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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트 캔버스, 스카프 현대적 장신구
옷장 속 스카프를 모두 펼쳐서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부드러운 직물을 물들인 다채로운 색상, 감성을 일깨우는 그림이나 패턴은 마치 화가의 예술 작품 못지않게 아름답다. 지 금까지 스카프를 그저 추울 때 목에 두르는 도구로 인식했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스카프의 고결한 멋을 보려고 애쓰기를.

 일본의 전통 염색 공예가 조도 기쿠코Jodo Kikuko의 작품 <꽃 시리즈>로, 실크에 그만의 기법으로 아름다운 색채를 물들인 스카프를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에 펼친 그림 같은 사진. 무엇보다 양면을 다른 색으로 염색하는 게 그녀의 독창적 기술이다. 그는 간단한 무비 필름도 만드는데, “딸이 가수고 뮤지션 친구가 많아 소스를 활용하고자 한 게 시작이었다.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이 있으니 자연스레 영상 작업으로 발전했다”고. 지난 2013년 한국에서 전시를 열었으며, 또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적 장신구
옷장 속에 스카프 한 장 없는 사람이 있을까? 스카프는 패션 액세서리이기 이전에 스타킹이나 양말처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보온용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카프는 보온 이상의 기능을 지닌다. 2016년, 스카프를 대하는 이상적 태도에 대하여.


1 영화 (1963) 속 스카프를 두건처럼 연출한 오드리 헵번. 2 최초의 대륙 횡단 비행을 마친 직후의 아멜리아 에어하트. 3 에르메스 2016 F/W 컬렉션 스카프로, 젊은 예술가 앙투완 카르본느가 디자인한 ‛세상 끝에서’. 4 스카프를 리본 매듭지어 포인트를 준 구찌 룩. 5 스카프처럼 연출할 수 있는 블라우스가 여성스러운 샤넬 룩. 
‘스카프’ 하면 가장 흔히 떠올리는 건 한 변 길이가 1m 조금 못 미치는 88cm 정도의 정사각형 실크 천이다. 작다면 작은 이 천 조각이 승부수를 걸 수 있는 건 오직 색상, 패턴, 소재 정도. 다시 말하면, 그 한정된 요소 안에서 수백만 가지 디자인이 탄생하는 것만 봐도 스카프는 얼마나 매력적 아이템인지 모른다. 그래서 스카프는 이미 옷장에 있을 만큼 있어도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주저 없이 또 사게 되는 아이템이요,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다다익선, 말 그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스카프의 기원을 찾아서
지금이야 누구나 쉽게 착용하는 스카프. 그렇다면 이 스카프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과거에는 어떤 존재였을까? 혹자는 클레오파트라를 제치고 고대 이집트의 최고 멋쟁이로 이름난 네페르티티, 즉 파라오 시대의 왕비이자 투탕카멘의 양어머니를 꼽는다. 이집트 문화재이자 세계적 유물인 네페르티티 흉상에서 머리 장식물 아래에 스카프와 유사한 두건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스카프의 어원은 프랑스어 에스카르프escarpe 에서 발전한 에샤르프echarpe이고, 기원은 북방 민족이 방한용으로 사용한 목도리라고 한다. 시대와 더불어 의미의 범위도 차차 변용되었으며, 서구에 보급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때 햇볕 차단과 장식을 위해 술 장식이 달린 어깨 걸이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복식사연구> 논문에 따르면, 목도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흥덕왕 때 복식금제服飾禁制에 나타난 표. 당시 스카프는 방한용이라기보다 옷의 일부인 장식용이자, 계급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 예를 들어 4두품, 5두품, 6두품, 진골 여인 등 신분에 따라 소재를 다르게 허용했다. 이와 같은 제도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가 근대에 이르러 1930년대에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장옷과 쓰개치마가 사라진 뒤 다시 목도리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스카프를 계급을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한 예가 또 있다. 17세기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사병은 흰색 면 소재, 장교는 실크 스카프를 착용함으로써 군 계급을 구분한 것. 때로는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기간 중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혁명가들은 붉은색 크라바트cravate를 목에 둘렀다. 이 크라바트는 바로 오늘날 남성의 전유물인 넥타이로 발전하기도.

