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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우프코리아
유기농 농장에서 기른 깨끗한 식재료를 먹고 자연과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프는 전 세계 유기농 농가에 머물며 일손을 돕고, 자연의 이치와 농업의 소중함을 내 삶으로 데려오는 프로그램이다.

우프코리아 김혜란 상임이사. 국내 농가의 일손을 덜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우프코리아 계동 사무실 인근 한옥 '곳'. 세미나와 대관 공간으로 운영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문인들은 사계절 흐름에 따라 자연을 유랑했다. 서양 사회와 유럽의 지식인은 자연을 예술과 디자인, 일상의 요소에 반영하고 자연에서 얻은 철학과 지혜를 향유하는 것을 라이프스타일의 정수로 여겼다. 특히 영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도시 사람들이 주말에 외곽의 유기농 농장으로 가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자연을 경험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것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1971년 런던에서 우프WWOOF(World-Wide Opportunity on Organic Farms) 협회가 설립되었다. 현재 전 세계 1백53여 국가에서 1만 2천여 곳의 유기농 농가가 우프에 호스트로 참여하며, 연간 15만 명 이상의 세계인이 우프를 통해 농업과 자연을 경험하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유기농 농가와 일손을 잇는 우프
“농촌과 자연에 첨단 사회의 미래가 있기에 더 많은 사람이 한국 농촌의 일손을 돕고, 그곳에서 자연을 배우고 경험하는 삶의 가치를 느끼길 바랐습니다. 우프코리아가 그 통로가 되고 싶어서 2011년부터 한국 농가에 세계의 우퍼를 연결해주는 사업에 집중해왔어요.” 건축학도로 설계 사무소에 취직해 동료들과 경쟁하느라 야근을 반복하던 김혜란 우프코리아(wwoofkorea.org) 상임이사는 입사 3년 차이던 1997년에 우프를 통해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와 브리즈번, 멜버른 근처 소규모 자급자족 유기농 농가에 머물며 텃밭을 가꾸고 소를 돌보고 농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했다. 그토록 치열하던 회사 생활과는 또 다른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알았다. 1년 뒤 서울로 돌아와 유명한 설계 사무소에 재취업을 했지만, 호주에서의 행복한 일상이 떠올라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대신 우프코리아를 찾아가 때마침 일손이 부족하던 그 곳에서 일했다. 얼마 후 대표이사의 개인 사정으로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자 20대 후반이던 그가 우프 코리아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가진 돈이 전혀 없었는데도 친구와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었고 감사하게도 뜻이 이루어졌다.

2011년부터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우퍼와 국내 농가를 이어주는 사업에 집중했다. 수익이 적더라도 외국에 비해 유기농업과 자연 농업을 하기 쉽지 않은 우리 농가에 일손을 덜어주고,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이 더 시급했다. 그런데 초기에는 유기농 농가 호스트들의 반대가 심했다. 서양인 우퍼는 농업과 자연을 존중하고 열심히 일해 농가에 도움을 주는 데 반해, 한국인 우퍼는 불평이 많다는 농가의 실제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혜란 상임이사는 꾸준히 호스트를 설득했고 내국인에게는 슬로푸드와 자연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나갔다. “한국인을 한국 농촌에 보내는 것,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세계적으로 농업을 미래 산업으로 여기는 만큼 한국인도 한국 농촌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까요. 서양인 우퍼는 주로 20대가 많습니다. 요즘엔 한류 덕분에 동양인 우퍼도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인 우퍼도 많아졌어요. 한국인 우퍼는 30대 이상이 많은데, 농촌과 유기농업을 진지하게 배우러 온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호스트들이 말씀하세요. 우프가 귀농ㆍ귀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죠. 농장주와 비슷한 연배의 우퍼가 와서 말벗도 되고 일손을 덜어주는 생활 문화로 자리 잡는 것 같아요.”

현재 활동하는 우프 호스트 농장은 75곳 정도 되는데, 약 3 대 1의 경쟁 속에서 방문 심사를 통해 선발한다. 그만큼 유기농 농가는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양측의 불만은 ‘우퍼의 약속’ ‘호스트의 약속’이라는 사전 규정을 만들어 조율한다. 만약 다섯 건 이상의 불만이 접수되면 멤버십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자연과 농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전 세계 우퍼와 호스트 사이에는 열심히 일하고 더 자세히 알려주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제철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품을 모아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슬로박스.

