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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감독 4인의 동거동락 同居同樂 한 지붕 네 남자, 그들이 사는 법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CF 감독 4인을 만났다. 촬영 현장에서 선후배로 만나 가족 같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행운아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사람과 성공이라는 보석을 모두 얻었으니 말이다. 한지붕 아래 4인4색의 개성 넘치는 공간에서 찾은 것은 다름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 네 잎 클로버처럼 귀한 그들의 인연이었다.

감독과 조감독의 관계로 만나 ‘따로 또 같이‘ 한 지붕 아래서 각자의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왼쪽부터 김종원 감독・서정완 감독・이지형 감독・조원석 감독)은 선후배라기 보다 형제에 가까운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서정완 감독의 방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 주 프로덕션 대표 김종원 감독
그가 지금까지 제작한 광고는 몇 편이나 될까? 어림잡아 8백 편, 엄청난 양이다. CF 감독으로 세상에 그를 알린 것은 1980년대 말, 영화배우 주윤발을 모델로 세웠던 밀키스 광고다.“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같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캐치볼을 하고 있는 삼성 래미안 광고.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이 영상이 그의 작품이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광고 같지 않은 광고,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 작업을 주로 한다. 근작으로 포스코 기업 광고‘뻥튀기’ 편, 삼성자동차 SM5 ‘10년이 지나면’편, SK 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 봄’ 편 등이 있다.


(오른쪽) 리틀 주 대표 서정완 감독
“차 타고 다닐 때 라디오를 들어요.”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청취자 사연이 아이디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실제 경험해본 것이 표현하기 가장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 또한 좋은 소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의 각축전이 전쟁에 가깝던 시절, 개그맨 이창명이 바다 한가운데서 “자장면 시키신 분~” 하고 외치던 광고를 기억하는가. 무명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압권인 애경 퍼펙트 ‘웃어요’ 시리즈, 차범근과 김선아의 007 ‘집 전화’ 시리즈, 가수 비가 화상 통화로 매니저를 속이고 라면을 끓여 먹는 SK텔레콤, 영화에서 도 볼 수 없었던 장동건의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준 ‘맥스’ 맥주 광고 등이 그의 작품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엉성하게 받아 적은 약도를 이리저리 확인하며 논현동 골목으로 들어서니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릴 적 친구네 집이 있던 동네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간다고. (중략)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20여 년 만에 우연히 찾게 된 골목길에서 그룹 동물원의 ‘혜화동’을 읊조리다 생각해보니 지금 동물원 멤버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또 다른 동물원, 주 ZOO 프로덕션 출신의 CF 감독 네 명이 바로 그들이다.
잿빛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멋스러운 4층 건물에는 네 개의 CF 프로덕션 사무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면 경쟁 업체들이 모여 있는 격이니 이들의 동거는 위험천만한 적과의 동침 같지만, 알고 보면 그들의 공존은 3대가 모여 사는 씨족 공동체에 가깝다. “저를 비롯해 모두들 1층에 있는 주 프로덕션 김종원 감독님의 조감독 출신이에요. 제가 2층을 사용하고 3・4층의 친구들은 제 조감독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모두 각자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지요.” 서정완 감독의 말이다. 함께 건물을 짓고 지금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어느덧 2년. “남의 빌딩에 세들어 있을 때도 언제나 함께였어요. 임대 만기가 되어 이제 흩어져야 하나 생각하다 함께 집을 지었지요.” 한지붕 아래 모여 옹기종기 각자의 둥지를 튼 이들은 주 프로덕션 김종원 감독, 리틀 주 서정완 감독, 우라늄 238 조원석 감독, 꽃바람 이지형 감독이다.


(왼쪽) 우라늄 238 대표 조원석 감독
“부장 싫으면 안 보면 되고~ 그러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 지난해 광고계 최고의 히트작은 전 국민을 작사가로 만들었던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 ‘되고 송’ 시리즈가 아닐까? 바로 조원석 감독의 작품이다. 김태희, 원빈 등이 등장했던 LG사이언 아이디어 시리즈, 네이버 ‘세상은 자란다’ 편, 생각대로 T 김건모・박태환 편, 도넛 위의 슈거파우더와 카푸치노의 하얀 우유 거품이 바람을 타고 눈이 되어 내리던 날 연인이 다시 만난다는 던킨 도너츠 ‘ 눈 오는 날’ 편 등이 있다.



