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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여자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한•불 수교 1백20주년을 맞은 2006년. 올 한해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지어열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월드 코스메틱의 강국이기도 하다. 화려한 만큼 굴곡이 많았던 역사를 거쳐 지금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프렌치 시크French chic’를 만들어내기까지, 파리지엔들은 어떻게 단련되어왔을까? 아름다운 인생의 여유와 풍요, 즐거움과 만족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태어나서 가장 처음 알게 된 프랑스 여자(정확히 말하자면 혁명군의 말을 빌려 ‘오스트리아 출신 요부’지만)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탐독하며 프랑스 혁명사를 쫙 훑어낸 조숙했던 초등학생의 눈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호브 드 파니에robe de panier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이후 그녀의 초상화를 보고 다소 실망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머리가 굵어가면서부터는 스크린속 프랑스 여자들에게 매혹되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방황하는 여인 세브린(원제는 <낮의 여인>)으로 쿨 뷰티cool beauty의 전형을 보여준 카트린 드뇌브, 도빌의 바닷가에서 서늘한 눈빛을 던지며 옛 사랑을 추억하던 <남과 여>의 아누크 에메, 비운의 여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그 자체였던 이사벨 아자니, <나쁜 피>의 라스트 신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쥘리에트 비노슈…. 각기 다른 외모와 말투와 표현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프랑스 여인이라는 공통 분모를 발견하면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할리우드의 금발머리 여배우는 죽었다 깨어나도 얻지 못할 것 같은, 그윽하면서도 무심하고 예술적인 분위기.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는 말이 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뉘앙스를 지닌 프랑스 여자들만의 세련미를 말한다. 보란 듯이 꾸미지 않아도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그들. 마치 얼굴에 회화 작업이라도 하는 듯 총천연색으로 눈가를 물들이고 값비싼 자국 브랜드의 유행 아이템으로 온몸을 휘감은 여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파리에 가면 너무나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노 메이크업처럼 보이는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만의 장점과 개성이 드러난다. 주근깨나 주름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빨간 립스틱이나 선명한 아이라인 하나만으로도 예뻐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 과연 보톡스 주사 바늘이 들어갈 틈이 있을까? 프렌치 시크가 가능한 이유는 오랜 세월 예술과 문화 사조를 창조하고 체험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여과된 든든한 자신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상대방의 사상과 이념을 존중해 자신의 그것도 인정받는다는 톨레랑스tolerance 정신이 여자들의 외모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개인의 멋을 관용하는 사회이기에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추럴한 멋을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치장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찍부터 자아를 깨닫고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가는 프랑스 여자들은 멋 부리는 것을 초월한 동시에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안다. 갑자기 몇 년 전 서울에서 인연을 맺었던 20대 프랑스 여성 마조리가 생각난다. 유네스코 활동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서울에서 홈 스테이home stay를 하며 잡지사와 인연을 맺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정치학과 언론학을 동시에 공부하게 된 그녀를 파리 출장길에 잠깐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퐁피두 센터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다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데님 팬츠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는 프렌치 시크의 상징이기도 한 제인 버킨의 젊은 시절과 닮아 보였다. 값비싼 브랜드의 옷과 화장품을 신처럼 따르는 미신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는 종교를 선택하겠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던 그녀. 마조리는 과연 한국 여자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그녀는 귀여운 ‘한국식’ 미용법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했다. “뜨끈뜨끈한 찜질방, 다시 가고 싶어요.”

깡총한 단발에 클로슈cloche 모자를 쓰고 프랑스의 최신 룩을 동경했던 1930년대 신여성부터 프렌치 코스메틱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의 여성까지, 대한민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프랑스와 인연을 맺어왔다. 미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므로 어떤 것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여자들이 평생 밟게 될 아름다움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 한•불 수교 1백20주년을 맞은 이때, 정작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브랜드의 이름값이 아니라 파리지엔의 자신감과 삶에 대한 여유 아닐까.

프랑스는 패션과 뷰티의 발산지이기도 하다.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폴 푸아레, 패션의 혁명가 샤넬에 이어 등장한 크리스챤 디올은 가장 여성적인 실루엣으로 패션 교과서를 장식했다. 베레모를 쓰고 디올의 우아한  ‘뉴 룩’ 스타일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프랑스 여인.


정유희 기자 tra@design.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