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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에 걸친 프랑스 미용 역사 바로크 시대부터 21세기까지
한•불 수교 1백20주년을 맞은 2006년. 올 한해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지어 열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월드 코스메틱의 강국이기도 하다. 화려한 만큼 굴곡이 많았던 역사를 거쳐 지금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프렌치 시크French chic’를 만들어내기까지, 파리지엔들은 어떻게 단련되어 왔을까? 아름다운 인생의 여유와 풍요, 즐거움과 만족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금욕과 연금술이 공존한 중세시대
‘파르(fard, 화장품)’라는 명사는 12세기에 생겼다. 이는 아마도 ‘채색하다’라는 의미의 고대 프랑크어 ‘파르주앙farjwan’ 또는 ‘파르위동farwidon’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고대의 때를 벗고 유럽 문화권이 형성된 중세 때는 금욕과 욕망이 함께 공존했다. ‘피부를 약품으로 짓누르고 볼을 붉은 빛으로 더럽히고, 눈을 검은 빛으로 그리는 것은 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신의 섭리는 자연스럽고, 악마의 소행은 작위적이다.’(테르튈리앙의 <여자들의 화장>) 14세기 설법자 자크 드 라 마르슈는 결혼 적령기의 처녀들에게 어느 정도의 치장은 허용했지만 그 이상의 화장은 악마와의 공모라 생각해 근절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비밀리에 미용의 연금술을 이용했다. 납이 든 백연을 과도하게 사용한 여성들은 얼굴이 검게 변색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종교인들은 화장은 곧 죽음과 동일한 육체의 부패를 가져온다고 몰아붙였다.

마음껏 멋을 뽐냈던 바로크 시대의 태동 문화적 쇠퇴와 정체의 시기가 끝났음을 알린 르네상스 시대. 신뿐 아니라 인간에 초점을 맞춘 문화와 예술이 부활되자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바뀌게 된다. 이탈리아의 최신 미용법이 프랑스로 건너왔고, 16세기 말에는 도회지의 유복한 계층에서 화장과 염색 등이 성행했다. 여성적인 취향을 지닌 앙리 3세 때부터는 궁정인을 중심으로 ‘트렌드’라는 개념이 움텄고, 이는 태양왕 루이 14세 때 최고조에 이른다. 유럽 궁정의 유행을 주도했던 궁정인들은 남녀 모두 염색을 즐겼고 백분을 온몸에 뿌리는 등 치장을 위해 아침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겉모습은 화려했지만 물을 금기시하는 미신, 위생 시설의 미비 등으로 악취를 풍기기 일쑤였던 이들은 향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바이올렛, 아이리스 향수를 수입하다가 점차 자국에서 개발한 강렬한 머스크 향을 선호하게 되었고 몸은 물론 의복과 구두, 장갑에까지 ‘칠갑’을 하듯 뿌려댔다. 투알렛toilette이라는 말은 현대 프랑스에서는 화장실을 가리키지만, 18세기에는 몸을 치장하는 모든 행동을 총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여인들이 비밀스럽게 행하던 첫 번째 투알렛은 바로 세수. 당시에는 세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풍습이었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와 마담 뒤 바리 등은 공적인 투알렛 방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곳에 출입하는 것이 하나의 권력으로 통했다. 