(오른쪽) 꽃바람 대표 이지형 감독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가 보내준 쇼릴을 보다 미친 듯이 웃고 말았다. 그는 서정완 감독의 뒤를 잇는 유머 광고의 달인이다. 한때 ‘심각하게’ 연출을 그만두고 개그맨이 되는 것을 고민한 적도 있었단다. 롯데리아 크랩버거 ‘니들이 게맛을 알아?’ 편, 황보람의 연기가 돋보였던 한국 야쿠르트 왕뚜껑‘치마’편, 물안경과 수영모를 벗은 박태환을 못 알아보는 코치님이 등장하는 SK텔레콤‘박태환 완전정복’편, 장미희와 이문식의 코믹 연기가 돋보이는 LG 텔레콤 ‘오주 상사’ 시리즈 등이 그의 작품.


1 인더스트리얼 디자인과 빈티지 소품으로 가득한 서정완 감독의 사무실. 콘크리트 블록을 배경으로 멋스럽게 진열한 책장은 이탈리아에서 직접 구입해 온 것이다.

“건축가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제일 싫어한대요. 돈은 없으면서 어디서 본 건 많아서 해달라는 게 많다고. 하하하.” 설계는 공간 건축에서 맡았다. 그야말로 보고 다닌 것도 많고 감각 면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들이니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오갔을 것인가. “비용에 한계가 있으니 달리할 수도 없었어요. 인테리어는 각자 알아서 취향대로 꾸미는 것으로 결론 내렸죠.” 노출 콘크리트 마감을 기본으로 군더더기 없는 공간에서 그들은 각자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몄다. 1층에 자리한 김종원 감독의 사무실은 바닥에 원목 마루를 깔고 천장도 부분적으로 원목 패널로 마감해 노출 콘크리트 공간에 온기를 더했다.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은 가죽 소파와 오토만으로 꾸민 응접 공간은 중후한 멋을 품는다.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서면 한쪽으로 작은 건물이 있다. 직원들을 위한 카페 ‘사월의 창’이다. 2층으로 오르면 서정완 씨의 사무실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가구와 빈티지 소품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 이탈리아에서 직접 구입해 온 것들로 이탈리아 할아버지에게 주문 제작한 테이블, 책장, 야구 글러브 모양의 라운지 체어, 빈티지 장난감 컬렉션…. 천장에 달린 조명등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 3층 이지형 감독의 사무실에는 미드센트리 디자인의 대명사 임스 체어가 즐비하다. 블랙 스틸 패널로 마감한 벽을 배경으로 붉은색 전선을 드리운 디자이너 박진우 씨의 스파게티 조명등이 악센트가 된다. 4층에 있는 조원석 감독의 방으로 들어서니 좌식 공간이 펼쳐진다. 벽을 빼곡히 채운 책장을 배경으로 단을 높인 마루 공간이 서재를 겸한 다실을 닮았다.



2 예전에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던 김종원 감독의 브라운관 모니터.
3 촬영 현장에서 감독의 필수품인 메가폰. 이지형 감독의 방에서 발견한 것으로 디자인이 예뻐서 일본에서 구입한 것이란다.
4 김종원 감독이 10년도 넘게 사용해 온 디렉터스 체어. 지금은 그의 사무실 입구 한 편을 장식하고 있다.
5 책상 한편에서 발견한 연필 뭉치.
6 좌식으로 꾸민 조원석 감독 사무실은 검은색 벽돌 마감이 특징이다