한편 스카프 역사는 군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6~17세기는 기사나 군인의 장식 띠가 되었고, 20세기에 들어 1・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에서는 손뜨개로 스카프를 떠서 군사들에게 보내는 것을 애국하는 일로 여겼다. 특히 조종사는 높은 고도에서 따뜻하게 목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프를 애용했다. 그러고 보면 또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의 여성 비행사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 ‘하늘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별명을 얻은 여인, 아멜리아 에어하트. 그녀가 사진 속에서 스카프를 휘날리고 서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19세기 말부터 비로소 스카프는 여성용 액세서리로 목 주위를 장식하고 머리를 덮기도 했으며, 벨트 대신 허리에 사용하는 등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넥타이가 남성 전유물로 대체되고, 스카프가 여성 전유물로 발전해왔지만, 21세기의 스카프는 명실공히 남녀노소를 위한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있다.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의 대명사
스카프의 대중화를 이야기하면서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빼놓을 수 없다. 에르메스의 실크 스카프는 1937년, 의도치 않게 탄생했다. 당시 군인들의 요청에 따라 제작한 손수건이 기원이 된것. 그런데 에르메스는 나아가 이 군인들이 사용하는 손수건을 여성을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승화시켰으니, 고정관념을 깨는 매우 혁신적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에르메스의 실크 스카프는 스카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탄생시키며, 현재까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천 가지 넘는 디자인의 스카프 컬렉션을 제작해왔다. “하나의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가 탄생하기까지 최소 2년 정도 시간이 걸리지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에르메스 실크스크린 장인, 카멜 아마도Kamel Hamadou의 말이다. 많은 자료 연구를 통해 이야기를 설정하고, 그림의 균형과 색상의 수를 고려해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만 반년 정도 걸린다고. 그다음 조판사는 색상 수만큼 판을 만들고 스크린으로 조각을 내는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이며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다음은 프린팅 장인이 수십 차례 테스트를 하며 최적의 색상 배합을 결정하는 프린팅 작업이 이어지고, 실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련의 워싱과 광택 작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카프의 가두리를 완성하는 바느질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에르메스의 전통적인 90×90cm 크기의 스카프 한 장을 제작하기 위해 장인이 쏟는 기술과 노력은 실로 엄청나다. 특히 실크스크린 스카프의 색상 도표를 만들기 위해 무려 6만 7천 가지 컬러 차트를 이용한다. 프린팅 과정은 각 색상마다 하나의 스크린을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만약 스카프에 사용하는 색상이 서른 가지라면, 서른 개의 스크린을 만드는 식. 각각의 스크린은 서른 가지 색상을 하나하나 프린트하는 데 필요하다. 에르메스는 스카프에 사용하는 색상을 마흔여덟 가지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최적의 색상 조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술적 정확성을 기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스카프 제작에 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패셔니스타들이 애용하는 명품 스카프의 대명사 같은 존재이기도 한 에르메스. 오드리 헵번을 비롯해 많은 할리우드 스타와 명사가 에르메스 스카프를 착용한 사진이 스타일의 모범으로 전파되고, 그레이스 켈리가 팔이 부러졌을 때 에르메스 스카프를 삼각건 대신 걸치고 나타난 일화는 유명하다.

스카프를 최대한 활용하라
오늘날 스카프는 단순한 보온 도구나 액세서리가 아니다. 쉽고 빠르게 변신을 꾀할 수 있는 무기이자, 개성과 독창성을 표현해줄 수단이다. 스카프 한 장으로 멋스러운 여인이 될 수도, 사랑스러운 소녀가 될 수도 있는 것.

메종 마르지엘라 룩.
특히 이번 시즌, 주요 디자이너들은 스카프로 얼마나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해주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카프로 리본 매듭을 지어 목부위에 포인트를 준 스타일. 레트로풍 패턴 스카프로 남성적 보타이처럼 연출한 구찌 룩부터 여성스럽고 우아한 샤넬과 마크 제이콥스의 리본, 끌로에의 귀여운 보이스카우트 리본 등 리본의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는 묘미가 쏠쏠하다.

스카프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부터 다수의 디자이너가 선보인 스키니 스카프. 타이 스카프라고도 하는데, 넥타이만큼 가늘고 긴 스카프로 목에 간편하게 휘감는 것만으로도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보테가 베네타 쇼에서 매니시한 슈트 팬츠에 가느다란 타이스카프를 한 번 휘감은 룩이 최고 정석. 하지만 토리버치처럼 타이 스카프를 리본으로 묶으면 한층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또 손수건 크기의 네커치프라고도 하는 프티 스카프는 캐주얼한 스타일에 잘 어울리고, 목에 작은 리본으로 매듭지어 포인트로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 타이 스카프보다 짧은 트윌리 스카프는 핸드백 손잡이에 매거나 손목에 감거나 헤어밴드로 쓰는 등 활용도가 높다.

올 가을・겨울엔 단조로운 일상 룩에 스카프로 변화를 주는 재미를 놓치지 말지어다. 스카프를 매는 무려 50가지 방법에 대한 책을 쓴 저자 로렌 프리드먼Lauren Freedman은 이렇게 말한다. “옷장에 처박아둔 스카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때가 왔다.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해지자!”


제품 협조 조도 기쿠코Jodo Kikuko 참고 도서 <스카프를 매는 50가지 방법> <스카프 스타일 바이블>

글 강옥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