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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10개국을 대표하는 전통 직물 위대한 유산
인류는 오래전부터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를 가공해 실을 잣고 천을 직조했다. 그 지역의 물, 바람, 흙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고유의 직물을 만들었고, 이는 소중한 유산으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장인이 한 줄 한 줄 짜 내려간 아세안 10개국의 전통 직물. 각국의 풍토와 문화에서 기인한 직조 방식과 디자인이 새롭고 놀라우면서 친근하기도 하다. 아세안을 넘어 인류 공통의 위대한 유산이다.


브루나이 다루살람Brunei Darussalam
카인 트누난Kain Tenunan
옥색 바탕에 금실로 짠 기하학 무늬와 진한 핑크색 꽃무늬가 보석처럼 빛난다. 카인 트누난은 면사나 견사로 짠 바탕에 금실이나 은실, 메탈릭한 실로 기하학 무늬와 다양한 꽃무늬를 짜 넣은 전통 직물을 말한다. 여러 디자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카인 실루방 방시Kain Silubang Bangsi. ‘루방’은 구멍, ‘방시’는 채운다는 의미로, 구멍을 색실로 채워 복잡한 패턴을 구성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다. 카인 트누난은 종교 행사나 궁궐 행사에 입고 가는 의복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캄보디아Cambodia
이카트 실크Ikat Silk
캄보디아의 황금 누에고치에서 뽑은 황금색 실로 직조하는 이카트 실크. 은은하게 빛나는 금빛 바탕에 어른거리는 무늬는 이카트 실크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이카트’는 묶다라는 의미로, 실을 원하는 무늬 구성에 따라 일일이 묶어서 염색한 다음 직조하기에 천에 물감이 번진 듯한 신비로운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이카트 무늬는 오로지 장인의 기억에 의존해 대대로 전해지며, 수작업으로만 만들 수 있다. 이카트 실크는 앙코르 왕조 때부터 주로 왕실 의복을 만드는 데 사용해왔다.



인도네시아Indonesia
루릭Lurik
고대 자바 언어로 선이나 줄무늬(세로)를 뜻하는 루릭은 그 이름처럼 면사로 직조하는 모든 줄무늬 직물을 말한다. 이 줄무늬를 짜기 위해 2천7백 줄 이상의 실을 일일이 직조기에 걸어야 한다. 루릭은 과거에 왕실 의복을 만드는 데 사용했지만, 지금은 트렌디한 일상복 원단으로 재해석해 사용하고 있다. 룰루 루트피 라비비 같은 인도네시아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사라질 뻔한 루릭을 다양하게 디자인해 선보인다. 오른쪽 보디가 입은 것이 전통 루릭이고, 왼쪽 보디가 입은 루릭이 룰루 루트피 라비비가 디자인한 것. 길게 자른 루릭을 위사 또는 경사로 군데군데 넣고 짜서 전통적 줄무늬를 재미있게 변형했다.



라오스 Lao PDR
라오 실크Lao Silk
깊은 전통을 지닌 라오 실크는 뽕잎만 먹고 자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직조한다. 무늬가 정교하고 색 조합이 고급스러운 라오 실크 스카프는 라오스의 대표 실크 회사 멀버리스Mulberries 제품이다. 멀버리스는 2005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콤말리 찬타봉이 1993년에 설립했다. 라오 실크로도 유명하지만 직조 과정의 환경을 개선하고, 직조하는 여성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힘쓴다는 점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말레이시아Malaysia
푸아 쿰부Pua Kumbu
푸아 쿰부는 말레이시아의 사라왁Sarawak에 주로 거주하는 이반Iban족 장인이 직조하는 전통 직물이다. 이반 장인은 ‘꿈을 짜는 사람(dream weaver)’으로 알려져 있다. 직조의 여신 ‘구망’이 그의 꿈에 나타나 직물의 무늬와 모티프를 전달하는데, 이 꿈을 꿔야만 장인으로 인정받아 푸아 쿰부를 직조할 수 있다. 푸아 쿰부의 주요 디자인인 ‘우림의 반딧불’은 복잡한 갈고리와 나선형 무늬가 마치 반딧불의 빛처럼 보인다. 푸아 쿰부는 전통적으로 이반족 롱하우스 공동체의 중요한 축제와 의식에 사용했다. 푸아 쿰부 위에 앉은 코뿔새(hornbill)는 사라왁에 서식하는 여러 종의 새 중에서 이반족이 정신 세계의 메신저로 여기는 신령한 새다.



미얀마Myanmar
로터스 직물Lotus Fabric
로터스 직물은 연꽃 줄기에서 오로지 손과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뽑아낸 섬유로 직조한다. 가늘고 섬세한 섬유를 손으로 굴려가며 긴 실로 만든 다음 물에 담그고 물레를 돌려 원사를 만든다. 재료는 자연에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 재료에서 원사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1kg을 만드는 데 거의 석 달이 걸릴 정도로 귀한 섬유. 나무껍질, 씨앗, 연잎 등 천연 재료로 염색한 로터스 섬유로 짠 직물은 수수하면서 깊이가 있다.



필리핀Philippines
코르디예라 직물Cordillera Fabric
빨간색과 검은색, 원색의 조합이 강렬하고 민속적이다. 코르디예라 직물은 필리핀의 농경문화, 신앙 체계와 관련이 깊다. 직물에서 볼 수 있는 V와 X 모양, 다이아몬드 무늬, 꽃과 나비 무늬는 코르디예라 지역의 전통 무늬이고, 빨간색·검은색·초록색·노란색은 수확과 자연을 상징한다. 코르디예라 지역의 여성은 농사를 짓고 나서 이 직물을 짠다. 쉴 새 없이 손을 놀려 한 줄 한 줄 직조하며 가족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지 않을까.



싱가포르 Singapore
쿠에 타일 직물Kueh Tile Fabric
얇은 면 포플린에 프린트한 반복적인 타일 패턴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한 입 크기의 디저트 ‘쿠에’에서 영감을 받았다. 싱가포르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온레오Onlewo는 다양한 정체성과 이를 바탕으로 구축한 싱가포르만의 문화와 유산, 그리고 다문화를 포용하는 개방성 등 여러 이야기를 담아 직물을 디자인한다.



태국Thailand
인디고 직물Indigo Fabric
인디고 식물에서 추출한 파란색 염료를 사용해 물들이는 태국의 인디고 염색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왔다. 이 기법으로 염색한 실을 다양한 무늬로 직조한 것이 인디고 직물. 예전에는 태국의 싸꼰나콘Sakon Nakhon 지방 사람들이 인디고 염색을 해서 일상이나 의식에 사용하곤 했는데, 그 가치가 알려지면서 지금처럼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베트남Viet Nam
란미아 실크Lanh My A Silk
짙은 검은색과 차르르한 광택이 눈길을 사로잡는 란미아 실크. ‘베트남 실크의 여왕’이라 불릴 만하다. 란미아 실크의 가장 큰 특징인 칠흑빛은 맥누아Mac Nua라는 열매에서 얻는다. 맥누아 열매를 수확해 갈면 칠흑빛이 나는데 여기에 물을 섞어 염색하는 것이다. 실크에 짙은 검은색과 광택을 내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염색하고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건조하기 위해 푸른 들판에 길게 널어놓은 란미아 실크는 그 자체로 장관을 이룬다.


비주얼 디렉팅 서영희 | 세트 제작 노제향 | 자문 문기봉(아세안비즈니스센터 대표)

진행 박진영 | 사진 이건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