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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양조장 영천시장 옆 브루어리 304
세계 어디서든 시장의 보통 날은 그곳 주민들의 생활사 박물관 같다. 충남 아산의 논에서 고유한 수제 맥주를 선보여온 ‘브루어리304’는 보통 날의 특별한 휴식이 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옆으로 양조장을 옮겨왔다.

3층에 자리한 무목적 공간 304 스튜디오에서 오픈 전시로 선보인 최승훈 작가의 미디어 아트. 304 스튜디오의 운영은 올봄 운경재단 전시를 기획한 문화공간 17717의 김선문 기획자가 함께 한다.

양조장 중정에서 만난 304 탭룸의 이미혜 대표와 이재성 양조사.
아산의 논 한가운데에 있던 작은 양조장 브루어리304는 그 위치적 의외성처럼 최고의 홉과 맥아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 각각의 맥주 맛을 극대화하는 갖가지 풍미의 의외성을 만들어냈다. 계절마다 선보여온 ‘304 시즈널 컬렉션’을 집으로 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왔다. 소풍, 뒷동산 에일, 세종 넘버 텐, 세종 에일, 그리핀IPA 등 독특한 맛을 지닌 히트작이 연이어 탄생했다. 젊음의 축제와 행사, 핫한 카페와 레스토랑과도 협업을 진행했다.

맛의 의외성과 스타일, 브루어리304
“도시로 간다면 양조장까지 그대로 옮기고 싶었죠.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에게 풍미 좋은 맥주 한잔으로 휴식과 위로를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양조 사업과 탭룸 사업 부문을 나누어 맡은 브루어리304의 이미혜 대표 부부는 미국에서 함께 유학하며 육아를 하던 시절, 늦은 밤 집 앞 펍에 가서 에일 맥주를 마시는 게 휴식이자 위로였다. 교수이던 남편이 가업인 반도체용 정수 기술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미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정수 탱크 옆에 작은 양조장을 지었다. 부부의 작은 관심으로 시작한 비즈니스는 가까이서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도시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혜 대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장의 사회적 특성이 관계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맥주라는 음료의 속성과 닮았다고 느꼈다. 많은 곳을 답사한 끝에 옛날 서대문형무소 옆의 영천시장을 낙점했다. 다사다난한 세월을 거쳐 형무소는 이제 역사관이 되었고, 시장 건너편에는 최고급 브랜드의 아파트 군락이 들어섰다. 이미 혜 대표가 집안의 뜻을 이어 아버지를 돕는 운경재단 사무실과 운경고택도 가까워서 여러모로 최적의 위치였다.

편안한 디자인의 재생 건축으로 완성한 영천시장의 브루어리304 외관.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중정과 도심을 조망하는 304 탭룸 2층의 펍 공간.

최고 기술력의 정수 시설까지 갖춘 양조장.

브루어리304의 인기 맥주인 그리핀IPA와 세종 에떼, 그리고 효도치킨의 꽈리멸 치킨을 곁들인 치맥 테이블.
새로운 도시 재생 스타일, 무목적 공간
“1960년대 건물인 이곳은 옥바라지하던 사람을 위한 여관이었고, 이후엔 도심 속 대안 숙소였죠. 중정이 있는 낮은 건물이 3층 건물과 나란히 연결된 보기 드문 구조로, 사람들의 사연과 시간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모든 원형을 보전하기로 결정했죠.”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철거를 했고, 새로운 구조물이 나올 때마다 설계를 맡은 스튜디오OL의 이혁 소장과 함께 이를 분석하고 보강했다. 기존 마감재를 다듬고 그 위에 투명 도료를 발라 옛 모습 그대로 위생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건 신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품이 들어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정이 있는 단층 건물은 이재성 양조사가 맛의 변주를 시도하는 양조장이다. 정수 시설과 캐나다 스피시픽사의 첨단 설비까지 아산에서 그대로 옮겨와 알뜰하게 배치했다. 옆 건물의 1, 2층은 맥주를 마시거나 구입할 수 있는 ‘304탭룸’이다. 안주와 요리는 철학이 비슷한 셰프나 미식 브랜드와 협업해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은 미슐랭 스타 셰프인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와 ‘주옥’의 신창호 셰프가 문을 연 효도치킨과 함께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3층은 문화 공간인 ‘304 스튜디오’예요. 한계와 경계가 없는 문화 활동을 상상하며 ‘무목적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미혜 대표가 구상한 무목적 공간은 작품 전시부터 쿠킹 클래스, 대관까지 여러 형태의 문화 콘텐츠 활동이 가능하다. 일몰 후, 첫 전시의 주인공인 최승훈 작가의 너와 나의 관계에 관한 텍스트를 담은 미디어 아트가 골목의 건물 외벽을 수놓았다. 일상의 위로가 되는 시원한 맥주처럼 편안한 콘텐츠와 사람의 즐거운 관계가 어우러지는 브루어리304. 시장 옆 양조장은 사는 맛의 풍미까지 뽑아내며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양조하기 시작했다.

글 김민정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