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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공간 조희숙 셰프 최선의 오늘
‘셰프들의 스승’ ‘셰프들의 셰프’, 조희숙 셰프가 2020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원서동 ‘한식공간’으로 향했다.

따스한 원목으로 마감한 한식공간의 주방 앞에 선 조희숙 셰프는 일생 처음으로 레스토랑 경영을 맡았다. 그는 경영 목표를 이익 추구보다 한식의 구현을 우선순위에 둔다고 말했다.

쑥버무리나 부추털털이 등 다양한 식감과 색깔의 계절 채소에 쌀가루를 버무려 쪄낸 뒤 호박 소스를 곁들인 채소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흠모, 동경, 존경, 순종…. 사랑을 기반으로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마음 중에 존경은 가장 맑고 투명하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존경하기도 쉽지않은 법인데, 강민구·안성재·신창호를 비롯해 국내 최정상 셰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존경을 표하는 스승이 있다. ‘2020년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준 조희숙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3년 동안 한식공간의 주방을 책임지다 지난해 오너 셰프로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해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별을 받은 직후였으니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 최고라는 타이틀은 분명 평생에 얻기 어려운 명예롭고 영광된 것임에 틀림없는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보다 더 훌륭하고 열정적인 분도 많기에 기쁘고 놀라운 한편 그런 분들께 면구스러운 마음도 있지요.” 겸손한 말로 소감을 대신한 그는 37년 전부터 인터컨티넨탈 호텔, 신라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등 최고급 호텔 주방에서 한식 책임자로 일하며 한식 파인다이닝의 초석을 닦고, 한식공방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오로지 한식의 길만 올곧게 그리고 우직하게 걸어왔다. 행사를 주관한 아시아 50대 베스트 레스토랑 콘텐츠 이사 윌리엄 드루William Drew가 “평생을 한식 발전에 헌신한 조희숙 셰프는 이상적 정신을 구현한 완벽한 본보기”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식의 대모는 오늘도 배운다
‘고급’과는 거리가 멀게 인식해온 한식의 위상을 격상시키겠다는 피가 끓는 사명감 하나가 전부였다. ‘모던 한식’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풀어내는 세련된 한식은 자연스레 모던 한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또 하나의 갈래를 만들었다. 양식 요소를 가미하지 않고 전통 맛과 조리법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화한 한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전통 음식에는 식재료에 녹말이나 밀가루, 쌀가루, 메밀가루 등 다양한 가루를 묻힌 후 데쳐내 부드러운 식감과 맛을 내는 음식이 많다. 어채도 그중 하나인데, 얇게 저민 생선살에 녹말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익힌 일종의 숙회다. 조희숙 셰프는 생선살 대신 전복을 사용하고 잣죽을 곁들인 ‘전복잣즙탕’을 구상했다. 기존 전복 요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식감과 맛이 놀라운 감탄을 자아낸다. 한편 마지막 코스로 나오는 밥과 국, 다섯 가지 반찬으로 구성한 ‘진지상’은 한국 식문화의 기반인 시식時食과 절식節食을 한데 담았다. 그 계절에만 특별히 있는 음식인 시식과 이른바 농부의 달력인 24절기에 맞춰 농사짓고 먹는 음식인 절식이라는 문화적 바탕에서 발전한 제철 반찬과 오랜 저장식이 상에 오른다. “궁중 음식, 반가 음식, 사찰 음식, 향토 음식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한식의 근간이 되는 저장 음식과 반찬은 격의 차이가 없이 동일합니다. 그래서 저도 어릴 적 바닷가에 살던 할머니 댁에서 맛 본 감태, 해초류, 생선 젓갈을 지금도 즐겨 활용하지요.” 한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바로 그의 정갈한 요리 한 그릇에 담겨 있다.



한식공간의 소담한 내부. 창 너머로 고즈넉한 창덕궁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조희숙 셰프의 정갈한 음식만큼이나 단정하고 고운 공간이다.

테이블 세팅에 사용하는 식기와 받침은 정유리, 박미경, 박선민, 박강용 등 한국 공예가의 작품이다.

전통 너비아니에 참깨 가루를 듬뿍 입혀 고소함을 더한 참깨너비아니구이는 봄에 맛볼 수 있는 움파를 구워 곁들였다.

김부각, 깻잎부각, 당귀부각, 돼지감자부각에 오미자청으로 만든 탕수 소스를 붓고 파프리카, 오이, 토마토를 곁들여 상큼한 맛을 더한다. 조희숙 셰프는 사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부각을 단순한 주전부리가 아닌 한 그릇 요리로 표현하고자 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존경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보수적 환경이었던 1980년대, 최고급 호텔의 유일한 여성 한식 책임자로, 한때는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저 총주방장으로, 그리고 현재 한식공간의 총지휘자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해온 조희숙 셰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주방에 눌러앉게 되었다는 그는 자신의 강점은 뒷심이라 말한다. “제 성격상 일을 빠르게 결정하고 저돌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여러 면에서 오래 고민하는 편입니다. 단호함의 다른 형태인 뒷심이 강하다고 볼 수 있지요.” 일은 신중하게 시작하되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 사사로운 이익은 취하지 않고 오로지 한식의 발전과 계승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헌신,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신념. 이 모든 것을 함축한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온화한 눈빛을 보니 존경심이란 저절로 우러나는 것임을 깨닫는다. 상대를 높고 귀하게 대하는 ‘존중’ 이상으로, 우리가 ‘존경’의 마음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건 이처럼 막연한 ‘동경’에는 없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 문의 02-747-8104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