유행 서클이 빨랐던 18~19세기 로코코 시대에는 화려했던 치장을 거두고 걷고 목가적인 느낌의 복장과 자연스러운 화장이 유행했다. 이런 트렌드를 선도한 이가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 봉긋하게 부풀린 머리에 깃털 달린 밀짚모자를 썼고, 애교점이나 짙은 입술연지 대신 뺨만 가볍게 물들이는 화장법을 선택했다. 또한 지독한 머스크 향보다 은은한 장미 향과 재스민 향을 즐겼다.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전원풍에 몰입하던 왕비의 신선놀음은 혁명으로 막을 내렸고, 나폴레옹 왕조의 시대가 도래했다. 제정시대의 여인들은 연한 향수로 자신을 정화했고 화장수로 빛나는 피부를 유지했다. 18세기 말에는 고딕 소설의 유행과 함께 신비로운 느낌의 초췌한 여인이 낭만적인 뮤즈로 떠올랐다. 폐결핵이라도 앓은 듯 하얀 얼굴과 눈을 지그시 내리깐 쓸쓸한 표정, 즉 ‘모르비데자morbidezza’라 일컬어진 모습이 조세핀 황후를 비롯한 궁중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반면 중산 계급의 여인들은 적당한 화장과 살진 몸집으로 특유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귀족들과 달리 바깥 출입이 잦았던 이들은 작은 양산과 모자의 베일로 햇볕을 가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입까지 이어진 이런 여성상은 르누아르나 모네의 그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뒷골목 여인들과 사라 베른하르트와 같은 여배우들은 짙은 화장을 즐겼고 이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근대 화장품 산업을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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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시대를 풍미한 부셰의 그림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로코코 여인의 얼굴. 빨갛게 볼을 물들인 채 행복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것이 기본이었다.
2 오브제 아트 전문가 이지은 씨가 쓴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에서 소개된 여성의 은밀한 투알렛 장면(작자 미상, 173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
3 나폴레옹 제정시대의 트렌드세터 조세핀 왕후가 왕비가 된 초기에 쇼메의 보석으로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 모습. 이때는 뽀얗게 살이 올랐지만 이후 고딕풍에 반해 폐결핵 환자처럼 꾸미고 다녔다.
4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의 19세기 말 중산층 여성들을 주로 그린 르누아르의 작품. 햇볕을 받으며 춤을 즐기는 자유로운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 로코코의 여신이자 괴물로 불린 마리 앙투아네트. 화려했던 베르사유 궁전 시절과 달리 트리아농 궁으로 옮기면서부터는 전원풍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육체의 자유, 근대 화장법이 도래한 20세기 20세기에 접어들자 여성들의 몸은 자유로워졌다. 휴양과 해수욕, 온천 치료가 대중화되었고 조정이나 테니스 등 야외 스포츠가 도입되었다. 프랑스 의상 조합을 창립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가 코르셋에 갇혀 있던 몸을 해방시켰고, 이어 패션의 혁명가 샤넬이 등장해 편안하면서도 멋진 여성의 스타일을 정립해갔다. 루이스 브룩스가 유행시킨 스트레이트형 단발머리가 전 세계를 장악했고(무용가 최승희 같은 우리나라 신여성들도 이 유행에 동참했다) 가느다란 눈썹과 하트 모양의 빨간 입술이 세트처럼 따라왔다. 여자들은 코트다쥐르에서 해수욕을 하며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즐겼고 태닝을 선호하는 성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성형의술과 미용 클리닉이 성행했고 개인 숍을 넘어선 현대적인 형태의 코스메틱 회사들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크리스챤 디올의 뉴 룩 이후 20세기 패션사는 시대별로 다양한 트렌드를 양산했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도 이와 맥을 함께했다. 디올과 발렌시아가의 1950년대 룩에는 업 스타일과 웨이브 단발에 정돈된 화장이, 메리 퀀트와 앙드레 쿠레주의 1960년대 모즈 룩에는 짧은 바가지 형태 머리와 과장된 속눈썹이, 전원적인 느낌의 1970년대 히피 스타일에는 장발과 노 메이크업이, 워킹우먼들의 위력이 강해진 1980년대 파워 룩에는 부풀린 사자 머리와 진한 풀 메이크업이 인기였다.

슬로 뷰티의 창시자, 파리지엔의 21세기
파리지엔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선별, 여과된 멋을 깨우치게 되었고 유행을 즐기면서도 무심할 줄 아는 자세를 익히기에 이르렀다. 15세기 이후로 유행의 발신지라는 위치를 놓친 적이 없으나 할리우드식의 보편적이며 강압적인 트렌드는 경멸했다.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들은 매 시즌 메이크업 룩을 내놓지만 정작 그것을 즐기는 것은 아시아 여성들이다. 파리지엔들은 유행과는 관련 없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즐긴다. 주근깨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베어bare 메이크업을 한 여성, 아이 라인만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여성, 붉은 립스틱과 마스카라만 파우치에 넣고 다니는 여성…. 따져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누린 내추럴 메이크업의 원산지도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파리에서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공존한다. 주머니 사정과는 관계없이 대형 편집 매장 세포라부터 고급 백화점 봉 마르셰까지 다양한 쇼핑 장소에서 자신만의 잣대로 화장품을 구입한다. 그나마 새 물결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유기농 천연 화장품의 인기 정도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여자들은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 하지 않지만 성급하지도 않다. 피부과와 성형외과의 빠르고 인위적인 시술보다는 코스메틱 대국의 여성들답게 화장품을 평생 친구 삼아 조금씩 피부가 완화되어가는 모습을 즐긴다. (마치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듯! 이것이 바로 과욕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비결, 슬로slow 뷰티가 아닐까. 

6 19세기 말에 사라 베른하르트 등의 여배우를 위해 처음으로 원통에 담긴 블러셔를 제작했던 부르조아.
7 여성들에게 우아한 자유를 선사한 패션의 혁명가 마드모아젤 샤넬. 남성의 의상을 직접 입고 이를 반영한 편안한 의상을 선보였던 이 용감한 여인의 스타일은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 특히 가로 줄무늬 상의와 블랙 팬츠는 파리지엔의 상징이 되었다.
8 가슴의 탄력을 높이는 본격적인 시도가 이뤄진 20세기. 가슴에 시원한 물줄기를 뿌려 탄력을 주는 클라란스의 미용 도구.
9, 10 2006년 파리지엔과 1920년대 파리지엔의 모습을 비교해보라.
11 기슴을 드러낸 상의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당당하게 걷는 요즘의 파리지엔. 이들이 날씬한 이유는 차를 버리고 도보를 택했기 때문.





정유희 기자 tra@design.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