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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음식 대가 故황혜성 탄생 1백 주년 평생에 걸쳐 되살려낸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
지난 7월 5일, 구글 홈페이지에 특별한 일러스트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 음식’의 명예기능보유자인 故 황혜성 선생. 그의 탄생 1백 주년을 맞아 구글이 마련한 이 특별한 이벤트는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와 그 속에 담긴 가치를 되살리는 데 평생을 헌신한 이를 향한 아낌없는 헌사였다.

선로를 꾸미던 황혜성 선생. 음식은 정성이고 손맛이며 배려임을 몸소 실천했다.

7월 5일 구글 홈페이지에 등장한 황혜성 선생 탄생 1백 주년 기념 로고(출처: 구글 기념일 로고 자료실).
구글 두들에 등장한 조선왕조 궁중 음식의 대가 세계 각국의 기념일이나 명절, 예술가·탐험가·과학자 등 유명인을 기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홈페이지 로고를 바꾸는 ‘구글 두들Google Doodle’. 1998년 처음 도입한 이 특별한 이벤트는 지금까지 4천 개 이상의 로고를 선보이며 전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7월 5일 구글 홈페이지에 등장한 일러스트가 주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로고는 ‘조선왕조 궁중 음식’ 명예기능보유자인 故 황혜성(1920~2006) 선생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음식 분야의 인물과 업적을 소개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경우라 더욱 특별했다. 게다가 같은 날 ‘구글 아트 앤드 컬처Google Art & Culture’에 황혜성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온라인 전시까지 공개돼 의미를 더했다. 각국의 문화유산, 예술 작품, 유적지, 역사적 기록 등을 전시하는 구글 아트 앤드 컬처는 매년 약 6천6백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온라인 전시 플랫폼이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상당한 구글 아트 앤드 컬처가 한국의 음식 문화와 황혜성 선생의 삶에 주목한 건 최근의 K-Pop 열풍과 K-Food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선생은 한국의 음식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 K-Food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한 온라인 전시 <황혜성: 평생을 바쳐 궁중 음식을 되살려내다>는 선생의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 궁중 음식과 연을 맺은 과정, 궁중 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 등을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소개했다. 특히 “궁중 음식은 사치스러운 음식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음식이다. 가장 좋은 제철 재료를 가지고 섬세한 손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념을 가지고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을 꾸준히 기록해두어라” 같은 생생한 육성은 선생의 궁중 음식에 대한 열정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황혜성 선생의 팔순 잔치. 조선 24대 왕 헌종의 어머니 조 대비의 팔순 진찬을 재현했다.


황혜성 선생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재현한 복온 공주 다례 상차림.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에 기록된 6월 유두다례를 재현한 것이다.
궁중 음식의 가치를 널리 알린 선구자
사실 황혜성 선생의 젊은 시절은 궁중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 충남 천안의 손 귀한 집안 맏딸로 태어나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데다 커서는 교토 여자전문학교 가사과에 진학해 서구식 영양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선생이 궁중 음식과 인연을 맺은 건 1943년 숙명여전 교수로 부임한 이후였다. 출근 첫날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조선 요리를 가르치라는 권유를 받은 것. 선생은 1999년 펴낸 팔순 회고록에서 그때의 심경을 “당황하고 앞이 막막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든 배워야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낙선재를 찾았다. 당시 창덕궁 낙선재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와 궁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궁중 음식을 배우겠다고 찾아간 스물세살 어린 여선생을 환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팔순 회고록에 “궁인들은 나를 바깥 사람이라며 견제하고 눈길도 주지 않아 서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기록할 정도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자 궁중 음식 제1대 기능보유자인 故 한희순 상궁의 마음을 얻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눈동냥, 귀동냥으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궁중 말을 되묻지도 못하고” 기록해가며 10년 이상 버텼다. 1957년 펴낸 최초의 궁중 음식 요리책 <이조궁정요리통고>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궁중 음식의 연구 및 저작 활동에 매진한 젊은 시절의 황혜성 선생. 1968년.

2001년의 황혜성 선생과 세 딸. 맏딸인 궁중음식문화재단 한복려 이사장을 비롯해 둘째 복선, 셋째 복진 등 세 딸 모두가 어머니 뒤를 이어 궁중 음식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후에도 선생은 1971년 “음식이 무슨 문화재냐?”는 문화재 위원들의 반대를 뚫고 궁중 음식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을 설립해 궁중 음식의 전승과 보존·전수에 힘썼다. 한희순 상궁이 별세하고 1973년 제2대 기능보유자가 된 후에도 궁중 음식 전수 교육과 정기 발표회 개최, 관련 문헌 연구 등을 쉼 없이 계속해나갔다. <한국요리백과사전>(1976), <한국의 전통음식>(1989), <조선왕조 궁중음식>(1993) 등 50여 종에 이르는 저서를 펴냈고, 궁중음식연구원은 물론 숙명여전, 한양대, 성균관대 등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냈다.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평생에 걸쳐 “조선왕조 궁중 음식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든 고유한 음식 예술”이라는 철학을 국내외에 전파한 것이다.

복온 공주 다례 재현과 함께한 탄생 1백 주년
황혜성 선생의 이 같은 노력은 제3대 기능보유자인 맏딸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에게로 계승됐다. 각종 문헌을 토대로 궁중 식문화 유산의 원형을 연구·보존하고, 궁중 음식 전수 교육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자를 양성하며, 고문헌에 기록된 전통 음식을 사진·영상 등으로 복원·재현하고, 궁중 음식 관련 연구 성과를 데이터화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등 궁중 음식을 체계화하고, 이를 대중화·세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 지난 7월 4일 궁연회 회원들과 함께 재현한 복온 공주 다례 상차림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었다. 조선의 23대 왕 순조가 둘째 딸인 복온 공주의 죽음을 기리며 1년간 시행한 다례 기록을 엮은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의 5월 망다례와 6월 유두다례를 재현, 황혜성 선생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황혜성 선생의 제자이자 궁중 음식 전수자들의 모임인 궁연회 회원들. 사진 제공 오뚜기함태호재단
“구글로 인해 어머니가 평생 일궈오신 궁중 음식의 궤적을 돌아보고 한국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뜻깊지만, 이번 탄생 1백 주년을 계기로 재단 차원에서 뭔가 의미 있는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제자이자 궁중 음식 전수자들의 모임인 궁연회 회원들과 함께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의 여름 다례를 정성껏 재현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홍합초, 족숙편, 계각탕鷄角湯, 교아상화, 깻국잡탕 등 제철 재료를 활용한 여름 다례상 앞에 모여 황혜성 선생과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진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복려 이사장은 “어머니께서 시작한 궁중 음식이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로 굳건히 뿌리내렸다는 것,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법도와 절제, 배려가 깃든 가치 있는 미래 유산인 궁중 음식을 후대로 이어가는 게 저와 재단의 역할인 것 같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선 재단의 노력뿐 아니라 많은 이의 지속적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아름다운 식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기부와 후원의 손길이 계속되길 기대하는 이유다.

글 최혜정 | 자료 협조 궁중음식문화재단(02-3673-1122~3)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