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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_ 스토리 꽃무늬
매 시즌 돌아오는 꽃무늬, 촌스럽거나 너무 화려하다고 거부할지 몰라도 이렇게 긴 역사와 유행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에게나 꽃을 입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는 방증 아닐까.

끌로에 미우미우 발렌시아가

낭만의 정수, 꽃무늬 역사 

꽃 피는 봄은 자연의 법칙이며 패션의 공식이라 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변하는 패션계지만 매 시즌 꽃무늬만큼은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꽃보다 좋은 게 없기 때문일 터. 꽃 형태와 색상, 질감 등은 인간의 창조 본능을 일깨우며, 우리를 매료시켜온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옛 여인들의 꽃 사랑은 참으로 대단했다. 모란꽃 무늬는 부귀영화를 상징해 경사스러운 날 입는 옷에 주로 사용했고, 연꽃 무늬는 청결함의 상징으로 신부가 폐백 때 입는 옷에 활용했다. 이 밖에도 절개를 의미하는 매화,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의미하는 국화 무늬 등 여러 꽃이 의복을 장식했다. 우리나라에서 꽃무늬는 아름다움의 표현인 동시에 상징성이 강한 장치였다. 서양 패션 역사에서 꽃무늬를 옷에 적용한 건 중세 후기라고 알려져 있다. 14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의 첫 수도이던 부르사Bursa는 이슬람 내 가장 질 좋고 우아한 실크와 벨벳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특히 카네이션과 종려나무 줄기, 석류와 양귀비꽃을 모티프로 삼아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직물이 유명했는데, 이는 곧 이탈리아 상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인들은 꽃무늬 직물을 고위 관리와 최상위 종교 사제 집단에 소개했으며, 꽃무늬는 자연스럽게 높은 지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1783년 스코틀랜드의 토머스 벨이 롤러 프린트를 발명하면서 많은 여성이 본격적으로 꽃무늬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일본과 중국이 사용한 대담한 꽃무늬 실크가 전 세계 패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세기 중반 유럽에 전해진 기모노는 유럽 귀족 여성의 실내복으로 인기를 끌었고, 당시 프랑스 인상주의자 사이에서는 중국식 병풍과 기모노를 그림에 묘사하는 게 유행했을 정도다. 이 시대는 인공 염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의류 산업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오렌지와 보라색 등 과감한 컬러의 옷이 등장했으며, 아시아 직물에서 영감을 받은 해바라기, 붓꽃, 수선화 같은 꽃무늬가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랐다. 선명하고 화려한 동양의 꽃무늬는 지금도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매 시즌 재해석해 런웨이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상 꽃무늬를 논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히피 문화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을 원하는 젊은이들인 히피족은 꽃의 혁명으로 불리는 문화혁명을 일으키며 자잘한 플라워 패턴을 유행시켰다. 자연 상태로 회귀를 갈망하며 사상과 이념을 꽃으로 표현했는데, 긴머리에 헤어밴드나 꽃을 꽂고, 꽃무늬셔츠와 프릴 장식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평화와 자연과의 교감을 원하는 이들의 히피풍 꽃무늬는 당시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 히피 스타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구찌
꽃무늬 트렌드는 올해도 유효하다
올봄 런웨이도 변함없이 꽃으로 물들었다. 매 시즌 보는 꽃이지만 올해는 또 다른 꽃이 피었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봄의 들판을 옮겨놓은 듯 런웨이 위에서 피어오르는 꽃송이들은 디자이너의 창조 본능을 통해 각양각색으로 만개했다. 로맨틱하게, 여성스럽게, 아티스틱하게 피어난 꽃 가운데 이번 시즌 단연 눈에 띄는 꽃무늬 트렌드는 바로 복고다. 끌로에의 로맨틱한 보헤미안풍 꽃무늬부터 미우미우의 얼굴 크기만 한 큼지막한 레트로풍 꽃무늬까지 복고적으로 재해석한 꽃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렌시아가의 빈티지 꽃무늬와 넉넉한 실루엣의 조합을 보라. 올해는 촌스러워도 좋고, 할머니스러워도 좋다. 지금은 복고풍 꽃무늬가 가장 핫하고 쿨하니까! 빈티지 꽃무늬를 즐길 과감함만 필요할 뿐이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전 세계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오른 구찌를 보면 레트로풍 꽃무늬 트렌드를 이해하기 더욱 쉽다. 한동안 유행에 뒤처진 브랜드로 인식하던 구찌를 살린 것이 동식물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다. 2017 S/S 시즌은 한층 강력하게 오리엔탈리즘, 레트로 무드, 로맨티시즘이 혼재됐고, 이 사이에서 레트로 무드의 플라워 패턴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017 PRE-FALL 컬렉션은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 식 맥시멀리즘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로, 역시 꽃무늬가 컬렉션에서 주인공처럼 지배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남자에게도 꽃을 선사했는데, 꽃무늬 프린트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남자 모델은 더 이상 꽃무늬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꽃무늬를 입을 용기가 없다면? 액세서리로 꽃무늬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시즌 펜디의 백을 눈여겨볼 것. 로코코 무드의 꽃을 인쇄한 가죽에 입체적 꽃으로 장식한 기법이 눈에 띈다. 매 시즌 돌아오는 꽃무늬, 촌스럽거나 너무 화려하다고 거부할지 몰라도 이렇게 긴 역사와 유행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에게나 꽃을 입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꽃무늬는 유행이라기보다 클래식한 패션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할머니 몸뻬 바지의 정겨운 꽃무늬부터 런웨이 모델에게서 피어난 화려한 꽃무늬까지 꽃은 어디에나 있으며, 누구라도 입을 수 있다. 올봄 내 안에 숨어 있는 낭만의 한 조각을 찾아 꽃무늬 패션으로 피어나는 꽃을 온몸으로 즐겨보길 바란다.



김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