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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소설에 맛보는 소설
이십사절기 중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든 11월. 이 아름다운 절기에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소설小說 속 음식을 함께 감상해보자.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과자가 섞인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달았고, 형용할 수 없는 감미로운 쾌감이 나를 휩쓸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들렌
조개 모양의 작은 케이크에서 고소한 버터와 레몬 향이 풍긴다. 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던 어느 날, 한 입 베어 문 마들렌에서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콩브레의 레오니 고모가 주던 그 과자 맛과 당시에 함께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 인간의 후각과 미각은 무의식의 기억까지 소환해내는 중요한 감각이다.


재닛이 탁자 밑에서 꺼내온 종이 꾸러미를 풀자 빵과 버터가 나왔다. 이제껏 아이들이 다과 시간 때마다 접시에서 조금씩 빼돌린 것들을 재닛이 몰래 모아둔 것이다. "얘들아 정어리 샌드위치 한 입 먹고, 돼지고기 파이를 한 입 먹은 다음, 코코아 우유를 한 모금 마셔봐." 패트가 말했다. "맛이 기가 막혀."
에니드 블라이턴, <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


돼지고기 파이
돼지고기 파이는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영국 전통 음식이다. 파이 반죽에 각종 허브를 더한 돼지고기 소를 채워 넣고 오븐에 구워차갑게 식혀서 즐기는 것이 정석이다. 담임선생님이 휴가를 낸 여자 기숙학교의 야심한 시각. 1학년 학생들은 그동안 먹고 싶던 음식을 하나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야식 파티를 벌인다.


"유별나게 물이 좋은 바닷가재네요. 그렇죠?" 튜더가 지극히 태연자약하게, 그러면서도 귀족다운 태도로 진지하게 관심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 즉시 에이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바구니를 과감하게 의자 위에 올려놓고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이 가재로 만들 샐러드가 얼마나 맛있을지, 한번 드셔보고 싶지 않나요? 곧 그 샐러드를 먹게 될 매력적인 숙녀들과도 함께하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루이자 메이 올컷,<작은 아씨들>


바닷가재 샐러드
에이미는 잘 보이고 싶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바닷가재 샐러드를 준비한다. 소설의 배경인 1860년대 미국에서 바닷가재는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인기 메뉴였기 때문. 미국 북부에서는 전통적으로 바닷가재살에 마요네즈를 버무리고 다진 양파, 오이, 셀러리 등을 넣어 즐겨 먹는다.


타타르인 웨이터는 커다란 엉덩이 아래로 프록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뛰어가더니 5분 뒤에 후다닥 돌아왔다. 껍데기 안쪽 진주층이 드러나도록 까놓은 굴 접시를 쟁반에 받쳐 들고 손가락 사이에는 술병을 낀 채였다. 오블론스키는 빳빳하게 풀 먹인 냅킨을 아무렇게나 펴서 한쪽 귀퉁이를 조끼에 꽂은 뒤, 식탁 위에 두 팔을 편한 자세로 올리고는 굴을 기세 좋게 먹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군."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1870년대 러시아에서 굴은 돈이 있어도 먹기 어려울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식당에 굴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저녁 메뉴를 바꾼 오블론스키. 은제 포크로 껍데기에서 분리하고 속살을 껍질째 들어 후루룩 마시면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오늘날에는 레몬즙이나 식초, 핫소스를 뿌려 즐겨 먹는다. 버블 가득한 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사흘째 빨지 못한 식탁보가 덮인 식탁 앞에 앉아 저녁을 먹으려 할때 맞은편에 앉은 남편이 수프 그럿의 뚜껑을 열고는 반색하며 "아, 맛있는 포토푀! 이만큼 좋은 것도 없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만찬, 반짝거리는 은 식기들, 고대의 인물들과 요정의 숲 한복판을 날아다니는 기기묘묘한 새들이 수놓이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벽을 떠올렸다.
기드 모파상, <목걸이>


포토푀
프랑스어로 불에 올려놓은 냄비(pot-au-feu)라는 뜻을 지닌 포토푀는 쇠고기, 양파, 감자, 당근, 셀러리, 각종 허브를 넣어 장시간 고아 만든 프랑스식 스튜다. 프랑스 서민이 한겨울에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나눠 먹던 가정식으로, 마치 한국의 곰국과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가난한 공무원의 아내인 마틸드는 초라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언제나 화려한 삶을 갈망한다.

글 김민지 기자 사진 김정한 | 요리 스테파노 디 살보(보르고 한남 오너 셰프) 스타일링 홍서우·엄지예(스튜디오 페퍼) 참고 도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비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