. 그 작고 딱딱한 갑옷 속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살이 비어져 나온 것이다. 아내는 온갖 기기묘묘한 자세를 취하더니 마침내 그 살을 갑옷 속으로 수납한다. 그렇게 힘들게 수납하느라 조금 전에 샤워한 아내의 몸은 땀투성이다.
그런 아내를 보고 있자니 남편은 속상하고 화가 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울컥 치밀어오른다.
“지금 뭣하는 거야? 이 날씨에 쪄죽을 일 있어? 당장 벗어!”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에어컨이나 좀 켜봐요.”

아내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다시 세수를 한다. 에어컨 바람에 몸이 좀 식었는지 아내는 공들여 화장을 하고 몸에 꼭 끼는 옷을 입고 명랑하게 웃으며 외출한다.
아내가 나간 후 남편은 계속 TV를 본다. TV 속에는 그룹 ‘소녀시대’가 나와서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 남편은 TV를 공부하듯 열심히 본다.
외출했던 아내는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옷부터 벗는다. 아내는 자신의 살을 맘껏 풀어놓는다. 답답한 갑옷 속에 갇혀 있던 아내의 푸근하고 물컹한 살이 공기 속으로 나온다. 비로소 아내는, 아내의 몸은 숨을 쉰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좀 살 것 같은 아내는 다시 샤워를 하고 그리고 아내의 실내용 유니폼인 편한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를 입는다.
“힘들지?” “아니, 하나도 안 힘들어.” “몸 그만 괴롭히고 이제 저거 입지 마. 안 입어도 당신 충분히 날씬해.” “누군 뭐 저런 옷 입고 싶어서 입나. 내 몸이 누구 때문에 망가졌는데. 다 당신하고 애들 때문이야.” “알아.” “알긴 뭘 알아. 소녀시대 나온다고 아주 TV에 코를 박고 보면서.”
부부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먹는다. 아내는 배도 부르고 몸도 편한지 거실에서 잠이 든다. 잠든 아내의 몸은 무방비다. 살들이 자유롭게 중력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그렇게 잠든 아내의 몸 뒤에 남편도 눕는다. 아내의 몸은 눈으로 볼 때보다 손으로 만질 때 훨씬 더 아름답다. 그 한없이 부드럽고 물컹한, 뭉클한 덩어리. 그리고 살의 흐름. 긴 여름 해가 지고 어둠이 오듯이 조용히 그러나 부지런히 남편의 살이 아내에게로 흘러간다. 

(왼쪽) 허경원, '아줌마 사계절' 중 봄, 2009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