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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좋은 날 차 마시는 사람들1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차가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차에 매료되었느냐고. 차를 사랑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듣고 나면 차를 더 가까이 두고 싶어질지 모른다.

티컬렉티브 김미재 대표
차로부터 정갈한 태도와 맵시를 배웠다

티컬렉티브 김미재 대표는 쑥차를 우려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계절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내부는 따스하고 내추럴한 분위기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좋은 핸드메이드 감성의 티 패키지.

차를 주문하면 작은 쟁반 위에 고운 다기와 도구를 올려 내온다.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찻집이 있다. ‘힙’하다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났다 사라지는 청담동에서 ‘티컬렉티브’는 3년째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입지를 다진 것 그 이상이다. 지난 1월 중순 삼성동에 2호점을 연 데 이어 하반기에는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니 말이다(일본, 미국, 프랑스를 비롯해 2020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입점 제안을 받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은 쟁반 위에 올려진 고운 다관과 찻잔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각기 저마다의 관심사와 취향을 전시하는 SNS에 차 마시는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전통차가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의 단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루한 이미지에 갇혀 있던 차를 이토록 세련되게 풀어낸 인물은 다름 아닌 아트 디렉팅 스튜디오 아트먼트뎁의 김미재 대표다. 수없이 많은 콘셉트의 브랜드 컨설팅을 맡으면서도 늘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한 차원 높은 라이프스타일로 끌어낼 수 있는 한국의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차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신 보리차가 항상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것이 생각났다. 오렌지 주스병에 담긴 보리차나 정수기 옆에 놓인 티백으로 마주하는 차. 분명 이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브랜드화하기로 작정했다. 경남 하동에 내려가 차 농장에서 찻잎을 공수하고, 쑥이나 호박처럼 평범한 식재료도 다시 살폈다. 이제 늙은 호박과 단호박으로 만든 호박차와 하동군 악양면에서 재배한 쑥으로 만든 쑥차는 티컬렉티브의 시그너처메뉴가 되었다. 익숙하되 단순하지 않게, 그리고 한국적이되 전통적이지 않게 차를 소개하고 싶던 그의 바람은 어느정도 이루어진 듯하다. 차를 즐기는 데 복잡한 다도와 도구는 필요 없다. 멋스러운 찻잔 하나로도 충분하다. “차를 어떻게 마셔야 한다고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알맞게 완성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침이면 그는 제주도 흙으로 만든 검은 다기를 꺼낸다. 천천히 찻잎을 우리고 찻잔을 들면 허리는 절로 곧아지고 동작은 정갈해진다. 차를 마시는 행위가 몸맵시와 차림새에도 멋을 더해준다. 차로 인해 그의 일상에 아름다움이 고일 수 있는 틈이 생긴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산수화 티 하우스 정혜주 대표
차는 마음 보양식

긴 스탠드에서는 전문가가 차를 우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고, 차 관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간편하게 우릴 수 있는 유리 주전자부터 전통 방식의 다구가 전시되어 있다.

산수화에서 가장 넓은 테이블이 있는 단체석. 고재 가구로 꾸민 인테리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대만 작가 린펑시林逢喜의 다기로 노랑 물감을 푼 듯 은근하게 감도는 색이 좋다.
한남오거리 근처 막다른 골목에 숨은 중국차 전문점 ‘산수화 티 하우스(이하 산수화)’. 수증기의 온기가 가득한 이곳은 차를 마시는 공간과 다구를 진열한 작은 갤러리를 겸한다. 이 공간의 주인 정혜주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늘 차를 마시며 자랐다. 어머니는 열정적인 차 애호가였다. 중국 차 산지에 가서 품질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구입했고, 그 기록을 노트에 남기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하여 기록을 남긴다.” 어머니의 차 노트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화를 나눌 때, 드라마를 볼 때 가족은 습관처럼 차를 마셨다. 서울로 상경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때에도 그의 짐가방에는 언제나 차와 도구가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려 몸과 마음이 바쁜 날이면 차를 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차는 바깥에서 시선을 돌려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맛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든든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거창한 다예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차가 우려지기를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실은 휴식이며, 보양인 것이다. “차를 우리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요.” 20대 후반, 우연히 차 산지를 방문해 차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이후로 어머니가 그러했듯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흑차를 맛보러 후난성(호남성)으로, 백차를 구하러 푸젠성 (복건성)으로 향했다. 궁금한 점은 농부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재료나 유약 처리 방식이 다른 도구에 같은 양의 찻잎과 똑같은 물 온도를 기준으로 차 우리는 실험을 반복하면서 차 맛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산수화의 문을 연 지 5년, 한자리에서 찻집을 지키면서 차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여러 가지 차를 주문해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많고, 티 클래스에 참여하는 사람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남녀 비율도 비슷하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차를 마시러 오는 이에게 그는 그저 많이 마셔보라고 말한다. “차를 즐겨온 인류의 역사가 2천 년이 넘어요. 정신 수양의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그래도 차의 본질은 음료예요. 입맛에 맞는 차를 찾고 마시는 것으로 충분한 여유가 생겨요.” * 정혜주 대표가 차 산지를 다니며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차의 기초를 배우는 티 클래스를 운영합니다. 글 이세진 기자 | 사진 박찬우