한옥 '곳'에서는 슬로푸드와 우핑에 관련한 다양한 세미나와 행사를 진행한다. 개인과 단체의 대관도 가능하다.

우프코리아는 외국 유기농 농장 호스트와 국내 우퍼를 연결하는 사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주한 외국인이 요청한 슬로박스
“우프는 제초제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일거리가 더 많은 유기농 농가에서 하루 4~6시간 정도 일하는 대신 농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숙식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한국의 농촌 문화와 식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서 우핑을 하는 주한 외국인이 많아요. 자신이 일한 유기농 농가에서 농산물을 구매해 먹고 싶다는 요청이 점점 많아지면서 주한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는 ‘슬로박스’라는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슬로박스는 자연과 상생하는 친환경 농부를 응원하고 희귀한 식재료나 맛의 방주 등의 농산물을 지키고 보존하는 활동을 소비를 통해 돕는 것이다. 온라인(slowbox.kr)으로 신청을 받아 제철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하는데, 생산부터 포장, 유통까지 전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점이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 새벽 배송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슬로박스에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non-GMO, 토종 품종, 맛의 방주 등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바른 먹거리 중에서 원하는 농산물을 골라 담을 수 있어요. 주로 종이나 신문지 등에 싸서 보내는데, 여름이 되면 쌈 채소 등 몇 가지는 어쩔 수 없이 비닐로 포장하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주한 외국인 꾸러미 소비자들에게서 강력한 요청이 왔어요. 채소가 좀 시들어도 괜찮으니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일절 사용하지 말아달라고요. 그래서 슬로박스는 최소한의 비닐을 사용하는 것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 중 주문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프코리아에서는 연간 8백 명가량의 우퍼가 농가를 돕는데, 내국인이 그중 15% 정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웃 일본은 한 해 8천여 명의 우퍼 중 내국인이 40%에 달한다. 주 52시간 근무와 연중 자유로운 휴가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만큼 김혜란 상임이사는 한국에서도 유럽이나 북미, 일본처럼 농가에 머물며 농촌과 자연을 배우려는 도시인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농부는 별자리를 보아 절기의 흐름을 알아냈고, 바람을 읽어 수확 시기를 파악해온 인류의 생물학자이자 천문학자이고, 철학자이자 예술가다. 그래서 학계는 농업을 인류의 미래 산업으로 꼽는다. 농업이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가장 고차원적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퍼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과 가까이 소통하는 농부의 집에 머물며, 그 다학제적 경험을 흡수한다. 그 소중한 경험을 통해 우퍼는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가 된다. 우핑은 세계의 자연을 가꾸는 즐거움을 깨우치는 삶 속의 여행이다.


우퍼가 되는 법
우프코리아 웹사이트(wwoofkorea.org)를 통해 회원에 가입하면 1년간 우핑 요청과 활동을 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만 가입 가능하며, 회비는 1년에 5만 원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려면 만 9세 이상은 모두 회원 신청을 해야 한다. 그간 국내 호스트와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에 집중했으나, 해외 호스트와 연결하는 서비스도 곧 재개할 계획이다.

우핑하는 법
우프코리아 웹사이트에서 전국 70여 곳 호스트 유기농 농가의 정보를 한국어와 영어로 살펴볼 수 있다. 최소 1개월 전 우퍼가 직접 호스트에게 개별 연락해 일정을 논의ㆍ조율하는 방식이다. 하루 4~6시간 정도 일하고 농가에서 숙박과 식사를 제공받는다. 미성년자를 동반한 가족, 4인 이상의 단체, 만 60세 이상의 회원은 우프코리아 사무국에 이메일 (wwoofkoreainfo@gmail.com)로 문의하면 호스트를 연결해준다.

슬로박스 신청하는 법
신청 온라인 사이트(slowbox.kr)
기간 1~3개월 꾸러미 정기 배송 중 선택, 주 1회 또는 격주 배송 중 선택
크기와 가격 소(1~2인, 2만 4천 원/1회), 대(3~4인, 3만 6천 원/1회) 중 선택, 월요일 주문 마감, 목요일 배송
내용물 채소, 제철 채소, 과일, 달걀, 두부, 가공품 등 여섯 가지 품목 중 희망하는 종류 두 가지 이상 선택하면 품목과 가격 대비 양을 맞추어 배송
포장 최소한의 비닐을 사용하는 ‘일반 포장’과 ‘노 플라스틱’ 포장 중 선택
문의 02-723-4510

글 김민정 | 사진 이기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