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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영화에서 본 바로 그 칵테일
우리네 삶을 술 한잔에 비유한다면, 한 가지 재료로는 만들 수 없는 칵테일이 아닐까. 단맛, 쓴맛, 매운맛, 신맛이 마치 엎치락뒤치락 뒤섞인 희로애락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주요 장면에 칵테일이 자주 등장한다. 스토리를 품은 칵테일 아홉 가지.

007 시리즈
남자의 술, 베스퍼 마티니·민트 줄렙·모히토
당대 가장 매력적인 배우가 제임스 본드로 열연한 007 시리즈에는 늘 칵테일이 등장한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2006)에는 아무나 주문할 수 있지만,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강한 맛의 베스퍼 마티니가 나온다. 제임스 본드가 진(50ml), 보드카(15ml), 화이트 와인을 베이스로 한 리큐어인 키나 릴레이를 섞고 얼음을 띄워 흔든 다음 레몬 한 조각을 얹어달라고 주문하는 칵테일이다. 현재 단종된 키나 릴레이 대신 릴레 블랑(10ml)으로 대체하고 짭조름한 올리브를 곁들인다. 숀 코네리의 (1964)에는 위스키(60ml)에 민트(5g), 설탕(1큰술), 물 약간이 들어간 민트 줄렙이, 피어스 브로스넌의 (2002)에는 언뜻 보면 민트 줄렙과 비슷하지만 럼(30ml)에 으깬 민트(10g)와 탄산수 적당량, 라임즙(½개분)이 들어가 청량감이 높은 모히토가 나온다. 둘 다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곁들인 카프레제 혹은 햄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와 궁합이 좋다.

고급 남성 시계는 오메가, 총알 모양 연필 캡은 원더스토어, 라이터는 S.T. 듀퐁 파리, 접시는 이딸라, 선글라스는 구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탄산처럼 퍼지는 환상, 샴페인 컵
어른을 위한 핑크빛 판타지 동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영화 속 맨들스 케이크처럼 벨보이 출신의 구스타프가 고급스러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호사스럽게 즐기는 칵테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름도 사치스러운 샴페인 컵으로 코냑(45ml), 그랑 마니에르(20ml), 샴페인(30ml) 등 세 가지 술이 어우러져 맛, 향, 탄산감이 증폭한다. 설탕 시럽(5ml)을 넣어 단맛을 낸 샴페인 컵을 한 모금 들이켠 다음 생크림을 듬뿍 올린 딸기를 먹으니 부호로 나온 마담 D가 부럽지 않다.

글라스 램프는 빅슬립, 접시는 이딸라, 태슬과 탁상 전화기는 원더스토어.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무거움 속 가벼움, 올드패션드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의 라이언 고슬링이 에마 스톤에게 칵테일을 만들어준다. 쓴 약재 맛이 나는 비터 두 방울을 떨어뜨린 각설탕(2개)을 으깬 다음 위스키(60ml)와 얼음 적당량, 오렌지 껍질을 넣고 젓는 올드패션드는 말 그대로 전통 방법으로 만든 칵테일. 강한 술 맛 덕에 호감 있는, 하지만 기색을 표할 수 없는 남녀 간의 무거운 기류를 가중하는 듯하다가도 얼음이 살살 녹으면서 맛의 밸런스가 맞춰질 즈음 적당히 취하게 되는 작업주다. 다크 초콜릿을 곁들이면 더욱 고혹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더스트 백은 지미 추, 향수는 딥티크, 립스틱과 콤팩트 파우더는 겔랑.

위대한 개츠비
긴장마저 잠재우는 청량감, 하이볼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화려하지만 허황된 삶을 산 남자의 이야기.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2013)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이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등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위와 그 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의 정적을 깨뜨리는 칵테일이 등장한다. 탄산수가 다량 들어가 타들어가는 목을 기분 좋게 적셔주는 하이볼이다.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위스키(30ml), 탄산수(120ml)를 넣고 휘저은 다음 레몬 슬라이스를 곁들이면 완성. 개츠비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순간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시원한 기운이 퍼진다. 산뜻한 맛에 기름진 살라미와 잘 어울린다.

깃털 달린 헤어 장식과 골드 액세서리는 더퀸라운지, 원형 트레이는 픽트 스튜디오, 램프는 빅슬립, 골드 커틀러리는 에르메스.

섹스앤더시티
열정을 위한 충전, 코즈모폴리턴
“이렇게 맛있는데 왜 끊었지?” 일과 사랑에 늘 능동적인 뉴요커 여성 사총사가 영화 말미에 외치는 대사다. <섹스앤더시티>(2008)에 등장하며커리어 우먼을 위한 칵테일의 대명사가 된 코즈모폴리턴. 보드카(45ml)에 트리플 섹(20ml), 레몬즙이나 라임즙(15ml), 크랜베리 주스(30ml)를 섞어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낮다. 하지만 달착지근한 여운이 돌 즈음 얼굴이 핑크빛 코즈모폴리턴처럼 발그레 달아오를지도 모른다. 에그 타르트를 곁들일 것!

새틴 구두는 마놀로 블라닉, 접시·스카프·다이어리·시계는 모두 에르메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발칙한 음료,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사랑, 질투, 음모를 그린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의문의 음료를 건네며 “롱아일랜드에서 온 거야”라고 말한다. 여자를 취하게 만든 이 음료는 색이 아이스티와 비슷해 이름 붙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다. 콜라(60ml), 설탕 시럽(20ml), 레몬즙(15ml)이 들어간 새콤달콤한 맛이지만 실은 보드카(15ml), 진(15ml), 럼(15ml), 트리플 섹(20ml) 등 독한 증류주만 네다섯 가지가 들어간 독주다. 술의 힘을 빌려 이성을 유혹하려는 음흉한 마음이 담긴 이 술에는 ‘단짠’의 조합이 좋은 나초와 살사를 곁들인다.

분홍색 케이스의 향수는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눈을 형상화한 향수는 겐조, 향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앵무새 드로잉의 접시는 에르메스.

헤밍웨이 인 하바나
일상의 탈출, 다이키리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똑 닮은 칵테일.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헤밍웨이 인 하바나>(2016)에 등장하는 다이키리다. 럼(50ml), 라임즙(20ml), 설탕(2작은술)만 들어가 단순하면서 직선적인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앉은자리에서 열댓 잔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고 실제 죽기 전날까지 마셨다. 아마 헤밍웨이에게 지친 심경의 위로가 되어준 건 짙푸른 쿠바 바다도 아닌, 코끝 찡하게 신맛의 다이키리가 아니었을까. 안주로는 크래커 몇 조각이면 충분하다.

접시는 이딸라, 노트와 만년필은 에르메스.

글 이경현 기자 | 사진 김정한 | 믹솔로지 김봉하 | 스타일링 고은선(고고작업실) | 참고 도서 <소설 마시는 시간>(나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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