토닌갤러리 하야시 마사키 큐레이터
차를 마시며 계절을 음미하다

토닌갤러리의 하야시 마사키 큐레이터는 가끔 다회를 열어 지인들을 다실로 초대해 차와 다과를 나눈다.

다완에 말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운 뒤 차선으로 정성껏 섞는다.

다실로 통하는 좁은 길에는 계절 꽃을 꽂은 화병이 맞이한다.

녹차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교쿠로와 디저트를 담은 복주머니, 바카라의 리큐어 잔으로 구성한 찻상.
맑은 오르골 소리가 귀를 감싸는 오르골 갤러리 ‘토닌’에는 비밀스러운 다실이 숨어 있다. 좁은 길이 안내하는 다다미방은 두 평 반 남짓. 서너 개의 방석과 화로만이 고요하게 자리한다. 하야시 마사키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차를 마시는 곳이다. 시루에서 쪄낸 녹차 잎을 그늘에 말려 곱게 간 말차가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차선(차 가루와 물을 섞는 도구)에 닿는다. 요즘같이 추위가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엔 물을 뜨겁게 끓이지만, 말차의 단맛을 더 느끼고 싶을 때는 물의 온도를 조금 낮춘다. “물이 끓는 소리, 차선이 다완에 부딪치는 소리, 차를 입안에 머금다 목으로 넘길 때 소리…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죠.” 크고 작은 소음에 무뎌진 감각이 조금씩 깨어나고, 속 시끄럽던 마음은 잠잠해진다. 그가 찻잔에 차를 따르고 비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리어 차가 그의 하루를 비우고 다시금 채운다. 그가 예를 갖추어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스무 살 무렵. 우연한 계기로 우라센케(裏千家: 일본의 세 가지 다도 유파 중 하나)의 선생을 통해 다도를 접하면서부터다. 하나씩 알아간 것은 차만이 아니다. 그 계절에 피는 꽃의 이름, 그릇과 도구의 쓰임새, 절기에 맞는 음식까지. 다도는 곧 만물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특히 차를 마시며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종류의 차라 할지라도 계절에 따라 맛과 향뿐 아니라 찻물을 따를 때 떨어지는 소리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도구 하나에도 계절이 깃든다. 가령 차솥 뚜껑을 바닥에 내려놓을 때 쓰는 ‘후타오키’라는 작은 받침이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부채가 펼쳐진 모양의 받침을 꺼낸다. 새해를 맞이하고 축복하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나들이 가기에 좋은 봄날이 찾아오면 좀 더 가볍고 간소한 휴대용 다기를 사용한다. 차와 곁들이는 음식은 말해 무엇하랴. 입춘 전날에는 악귀를 쫓고 복을 집 안에 들이기 위해 콩을 뿌리는 풍속을 반영해 콩 모양의 달콤한 초콜릿을 작은 복주머니에 담아낸다. 무엇보다 차를 즐기고 계절을 음미하는 데 격식과 법도가 앞서지 않는다. 예의를 갖춘다고 해서 엄숙할 필요는 없다. “홀로 차를 마시거나 여러 사람과 다회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차를 마시는 시간 자체예요. 일상에서 꼭 지키고자 하는 여백이지요.” 텅 빈 공백이 아닌, 부러 남겨둔 여백이 그가 향유하는 차의 시간이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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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이세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