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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산책 락고재 컬쳐 라운지 × 이솝

샌달우드, 프랑킨센스, 블랙 페퍼 등 향수의 원재료를 쌓아놓은 방에 햇살이 비추자, 빛의 파장에 따라 향기가 진동했다.
이더시스, 아름다운 존재의 울림
‘옛것을 누리는 맑고 편안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을 추구하며 설립한 락고재문화재단이 우리나라의 문화 체험 공간으로 만든 락고재 컬쳐 라운지 애가헌. ‘사랑하는 가족의 집’이란 뜻으로 우리 식문화와 골동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곳은, 몇 해 전 서울시 우수 한옥으로 선정될 만큼 조선 시대의 사랑방을 재해석한 고유의 멋을 지닌 공간이다.

락고재 컬쳐 라운지 애가헌과 이솝이 만나 연출한 3일간의 전시 <존재의 울림>은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에 우리의 감성을 더욱 자극하는 현장이었다. 이솝의 새 향수 ‘이더시스 오 드 퍼퓸’의 짙고 특별한 나무 내음이 한옥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한 것.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타인으로 착각한 나르키소스의 비극에 착안해서 만든 이솝의 새 향수 이더시스 오 드 퍼퓸은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그래서 치명적인 향기를 담고 있다.
무릇 향기란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가 머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진동하는 물질 아니던가. 일반적인 우디 계열 향과 다르게 블랙 페퍼의 톡 쏘는 강렬함과 유향의 따스함이 어우러진 감미로운 이더시스 향기는 애가헌 곳곳에서 메아리치며 뚜렷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낮은 계단을 올라 애가헌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왼편에 마련한 홀에서 전시의 주인공을 마주했다. 경계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끌어주는 테마로 구성한 아더토피아 프래그런스 컬렉션의 네 번째 향수인 이더시스를 경험하는 공간. 이솝의 오랜 파트너인 조향사 바나베 피용이 만든 향으로, 피부, 옷, 공간 등 어디에 존재하든 강렬한 존재감을 남길 법한 매력적 향수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블랙 페퍼, 프랑킨센스, 샌달우드 등 이더시스를 구성하는 향의 원료를 만날 수 있었다.


말린 꽃가지와 잎으로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비극적 연못을 표현한 설치 작품. 애가헌에 들어선 순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렇게 다각도로 이더시스를 경험한 후, 마당으로 나오자 마른 식물로 가득 찬 사랑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기를 잃어 차분해진 색감의 드라이플라워 꽃과 가지와 잎들이 잔잔한 물결 형상을 이루며, 가운데 이더시스 제품 행렬을 중심으로 대칭을 형성하는데 그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애잔하고 여리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로 뛰어든 비극적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더시스 향수의 이야기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조상의 정취가 어린 공간에서, 고대 신화로부터 시작해 거울 너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유를 화두로 던지는 이솝의 전시를 향유하고 나니, 코끝을 간질이는 가을바람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문의 1800-1987

글 강옥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