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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카페 두채Doochae 연건동 사랑방
붉은 벽돌 건물이 즐비한 연건동 골목길에 새하얀 건물 한 채가 들어섰다. 자세히 보니 옆쪽으로 건물 한 채가 나란히 붙어 있고, 안쪽에선 빵 냄새가 새어 나온다.

베이커리 카페 두채의 입면. 왼쪽 새하얀 건물은 원래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을 전체적으로 리모델링한 것. 1층은 베이커리 카페, 2층은 음료와 빵을 먹을 수 있는 공간, 3층은 빵을 만드는 작업실이다. 연결된 오른쪽 건물은 1층과 2층 모두 카페 공간으로 활용한다.

두 건물을 잇는 1층의 통로. 기존의 빨간 벽돌과 창살을 최대한 살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타일 바닥에 두채를 의미하는 적동 조각 디테일을 더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다.
잦은 우연은 필연이 되고, 그 필연은 결국 운명이 된다. 한 오누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이 삼청동인데 한적한 연건동 쪽으로 종종 산책을 나왔어요. 어느 날 골목길 어귀에 있는 이층집 창살이 너무 아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녹슬고 빛바래고, 세월의 흔적이 두텁게 쌓여 있었죠. 고즈넉한 그 집이 자꾸만 눈에 밟히더라고요.” 한명숙 셰프는 르 코르동 블루가 국내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입학했다. 졸업 후 예술의전당 근처에서 남동생 한진수 씨와 함께 9년간 빵집을 운영했다. 무스 케이크가 흔치않던 당시, 프랑스 제과와 이탈리아 커피를 함께 팔아 꽤 인기를 끌었다. 개인 사정으로 일을 잠시 손에서 놓고 있던 그는 이번이야말로 다시 한번 합심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밟히던 그 이층집은 아쉽게도 좀처럼 매물로 나오지 않았고, 대신 바로 옆집인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 너무 평범해 존재감이 없어 그냥 지나쳐버리던 다세대 주택. 자꾸만 눈에 밟히던 이층집 주인을 설득했다. 여기까지가 두 건물을 모두 인수하게 된 뒷이야기다.

황형신 작가의 테이블과 주문 제작한 금수현 목수의 의자, 양태오 작가의 조명등, 이헌정 작가의 도자 꽃으로 꾸민 2층 전경. 이길연 대표는 벽과 바닥에 직접 삼베를 발라 격조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건물 뒤뜰에서 바라본 베이커리 카페의 모습. 두채의 전체적인 조경은 슬로우파마씨가 맡았다.
두채의 건물
그렇게 시작한 오누이의 연건동 프로젝트. 때마침 연이 있던 길연디자인의 이길연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분의 요구 사항은 굉장히 심플했어요. 이곳에서 오래오래 빵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오래된 주택이지만 잘만 고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첫 삽을 떴고 각종 허가와 리모델링하는 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층집은 외관과 내부 뼈대를 최대한 살리면서 보와 기둥을 보강했고, 다세대 주택은 이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모던하게 탈바꿈했다. 오래된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한명숙 셰프와 무엇이든 간결하고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한진수 대표의 상반된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4층 옥상에는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루프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앞에 놓인 알록달록한 세라믹 스툴은 작가 갑빠오의 작품.

테라스가 있는 2층에도 두 건물을 잇는 다리를 설치해 자유롭게 오가도록 했다. 소재와 질감이 확연히 다른 두 건물이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층과 2층에는 빵과 음료를 사고, 먹을 수 있는 카페 공간을, 3층에는 주방을 배치하고, 옥상에는 시야가 탁 트인 루프톱을 만들었다. 또 1층에는 통로를 만들고, 2층에는 다리를 설치해 두 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두 건물의 면적을 합치면 기껏해야 80평 남짓이지만 더 넓은 공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동선이 다양해서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건물에도 공통된 요소가 있으니, 바로 곳곳에 놓인 공예품이다. 이층집 1층에 놓인 윤라희 작가의 아크릴 테이블을 시작으로 황형신, 양태오, 이헌정, 켈리박, 갑빠오 등 갤러리에서나 볼 법한 작가들의 아트퍼니처가 곳곳에 놓였다. 10년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 공간을 만들려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행과는 거리가 멀지만 묵묵히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소가 필요했던 것. “요즘 유행하는 ‘쿨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러면 옛것과 새로운 것의 적절한 조화가 관건이었죠. 어디까지 살리고 무엇을 뺄지 결정하 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이길연 대표는 두 공간을 잇는 또 하나의 요소로 적동赤銅을 택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반짝임이 사라지며 오묘한 색을 만들어내는 적동은 위치에 따라 그 색과 깊이가 다양하게 변모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채의 외관과 복도, 맞춤 제작한 빵 진열대, 주문 제작한 의자 등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베이커리 카페 전경. 손님과 소통하기 위해 바는 최대한 낮게 제작했다.

다양한 빵과 커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두채.

뒤뜰에서 바라본 두채의 모습. 황동 욕조는 이길연 대표가 소장품을 기증한 것.

두채의 한진수 대표와 한명숙 셰프.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길연디자인의 이길연 대표.

함께 채우는 공간
두채는 평일 오전 8시면 문을 연다. 베이커리를 총괄하는 한명숙 셰프는 남보다 이른 오전 6시 30분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전날 미리 저온 숙성해둔 반죽을 성형하고 굽기 시작하는 것. “작업장이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3층에 있어요. 그 덕에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죠.” 담백한 식사빵부터 디저트로 즐기기 좋은 달콤한 빵, 케이크까지 약 20종의 빵이 진열대에 오른다. 앞으로 조금씩 테스트를 하며 종류를 늘려갈 계획. 직원 교육과 바리스타 업무를 총괄하는 한진수 대표는 모든 일은 사람에서 시작하고 사람에서 끝이 난다고 믿는다. 손님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즐거운 일터가 될 수 있도록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순간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그저 그런 가게가 아닌,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갈 두채를 위해서.

연건동 골목길에 나란히 서 있는 두채의 건물은 수수하고 덤덤한 두 사람의 모습을 참 많이 닮았다. 거창한 입간판도 없고, 새하얀 입면에 박힌 두 개의 막대가 이곳이 두채임을 말해줄 뿐이다. 막대는 일상을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일시 정지 버튼처럼 보이다가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각자 할 일을 해나가는 오누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글 김민지 기자 | 사진 박찬우 | 취재 협조 길연디자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