이들 4인방의 남다른 인연은 광고계에서도 유명하다. 그 중심에는 김종원 감독이 있다(김종원 감독의 주 프로덕션은 감독사관학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신인 감독을 배출해냈다). “조감독을 하다 보면 시기가 와요. ‘너 이제 감독해도 되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은 날아갈 듯하지만 누가 일을 주나요? 그때 선배 감독의 도움이 필요해요. 선배가 후배에게 일을 연결시켜주지요. 입봉 후에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선배의 도움이 절실해요. 후배는 그렇게 감독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어느 순간 ‘후배가 벌어 오는 돈을 왜 내가 갖지?’ 그런 생각이 들 때 ‘너 이제 독립해라’ 하는 거예요. 이때 선배가 독립 자금도 빌려주고요. 벌어서 갚으라는 거지요. 우리는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함께 있어서 좋은 거? 별로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던 서정완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다. 김종원 감독에서 서정완 감독으로, 서정완 감독에서 이지형 감독으로 이어진 입봉과 독립의 과정은 이랬다. 사회에서 선후배로 만나 제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다 해도 이렇듯 후배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관계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가벼운 세 치 혀끝과 실천력 없는 펜 끝에서야 모를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야 윗사람이니 편하지요. 광고계도 위아래가 세요. 많이들 불편할 텐데 나랑 놀아주는 것이 고맙지. 내가 별로 잘해준 것 같지도 않은데…. 특히 서 감독 같은 경우는 대학교 4학년 때 아르바이트하러 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20년이 되었어요.” 형제가 없는 김종원 감독에게 그는 친동생 이상이란다. “항상 내가 지를 챙겨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가 나를 챙겨요. 참 웃긴다 싶은데, 좋아요.”
“이 업계에서 함께 있다는 것이 사실은 현실적이지 않아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떠나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어차피 각자 일을 하는 건데…. 어렵고 속상할 때 이야기 상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모두들 양보라는 걸 알아요. 한편 냉정해야 할 때는 냉정하게 판단하고요.” 서로 섭섭한 마음이 쌓이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절하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서정완 감독. “몇 해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CF 감독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데 거기서 올해의 감독 상을 뽑아요. 첫해에 김종원 감독님이, 다음 해에 서감독님이 상을 받았어요. 모두가 인정을 하는 거죠. 그런 선배들에게 배우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프로 스포츠계처럼 스카우트 제의가 많은 광고계. 서정완 감독 아래서 직원 감독으로 일하던 시절, 뿌리치기 힘든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 번 받았지만 이지형 감독은 선배들 곁에 남았다.
“이 건물에 계신 감독님들 모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분들이지요. 우리나라 CF의 10% 이상이 이 건물에서 만들어질걸요? 주 프로덕션에서 9개월간 조감독을 했던 인연이 여기까지 왔어요. 정말 우연찮게 좋은 분들 아래 들어가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해주셨으니….” 모두들 바쁜 일과를 보내다 보니 집에 갈 때 주차장에서 마주치는 게 고작인 날도 허다하지만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는 조원석 감독이다.

7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이 필름 편집기다. 2년 전 이 집을 짓고 이사 왔을 때 김종원 감독의 선배가 선물한 것이다.
8 이지형 감독의 사무실 풍경.


그림을 보기 전에 어찌 화가의 화풍을 논할 것이며 글을 읽어보기 전에 어찌 작가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 TV를 켜면 볼 수 있는 그들의 작품을 한 가지씩 들어본다. 바이올린 선율을 배경으로 하는 용재 오닐과 안성기의 맥심 아라비카 100(김종원 감독), 영화배우 장동건이 시상 소감으로 ‘디비디 바비디부’를 노래하는 생각대로 T(서정완 감독), 여배우 장미희의 코믹 연기가 돋보이는 LG텔레콤 오주 상사 시리즈(이지형 감독),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다는 현대자동차 광고(조원석 감독)…. 우리는 오늘도 그들이 만든 광고 영상을 수십 번도 더 보았을지 모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CF 감독은 3백여 명. 그중 일 년에 한 편 이상 광고를 찍는 감독이 채 1백 명이 되지 않는다. 한 달에 두 편 이상 찍는 사람이 스무 명, 네 편 이상 찍는 경우가 대여섯 명 내외란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들은 광고계의 진정한 기린아가 아닌가!
맏형 같은 존재 김종원 감독은 광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감독 입문 25년 차, 트렌드와 감각을 생명으로 하는 업계 특성상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나이에 후배 감독들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30대 후반까지는 트렌드 광고를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마흔이 넘으니까 자꾸 어색해지는 거예요. 한때는 광고 트렌드를 이끌던 내가 왜 이러지 싶고…. 일에 착착 붙는 느낌이 없으니 이제 이 판을 떠나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나이에 맞는 것이 있더군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 일화를 들려준다. 저녁 때 술집에서 우연히 광고계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놀란 듯 너도 술 마시냐는 거예요. 저도 술 좋아하지만 해가 지면 되도록 광고계 사람들을 안 만나요.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 그들과 함께 놀고 경험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들이 있어요.” 지난 주말에도 친구들과 산에 다녀왔다. 때로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홍대 앞 클럽에 가서 공연도 즐긴다. 얼마 전에는 김반장 공연도 보고 왔다.

서정완 감독은 광고계에서 유머 장르의 대표 주자로 통한다. “옛날에는 유머로 접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정말 독보적이었지요. 하하하. 이제 세상도 바뀌고 웃음 코드도 달라지니 저보다 훨씬 잘 웃기는 사람들 많아요. 그래도 사람들은 저보고 아직도 웃기는 거 찍는 감독이라고 하긴 해요.” 그는 광고가 정말 재미있단다. 재미에 푹 빠져 20년을 달려왔다. 본인이 이렇게 재미있고 좋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겠는가. 그의 화법은 솔직 담백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속이 시원해진다. “내가 배운 것에 비해 고소득 직업이에요. 인생에 공부가 다는 아니라지만 공부한 거에 비해 잘 먹고 잘산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 대목에서 ‘공부 못하고 얼굴만 예쁜 것들이 시집은 잘 간다’는 식의 질투는 하지 말자. 공부 못해도 재주 많으면 된다는 정도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할 듯. 연극영화과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델도 했다. 배우의 꿈도 가수의 꿈도 있었다. “한양대학교 가요제에서 금상도 받았어요. 대학가요제는 3차에서 떨어지고, MBC 탤런트 공채 시험도 봤어요. 이것저것 노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열정과 노력이라는 것은 나와 궁합이 맞는 지점에서 발산되는 법이다. 광고 일을 하면서 ‘잃은 것은 친구밖에 없다’는 그다. “감독으로 자리 잡기 위해 나도 무언가를 버려야 했어요. 이제 평범한 직장인처럼 저녁이 되면 집으로 가고 바깥 세상 사람을 만나요. 우리 딸내미 친구 학부형을 만나든 이웃집 아저씨를 만나든 ‘친구 해도 되겠다’ 싶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요.”

(왼쪽) 사무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서정완 감독의 사무실에는 조명등 위의 잠자리처럼 재미있는 숨은 그림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인정받는 감독이자 존경받는 선배로 자리 잡기까지 김종원 감독과 서정완 감독이 지나온 길을 이제는 조원석・이지형 감독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웃겠구나, 저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생각하고 촬영을 하면 바로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약간 무섭기도 했어요. 잘못 이용하면 정말 큰일이 벌어지겠구나 싶은 거죠.”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조원석 씨. “2007년에는 달력을 펼쳐놓고 날을 세봤어요. 365일 중 361일을 출근했더라구요.” 지칠 때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는 이지형 씨. 어찌 되었든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은 도움을 또 다른 후배에게 대물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공한 감독으로 남는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에 대해 시작도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상 한편에 쌓여 있는 인터뷰 자료와 작품 모음 CD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취재 수첩에 쓰여 있는 ‘15초’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광고는 15초의 미학이다. 15초 안에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15초 안에 한 편의 드라마를 담아내기도 한다. “이제는 무엇을 더하기보다는 자꾸 덜어내게 돼요. 그림에서도 내용에서도요. 하다못해 촬영 컷 수도 줄이게 돼요.” 덜어내고 비우니 집중력이 높아지고 메시지의 힘이 강해지더라는 25년 차 CF 감독 김종원 씨의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대로 더 담으려 하지 말자. 이미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지 않았던가! 그들이라면 15초 안에 승부를 냈을 이야기다.


1 김종원 감독의 사무실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정면에 보이는 작품은 그의 친구인 사진작가 김광수 씨 작품이다.
2 1층 테라스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마련되어 있다. 조원석 감독이 ‘사월의 창’이라 이름짓고 어느 날 간판을 만들어 달았단다.
3 메인 촬영을 위해 앵글을 잡아보다 포착한 순간. 무작정 떠난 여행길, 시골 간이역에서 차 편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몸은 고되어도 마음은 여유로운 여행자의 평화로운 얼굴이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여행길에 함께 갈 친구를 얻었으니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